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 80화
80화. 갈망
콰아아아아아!
해골 거인이 쏘아낸 마기와 엑셀레아의 바람이 부딪쳤다.
유릭이 이를 악물며 기운을 들이붓는다.
처음에는 제법 맞상대를 하는 듯했다.
실제로 바람이 마기를 뚫고 파고들려는 움직임까지 있었으나.
‘……!’
뒷심이 부족했던 것일까?
이내 다시 밀려나며 검은 마기에 집어 삼켜지기 시작했다.
버티고 버텨보지만 이 이상은 안 된다.
유릭이 옆으로 몸을 날려 땅바닥을 굴렀다.
콰과과과과과광!
유릭을 스쳐 간 마기가 땅을 깊게 패며 지나갔다.
유릭은 빠르게 엑셀레아를 수납하곤 녹시아를 꺼내 들었다.
일격 일격의 위력은 엑셀레아가 위이나 지속적인 전투에선 녹시아가 단연 뛰어나니.
카카카카캉!
해골 거인이 만들어낸 검은 화살이 수없이 날아온다.
화살이라곤 하나 그 하나하나가 발리스타의 화살처럼 거대했다.
화륵!
화룡을 두른 녹시아로 그걸 하나씩 쳐내며 유릭이 몸을 피했다.
신경 써야 하는 건 그것뿐만이 아니다.
“키이이이이-!”
되살아나 괴성을 지르며 달려드는 본 드레이크들.
숫자가 많아도 너무 많아 자기들끼리 엉켜 쓰러지기도 하지만, 멀쩡히 뛰어 유릭에게 달려드는 놈들도 적지 않았다.
유릭이 화룡의 검을 휘둘러 그런 놈들을 모조리 박살 내었다.
카가가강!
본 드레이크가 속절없이 부서지는 것을 보면서도 해골 거인은 킬킬 웃고만 있었다.
“제법 재주가 좋구나!”
그야 되살릴 뼈야 얼마든지 있었으니까.
해골 거인이 다시 지팡이를 치켜드니 검은 벼락이 떨어진다.
떨어진 벼락은 다시금 묻혀 있던 뼈를 세상 밖으로 올려보냈다.
아무리 유릭이 쓰러뜨려도, 그 이상의 숫자가 다시 올라온다.
뿐만 아니라 해골 거인이 쏘아대는 마기 역시 위협적.
소모전으로 들어가면 절대 이길 수 없는 구조였다.
‘역시 네크로맨서인가.’
소모전, 차륜전으로 네크로맨서를 따라갈 수 있을 리 없다.
필요한 건 단기 결전.
단번에 놈을 베어내기 위한 방책과 타이밍.
‘타이밍은 문제없어.’
해골 거인은 그렇게 빠르지 않다.
뿐만 아니라 방심하는 건지 움직일 수 없는 건지 계속 한자리에 앉아만 있다.
베어내기 위한 타이밍을 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다만 베어낼 방법이 없다.’
하지만 놈에게까지 칼이 닿질 않는다.
방금 내질렀던 엑셀레아의 일격은 유릭이 낼 수 있는 최고의 공격이었다.
5중첩을 한 화룡검화도, 거기에 <익스플로전>의 술식을 새겨 넣는다고 해도, 엑셀레아의 일점(一點)엔 미치지 못한다.
마검의 위력은 그만큼 압도적.
그런데 그 엑셀레아가 놈의 마기를 관통하지 못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 응?”
해골 거인이 키득거리며 마기를 모았다.
아까와 동일한 마법.
유릭이 눈을 씰룩이며 미간을 찌푸렸다.
‘도발하는 건가?’
다시 한번 아까처럼 엑셀레아를 뽑아보라고?
유릭이 사양 않고 엑셀레아를 쥐었다.
적의 술수에 놀아나는 것은 사양이지만 유릭 역시 한 번 더 엑셀레아를 시험해 보고 싶었다.
이윽고 마기와 바람이 또다시 허공에서 부딪쳤고.
콰과과과과광!
아까와 같이, 엑셀레아는 뒷심에 밀려 허무하게 패배했다.
‘왜지?’
유릭의 눈이 알 수 없는 의문으로 물들었다.
다시 한번 보니 뭔가 이상하다.
해골 거인이 쏘아낸 마기는 엑셀레아가 충분히 뚫을 수 있을 만한 수준이었다.
다소 힘겹긴 하겠지만, 절대 이렇게 무참히 패배할 정도가 아니다.
둘 사이에 그만큼의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째서?
‘힘이 문제가 아니라 상대가 문제인 건가? 상성이나 뭐 그런 쪽?’
유릭의 머릿속에 몇 개나 되는 가설이 떠올랐지만 어느 것 하나 확실하진 못했다.
바람의 힘과 언데드에 어떤 상성이 있는지 전혀 모르겠다.
“킬킬킬킬! 전혀 모르겠는 모양이구나.”
“…….”
그런 유릭을 해골 거인이 비웃었다.
쥐고 있는 검의 정체도 제대로 모르는 얼간이라며.
유릭이 입을 다물곤 눈만 찌푸리고 있으려니, 녀석이 피식 비웃음을 흘렸다.
“그 검은 레녹스 그놈이 만든 검이지. 무엄하게도 왕의 목을 취하기 위해 말이야.”
“…….”
그래서 그게 뭐?
“왕을 이기겠다는 놈의 오랜 집념과 염원이 깃든 검. 그 염원이 곧 세월이 되어 진화한 세월의 검. 하지만…… 그걸 아느냐?”
“……뭘 말이지?”
“레녹스는 그토록 오랫동안 왕께 도전했지만, 단 한 번도 승리하지 못했다. 단 한 번도!”
유릭의 눈이 커졌다.
이쯤 되니 그도 해골 거인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즉 놈은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검은 패배의 역사를 담은 얼뜨기 검이란 얘기다! 킬킬킬킬킬!”
* * *
오래된 검에는 세월이 담긴다.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좋은 것이라곤 할 수 없다.
뛰어난 위업과 웅장한 역사도 있지만 반대로.
터무니없이 초라한 역사 또한 존재하니까.
“그 검에 의존하는 한 절대 날 이기지 못할 게다! 어떠냐? 다른 방도는 없느냐? 검 한 자루를 더 들고 있는 듯한데 그걸로 날 벨 방법은 없느냐? 응? 으응?”
쾅! 콰콰콰쾅!
검은 광선이 몇 차례나 유릭에게 떨어져 내렸다.
인근 일대는 이미 지형이 변했을 정도로 처참해져 있었다.
울퉁불퉁한 바위산은 어디 가고 수백의 크레이터가 패여 있는 평지만이 남았다.
“킬킬킬킬킬!”
놈이 쏘아내는 광선은 유릭뿐만 아니라 본 드레이크조차 가리지 않고 파괴했다.
놈은 자신이 일으킨 본 드레이크를 파괴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다.
과정이 어찌 되든 유릭을 굴복시키기만 하면 된다며.
‘큭!’
떨어지는 검은 광선을 피해내며 유릭이 이를 갈았다.
품에 있는 메르가 그런 유릭을 걱정스레 올려다보았다.
-어르신, 괜찮으세요? 도망칠 길이…….
‘어디 뚫린 곳이라도 있어?’
-아뇨……. 다 둘러봤지만 본 드레이크가 모조리 틀어막고 있어요.
검은 광선이 본 드레이크도 처치하고 있다곤 하나 그건 이 포위망 안쪽의 이야기일 뿐.
바깥쪽은 여전히 수두룩 빽빽한 본 드레이크가 유릭의 퇴로를 차단하고 있었다.
“키이이-!”
그때 광선 속을 헤치고 용케 살아남은 본 드레이크가 유릭을 덮쳤다.
커다랗게 벌린 입.
유릭이 순간적으로 비어 있는 한쪽 손으로 엑셀레아를 잡았으나.
‘큭.’
이내 반대 손으로 들고 있던 녹시아를 휘둘렀다.
콰드드득!
본 드레이크가 그대로 박살 나 뼛조각이 되어 흩어졌다.
“킬킬킬킬!”
그 모습에 해골 거인이 크게 폭소했다.
이보다 재미있는 유희거리가 없다는 듯 웃어재끼는 그 모습은 유릭에게 더할 나위 없는 굴욕으로 다가왔다.
‘패배의 검…….’
정말로 엑셀레아는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한, 온갖 패배의 역사로 점철된 검일까?
내력을 생각해 보면 말이 안 되는 건 아니다.
이 검의 본 주인은 풍왕 레녹스.
그는 마왕에게 패배해 저 변두리의 청색 지대까지 쫓겨났던 놈이니까.
‘심지어 그곳에서조차 나한테 졌었지.’
쓴웃음이 피어오른다.
이렇게 생각하니 꽤나 안쓰러운 놈이 아닌가?
자신의 몸을 빼앗으려 탐욕을 부리지만 않았다면 제법 괜찮은 대화상대로 남았을지도.
뭐 그건 어쨌든.
‘마음에 안 들어.’
-엑셀레아에 새겨진 역사가요?
‘그래.’
-하지만 그건 뭘 해도 바꿀 수 없는걸요.
메르의 말이 맞다.
흔히 이런 얘기를 하곤 한다.
미래는 타오르는 불꽃과 같아 환하게 빛나는 태양이 될 수도, 모조리 타고 스러진 잿더미가 될 수도 있다고.
하지만 흘러간 과거는 얼어붙은 빙하와 같아 결코 변하지 않는다.
지나간 과거는 그대로 별에 새겨져 변치 않는 역사로 승화한다.
시간을 되돌리는 신이 아니고서야 역사를 바꿀 수는 없는 법.
‘…….’
그게 가능한 존재를 한 명 알고 있긴 하지만, 그건 다른 얘기고.
“킬킬, 제법 즐거웠다만 이제는 끝낼 시간이구나.”
쿵!
해골 거인이 지팡이를 내려쳤다.
그러자 검은 기운이 솟아오르더니 하늘에 마법진을 형성한다.
작은 동심원이 수없이 겹치고 겹쳐 온 하늘을 뒤덮었다.
적색 지대의 붉은 오로라가 온통 검은 마법진에 뒤덮여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가려졌다.
‘온다.’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마법이.
이번에야말로 자신을 끝장내기 위해, 놈은 전력을 다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지?
녹시아를 들고 5중첩의 화룡검화를 둘러 대응하는 것이 최선일까?
‘…….’
그러나 유릭이 잡은 것은, 녹시아가 아닌 엑셀레아였다.
-어르신!
메르가 비명이라도 지르듯 소리쳤다.
이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다시 엑셀레아를 의지하다니.
그러나 유릭의 손은, 단단히 엑셀레아의 손잡이를 쥐고 있을 뿐이었다.
‘패배의 역사가 새겨진 검이라고?’
유릭의 눈이 불처럼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래, 잘 알겠다.
그건 아마 진실일 것이다.
녀석이 딱히 거짓말할 이유도 없으니까.
하지만.
‘앞으로랑은 상관없는 이야기야.’
과거의 일은 바꿀 수 없다.
이미 새겨진 역사는 건드리지 못한다.
그러나, 새로운 역사를 더하는 일은 가능하다.
역사란 언제나 지금 이 순간을 기록하는 것이니까.
‘그리고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은.’
지금 이 순간, 검을 쥐고 있는 자신뿐.
우웅-
검이 울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시야가 일변한다.
어두운 창고와 같은 장소.
주변에 쌓여 있는 잡다한 물건과 함께, 그의 눈앞에는 버려지듯 놓여있는 엑셀레아가 보였다.
‘이건…….’
누가 직접 알려주기라도 한 것처럼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건 엑셀레아에 새겨진 세월의 일부.
칠색의 마왕에게 수없이 패배한 레녹스가 청색 지대로 쫓겨나고, 엑셀레아는 몰수당해 마왕의 창고에 쓰레기처럼 버려져 있던 시절.
-이 수백 년의 세월은 이 아이에게 담긴 굴욕과 패배의 역사를 더욱 강고히 하였죠.
언제부터 있던 것인지 검은 드레스를 입은 흑발의 여성이 나타났다.
치맛자락에 수놓아져 있는 은하수가 은은한 푸른빛으로 빛난다.
누군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정령인 힐라사나 혹은 등선을 앞둔 천마를 보았을 때와 비슷한.
아니, 그보다는, <외우주>의 노인을 보았을 때와 비슷한 것 같은 그런 느낌이 풍겨왔다.
-당신이 새기는 세월이 이 세월을 뒤엎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시나요?
여인이 얘기했다.
움직이지 않는 검을, 마치 제 자식과도 같은 애틋한 눈으로 쳐다보며.
“…….”
조용히 침묵하던 유릭의 입이 열렸다.
“뒤엎을 필요가 뭐가 있지?”
-네?
유릭의 말에 여인의 눈이 의문으로 물들었다.
“패배의 검이라 하였지.”
-……네. 승리의 미주를 한 번도 맛본 적이 없는 안쓰러운 아이죠.
“언제나 패배한 검이 있다면 언제나 승리한 검도 있겠군.”
-그럴지도요. 필시 무척 뛰어난 아이일 테죠. 그게 어쨌다는 거죠?
유릭이 창고 안에 버려져 있던 엑셀레아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 손잡이를 움켜잡았다.
단단하게.
“나는 승리가 약속된 그런 검보다 항상 져왔던 이 검이 더 가치 있다 생각하는데.”
여인의 눈이 살짝 커졌다.
-왜죠?
“그야-”
대답하는 유릭의 목소리는 이 자리의 어둠에 묻혀 전혀 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여인에겐 잘 들리는 듯, 뜻밖의 말을 들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곤 이내 미소 짓는다.
그 미소를 일별하며 유릭이 검을 쥐었고.
다음 순간 그는 다시 현실에 돌아와 있었다.
“킬킬킬! 아직도 그 검에 의지할 생각이더냐! 어리석구나, 어리석어! 인간이란 어찌 이리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지!”
이제까지와 전혀 달라지지 않은 유릭의 모습에 해골 거인이 크게 비웃었다.
하지만 사실은 전혀 달라졌다.
‘엑셀레아.’
그저 수동적으로, 유릭이 원하는 대로 바람을 흩뿌리기만 했던 검이 지금은 멋대로 유릭의 기운을 뽑아내고 있었다.
유릭의 내면에 존재하나 조종하지는 못했던 그 기운.
빙하설월의 기운을.
‘이제야 좀 마검답네.’
유릭은 전혀 불쾌해하지 않고 오히려 웃었다.
주인의 기운을 멋대로 뽑아가다니,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 마검이라 불릴 만하지.
그동안의 순순한 모습보다 지금처럼 욕망을 그대로 내비치는 쪽이 더욱 마음에 든다.
스릉.
검이 살짝 뽑히며 그 사이를 중심으로 바람이 휘몰아쳤다.
지금까지와 달리 차디찬 얼음 조각이 섞여 있는 바람.
“호오?”
그제야 뭔가가 달라졌다는 것을 알아챈 해골 거인이 흥미를 보인다.
하지만 이내 코웃음으로 일관했다.
“그래 봤자 뭐가 달라진다고.”
녀석이 피식 웃으며 지팡이를 올린다.
하늘을 뒤덮은 빼곡한 마법진이 마기를 준비했다.
채 피하지도, 받아내지도 못하게 이곳의 모든 것을 파괴하기 위해.
유릭이 한 걸음 내디뎠다.
그를 중심으로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그것은 대기를 침식하는 해골 거인의 마기를 몰아내며 반짝이는 빛을 발하고 있었다.
‘방금 전.’
유릭은 흑발의 여인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그야 이쪽이 더 승리에 목말라 하고 있을 테니까.
그동안 져왔던 것을 뒤엎을 필요는 없다고.
역사를 없었던 일처럼 덮고 묻어버릴 필요 따윈 없고, 오히려 그래서는 안 된다고.
그건 지금의 엑셀레아를 부정하는 일.
그가 원하는 것은 엑셀레아가 전혀 다른 새로운 검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이 검이,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 스스로를 극복하는 것.
바로 그 순간이었다.
엑셀레아에 딱 한 줄, 새로운 역사가 기록된 것은.
<그러니 갈망하라. 승리를.>
온갖 패배와 굴욕의 세월이 벼려낸 마검.
그러니 더욱 갈망하라.
적을 무찌르고 왕을 베어낼 힘을.
“네놈…….”
눈보라의 중심에 우뚝 선 유릭.
그를 보는 해골 거인의 웃음이, 어느 순간부터 씻은 듯이 사라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