소설리스트

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69화 (69/166)

#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 69화

69화. 이제 튀자

거대한 폭음과 함께 사방에서 열과 압력이 쏟아진다.

마치 유압 프레스로 사정없이 짓누르는 것처럼 막대한 에너지가 유릭을 눌러왔다

조금만 정신을 놓으면 한껏 찌그러져 탁구공만 한 사이즈가 될지도 모를 정도로.

그리고 유릭이 허공에 검을 찔렀다.

거대한 흐름에 구멍이 뚫리며 상승기류가 태어난다.

유릭을 향해 짓누르던 모든 압력의 방향이 허공에 뚫린 구멍으로 바뀌며, 열과 압력이 상승기류를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콰과과과과과광!

용권풍이 지하의 천장을 모조리 박살 내며 하늘로 올랐다.

술사들이 사용한 폭발 마법의 빛과 열도 소용돌이에 휩쓸려 허공으로 치솟았다.

-콰과과과과광!

-으, 으아악!

-피해!

공기가 터져 나가는 소리.

천장이 부서져 가루가 되는 소리.

7성 술사들이 기겁하며 뒷걸음질을 치는 소리.

“…….”

그러나 중앙에서 검을 들고 있는 유릭은, 아이러니하게도 미친 듯한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스릉-

그가 엑셀레아를 검집에 꽂아 넣었다.

-오…….

메르가 작은 탄성을 내질렀다.

유릭이 이 상황을 극복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소용돌이 안의 이 광경이 무척이나 보기 드문 희귀한 풍경이기 때문일까.

그러는 중에도 하늘을 향해 치솟는 불꽃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 * *

“아가씨, 모두 정리했습니다.”

“후우, 수고했어요. 부상자는 있나요?”

“가벼운 경상이 둘입니다.”

“다행이네요.”

카람 마을에선 클레어와 술사들이 모든 도적단을 정리한 후였다.

100여 명의 도적들을 죽이거나 사로잡는 와중에도 피해는 2명의 경상으로 그쳤다.

이곳에 있던 도적들은 뒷배 같은 것은 모르는 진짜 도적들이었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그저 이용만 당하던 이들.

“그 사람들은 어디로 향했죠?”

“인근에서 지하로 향하는 통로를 찾았습니다. 세 사람분의 발자국도 확인했구요.”

“빨리 가보도록 하죠.”

클레어가 다급히 술사들을 재촉했다.

그건 잠시나마 함께 여행한 동료를 걱정한다기보단, 선수를 뺏겨 초조한 자의 모습이었다.

‘내가 왜 이러지?’

클레어 본인조차 스스로가 왜 그러는지 알지 못했다.

그들은 단순히 수련 여행 중인 여행객일 뿐인데 어째서?

걱정이 되는 것이면 몰라도 선수를 뺏기는 것 같아 초조함이 올라온다는 건 이상하지 않은가.

‘가보면 알겠지.’

뭐가 됐든 내려가 보면 되는 이야기다.

클레어를 포함한 그들 5명이 지하 통로를 찾아 들어가려 할 때.

-다다다다다다!

한쪽에서 모래 먼지가 자욱이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누군가 낙타를 타고 달려오고 있다는 뜻.

그것도 한 사람이 아니라 족히 수십은 될 법한 대인원이었다.

“증원인가!?”

“전투 준비!”

그들이 다급히 진형을 이뤄 전투를 대비했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다가온 수십의 정체는 클레어가 아주 잘 알고 있는 이들이었다.

“……오라버니?”

큰오빠 루카스 아칸을 위시한 가문의 술사들.

생각지도 못한 생뚱맞은 조우에 클레어가 멍한 얼굴이 되었다.

루카스가 클레어를 보더니 칫, 혀를 차며 얘기했다.

“샤니스가 누굴 보냈다고는 들었는데 너였구나, 클레어.”

“오, 오랜만에 뵙습니다, 오라버니. 변함없이 건강하신 것 같아 기쁩니다.”

“너도 변함없이 멍청한 낯짝이구나. 애석한 것.”

루카스의 음침한 목소리가 클레어의 가슴을 후벼팠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한 채 떨고 있을 뿐이었다.

루카스가 스윽 주변을 둘러보았다.

클레어는 물론 그녀의 뒤에 있던 술사들도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모두 내리깔았다.

루카스는 그들의 면면을 확인하고, 그리고 마을 내의 참상 또한 확인했다.

“이 사막의 일은 대충 들었다. 이곳은 내가 맡을 테니 넌 물러나라.”

클레어가 팟, 고개를 들었다.

그 말은 대놓고 쫓아내겠다는 말이 아닌가?

그럴 수는 없었다.

자신은 개인적인 이유로 이곳에 온 것이 아니라 샤니스 언니의 부탁으로 온 것이었으니까.

“죄, 죄송합니다만 그 명령은 들을 수 없습니다. 이건 언니의 부탁으로-”

“쯧!”

루카스가 크게 혀를 차며 클레어의 말을 잘랐다.

“아직도 모르겠느냐?”

“예? 뭐, 뭘요?”

“이번 일은 네년 같은 사생아 따위가 건들 사이즈가 아니란 말이다.”

클레어의 입이 꾹 다물어졌다.

루카스가 코웃음 치며 손을 저었다.

“흥, 알았으면 거기서 비켜라. 그 안을 확인해 봐야겠으니.”

“……습니다.”

그러나 클레어는 들리지 않는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루카스가 찡그리며 다시 얘기했다.

“비키라는 소리가 들리지 않더냐?”

그 말에 클레어가 고개를 들고 루카스의 눈을 쏘아봤다.

“오라버니야말로 못 하겠다는 제 말이 들리지 않았습니까?”

“……뭐라?”

루카스가 살짝 당황했다.

클레어의 모습이 일변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작은 다람쥐처럼 떨던 모습은 사라지고, 남은 것은 날카롭게 번뜩이는 눈빛뿐이었다.

“공사가 다망하신 오라버니께서 직접 찾아오실 정도라니, 이 아래 있는 것이 그리도 중요한 것입니까?”

“중요하지. 그러니 네년 같은 사생아 따위가 건들 것이 아니라 말하는 것 아니냐?”

사생아라는 말에 클레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녀의 눈에 붙은 불은 더욱더 크게 타올랐다.

자신이 사생아인 것은 부정하지 않는다.

그건 진실이니까.

하지만 사생아라는 단어는 그녀에게 열등감을 뜻하는 단어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의 투지를 불태우는 단어.

“저를 치우고 싶다면 샤니스 언니에게 허가를 받아 오시지요. 그게 안 된다면 저보다 일찍 오시든가요. 이미 늦었지만.”

목소리는 정중하지만 담긴 뜻까지 그렇진 않았다.

꼬우면 먼저 왔어야지, 이런 말이 아닌가?

“이년이!”

루카스가 당장 낙타에서 뛰어내려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러곤 하얀 장갑을 낀 손을 크게 들어 올렸다.

클레어가 이를 악물곤 질끈 눈을 감았다.

그러나 고개를 숙이진 않았다.

오히려 당당히 치켜든 모습.

루카스가 얼굴을 씰룩이며 그녀의 뺨을 내려치려 할 때.

-콰아아아아아앙!

천지를 뒤흔드는 듯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당장에 모두의 시선이 그곳을 향했다.

저 멀리 떨어진 어딘가에서, 불길에 휩싸인 용권풍이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 * *

부화장은 일소되었다.

마법진은 모두 파괴되었고 7성의 마법사들 역시 새까만 숯덩이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많던 알과 새끼 어스웜들 역시 재도 남지 않고 모조리 타버렸다.

무사한 것은 가운데에 우뚝 서 있는 유릭뿐.

그때 팔랑하고 무언가가 살랑살랑 떨어져 내렸다.

그것은 여왕 개체의 머리 부분에 새겨져 있던 모종의 문양.

그 부분의 거죽만이 남아 떨어져 내린 것이다.

유릭은 분명 이 문양을 본 적이 있다.

책에서도 봤고 직접 보기도 했다.

풍령을 얻었던 저택의 입구에 그려져 있던 그 문양.

‘칠색의 마왕 크레마뉴의 문양.’

마왕의 문양이었다.

화르륵.

이내 남아 있는 잔불이 그 작은 거죽마저 모두 태워 버렸다.

하지만 그것은 유릭의 눈과 머리에 새겨진 기억까지 태우진 못했다.

칠색의 마왕의 흔적이 이곳에 있다는 사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저 멀리 북부에 자리 잡았던 마왕의 흔적이 왜 이 남단에 있단 말인가?

다만 유릭은 말도 안 되는 그 일을 말이 되게 하는 정보를 알고 있었다.

‘아이작 형님이 엮여 있군.’

로스카의 1공자 아이작 로스카의 흔적.

아이작 로스카는 마왕의 유산을 훔쳤다는 이유로 의절 당해 쫓겨났다.

그러곤 자신이 20살이 될 때, 즉 2년 후에 다시 가문에 돌아온다.

아칸과의 평화 조약을 추진하고 있다는 실적과 함께.

수십 년을 싸워온 두 가문이 휴전을 하게 되는 조약이다.

그만한 것이 하루아침에 나올 턱이 없을 터.

아마 수년도 전부터 아칸과의 물밑조정 및 협약이 있었을 테지.

그 말은 즉 이런 뜻이다.

‘이미 지금 시점에서 형님은 아칸과 연결되어 있다.’

2년 전인 지금 이미 아이작과 아칸은 접점이 있다는 뜻.

어쩌면 아이작의 은거 생활을 도운 것이 아칸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크레마뉴의 문양이 이 사막 땅에서 발견된 것도 충분히 납득이 가는 일이다.

‘이번 일의 범인. 형님의 뒤를 봐주고 있는 놈. 2년 후에 나랑 클레어를 볼모로 교환한다는 엿 같은 조약을 추진하는 아칸 측의 인간.’

이 모든 게 같은 사람이다.

1공자인 루카스일까? 아니면 2공자인 필리페일까?

-쿠구구구구구궁!

그때, 지하가 미친 듯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지진이라도 났나? 하고 생각했지만 잘 생각해 보니 아니었다.

“어스웜인가?”

-여왕이 죽어서 날뛰는 것 같아요.

메르의 말이 추측에 확신을 주었다.

여왕벌이 사라지면 벌집 전체가 난리가 나듯이, 여왕 개체가 사라지고 근방의 어스웜들도 모두 난리가 난 것이다.

-아아아악! 뭐, 뭐야 이것들은!

-왜 우리를…… 아악!

위쪽에서 화염술사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온다.

그동안 실컷 어스웜을 부려 먹던 업보를 받는 듯했다.

실력 있는 술사들인 만큼 어스웜에게 죽진 않겠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데릭과 글렌이 이 틈을 놓칠 리가 없었으니까.

유릭이 위로 올라갔을 때쯤, 데릭과 글렌은 모든 술사들을 정리하곤 날뛰는 어스웜들을 피하는 중이었다.

“유릭, 무사했구나! 방금 그건 뭐지!”

“여왕 개체가 있는 쪽에 함정이 있었다.”

“함정이라고?”

“잘 해결하고 왔으니 괜찮아. 그보다 다 정리했어?”

어스웜을 막는 것이야 데릭과 글렌 두 사람만으로 충분하다.

유릭은 그들 사이로 걸으며 화염술사들의 시체를 세었다.

촤악!

데릭이 어스웜 하나의 목을 베며 유릭에게 얘기했다.

“아직 세 사람 남았다. 아마 7성이라던 그 셋 같은데…… 어쩌면 도망갔을지도 몰라.”

“그러면 다 잡은 거 맞아. 그 세 명은 함정 쪽에 있었거든.”

“그랬나? 왜 멍청하게 함정에 대기하고 있었지? 처음부터 이쪽에 붙었으면 꽤 힘들었을 텐데.”

“증거 인멸을 우선했나 보지.”

실제로 놈들의 증거 인멸은 성공하긴 했다.

어스웜의 여왕 개체는 재도 남지 않고 모두 불타버렸으니까.

아무리 유릭이 여왕 개체를 봤다고 주장해도, 그걸 받쳐줄 증거가 남지 않게 되었다.

“쯧, 일을 귀찮게 만드는군.”

“어쩔 수 없어.”

유릭이 고개를 들었다.

마구 날뛰는 세 마리의 어스웜이 보인다.

놈들은 눈에 뵈는 것 하나 없는 것처럼 여기 부딪치고 저기 부딪치고 하더니, 이내 유릭을 발견하곤 쏜살같이 달려왔다.

유릭이 엑셀레아를 뽑아 휘둘렀다.

-서걱.

일격에 세 마리의 머리가 모조리 떨어져 내린다.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체액이 유릭을 덮쳤지만 보이지 않는 장벽에 막혀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풍령으로 펼친 바람의 벽으로 막은 것이다.

“이놈들까지 다 정리하고 시체를 뒤져보자고.”

여왕 개체는 사라졌지만 이놈들에게선 뭐라도 나올지도 모른다.

가령.

‘아칸의 신분패라든지.’

그런 종류의 아주 쓸모가 많은 물건들 말이다.

* * *

술사들의 시체를 뒤져 그럴듯한 물건은 모조리 챙긴 그들이 지상으로 올라왔다.

올 때는 카람에서 이어진 지하 통로를 타고 왔지만, 올라갈 때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술사들이 쓰기 위해 만들었는지 바로 위쪽 지상으로 나가는 통로가 있었기 때문이다.

올라오니 사막의 태양이 쨍쨍 내리쬐고 있었다.

그때, 저 멀리서 모래 먼지가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저건…….”

유릭이 눈을 가늘게 뜨자 옆에 있던 글렌이 숨을 삼키며 얘기했다.

“선두에 있는 남자…… 제 눈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루카스 아칸입니다.”

“나도 잘 보인다. 아칸의 1공자 말이지?”

“예.”

루카스 아칸을 위시한 수십의 술사들.

어찌나 다급한지 붉으락푸르락한 얼굴로 전속력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한쪽에는 클레어도 낙타를 타고 같이 달려오고 있다.

‘1공자라.’

좋아, 이걸로 적의 정체를 확실히 알았다.

그것까지만 확인하곤 유릭이 미련 없이 뒤를 돌았다.

“자, 그럼. 이제 튀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