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 70화
70화. 이거 가져가라
지상에도 아칸 놈들이 마련해 놓은 임시 거처가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몇 마리나 되는 낙타가 매여 있다.
어스웜이 날뛰는 통에 낙타들이 겁먹고 미친 듯이 날뛰고 있었지만, 건물에 꽉 매여 있어 도망칠 수가 없었다.
서걱.
유릭이 낙타들의 줄을 전부 끊었다.
그러자 당장에 뿔뿔이 줄행랑을 치는 낙타들.
그중 세 마리만 휘어잡은 후에, 유릭 일행이 올라탔다.
“가자.”
“그쪽으로 가면 아칸의 영역에 들어갑니다만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고 자시고 사막 쪽에선 루카스 아칸이 달려오고 있는데 별수 없잖아?”
도망칠 방향은 한 곳뿐이다.
사막의 경계선을 넘어 아칸의 영역으로.
일행이 달리기 시작하자 뒤쪽에서 보이는 모래 먼지가 한층 더 커다랗게 피어올랐다.
놈들이 속도를 높였단 뜻이었다.
-거기 서!
-대공자님의 명령이시다! 멈춰!
당연히 설 리가 없다.
유릭이 엑셀레아를 발검하며 뒤쪽으로 비스듬히 휘둘렀다.
콰과과과광!
땅이 뒤집히며 선두의 몇 명의 술사들과 낙타들이 튕겨 나갔다.
“아악!”
“젠장, 잡아!”
놈들도 낙타를 몰며 불꽃을 쏴대기 시작했다.
비처럼 내리는 불꽃 사이를 돌파하며 일행이 아칸의 영역으로 향했다.
사막과 푸른 숲의 경계선.
그곳엔 스콜피온 놈들이 사막화를 진행 중이던 흔적이 환하게 보였다.
본디 울창했을 숲이 어스웜에게 먹히고 갈려 완전히 폐허가 됐고, 그 위를 모래술사가 만든 모래폭풍이 뒤덮는다.
그렇게 몇 차례 땅을 갈다 보면 숲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사막만이 남게 되겠지.
그 중간 과정.
모래 사이로 파묻힌 찢어진 나무줄기나 뿌리, 듬성듬성 보이는 녹색의 풀들.
반은 황색의 모래고 반은 녹색의 숲인 그 장소를 유릭 일행이 뚫고 지나갔다.
“거기 서!”
그 뒤를 쫓는 루카스와 술사들.
루카스가 옆으로 손을 내미니 술사 하나가 그 손에 창을 쥐여주었다.
드릴처럼 나선의 강선이 그려진 기다란 창.
루카스의 손에서 불꽃이 피어오르더니 창 전체를 감싸기 시작했다.
“오라버니! 저들을 죽일 생각이세요!? 그럴 필요까지는 없잖아요!”
“닥쳐라! 네년이 뭘 안다고!”
클레어가 만류했지만 루카스는 충혈된 눈으로 단박에 내쳤다.
클레어의 눈이 짙은 의심과 의혹으로 물든다.
대체 뭐 때문에 오라버니가 이렇게 필사적인 거지?
그 지하에 뭔가가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만약 밝혀진다면 오라버니에게 크게 타격이 될 무언가가.
“그아아아!”
클레어가 미심쩍게 보는 것도 모르고 루카스는 유릭 일행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뿌드득!
그가 크게 몸을 비틀어 창을 당긴 후, 그대로 던졌다.
키이이이이잉!
핏빛과도 같은 붉은 불꽃에 휩싸인 창이 그대로 유릭 일행에게 떨어졌다.
미친 듯이 회전하는 그 창에서 귀신의 곡성과도 같은 울음소리가 퍼져 나갔다.
“도련님!”
“쯧.”
유릭이 낭패라는 듯 혀를 찼다.
아칸의 1공자 루카스.
누이인 엘린과 비슷하게 이미 8성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녀석이다.
그런 그가 분노하며 쏘아낸 창에는 무시할 수 없을 거력이 담겨 있었다.
정통으로 맞으면 죽는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유릭, 이젠 안 되겠다. 뽑는다!”
데릭이 급히 이솔렛을 뽑았다.
유릭도 더 이상 막지 않았다.
이미 숨기고 뭘 하고 자실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우웅-
청명하게 울리는 이솔렛을 데릭이 휘둘렀다.
허공에 반원을 그리는 검로.
푸른 빙화(氷花)가 피어오르며 공기가 얼어붙어 갔다.
카가가가가강!
그곳에 루카스의 창이 떨어졌다.
핏빛 불꽃의 창이 몇 겹이나 되는 꽃을 깨뜨려 나갔다.
얇디얇은 꽃잎은 루카스의 거력이 담긴 창을 막아내기엔 역부족으로 보였다.
그러나.
캉-!
어느 순간, 한 스물 정도의 꽃잎을 꿰뚫은 창이 급속도로 힘과 회전력을 잃었다.
그 상태로도 기세만으로 3겹의 꽃잎을 더 깨부수긴 했지만 거기까지.
루카스의 창은 허공에서 얼어붙은 채 그대로 모래밭에 툭, 떨어져 내렸다.
“아니!”
말도 안 된다는 듯 루카스가 낙타 위에서 분개했다.
어찌 일개 여행객 따위가 자신의 창을 막는단 말인가!
로이헨 가문이 그렇게 실력 있는 가문이었나?
그렇지 않다.
잘 쳐봐야 조그마한 지역의 유지(有志) 정도.
나름 이름은 있지만 명가라고 불리기엔 아직 한참은 모자란 그런 가문이 로이헨이었다.
더구나 방금의 그 얼음의 꽃.
루카스는 그것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빙화의 마검! 로스카 놈들이냐!”
다른 사람의 눈은 피해도 아칸의 눈은 피하지 못한다.
숙적 관계인만큼 서로가 서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이 로스카와 아칸이었으니까.
“그런…… 그럴 리가…….”
그리고 이솔렛에 대한 것은 클레어 역시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푸른 얼음의 꽃잎이 흩날리는 검.
물론 이런 특징을 가진 검은 이솔렛 말고도 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특징과 함께, 마스터인 루카스의 창을 막아낼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다면 그건 이제는 이솔렛뿐.
“네 이년! 감히 로스카 놈들과 내통을 해!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네년도, 샤니스 그년도 전부!”
“아니, 저는…….”
“입 닥쳐!”
짜악!
루카스가 클레어의 뺨을 후려갈겼다.
그의 분노의 화살은 유릭에게도 향하고 클레어에게도 향하고 아주 중구난방이었다.
마치 분노를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잡아 와! 책임지고 모조리 잡아 와서 내 앞에 꿇려라! 그것 말곤 네년이 속죄할 길은 없을 것이야!”
물론 유릭을 향한 추적은 멈추지 않는다.
그때쯤 유릭 일행은 이미 사막 지역에서 완전히 나와 푸른 들판을 뛰고 있었다.
목표는 저 앞에 보이는 거대한 산.
추적을 따돌리기에 딱 좋은 장소였다.
* * *
낙타를 타고 산을 오를 순 없다.
고삐를 풀은 낙타를 그대로 도망가게 두곤 유릭 일행이 산을 올랐다.
뒤에선 루카스와 술사들 역시 똑같이 낙타에서 내려 쫓아오고 있었다.
“이대로 적당히 산을 헤매다 우회해 북쪽으로 향한다. 사막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위험할 수도 있어.”
“카자르 왕국 때문이군.”
“마음 같아선 감사 인사라도 받고 싶지만 그럴 형편도 아니니까.”
카자르가 억울한 누명을 쓸 뻔한 것을 막아줬으니 감사패를 받아도 모자랄 지경이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사건은 미연에 방지되어 일어나지 않은 것이 되었고, 그런 이상 카자르는 아직 아칸의 동맹국이다.
‘물론 이 정보를 가문에 전달하면 달라지겠지만.’
이걸 이용해 가문에선 물밑 작업에 들어가겠지.
카자르와 아칸의 사이를 떨어뜨리기 위한.
아이러니하게도 이간질을 막아준 자신들이 이젠 나서서 이간질을 시도하는 셈이다.
그것에 죄책감 따위는 들지 않았다.
그것으로 인해 가문과 영지민들이, 이쪽의 울타리 안이 더욱 평화로워질 수 있다면.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정보를 가지고 무사히 가문으로 돌아갔을 때의 얘기다.
“아칸의 영역만 벗어나면 13기사단의 동료들과 접촉이 가능합니다. 그들 중 하나와 합류하여 복귀하도록 하죠.”
“좋아. 그렇게 하지.”
대략적인 방침과 루트를 잡은 그들이 산을 올랐다.
일단은 추적을 뿌리치는 것이 먼저다.
-화르륵!
아래쪽에선 아칸 놈들이 피워 올린 불꽃이 수십 개나 보였다.
그들 모두가 산을 샅샅이 수색하며 조이듯 산을 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고작 수십 정도로 산을 둘러싸는 것은 무리다.
포위 같지도 않은 포위였기에 뚫는 것은 용이했다.
“루카스만 피하면 돼.”
“그놈의 위치는 훤합니다. 숨길 생각도 없이 기세를 피워 올리고 있군요.”
분노한 마스터의 기세는 숨기려야 숨길 수 없는 것이다.
일행은 루카스의 반대 방향을 따라 산의 길을 탔다.
그렇게 지나가다 보니 깊은 협곡과 그 위에 놓인 다리가 보인다.
일행이 다리를 모두 건널 때쯤.
“멈추세요!”
뒤쪽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귀에 익은 목소리. 클레어 아칸이었다.
일행이 루카스를 피해 루트를 잡을 것을 예측하고 이쪽으로 온 것이었다.
“당신들! 정말 로스카인가요!?”
클레어가 물었다.
그러나 물어보긴 했어도, 그녀의 눈빛엔 이미 반쯤 확신이 담겨 있었다.
유릭이 입가를 가리고 있던 천을 풀었다.
“유릭!”
클레어가 아드득, 이를 갈았다.
아무리 검은 머리로 염색을 했다지만 저 얼굴을 잊을 리 없다.
“나를 속였어!”
한껏 붉어진 얼굴로 분개하는 그녀를 보며 유릭이 피식 웃었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원래 우리 관계가 속고 속이는 관계 아니었던가?”
“그래도 어떻게…… 어떻게 이런!”
“화를 내기보단 걱정부터 하는 게 어때? 루카스가 아주 벼르고 있는 것 같던데.”
흠칫.
클레어가 한차례 몸을 떨었다.
유릭의 말대로 지금 클레어는 절체절명의 상황이나 다름없었다.
루카스가 그녀를 내통 혐의로 몰아간다면 벗어나기는 결코 쉽지 않으리라.
실제로 잠시나마 함께 행동하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그 말을 유릭에게 들으니 그녀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다 너 때문이잖아!”
“뭐 그렇긴 하지.”
“이익!”
그녀가 당장 쫓아가려 흔들다리에 발을 올렸다.
하지만 그 순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유릭이 엑셀레아를 살짝 뽑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검에 이는 불길한 바람 앞에서 흔들다리로 뛰어드는 것은 어지간한 용기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나한테 화내는 건 좋은데 그것보다 먼저 화내야 할 게 있지 않아?”
“뭐? 무슨 소리야?”
“이번 사건을 잘 생각해 봐. 카람 마을에서 어떤 일이 있었지?”
사막의 가장 구석에 있는 작은 시골 마을.
왕국에서조차 잊힌 그 마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
“마을은 도적단에 점거당했고 그 지하에선 어스웜이 배양되고 있었지. 우리가 지하에 갔을 때 촌장은 새끼 어스웜들의 먹이로 던져지기 직전이었다.”
“!”
클레어가 숨을 삼켰다.
도적단에게 점거되어 노예로 부려진 것까지는 알고 있었지만, 마물의 먹이로 던져졌다니?
전자도 물론 용서할 수 없는 일이지만, 후자는 용서 이전에 사람으로서의 일선을 넘은 것이었다.
“루카스가 저렇게 뿔난 망아지처럼 날뛰는 이유. 너도 짐작은 가지 않아?”
“…….”
벌어졌던 클레어의 입이 천천히 다물어졌다.
유릭의 속삭임은 너무나 절묘하고 은근해서 마치 이야기책 속의 악마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진짜 악마는 누구인가?
사람을 마물의 먹이로 던지는 그놈들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어느새 그녀의 유릭을 향한 분노는 많이 가라앉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가라앉은 것이 아니라 뒤로 밀린 것이다.
그 이상으로 용납할 수 없는 것이 나타났기에.
“이거 가져가라.”
유릭이 다리 건너에서 무언가를 던졌다.
어째선지 정확도가 무척 떨어져 그녀의 한참 옆에 떨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일단 다리를 넘긴 했다.
그녀가 그 물건을 주워들었다.
그것은 아칸의 비밀 첩보부대 중 하나인 비사대의 표식.
그리고…….
“지하에 있던 놈들한테서 주운 거다.”
……비사대의 대주는 그녀의 첫째 오라비인 루카스 아칸이었다.
“유릭-”
그녀가 더욱 물을 것이 있어 손에 든 표식에서 고개를 들었을 때.
콰직!
후두두둑!
유릭이 검을 마저 뽑았고, 완전히 박살 난 흔들다리가 협곡 아래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유릭 일행이 어두운 수풀 너머로 사라진다.
클레어는 발이 멈춘 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 손은 비사대의 표식을, 손이 하얘질 정도로 강하게 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