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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78화 (78/166)

#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 78화

78화. 엑셀레아를

하얀 비늘의 드레이크가 달려든다.

목을 쭉 뻗으며 유릭을 단숨에 삼키려는 녀석을, 유릭이 한 걸음 비키며 피해냈다.

동시에 검을 쥐고.

서걱!

지나가는 놈의 목을 단숨에 올려쳤다.

선혈을 흩뿌리며 날아오르는 드레이크의 목.

일순간에 목을 잃은 드레이크가 달려들던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쭈욱 미끄러지며 쓰러졌다.

“후우.”

작게 숨을 고르는 유릭.

땀 하나 나지 않은 그의 뒤로는 드레이크들의 사체가 못해도 수십 구는 늘어서 있었다.

하나같이 목을 잃었거나, 혹은 엑셀레아의 바람으로 심장을 꿰뚫린 사체들.

그 외에 다른 상처는 하나도 없다.

모조리 일격에 처리했단 뜻이었다.

‘이제는 그렇게 단단하게 느껴지지도 않는군.’

처음 적색 지대에 왔을 땐 드레이크의 비늘이 너무 단단해 검이 잘 들어가지도 않았다.

3중첩까지 피워 올린 화룡검화를 두른 채로 억지로 뜯어내듯이 베어야 간신히 베어졌었지.

그러나 지금에 와선 일검에 깔끔하게 베어낼 수 있게 되었다.

-크르르…….

저 멀리서 드레이크들이 유릭을 보고 있다.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녀석들이 슬슬 눈을 피하며 뒤돌아 도주하였다.

지능이 없는 마물이라도 몸의 위험은 알아채는 법.

이쯤 되니 이 근방의 드레이크들은 유릭을 보면 도망가기 바빴다.

‘드레이크를 잡는 건 이제 그만해도 되겠어.’

단련이란 본디 항상 새로운, 혹은 보다 강도 높은 작업을 반복해야 하는 법.

3개월이 지나니 드레이크 사냥은 둘 중 어느 것도 충족하지 못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진짜 힘들었었는데.’

지난 나날을 떠올리며 유릭이 피식 웃었다.

처음 적색 지대로 들어왔을 때.

그땐 드레이크가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움직이는 것부터가 일이었다.

24시간 화룡검화를 유지하는 것.

처음에 유릭은 이 정도는 다소 버겁긴 해도 충분히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실제로 그 생각대로 가능은 했다.

다만 그 외에 다른 활동을 전혀 할 수 없었을 뿐.

‘하루 종일 운기조식만 하고 있었지.’

24시간 화룡검화를 피워 올려야 하다 보니 소모되는 내기가 상당했다.

그걸 보충하기 위해 유릭은 자는 시간 외엔 모두 운기조식으로 보내야 했다.

그렇게 한 달.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하고 유적을 떠나지도 못한 채 운기조식과 화룡검화의 운용만으로 보낸 시간이었다.

한 달이 지나니 자연스럽게 내기의 운용에 숙달이 되었다.

더 적은 내기로 더 효율적으로 검화를 피워 올리는 방법.

신경을 쓰지 않아도 몸을 덮은 검화가 꺼지지 않는 경지.

그걸 이루고 나서야 유릭은 유적 안에서 운기 말고 다른 행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녹시아를 뽑은 것이 이때부터다.

그렇다 하더라도 가혹한 환경인 것은 달라지지 않았다.

얼어붙으려는 뼈와 살을 강제로 달구며 유릭이 검을 휘둘렀다.

초기에는 실수도 많아, 무심코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불꽃을 일으키기도 했다.

따뜻해지고 싶다는 몸의 욕구에 무의식이 져버린 모양인지.

그럴 때면 항상 유릭은 날밤을 새우며 운기를 통해 소모한 기운을 보충해야 했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발전해나가며, 일과에 드레이크 사냥도 곁들일 수 있게 되었고.

3개월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그 드레이크 사냥마저 완전히 숙달된 것이다.

-이제는 조금 적응이 되셨나 봐요?

“진짜 조금이지만.”

쓰러진 드레이크의 사체들 중 적당히 토실토실한 놈을 찾아 앞다릿살을 잘랐다.

그걸 챙겨 쇠꼬챙이에 끼우며 유릭이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대충 일과가 정해지긴 했는데.’

근래 유릭의 일과는 얼추 정형화되어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운기조식.

간단히 챙겨온 건량으로 식사를 때우고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오전 중엔 드레이크 무리와 어울리며 실전 훈련. 동시에 점심 식사도 해결하는 시간이었다.

지글지글.

유적 내에 피운 모닥불로 기름이 뚝뚝 떨어지는 고기를 구워 먹는다.

간 하나 없이 그냥 구웠을 뿐이지만 나름 맛이 없진 않았다.

대부분의 식사를 건량으로 때우다 보니 푸짐한 고기는 그것만으로 진수성찬이다.

이렇게 점심을 해결하고 나면 그 이후론 똑같다.

자기 전까지 검을 휘두르는 일.

빠른 식사를 마치고 유적으로 돌아온 유릭이 홀로 녹시아를 뽑아 들었다.

‘6성의 염화신무도 얼추 안정이 됐어.’

초대의 단약을 먹고 6성을 돌파한 염화신무.

그 날뛰는 기운을 온전히 제 것으로 만드는 데 3개월이 걸렸다.

아직 완벽하다 하긴 힘들지만 얼추 기반은 잡힌 셈이다.

이제 남은 9개월의 목표는.

‘7성에 오른다.’

7성의 경지를 뚫는 것.

20살이 될 때 7성을 달성하는 것이 지금 유릭의 목표였다.

남들이 들으면 무슨 장난 같은 소리를 지껄이는 거냐고 비웃을 것이다.

6성에 도달한 지 1년도 안 돼서 7성에 올라? 그것도 20살이란 어리디어린 나이에?

대륙의 역사에서 20살 이전에 7성에 오른 이는 단 한 명뿐이었다.

천 년 전 마신을 죽여 대륙을 구한 건국제 테메레르.

그를 제외하고선 가장 빠른 기록이 21살이다.

유릭의 목표와 불과 1년의 차이.

고작 1년이라 할 수 있지만, 그 1년은 지난 천 년간 뚫리지 않은 1년이었다.

‘얼마 안 남았다. 앞으로 한 걸음.’

이미 유릭에겐 그 길이 보이고 있었다.

마스터의 경지에 도전하기 위한 자격과도 같은 그 경지로 오르기 위한 등불이.

오늘도 그는 홀로 검을 휘두르고 있다.

* * *

[“저는 잘 지내고 있으니까 걱정 마세요. 무슨 일 있으면 먼저 연락할게요.”]

‘그래. 할아버지 잘 모시고.’

[“아저씨 말대로 잘 보니까 알 것 같기도 해요. 정말로 할아버지가 절 싫어하는 건 아닌가 봐요.”]

‘그렇다니까.’

[“그럼 이만 끊을게요. 바쁘신데 죄송해요.”]

유화는 마교 내에서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았다.

당초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 천마 설군악이라는 이름은 상상 이상의 위력을 가지는 것 같았다.

마교의 그 누구도 그녀에게 시비를 걸거나 괴롭히지 않는다고.

이 연락을 끝으로 유릭은 당분간 연락이 힘들 거라 얘기를 해두었다.

온전히 수련에 집중하는 나날을 보내고 싶었으니까.

덧붙여 메르는.

-으…… 으으…… 모자라…… 모자란데……. 어떡하지? 반으로 찢어서 하나씩만 먹어야 할까?

매일 유적의 구석에서 육포 바구니에 머리를 박곤 신음을 하곤 했다.

처음 세 달 동안은 하루 한 장씩 꼬박꼬박 먹더니, 이제야 양이 모자란 것을 깨달은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유릭이 서리거인의 안식처에 자리를 잡은 지 6개월이 지났다.

이제는 제법 적응한 티가 나고 있다.

화룡검화를 가늘고 길게, 그러나 끊이지 않고 유지하는 것은 완전히 숙달되었고, 운기의 속도 역시 빨라졌다.

심지어 요즘은 반쯤 자면서 동시에 운기를 하는 기행까지 펼칠 수 있게 되었다.

모두 이 한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으로 터득한 방법들이었다.

그 덕에 이 가혹한 환경에서도 제법 살아갈 만해졌다.

‘그럼 안 되는데.’

때문에, 유릭은 최근 조금 불만스러웠다.

적응을 한 것은 좋다.

그만큼 자신이 강해지고 발전했단 소리니까.

다만 적응한 탓에 수련의 강도가 낮아지고 있는 것이 거슬렸다.

헬스에서 점점 무게를 올리듯이 자신 역시 수련 강도를 점점 높여야 하는데.

하지만 어떻게?

‘드레이크 사냥도 그만둔 지 오래고.’

드레이크 사냥은 이미 3개월 시점에서 그만뒀었다.

그때부터 더 이상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간간이 고기도 쟁여놓을 겸 몸풀기로 한두 마리씩 잡아 오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사냥하거나 하진 않았다.

‘더 깊숙이 들어갈까.’

강도를 높일 방법이 없진 않다.

유적의 더 깊숙한 장소로 들어가는 일.

이 유적은 서리거인이 몸을 뉜 안식처라는 이름답게, 무척이나 넓은 장소였다.

인간의 기준이 아닌 거인의 기준을 봐야 할 정도의 넓은 유적.

당연히 적색 지대에 넓게 걸쳐져 있었고, 장소마다 환경이 조금씩 달랐다.

지금까지 유릭이 있던 장소는 초입에 불과했다.

‘더 들어가면 위험해질 수도 있다.’

다만 더 깊숙한 곳은 초입보다 훨씬 위험하다.

이곳조차도 화룡검화를 상시로 두르지 않으면 버틸 수 없다고 하는데, 더 깊은 곳은 어떠하겠는가.

유적의 효과 덕에 마물은 나타나지 않겠지만 이 혹한의 기온만으로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수련 강도를 높일 방법은 이것뿐이다.

“메르.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네? 괜찮으시겠어요?

“……혹시 내가 정신 못 차리고 넋 놓고 있거나 그러면 때려서라도 깨워줄래?”

사람은 너무 추우면 생각조차도 얼어붙는다.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멍하니 있다 그대로 얼어 죽을 수가 있다.

메르를 데려온 것은 그런 위험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보험이었다.

-그 점은 걱정 마세요! 어르신을 때리다니 무척 가슴 아프지만요. 히히.

“…….”

말이랑은 다르게 무척 기대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뭐 상관없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할 수만 있다면 뭐든 좋으니.

그렇게 유릭은 6개월을 살았던 유적 초입의 거처를 정리해 안쪽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상시로 두르고 있던 화룡검화를 2중첩으로 올린 채.

‘하는 건 똑같아.’

처음 적색 지대로 발을 들일 때와 다를 건 없다.

그때 1중첩의 화룡검화를 두르는 것에 익숙해졌듯, 이제는 2중첩에 익숙해질 차례이리라.

* * *

서리거인의 안식처는 유적이라곤 하지만 딱히 건축물이 있는 곳은 아니다.

보다 정확히 묘사하자면 여러 기괴한 암석들이 솟아 있는 바위산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안 그래도 험한 지형에 적색 지대의 기온까지 더해지니, 이보다 험난할 수가 없는 구역이었다.

유릭이 향한 곳은 그 바위산의 더욱 깊은 곳.

특징적인 모양의 바위가 여럿 있었기에 따로 길을 잃을 염려는 없었다.

‘휴우……. 2중첩을 하니 숨 쉴 만은 한데, 그래도 많이 빡센데.’

그래서 더 좋다.

힘겨운 와중에도 유릭이 미소 지었다.

지금 느끼는 감각은 꼭 처음 적색 지대로 들어왔을 때와 비슷했다.

무척 힘이 들지만, 그래도 버티지 못할 만큼은 아니다.

딱 수련에 도움이 될 만한 그런 상태.

이렇게 깊은 곳으로 들어오니 주변의 풍경도 조금 달라졌다.

이전에는 그저 붉은 오로라와 얼음 대지가 있었을 뿐인데, 지금은 곳곳에 동글동글하게 뭉쳐진 얼음 구슬이 수없이 보인다.

호기심에 하나 들어보니, 그 하나하나가 마나가 뭉쳐진 물건이었다.

대기 중의 마나가 낮은 기온과 강한 압력에 뭉쳐져 구슬처럼 되어 있던 것이다.

그 마나의 구슬이 마치 자갈밭처럼 깔려 있었다.

‘그렇다고 먹을 수는 없고.’

얼핏 보면 무슨 영약과도 비슷하게 생각되지만 그렇지 않다.

그냥 마나가 조금 깃든 얼음 자갈일 뿐이다.

그래도 풍경이 바뀌니 본격적으로 적색 지대에 들어왔다는 실감은 나기 시작했다.

“응?”

그렇게 발길 닿는 곳으로 들어가던 중.

유릭이 묘한 위화감을 느끼곤 발을 멈췄다.

-어르신?

“쉿.”

갸웃거리는 메르를 조용히 시키곤 유릭이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들려오는 소리.

-네놈은 누구냐?

메르의 목소리가 아니다.

메르의 목소리는 좀 더 가늘고 어린애 같은 면이 있는 반면, 지금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묵직하고 오만했고.

그리고 음산했다.

“……!”

등골에 소름이 치솟는 것을 느끼며 유릭이 자세를 낮췄다.

그가 허리춤에 손을 가져가곤 조심스레 주변을 살폈다.

대체 누구지?

이런 장소에서 메르 이외에게 말이 걸리다니, 상상도 못 한 일이다.

유릭이 검의 손잡이를 잡았다.

기습에 대비하여 발검과 동시에 공격이 가능한 엑셀레아를.

그러자 또다시 들려오는 목소리.

-보아하니 인간인 것 같은데…… 어째서 인간이 레녹스의 검과 방울을 가지고 있지?

목소리는 정확히 그 엑셀레아를 가리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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