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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84화 (84/166)

#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 84화

84화. 잘 볼게

4번대 기사단의 연병장에 거대한 뼈가 놓인 수레가 들어왔다.

이윽고 병사들이 달라붙어 해골 거인의 뼈를 천천히 내려놓았다.

부서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그 작업을 책임자인 게오르그, 그리고 참관인으로 초대된 유릭이 지켜보고 있었다.

“정말 저놈을 혼자 잡으셨단 말입니까?”

“마검의 힘으로 잡은 거긴 하지만.”

“검의 힘을 끌어내는 것도 도련님의 능력이 아닙니까! 대단하십니다!”

게오르그가 사심 없는 찬사를 보냈다.

대부분의 사람은 천 년 전의 기록 같은 것엔 별반 관심이 없고, 때문에 천 년 전 서리거인이 어떤 존재였는지도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고고학 쪽에 조예가 깊은 게오르그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마왕의 오른팔로 이곳 엘드가르드 전역에 악명을 떨친 대악마.

그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는 유릭에게 부담스러울 정도의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게오르그의 반짝거리는 눈빛을 느끼며 유릭이 볼을 긁적였다.

해골 거인은 물론 강하긴 했다.

놈의 마법은, 섬세한 조절은 잘 못 하는 듯 보이긴 했지만, 위력 하나만큼은 절대 무시 못 할 수준이었다.

놈과 싸웠던 장소는 바위산이 모조리 깎여 나가 지형이 변했을 정도니까.

하지만 천 년 전의 위용에 비하면 아무래도 큰 손색이 있었다.

‘레녹스도 힘을 많이 잃은 상태였었지.’

그러고 보면 청색 지대에서 보았던 풍왕의 유령도 마찬가지였다.

천 년 전의 강대한 힘은 세월 앞에 모두 바스러지고, 남은 힘은 바람 앞의 촛불처럼 미약하기만 하던.

본디 시간이란 무엇보다 강대하고 뛰어난 힘이다.

평범한 검을 마검으로 만들 수도, 과거의 대악마를 일개 마물로 떨어뜨릴 수도 있는.

새삼스레 느껴졌다.

시간을 되돌린다는 <외우주>의 기적이 얼마만큼 말이 되지 않는 일인지.

“그런데 조사하면 뭐가 나올 것 같아?”

“글쎄요……. 장담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뼈를 가리키며 묻는 유릭에게 게오르그가 눈을 찌푸렸다.

천 년 전 서리거인의 뼈라면 분명 대단한 역사 자료이기는 하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뭘 알아낼 수 있냐고 묻는다면, 말을 아낄 수밖에 없다.

“워낙 오래된 뼈이기도 하고 걸려있던 사령술도 기초 중의 기초인 스켈레톤 소환이라 뭐가 남아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하다못해 스켈레톤이 아니라 데스나이트 정도만 됐더라면 천 년 전의 술식을 살펴볼 수 있었을 텐데요.”

“게오르그. 그랬다면 가문에 도착한 건 놈의 뼈가 아니라 내 유골이었을 걸.”

“헛, 죄송합니다.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니었습니다.”

황급히 고개를 숙이는 게오르그에게 유릭이 손을 내저었다.

유릭도 그냥 농을 던진 것뿐이지 진심으로 불쾌해서 한 소리는 아니다.

“어쨌든 뭘 알게 되면 나한테도 얘기해 줘. 알았지?”

“예! 가장 먼저 도련님께 보고드리겠습니다!”

새로 들어온 신참 기사처럼 빠릿빠릿하게 경례를 올리는 게오르그를 보곤, 유릭이 연병장을 나왔다.

‘다음은…….’

오늘은 또 누구를 만날 일정이 있었다.

4기사단의 연병장을 나온 유릭이 그대로 가주의 집무실로 향했다.

가주의 집무실이라곤 하나 실상 발렌티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다른 곳에서 보낸다.

평소 이 방을 사용하는 이는 발렌티나가 아닌, 가주 대행인 엘린이었다.

“유릭!”

노크 소리와 함께 들어온 유릭을 보며 엘린이 책상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서 오거라. 자, 이리로, 이리로.”

그녀가 평소 이상으로 반갑게 맞으며 유릭을 의자에 앉혔다.

그 앞에 마주 앉으며 그녀가 자연스럽게 시녀에게 차를 부탁했다.

“오랜만이야, 누나. 들어보니까 나 없을 때 일이 많았다며?”

“많기야 했다만 너만 했겠니. 외숙에게 다 들었다. 고생 많았지?”

“그야 고생하러 간 거니까.”

수련이란 것이 원래 사서 고생을 하는 일이 아닌가.

그런 뜻으로 얘기하자 엘린이 눈웃음을 지었다.

예전의 그, 열등감에 찌들어 방구석에 처박혀만 있던 유릭이 이렇게 대견스러운 대답을 하게 되다니.

그녀가 지그시 유릭을 쳐다보았다.

마스터인 그녀의 눈에는 유릭의 경지가 비쳐 보였다.

“7성에 올랐구나.”

“응.”

딱히 숨길 일도 아니다.

적색 지대에서 1년을 보낸 결과, 유릭은 7성에 오를 수 있었다.

고작 1년 만에 엄청난 성과…… 라고 하지만 사실 꽤나 아슬아슬했다.

만약 수련 장소가 적색 지대가 아니었다면, 혹은 해골 거인과의 전투가 없었더라면 절대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알고 있니? 스무 살에 7성은 최연소 기록이란다. 아니지, 넌 아직 생일이 지나지 않았으니 열아홉이구나?”

“며칠 후면 생일인데 뭐.”

“그래도 열아홉은 열아홉이지.”

엘린의 눈에 새삼 대단하단 빛이 떠올랐다.

살면서 뛰어난 강자를 수없이 봐왔던 그녀다.

어머니인 발렌티나는 말할 것도 없고 당장 그녀만 해도 어릴 때부터 뛰어난 두각을 드러냈던 천재 중의 천재.

그런데 그 누구보다도, 지금의 유릭만큼의 성장세를 보여준 이는 없었다.

“최연소 마스터도 아니고 7성 가지고 뭘.”

유릭이 부담스러운 듯 눈을 찌푸렸다.

그 말처럼 사실 정말 중요한 것은 마스터에 오르는 것이다.

최연소 7성이란 타이틀은 딱히 자랑할 거리도 아니었다.

아무리 빨리 7성에 도달해 봐야 마스터까지 10년, 20년이 걸리면 의미가 없었으니까.

“그래도 대단한 건 대단한 거지. 이번 교류전이 기대되는구나. 후후.”

엘린이 기대감이 가득한 눈으로 장난스레 웃었다.

단언할 수 있었다.

유릭의 또래 중에서 유릭보다 강한 아이는 없다고.

이번 신룡가와의 교류전은 우리 유릭의 실력을 만천하에 알릴 훌륭한 데뷔전이 될 터.

그런 생각에 웃음이 절로 나오는 그녀였다.

“그 교류전 말인데.”

한편, 교류전 얘기가 나오니 유릭이 심각한 어조로 말을 꺼냈다.

엘린이 웃음을 멈추고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 얘기 역시 어제 발터에게 전해 들었다.

“그곳을 아칸과의 회동 장소로 하자는 말이지?”

“응.”

“신룡가라면 확실한 중립이고 공증인으로서도 문제없긴 한데…… 꼭 거기여야 하는 이유라도 있니?”

“딱히 그런 건 아니고.”

반드시 신룡가여야 한다! 라는 이유는 딱히 없었다.

그냥 영향력 있는 공증인이 필요할 뿐.

신룡가 티르옌이라면 좀처럼 외부에 드러나진 않지만 10대 가문 사이에서의 영향력은 확실한 곳이다.

뭐니 뭐니 해도 그들은.

‘강하니까.’

강하다.

단지 그것뿐인 심플한 이유.

하지만 이 세상에선 강력한 무력만큼 뛰어난 영향력을 가진 요소는 없다.

‘세력 자체는 약하긴 하지만.’

외부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 만큼 세력은 10대 가문 중 하위권이다.

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무력이 상당하다.

말하자면 소수정예라는 느낌.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은 세간의 존경을 받는 이들이기도 하다.

용에 대한 집착 외에는 일절 사리사욕을 추구하지 않는 성향 덕에 다른 가문은 물론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도 명성이 높다.

그런 이가 공증인이 되어준다면 협정의 강제력도 오를 터.

‘신룡가 정도 되는 가문이 공증을 맡으면 아칸 쪽도 협정을 깨기 힘들 테지.’

유릭은 이미 협정을 맺은 그 이후를 보고 있었다.

로스카와 아칸의 협정.

어떤 의미론 세계사에 남을 정도의 사건이지만, 고작 이것 하나도 대륙에 평화가 찾아왔다기엔 한참이나 이르다.

실제로 회귀 전에는 몇 년 되지도 않아 파탄 났으니까.

‘깨지는 건 막을 수 없어.’

자신이 신이 아닌 이상 두 대가문의 알력을 모조리 해소할 수는 없다.

협정이 깨지는 것은 이미 결정된 미래.

중요한 건 깨지기 전까지 얼마나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지다.

영향력 있는 공증인의 이름은 그 기간을 조금이나마 늘려줄 테지.

“티르옌이라면 확실히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해, 누나. 원체 속세에 관심이 없는 이들이니 배신할 우려도 없고.”

“그건 그렇지. 아칸 쪽에서 몰래 포섭하려고 수작을 부려도 관심도 보이지 않을 이들이니까. 오히려 너무 관심이 없어서 공증인으로서의 역할을 맡아줄까 걸리긴 하는데…….”

“그거는 뭐…….”

그런 우려에는 유릭도 할 말이 없었다.

쩝 하고 입맛이나 다시고 있으려니 엘린이 피식 웃었다.

“뭐 괜찮겠지. 속세에 관심이 없다고 해도 그 정도로 떨어져 있는 이들도 아니니까. 그리고 여차하면 이쪽엔 좋은 카드도 있거든.”

“좋은 카드?”

“후후, 알고 싶니?”

엘린이 장난스럽게 웃었다.

신룡가에 쓸 만한 좋은 카드가 있다고?

처음 듣는 얘기에 유릭이 갸웃거리다.

‘아.’

이내 깨달았다.

신룡가는 용을 신성시하며 그 자신도 용의 경지에 이르길 바라는 구도자들.

그들은 재물과 명예 따위엔 일절 관심이 없지만, 오직 하나에는 환장한다.

바로 용의 흔적.

그리고 엘린이 알고 있는 용의 흔적이라면.

‘브랜든이랑 싸웠던 그때…… 메르한테 연기를 시켰던 그 일 말인가?’

엘린이 알고 있는 용의 정보라면 그것 말곤 떠오르지 않는다.

유릭이 어설프게 웃으며 슬쩍 품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메르는 없었다. 대령이랑 힐라사한테 간다고 외출했기 때문이다.

“미안하지만 아직 비밀이야. 나중에 너한테만 몰래 알려줄게.”

“아, 응.”

의기양양한 누이의 모습을 보며 유릭이 슬며시 끄덕였다.

차마 이미 알고 있다고, 아는 정도가 아니라 애초에 자신이 꾸민 일이었다고, 솔직히 말할 수 없는 그였다.

“그럼 아칸 쪽엔 그렇게 전달하지. 아마 그쪽도 거절하진 않을 거야.”

“그래?”

“교류전이 있을 때까진 쉬렴. 그간 수련했던 걸 정리할 시간도 필요하잖니?”

유릭이 끄덕였다.

서로 일정을 조율하고 신룡가 쪽에도 연락하고 하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겠지.

그 시간은 지난 1년간을 점검할 충분한 시간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아, 맞다. 너한테 줄 게 있는데.”

“줄 거?”

그때 갑자기 떠올랐다는 듯 엘린이 서랍을 열고 뒤적거렸다.

그 모습을 의아하게 보고 있으려니 이내 그녀가 두꺼운 가죽표지의 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그게 뭐냐며 보고 있던 유릭의 눈이, 이윽고 점점 커져 왔다.

“그거 설마…….”

“예전에 약속했던 불의 마도서야.”

엘린이 건네는 책을 받아 유릭이 촤르륵 넘겨보았다.

대충만 훑어봐도 알 수 있었다.

진짜 마도서다.

“그냥 적당히 위로하려고 한 말인 줄 알았는데…….”

과거 성인식 때, 클레어가 가져온 아낙플라시아의 마도서를 유릭이 태워버렸던 그때.

확실히 엘린이 얘기하긴 했었다.

불의 고위 마법이 적힌 마도서를 찾아봐 주겠다고.

그런데 그걸 잊지 않고 찾아봐 줬을 줄이야!

“내가 빈말이나 할 사람으로 보여?”

“그야 아니지. 누나가 허튼소리나 하고 다닐 리 없지! 믿고 있었어!”

“정말이지?”

“진짜지 그럼! 어디…….”

유릭이 빠르게 마도서를 훑어보았다.

당장 읽기만 한다고 마법이 익혀지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마법이 적혀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있었다.

그걸 본 유릭이 눈을 크게 떴다.

“……6성 마도서잖아?”

클레어가 가져왔던 것보다도 한 등급 위의, 6성의 마도서.

7성 이상의 마도서가 전설 속에나 등장하는 물건이란 걸 생각하면, 사실상 노력으로 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등급의 마도서였다.

기쁨의 비명이 튀어나오려는 걸 유릭이 간신히 참았다.

솔직한 얘기로, 어제 볼모 얘기가 없어졌단 얘길 들었을 때보다도 기뻤다.

환한 눈으로 입을 틀어막는 유릭을 보며 엘린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걸 구하기 위해 지난 2년간 갖은 고생을 했고 직접 발품까지 팔아 어렵사리 구해와야 했지만, 그 고생이 전혀 후회되지 않았다.

“다 읽으면 반납해야 된다? 가문의 비고에 들어갈 수준의 물건이니까.”

“안 구기고 잘 볼게!”

어제오늘 베르겐이나 발터 등에게서 왜 이렇게 성숙해졌냐는 소릴 들은 유릭이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장난감을 선물 받은 어린아이와 다를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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