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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71화 (71/166)

#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 71화

71화. 내 대답은 이거

“놓쳐! 놓쳤다고! 그게 말이 돼!”

클레어가 돌아와 보니 루카스는 한창 부하 술사에게 역정을 내는 중이었다.

“죄, 죄송합니다. 놈들이 워낙 신출귀몰해서…….”

“죄송하면 다야!?”

짜악!

루카스가 부하에게 손찌검을 날렸다.

그걸로도 모자라 엎어진 그에게 몇 차례나 발길질을 가한다.

퍽! 퍽퍽!

클레어가 급히 달려와 그 앞을 막아섰다.

“그만두세요, 오라버니!”

“아앙? 내 부하를 내가 훈육하겠다는데 네년이 무슨 상관이냐!”

“이게 무슨 훈육인가요!”

“닥쳐! 것보다 네년은 어때? 놈들을 잡아 왔겠지?”

“……놓쳤어요.”

“젠장! 쓸모도 없는 년!”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루카스가 클레어로 표적을 돌렸다.

그때, 클레어가 내민 무언가를 보곤 그가 우뚝 멎었다.

“……뭐냐, 그건.”

“지금껏 가만히 있었지만, 그때 놈들이 올라오던 지하 입구 쪽에서 주운 거예요.”

비사대의 표식.

차마 유릭에게 받았다곤 할 수 없으니 적절히 거짓말을 섞어 얘기했다.

그걸 본 순간 지금껏 분노 조절을 하지 않고 있던 루카스가 대번에 조용해졌다.

중구난방 하던 방금까지와 달리 보다 정제된.

그런 살기를 띤 눈으로 그가 클레어를 노려보았다.

“우리 애들 중 누가 흘렸나 보구나. 누군지 모르지만 대원의 표식을 흘리다니 멍청한 것. 벌을 줘야겠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수십의 술사들 역시 비사대의 일원이다.

그들 중 하나가 실수로 흘린 것이라 하면 충분히 말은 되었다.

하지만 그런 임기응변 수준의 말로 클레어를 속일 순 없었다.

“비사대의 인원이 평소보다 많이 줄어 보이는데요. 나머지는 어디에 있죠?”

“……당연히 전원이 이 자리에 있을 리 없지 않으냐. 누구는 휴가를 갔고 누구는 다른 임무를 수행하고 있지.”

“그렇군요. 가문에 돌아가면 한번 확인해 봐야겠어요.”

“이년이…….”

루카스가 눈을 희번덕 뜨며 으드득 이를 갈았다.

하지만 그런 표정과 달리 머릿속은 팽팽 돌아가고 있었다.

이미 모든 것을 어둠에 묻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 정적에게 받을 공세를 어떻게 받아칠 것인가.

그런 계략을 짜내는 데 급급했다.

그런 오라비를 보며 클레어의 눈이 더욱 가라앉았다.

역시 이 사람이 이 모든 일의 범인이다.

그렇게 확신했다.

그렇게 살기가 도는 두 남매의 모습을, 멀찍이서 지켜보는 사내가 있었다.

‘후후, 대단하구나, 유릭. 루카스한테 완전히 물을 먹였어.’

이걸로 한동안 루카스 쪽은 꽤나 휘청거릴 것이다.

1공녀 샤니스가 이번 일을 빌미로 미친 듯이 물어뜯을 것이고 루카스는 그걸 방어하느라 급급할 테니까.

그것은 동시에 루카스에게 끈을 대고 있는 자신의 입장 또한 위태로워짐을 의미했다.

하지만 사내, 아이작은 전혀 개의치 않는 표정이었다.

‘인정하마 유릭. 이젠 알겠다. 알리샤의 죽음도 브랜든의 죽음도. 모두 네 근처에서 당한 것이 우연이 아니었구나. 모두 네가 한 일이었어.’

그동안은 그냥 우연의 일치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일의 경과를 지켜보니 알 수 있었다.

알리샤도 브랜든도, 그리고 이곳에 있던 어스웜의 여왕 개체까지.

자신의 각인을 받은 세 부하를 죽인 사람의 정체가 모두 유릭임을.

그리고 그 유릭은 이미 루카스와 비사대에게서 벗어나 저 멀리 도망갔다.

‘가는 건 좋은데 그냥 보내줄 수는 없지.’

아이작이 옆쪽으로 손을 까딱거렸다.

그러자 스르륵 모래가 올라오며 남자 하나가 나타났다.

손목에 남색의 크레마뉴의 문양이 새겨져 있는 남자였다.

“내 동생을 찾아 전언을 하나 전해다오. 전하기만 하면 된다.”

남자가 깊게 고개를 숙였다.

* * *

루카스의 추적을 따돌린 유릭 일행은 북쪽으로 방향을 잡고 산길을 탔다.

아직도 포기하지 않은 루카스의 부하들이 산을 뒤지고 있었지만 이미 그들은 빠져나간 후였다.

남은 것은 그대로 산길을 타고 아칸의 영역을 벗어나는 일뿐.

그러던 중.

“……누구지?”

일행의 앞을 막는 이가 있었다.

그를 보자마자 유릭은 경계하며 허리춤에 손을 가져갔다.

남자의 손목에 새겨진 문양.

여왕 개체에 새겨져 있던 것과 똑같은 칠색 마왕의 문양이었다.

‘이번엔 남색인가.’

아무래도 칠색의 마왕이라는 이름답게 일곱 가지 색깔의 각인이 있는 것 같았다.

단지 색깔의 구분이 경지의 높낮이를 의미하진 않는 듯 보인다.

왜냐면 황색의 문양을 가진 어스웜의 여왕보단 명백히 눈앞의 남색의 사내가 더욱 강해 보였으니까.

‘7성쯤 되려나.’

-그쯤 되겠네요.

저 뒤쪽에 있는 루카스보단 약해 보이고, 대신 브랜든보다는 강해 보인다.

아마 그쯤 되는 경지겠지.

“유릭 로스카가 맞나?”

“그런데.”

“아이작 님으로부터 전언이다.”

남색 문양의 남자가 거만하게 턱을 치켜들며 얘기했다.

옆에서 데릭이 생각지도 못한 이름에 숨을 삼키는 것이 들렸으나, 분위기를 읽었는지 끼어들진 않았다.

유릭이 턱을 까딱거리며 말했다.

“말해봐.”

“큼큼. 귓구멍 파고 경청하도록.”

남자가 아이작의 전언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진행될수록 점점 유릭과 데릭의 표정이 기이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잠깐. 다시 말해봐. 어머니가 뭘 어쨌다고?”

“발렌티나 로스카가 어떻게 10성, 초월의 경지에 이를 수 있었는지 아냐고 하셨다.”

“그야 열심히 수련해서 아냐? 그거 말고 뭐가 있는데?”

“닥치고 듣기나 하도록. 그리고 이렇게도 말씀하셨다. 너희도 조심해야 할 것이라고. 사랑하는 어미의 칼을 맞고 싶지 않다면 말이야.”

“?”

회귀 전의 기억이 있는 유릭이었음에도 전혀 알지 못하는 소식이었다.

유릭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고 데릭 역시 비슷한 반응이었다.

그런 둘의 표정이 생각대로였는지 남자가 킬킬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알고 싶다면 나를 따라오거라. 아이작 님께서 기다리고 계신다.”

“가면 알려주겠다는 건가?”

“그래.”

“지금 널 고문하고 정보를 뽑아내는 방법도 있는데?”

“설마 내가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건가? 나는 그저 말을 전할 뿐, 발렌티나의 비밀 같은 것은 전혀 알지 못한다.”

남자가 자신만만하게 턱을 치켜들며 얘기했다.

거짓말로는 보이지 않았다.

자신이 아이작이라도 그런 비밀을 수하에게 풀진 않을 것이다.

“유릭, 어떡할 거지?”

데릭이 유릭을 보며 물었다.

눈치를 보아하니 내심 갈등하고 있으면서도 가보고 싶어 하는 모양이었다.

확실히 의절당한 형이 저런 소리를 지껄여 온다면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너, 형님이 보낸 전령이라 했던가?”

“그렇다.”

“그럼 내 말도 전해라.”

그 말과 동시에 녹시아를 잡고 있던 유릭의 손이 벼락처럼 뽑혀 나와 남자의 목을 그었다.

카앙-!

그러나 녹시아는 남자가 뽑은 검에 막혔다.

남자는, 이럴 줄 알았다는 듯 검을 뽑아 당연한 듯 막았다.

끼긱- 끼기기긱-

서로의 힘이 정면에서 부딪치며 검과 검이 듣기 싫은 쇳소리를 내었다.

남자가 담담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게 무슨 짓이지? 아이작 님의 제안을 거절한 것으로 봐도 되나?”

“잘 전해라. 내 대답은 이거라고.”

“뭐?”

그 직후, 녹시아에서 <화룡검화>의 불길이 무려 5차례나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급격히 피어오른 불길이 남자의 검과 그 옆얼굴을 태운다.

목도하는 것만으로 눈이 멀 것만 같은 빛과 열이 남자의 지근거리에서 쇄도했다.

“……!”

남자가 급히 몸을 빼내려고 움직였으나 이미 늦었다.

남자의 검에 막혀 있던 녹시아에 유릭이 더욱 힘을 넣었다.

화르르륵!

5마리의 화룡을 감싼 검이 모든 것을 태우며 나아간다.

“말도-!”

“돼.”

서걱.

경악하는 남자의 목 아래로 녹시아가 지나갔다.

녹시아를 막고 있던 남자의 검은 불길에 녹아 반으로 분리되었고, 남자의 목 역시 순식간에 갈라졌다.

푸슉!

반쯤 잘린 목에서 피가 솟구친다.

초점 잃은 남자의 시체가 끈 떨어진 인형처럼 쓰러졌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에 데릭과 글렌이 숨을 삼켰다.

유릭이 쓰러진 시체를 힐긋 내려다보았다.

“이걸로 네 명짼가?”

아이작의 부하를 처리하는 일.

아이작이 무슨 소리를 지껄이든 유릭의 스탠스는 전혀 변하지 않는다.

15살 때부터 그는 오직 하나의 방침만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었다.

스스로의 영향력을 높이고 동시에 아이작의 영향력을 낮춘다는.

처음 방향성을 잡기까진 갈등하고 고뇌해도 괜찮다.

하지만 일단 방향을 잡았다면 그 뒤는 묵묵히 밀고 나갈 뿐이다.

그 어떤 유혹이나 잡소리가 끼어들어도 일절 신경 쓰지 말고.

‘이걸로 반 이상 해치웠군.’

만족스러운 마음에 유릭이 빙하설월의 기운을 운용했다.

치이이이익-

달아오른 녹시아를 식히는 소리가 숲속에 퍼져 나갔다.

* * *

그 후 유릭 일행은 무사히 아칸의 영역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도중에 루카스와 비사대에게 한 차례 걸릴 뻔하긴 하였으나 다행히 잘 따돌릴 수 있었다.

아이작의 부하도 다신 나타나지 않았다.

이것으로 이번 임무는 완전히 끝이었다.

남은 건 가문에 돌아가 보고를 올리는 일뿐.

“대체 무슨 얘기였을까.”

북쪽을 향하는 마차 안에서 데릭이 중얼거렸다.

유릭이 데릭을 쳐다봤다.

데릭은 턱을 괸 채 마차의 창밖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너답지 않게 고민하는군. 아니지 그게 너다운 건가?”

첫 살인으로 고뇌하던 데릭을 떠올리며 유릭이 킥킥 웃었다.

데릭이 창에서 고개를 돌려 눈을 찌푸리며 팔짱을 끼었다.

“확실히…… 예전에 비하면 고민이 는 것 같기는 하다. 나 자신도 모르는 심경의 변화라도 있는 건가.”

“걱정 마라. 그냥 사춘기가 늦게 온 것뿐이니까.”

“사춘기? 그게 뭐지?”

“있어, 그런 게.”

여전히 웃는 유릭을 보며 데릭이 눈을 찡그렸지만 대답해 줄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그가 한차례 한숨을 쉬더니 다시 처음의 질문을 꺼냈다.

“형님의 얘기. 어머니의 비밀이란 게 뭐일 것 같나? 그리고 조심하라던 말도.”

“걱정이라도 되냐?”

“넌 안 되나?”

“어렵게 생각할 것 없어. 간단해.”

유릭이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데릭에게 얘기했다.

“엄마랑 형이랑 싸우면 보통 누구 말이 맞지?”

“……뭐, 보통은 어머니 말이 맞겠지.”

“그거야.”

“뭐?”

“그게 끝이라고.”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간단한 말에 데릭이 벙쪘다.

“진짜 간단하게도 말하는군.”

“세상일이 원래 단순한 법이다.”

“하.”

데릭이 피식 웃었다.

고민은 전혀 해소되지 않았지만 유릭이 저리 말하니 어쩐지 자신까지 마음이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그가 밝아진 얼굴로 다시 창밖을 구경하기 시작했고.

‘어머니의 비밀이라…….’

반대로 유릭의 표정은 가라앉아 있었다.

‘어쩌면 형님의 가문 복귀엔 마왕의 유산 문제만 얽힌 게 아닐 수도 있겠군.’

그래, 생각해 보면 이상하다.

마왕의 유산에 손을 대 의절 당한 것까진 이해한다.

하지만 회귀 전, 발렌티나는 한번 의절 당한 아이작을 다시 가문에 받아들였다.

어째서?

아무리 마왕의 유산을 반납하고 죄를 뉘우쳤다 해도, 아칸과의 평화 조약이란 업적을 가지고 돌아왔다고 해도.

그렇게 쉽게 용서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건 아닐 것이다.

‘마왕의 유산에 잘못 엮였다간 대륙 공적으로 찍히기 십상인데.’

왜냐면 이건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가문 전체의 명운이 걸린 일이니까.

그럼에도 발렌티나는 갖은 반대를 무릅쓰고 아이작을 복귀시켰다.

그것에 왜인지 뒷사정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왔다.

‘그것까지 캐봐야겠군.’

가문에서 보고를 기다리고 있을 어머니를 떠올리며, 유릭이 마차의 흔들림에 몸을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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