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 81화
81화. 그렇게 나와야지
해골 거인의 표정이 굳었다.
유릭을, 정확히는 유릭이 쥔 검을 보는 그의 머리에 미친 듯이 경종이 울리고 있었다.
세월의 검 엑셀레아.
분명 그건 해골 거인이 잘 알고 있는 검이다.
그런데 유릭이 쥐고 있는 엑셀레아는 달랐다.
그건 그가 알지 못하는 검이었다.
‘새로운 세월을 새긴다? 이미 완성된 검에?’
미완성의 검에 세월을 새기는 일이야 평범한 일이다.
평범한 영웅이나 대악당쯤 되는 존재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하지만 이미 완성되어 그 존재가 확립된 검에 새로운 세월을 더하다니?
그런 일이 가능한 존재는 들어본 적도 없다!
‘별의 역사 속에 이미 완성된 검을…….’
그것을 끄집어내어, 더욱더 다른 역사를 더한다.
그게 이 별에 속한 존재에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마치 초월성에 이른 존재에게나 가능할 법한…….
‘그럴 리가!’
거기까지 생각한 해골 거인이 고개를 크게 저었다.
눈앞의 저 작달막한 인간 따위가 왕과 같은 초월성을 이뤘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있어선 안 되는 일.
“네놈이 정말 그런 존재라고 한다면.”
그러나 만약.
놈이 정말 그런 존재라고 한다면.
“내게 증명해 보여라!”
고작 자신 따위의 공격에 죽을 리 없을 터.
해골 거인이 크게 지팡이를 내려쳤고, 동시에 하늘을 뒤덮은 수백의 마법진이 빛났다.
콰아아아아아!
검고 흉흉한 빛을 흩뿌리는 광선이 오로지 유릭만을 노리고 쏟아졌다.
빛에 무게가 있다면 이미 짓눌려버렸을 압도적인 빛줄기 속.
유릭은 쥐고 있는 엑셀레아에게서 묘한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
강제로 빨리고 있는 빙하설월의 기운.
그 기운을 통해 감각이 확장된다.
염화신무의 기운을 일으켰을 때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감각.
‘이게 서리 마나를 쓸 때의 감각인가?’
회귀 전과 후를 통틀어 단 한 번도 사용해 보지 못했던 서리 마나.
그 힘이 지금 자신의 손에서 피어오르고 있다.
비록 검을 통한 간접적인 경험이라 하지만.
“죽어!”
해골 거인이 뭐라고 소리치며 마기를 흩뿌리고 있었지만 잘 들리지도 않았다.
놈의 마법이 사방에서 쏟아지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전혀 두렵지 않다.
피어오르는 감정은 오직 하나.
놈을 이기고 싶다는 감정.
‘나까지 옮은 건가?’
검의 갈망이 자신에게까지 옮은 것일까, 아니면 그완 별개의 자신만의 감정인 것일까.
뭐 어느 쪽이든 상관없는 일이다.
어차피 자신이 할 일은 정해져 있으니.
“엑셀레아.”
우웅-
검이 울었다.
문득 모든 검은 살아 있다는 마크 로헨의 말이 떠올랐다.
그땐 어이없어했지만 지금 보니 꽤나 그럴듯하게 들린다.
어느새 자신도 이 세상에 그만큼 동화되었단 뜻일까?
“이겨라.”
그 말을 마지막으로, 유릭이 엑셀레아를 발검했다.
* * *
해골 거인이 펼친 검은 마법진이 하늘을 가득 뒤덮고 있다.
그 하나하나가 별이라면, 쏟아질 듯한 은하수와 같은 광경이라 하였을 것이다.
그 마법진에서 짙은 마기가 쏘아진다.
오목거울처럼, 유릭 하나만을 노린 채.
콰과과과과광!
그러나 해골 거인은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내 마법이……!’
스켈레톤으로 다시 태어나고 나서 수백 년간 쌓아 올린 힘.
그 힘을 쏟아부은 마법이 엑셀레아의 바람에 찢어 발겨지고 있다.
유릭을 중심으로 피어오른 거센 눈보라가 해골 거인의 마기를 모조리 밀어내고 있었다.
‘레녹스의 검 따위가!’
천 년 전에는 결코 있을 수 없던 일이다.
하찮은 레녹스의 검 따위가 자신의 공격을 받아치다니?
‘아니…….’
직후 해골 거인은 깨달았다.
자신은 레녹스의 검 따위에 절대 지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지고 있는 이유.
그것은 저 검이 더 이상 레녹스의 검이 아니기 때문이다.
엑셀레아는 이미 레녹스의 검이 아닌, 저 이름 모를 인간 꼬마의 검이 되었다.
딱 그 차이.
“……!”
해골 거인의 마기를 모조리 튕겨낸 유릭이 땅을 박차고 뛰었다.
회오리치는 바람에 가속을 받으며 그가 순식간에 해골 거인의 지근거리에 도착했다.
그대로 기세를 죽이지 않고 뛰어오른 유릭.
“어림없다!”
마기가 해골 거인의 상체를 감싼다.
검은 마기가 마치 살과 근육을 대신하듯 짜내어지더니, 이내 화려한 장식이 달린 갑옷이 되었다.
악령갑.
스켈레톤이 되어 육체 능력의 대부분을 잃은 해골 거인이, 잠깐이나마 그 시절의 힘을 되찾기 위해 만들어낸 마법.
단단한 건틀릿이 뛰어오른 유릭을 벌레 쳐내듯 쳐냈다.
콰앙!
놈에 비해 작기만 한 유릭의 몸은 너무나 쉽게 튕겨 나갔다.
몸에 커다란 충격이 내달렸지만 상처는 없었다.
여기까진 이미 예상한 대로니까.
“네놈!”
해골 거인이 이를 간다.
놈의 손바닥에 맞는 순간 유릭은 각도를 비틀어 의도적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그 방향은 놈의 등 뒤로 향하는 방향이었다.
“뒤쪽이냐!”
해골 거인이 곧바로 따라서 몸을 틀려 하였다.
그러나 좀처럼 손쉽게 뒤로 돌 수 없었다.
‘역시.’
앉은 자세에서 곧바로 뒤로 도는 것은 어렵다.
해골 거인은 지금까지 전혀 일어서지 않았다.
그게 방심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라면.
가령 하체를 쓸 수 없다거나 하는 이유로 앉아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 등이야말로 놈의 최대 약점일 터.
“이노오오오옴!”
그 생각이 들어맞았는지 놈은 좀처럼 뒤로 돌지 못했다.
어떻게든 상체를 비틀어 유릭을 보려고 하지만 그조차 여의치 않다.
그사이 유릭은 놈의 등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허수아비나 다름없는 표적.
“그렇게 쉽게 될 것 같으냐!”
해골 거인이 가진 모든 마기를 끌어 올려 악령갑에 쏟아부었다.
불길한 검은 기운으로 만들어진 그 갑옷이 더욱 부풀며 단단히 채워진다.
유릭의 손바닥이 수납된 엑셀레아를 단단히 쥐었다.
‘기회는 단 한 번.’
‘일격만 막으면 된다!’
이 순간 유릭과 해골 거인이 생각하는 바는 모두 같았다.
이 한 번의 기회에 뚫어낼 수 있을 것인가.
혹은 막아낼 수 있을 것인가.
천 년 전의 엑셀레아는 하지 못했다.
이런 중요한 기회가 찾아올 때마다 매번 실패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금 널 쥐고 있는 건 나다. 천 년 전의 그놈이 아니라.’
그러니 극복해라.
천 년 전 옛일은 가슴에 품는 정도로만 하고, 다가올 앞으로를 마주해라.
유릭이 엑셀레아를 뽑으며.
촤악!
크게 휘둘렀다.
얽히고설킨 서리 바람이 날카로운 쐐기 조각이 되어 악령갑을 쥐어뜯는다.
카드드드드득!
해골 거인이 기세등등하게 끌어올렸던 마기가 모조리 흩어지며 악령갑이 파괴됐다.
선으로 휘둘러진 서리 바람이 놈의 갑옷을 부수고 뼈를 갈아내었다.
“끄으으으으으!”
해골 거인의 몸이 크게 기운다.
놈의 상체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기울었으나.
“크하아아아압!”
놈은 버텨냈다.
악령갑을 부수는 것엔 성공했으나 정작 중요한 척추뼈는 반절밖에 부서지지 않은 것이다.
“크, 크하하하하하! 절호의 기회를 놓쳤구나, 엑셀레아!”
해골 거인이 광소를 지으니 그 눈이 섬뜩하게 불타올랐다.
눈의 푸른 귀화가 검게 보일 정도로 놈의 감정이 격하게 타올랐다.
역시 이럴 줄 알았다.
엑셀레아 따위가 자신을 벨 수 있을 리 없다!
놈의 눈엔 ‘네깟 놈이 그럼 그렇지’ 하는 커다란 멸시의 감정이 떠올라 있었다.
큰 비웃음과 함께 녀석이 몸을 돌려 유릭을 내려치려 할 때.
화아아아아아-!
“……어?”
서걱!
뒤이어 불어온 서릿빛 칼바람이 반쯤 잘려있던 놈의 척추를 그대로 가르고 지나갔다.
<서리검, 잔설(殘雪)>.
검을 휘두른 경로를 따라 마나를 남겨 두 번째의 참격을 만들어내는 로스카의 검술.
두말할 것 없이 서리 마나를 사용하는 검술이다.
그것이 유릭의 손에 의해 펼쳐진 것이다.
엑셀레아의 바람의 힘까지 가미되어 더욱 뛰어난 검으로.
“어찌…….”
해골 거인의 상체가 무너져 내렸다.
쿠웅!
얼음 파편이 튀어 오르며 처참한 몰골로 땅에 처박히는 해골 거인.
놈의 눈이 풀리지 않은 의문에 물들어 있었지만 유릭은 친절히 대답해 줄 생각 따윈 없었다.
회귀 전 폐인이 될 정도로 서리마법과 서리검술을 탐독했던 점이나, 그때의 지식이 이제 와서 개화했다는 점이나 모두.
곧 죽을 놈에겐 들려줄 필요가 없는 이야기다.
“아, 안 돼! 살려줘! 어떻게 부지한 목숨인데 이렇게 갈 수는!”
저벅저벅 걸어오는 유릭을 보며 해골 거인이 몸을 떨었다.
상체만 남은 몸으로 어떻게든 도망치려 하지만 여의치 않았다.
발악하는 놈을 향해 유릭이 조용히 검을 들었다.
엑셀레아가 흉흉히 빛나며 해골 거인의 두개골을 노린다.
“잠깐 기다려라! 뭐든지 하마! 네 부하가 되어 뭐든지 하고 뭐든지 얘기해 주마! 인간은 옛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하지? 천 년 전의 일이 궁금하지 않더냐?”
부하가 된다는 건 둘째 치고 천 년 전의 이야기를 풀어준다는 건 꽤나 매력이 있다.
유릭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이봐.”
“뭐, 뭔가!?”
“착한 악마가 되겠다고 약속해라.”
“그래, 물론이고말고! 네가 원한다면 선하고 착한 악마가 되는 일 따위 쉬운 일이다. 그러니 목숨만은…….”
살았다는 생각에 해골 거인이 반색하며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좋아.”
유릭이 가차 없이 손을 내렸다.
푹.
엑셀레아의 검신이 너무나 부드럽게 놈의 두개골을 뚫고 들어갔다.
“어, 어째서…….”
쩌적. 쩌저적.
놈의 두개골에 세로로 기다란 금이 생긴다.
동시에 놈의 눈에 타오르던 푸른 귀화가 점차 꺼지기 시작했다.
마지막까지 의문을 풀지 못한 해골 거인을 보며 유릭은 흥, 콧바람만 낼 뿐이었다.
착한 악마는 죽은 악마뿐.
곧 놈의 두개골이 반으로 쩌적 갈라지며 눈의 귀화도 완전히 소화(消火)되었다.
“후우.”
유릭이 피로한 한숨을 내쉬며 엑셀레아를 검집에 담았다.
내기가 바닥나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그보단 전신이 삐걱거린다.
놈의 손바닥에 맞으며 억지로 방향을 튼 일이나, 힘으로 악령갑을 베어 뜯은 일.
그 외 기타 등등, 이번 일은 육체적으로 꽤나 힘들었다.
그때 잠시, 엑셀레아를 모두 검집에 넣기 전.
유릭이 물었다.
“만족했냐?”
그토록 갈망했던 승리를 얻었다.
그것도 천 년 전부터 비웃어 온 숙적과 같은 녀석을 물리치며.
우웅-
그러나 검의 울림은 말해왔다.
전혀 아니라며.
고작 이 정도로, 자신의 갈망은 조금도 채워지지 않는다며.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그 대답에 유릭이 픽 웃었다.
* * *
해골 거인은 완전히 죽었지만 그 뼈는 아직 남아 있었다.
적당히 부숴서 흩어버릴까 생각했지만 그냥 그대로 놔두기로 했다.
가문으로 돌아가 보고하면 뭔가 더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천 년 전 마왕의 오른팔이었던 서리거인이 언데드인 채로 숨어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면 무척 시끌시끌해지겠지.
탐사는 4번대 단장인 게오르그가 맡으려나?
‘그러고 보니.’
해골 거인이 불러일으켰던 본 드레이크들.
어떻게 됐나 살펴보니, 그놈들도 모조리 힘을 잃고 축 쓰러져 있었다.
언데드 중에는 술사가 죽어도 움직이는 종류도 있어서 걱정했지만 놈들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렇게 적당히 정리를 하고 난 뒤.
유릭은 해골 거인이 솟아올랐던 그곳의 지하로 향했다.
‘뭐라도 있으려나.’
해골 거인이 수백 년을 몸을 감추고 있던 장소.
취미로 술을 빚으면서, 한편으론 사령술을 독학하던 지하 안식처.
그러나 쭉 둘러봐도 특별한 것은 없었다.
책이나 마법 도구 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고 술동이나 잔뜩 있을 뿐이다.
그냥 커다란 술 저장고라고 해도 믿을 만한 모습이었다.
‘독학은 스스로의 기운을 분석해서 한 건가?’
해골 거인 본인 또한 사령술로 인해 일으켜진 언데드.
스스로에게 남은 사령술의 기운을 분석하여 익히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어찌 됐든 놈에겐 썩어 넘치는 것이 시간이었고, 스켈레톤을 일으키는 술법은 사령술 중에서도 가장 간단한 난이도의 술법이니까.
‘씁.’
소득은 없나…… 라는 생각에 유릭이 입맛을 다셨다.
물론 전투 중에 도달한 엑셀레아의 진화가 소득이라면 소득이지만 그래도 뭔가 더 있었으면 했다.
천 년 전 거인의 언데드를 무찔렀는데 전리품이 없다는 건 많이 아쉽지 않은가?
라고 생각하던 그때.
“응?”
유릭이 이 장소에 정말 어울리지 않은 물건을 발견했다.
거인의 거처에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던 작은 물건.
평범한 인간이 달고 다닐 사이즈의 작은 브로치였다.
푸른 초승달 모양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