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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79화 (79/166)

#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 79화

79화. 베고 간다

유릭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검과 방울.

놈이 가리키고 있는 것은 명백했다.

풍령이 달려 있는 이 엑셀레아.

-질문에 대답해라, 꼬마 인간아. 어째서 네가 레녹스의 검과 방울을 가지고 있는 것이냐?

“……레녹스?”

-모르는 것이냐? 네가 쥐고 있는 검의 주인 말이다.

엑셀레아의 주인.

엑셀레아는 칠색의 마경에서 나온 물건이다.

그리고 검과 방울을 함께 얘기하는 놈의 말.

‘어쩐지 검이랑 방울이랑 딱 어울리더라니.’

정말 세트가 맞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레녹스라는 이름의 정체도 짐작이 간다.

과거 청색 지대의 유적에서 만났던 그 유령.

풍왕.

“풍왕을 말하는 거라면 이미 소멸했다.”

-뭣이? 소멸?

그 얘기를 꺼낸 순간 쿠르르릉, 땅에 지진이 일었다.

동시에 땅이 갈라지더니 불쑥불쑥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

유릭이 엑셀레아에 손을 올린 그대로 크게 뒤로 뛰어 올라오는 땅을 피했다.

카카카카카캉!

갈라진 얼음이 서로 부딪치며 치솟아 오른다.

그 안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비쳐 보였다.

이윽고 나타난 것은.

“해골?”

낡은 거적때기 같은 것을 로브처럼 머리부터 걸치고 있는 해골이었다.

다만 크기가 고개를 쭉 젖혀야 할 정도로 거대했다.

마치 거인의 뼈라도 되는 것처럼.

“킬킬킬킬!”

해골이 어깨를 떨며 폭소하였다.

비어 있는 동공에 눈 대신에 있는 푸른 불꽃이 즐거운 듯 호선을 그리고 있다.

이처럼 즐거운 소식이 따로 없다는 듯.

“그런가, 그런가! 레녹스 그놈이 기어이 뒈졌다는 겐가! 어떠한가? 그대는 레녹스의 최후를 목도했는가? 그 최후는 어떠했지?”

“…….”

“아, 됐다, 됐어. 말하지 않아도 좋다. 듣지 않아도 뻔하지. 필시 초라하고 추레한, 비참하기 짝이 없는 최후였음이 틀림없어. 킬킬킬킬!”

해골 거인이 이빨을 딱딱 부딪치며 웃어댔다.

앓던 이가 빠진 듯한 시원스러운 모습으로.

‘이 녀석…….’

유릭이 눈을 가늘게 뜨고 놈을 바라보았다.

거대한 거인의 뼈로 되어 있는 스켈레톤.

이곳이 어떤 곳인지 떠올려 보면 놈의 정체는 명백했다.

‘서리거인.’

이 땅에 잠들었다고 전해지는 서리거인.

이미 죽은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기록에 적혀 있던 거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웬 커다란 해골뼈만 남아 딱딱거리고 있으니까.

다만 온전히 죽은 것이 아니라 모종의 사령술을 통해 언데드로 살아난 모양이었다.

‘사령술이라니, 누가?’

그런 생각에 유릭이 눈만 움직여 주위를 살폈다.

그러나 주변에 수상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

하긴, 천 년 전의 사령술사가 지금까지 남아 있을 리는 없나.

“그렇게 경계하지 말게나. 모처럼 좋은 소식을 전해주었으니 술이라도 대접하지. 아, 술 좋아하나?”

쿵!

놈이 털썩 땅에 주저앉으니 커다란 소리와 함께 땅이 울렸다.

그대로 녀석이 불쑥 땅속에 손을 집어넣는가 싶더니, 웬 몽둥이 하나를 꺼내 들었다.

파지지직!

그것을 적당히 휘두르니 허공에 검은 기운이 뭉치기 시작했다.

‘마기?’

과거 마신을 받드는 마왕과 악마들이 사용했다 전해지는 시커먼 기운.

그 음산한 기운이 허공을 유영하더니 이내 몇 개의 술동이를 우수수 토해내었다.

투두두둥 떨어진 술동이가 눈밭에 아무렇게나 파묻혔다.

“요 수백 년 동안 담가온 비장의 물건이다. 사양 말고 들게나.”

그런 제안을 들었지만 유릭은 떨어진 자리에서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악마가 주는 술 따위 입에 댈 리 없으니.

그러거나 말거나 놈은 술동이를 들고 봉인을 풀었다.

유릭이 통째로 들어갈 수도 있을 만큼 커다란 항아리였지만 놈의 손에 들리니 조금 커다란 컵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콸콸콸콸!

“캬! 이거지, 이거!”

놈이 원샷이라도 하듯 술동이를 들어 마신다.

그걸 보며 유릭이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맛은 느껴지나?”

해골에게 식도도 위장도 있을 리 없다.

놈의 입으로 들어간 술은 입을 지나 척추뼈를 통해 그대로 떨어질 뿐.

도저히 마신다는 행위로는 볼 수 없는 것이었다.

“그야 당연하지 않은가! 본디 귀한 술은 죽은 사람도 벌떡 일으키는 법일세.”

그럼에도 맛이 느껴지는 건지, 아니면 향기만이라도 즐기고 있는 건지 해골은 무척 만족한 듯이 보였다.

“응? 한 잔 안 하나? 그렇게 미적거리다가 내가 다 마셔버리겠어.”

“……필요 없어.”

“쯧. 재미없는 인간이로구만.”

딱딱한 유릭의 대답이 영 못마땅한지 녀석이 마시던 술을 마저 부었다.

“크으! 레녹스 그놈이 어떤 시건방진 놈이었는지 아나? 글쎄 건방지게도 왕께 칼을 들이민 놈일세.”

“그런 비슷한 말은 하더군.”

과거 풍왕과 대치했던 때를 떠올렸다.

분명 자신이 마왕과 맞먹었던 강한 존재라느니 뭐라느니 그런 식으로 얘기했었지.

“건방져 건방져, 시건방지기 짝이 없어! 이 땅은 왕의 것이고 이 땅에서 나고 자란 모든 것들도 역시 왕의 것인데 감히 일개 악마 따위가! 그딴 짜증 나는 검까지 만들어 왕께 대들다니!”

“…….”

“그래서 왕께선 친히 놈을 짓밟아주었지. 그런데 분수도 모르는 그놈은 몇 번이고 찾아와 다시 칼을 들이미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죽였나?”

“그랬으면 좋으련만 왕께선 어쩐 일인지 놈을 계속 보내주었어. 그냥 잘근잘근 우득우득 밟아주기만 하고 매번 살려 보내셨다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뭐 내가 참견할 일은 아니지. 레녹스 그놈의 목숨 또한 왕의 것인데 어떻게 다루든 왕의 뜻인 것을.”

수다스러운 놈의 입에선 천 년 전의 일이 마치 어제 있었던 일처럼 흘러나왔다.

나름 흥미로운 이야기라 적당히 맞장구치고 있지만, 유릭은 결코 경계를 풀지 않았다.

입으론 맞장구를 치면서도 이 사태에 대처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천 년 전의 거인이 나타났다.’

그것도 언데드가 된 상태로 묻혀 있었다.

청색 지대에서 보았던 풍왕, 아니, 레녹스의 유령과 비슷한 상황이다.

다만 실체 없이 소멸해 가던 레녹스의 유령과 달리, 눈앞의 서리거인은 뚜렷한 실체를 가지고 현세에 현현해 있었다.

비록 해골뿐이라곤 해도 마기를 다루는 모습까지 확인했다.

‘일단 여기선 물러나고 가문에 알릴까?’

그게 가장 합리적인 판단이다.

최하급 언데드인 스켈레톤이라지만 놈의 본신은 악명 높은 서리거인.

칠색의 마왕 크레마뉴의 오른팔로 수많은 이들을 짓밟아 학살했던 대악마.

아직까지 얼마만 한 저력을 숨기고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녀석은 딱히 호전적으론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녀석이 술에 빠져 있는 틈을 타 유릭이 슬쩍 발을 뒤로 빼었다.

“흥미로운 이야기긴 하다만, 내가 좀 바빠서 말이야.”

“응? 그런가? 뭐 어쩔 수 없지. 그럼 일 보러 가게나. 모처럼이니 난 더 마셔야겠어.”

녀석이 시시덕거리며 새로운 술동이를 잡았다.

그걸 보며 유릭이 천천히 뒷걸음질을 쳤다.

그때.

“아, 잠깐.”

“!”

부웅-!

갑작스레 떨어지는 거대한 몽둥이.

그 모습에 유릭이 재빨리 발검했다.

카가가강!

거인 해골이 내려친 몽둥이를 엑셀레아가 막아냈다.

끼기기긱, 하는 소리와 함께 몽둥이와 검이 대치하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짓이지?”

유릭이 이를 갈며 얘기하자 거인 해골이 반대편 손으로 코가 있던 근처를 긁적였다.

“갈 땐 가더라도 왕의 물건은 놓고 가야지.”

“이 검 말이냐?”

엑셀레아를 두고 가라는 말인가?

그러나 해골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얘기하지 않았더냐. 이 땅의 모든 것이 왕의 것이라고.”

“?”

유릭이 눈을 찌푸린다.

그때 놈이 내리누르던 몽둥이를 갑자기 훌쩍 들어 올리곤, 그대로 다시 내려쳤다.

쾅! 쾅! 쾅! 쾅!

몇 번이나, 몇 번이나 떨어지는 몽둥이를 막으며 유릭의 발이 눈밭 속에 푹푹 잠겨갔다.

‘큭.’

하나하나가 절벽에서 떨어지는 바위를 받는 것같이 무거워 신음 소리가 절로 새어 나왔다.

그것이 사뭇 즐거운 듯 킬킬거리며 녀석이 말을 이었다.

“전부 놓고 가란 뜻이다. 네 목숨도 포함해서.”

* * *

‘젠장!’

역시 그냥 끝나지 않을 줄 알았다.

악마 놈들과 연관되어서 무사히 끝날 일 따위 하나도 없으니까.

콰앙!

몇 번이나 떨어지던 몽둥이를 피해 유릭이 타이밍 좋게 옆으로 뛰었다.

떨어진 몽둥이는 애꿎은 땅만 부수며 흙과 얼음의 잔해를 피어 올렸다.

“호오, 제법 날래구나. 어디 어디.”

쾅! 쾅! 쾅!

해골 거인이 몇 번이나 유릭을 노려 몽둥이를 내려쳤다.

쯧.

유릭이 모두 피해내며 혀를 찼다.

가만히 앉아 몽둥이만 내려치고 있는 녀석과 아등바등 피하고 있는 자신.

무슨 두더지 잡기 게임의 두더지라도 된 기분이었다.

‘그래도 그렇게 빠르진 않다.’

몽둥이가 떨어지는 속도로 볼 때 녀석은 그렇게 빠른 편이 아니다.

그렇다면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다.

유릭이 타이밍을 재다, 녀석이 한 차례 땅을 가격한 타이밍에 거리를 벌려 뛰기 시작했다.

“흠?”

순식간에 멀어지는 유릭을 보며 해골 거인이 눈을 끔뻑거렸다.

물론 해골의 눈꺼풀이 있을 린 없고, 눈 부위의 푸른 불꽃이 깜빡거렸단 뜻이다.

“잘도 도망치는군.”

녀석이 킬킬거리며 웃기 시작하더니 몽둥이로 허공에 크게 호를 그렸다.

그러자 검은 기운이 파지직거리며 벼락이 되어 이 땅의 곳곳에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유릭이 순간 경계하며 움찔거렸지만 벼락은 유릭을 노리고 있지 않았다.

‘뭐지?’

그렇게 생각한 순간.

파삭!

파사삭!

벼락이 떨어진 곳을 중심으로, 곳곳에서 땅이 움푹 올라왔다.

그리고 나타나는 해골.

인간이 아닌 드레이크의 뼈로 된 해골이 수없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본 드래곤은 아니고, 본 드레이크라고 부르면 되려나?

사방에서 깨어난 본 드레이크들은, 어찌나 수가 많고 광범위한지 깨어난 것만으로 이미 유릭을 포위하고 있었다.

“자, 이제 어떻게 도망칠 테냐?”

웃음기 서린 해골 거인의 목소리에 유릭이 이를 갈았다.

“거인이라길래 당연히 육체파라 생각했는데…….”

“예전에는 그랬지. 하지만 보다시피 지금은 이런 몸이 아니더냐. 살도 근육도 없이 가볍기만 한 뼈만으로 어찌 생전과 같은 전투력을 발휘하겠느냐.”

그렇게 말하는 것치곤 몽둥이를 내려치는 힘이 상당하던데.

뼈만 남았는데 그 정도면 살아 있을 땐 어떤 괴물이었다는 건지.

“이 수백 년 동안 술만 빚고 있던 건 아니란 게지. 킬킬킬킬!”

놈이 그렇게 웃으며 몽둥이로 땅을 퉁퉁 두드렸다.

쏘아지는 검은 벼락은 계속해서 본 드레이크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이 잠깐 사이에 주위는 이미 뼈의 밭이 되어 있었다.

‘도주는 힘들겠군.’

유릭은 도망치는 것을 깔끔히 포기하곤 다시 뒤로 돌았다.

멀어지고자 했던 해골 거인의 모습이 정면에 보인다.

도망칠 수 없다면 택할 방법은 오직 한 가지.

정면으로 맞서는 것.

“…….”

해골 거인이 씨익 웃으며 몽둥이로 유릭을 가리켰다.

그 끝에 검은 기운이 모이고 있었다.

설마 놈이 육체파가 아니라 마법을 쓰는 놈일 줄은 상상도 못 했지만, 오히려 잘된 일이다.

전사를 상대할 땐 체격 차이가 지대한 영향을 미치지만 마법사를 상대로는 꼭 그렇지만도 않으니.

‘베고 간다.’

본디 마법사는 마법을 사용한 직후 가장 취약한 법.

그 허를 제대로 찌르기 위해선 회피하는 것으론 안 된다.

회피한 후 자세를 가다듬을 때면 적도 이미 다음 마법의 준비가 끝나있을 테니까.

그렇기에 마법사를 상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마법을 뚫고 상대가 대비하기 전에 목을 베는 일이다.

물론 어지간한 일론 불가능하다.

상대보다 확실히 경지가 높을 때나 시도해 볼 만한 수법.

하지만.

‘엑셀레아라면.’

마검의 힘이라면 충분히 시도해 볼 만하다.

유릭이 엑셀레아를 잡고 자세를 낮췄다.

아직 뽑지도 않았음에도 검과 검집 사이에서 쌔애애액, 바람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간결하며 확고한 의지를 보이는 유릭의 모습을 보곤 해골 거인이 눈을 크게 떴다.

그러곤 웃었다.

“킬킬킬킬킬! 검의 힘을 믿고 있는 게냐?”

유릭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감각은 검은 기운의 흐름을 살피는데 바빠 허튼소리까지 들어줄 여력은 없었다.

“확실히. 세월의 검이라면 그만한 힘을 가지고 있을 수 있지.”

세월의 검.

그것은 옛 시대 신검과 마검을 칭하던 말이라고 들었다.

단순히 뛰어난 능력을 지니는 것만으론 도달할 수 없는 검.

별의 역사와 오랜 세월의 힘이 벼려내는 신외지물.

“하지만 넌 그 검에 담긴 세월을 전혀 모르고 있어.”

놈의 몽둥이, 아니, 지팡이 끝에 모이던 검은 기운이 작게 응축되는가 싶더니, 곧이어 폭발하며 쏘아졌다.

콰와아아아아!

덮쳐오는 검은 기운의 창.

유릭이 눈을 번뜩이며 엑셀레아를 뽑았다.

이윽고 바람이 뭉치며.

“내가 알려주마. 그 검이 어떤 검인지.”

해골 거인의 한마디와 동시에, 거대한 마기의 창과 엑셀레아의 바람이 부딪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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