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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100화 (100/166)

#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 100화

100화. 역시

다다다다다!

수풀과 나뭇가지를 짓밟는 군화 소리가 산속에 울려 퍼졌다.

하얀 제복에 검을 찬 기사들.

로스카의 기사들이 눈 덮인 산을 포위하고 있었다.

가장 선두에 서 있는 건 가주 대행인 엘린 로스카.

그리고 그들의 포위망 한가운데에 갇혀 있는 이는.

“환영 인사가 많이 거칠구나, 엘린.”

상황에 걸맞지 않게 여유로운 미소를 띠고 있는 아이작이었다.

“오라버니…….”

정말로 아이작 본인이 맞음을 확인한 엘린이 아랫입술을 씹었다.

첩보를 듣고 올 때만 해도 반신반의하던 그녀였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눈앞에 있는 이는 그녀와 같은 로스카의 피를 이은, 그녀의 오라비였다.

“잘도 들어오셨군요. 추방자는 다신 이 땅을 밟을 수 없다는 가문의 율법을 잊으셨습니까?”

“알다마다. 그런데…… 그래서 어쩔 거지? 어머니도 안 계신데 나를 쫓아낼 수 있나?”

발렌티나의 부재를 언급하는 것에 엘린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역시 일부러 이때를 노리고 온 것인가.

그러나, 가주가 없다고 해도 가문의 율법은 지켜져야 하는바.

그건 가주 대행인 그녀의 일이었다.

“……마경으로 도망칠 생각이십니까?”

이미 주변은 모두 포위되었다.

아이작이 도망칠 길은 단 하나.

그의 등 뒤에 있는 칠색의 마경의 입구.

“소용없습니다. 마경은 닫힌 세계예요. 아무리 숨어든다 한들 언젠가는 발각될 겁니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지만, 그렇다고 정말로 끝이 없진 않다.

그곳에 숨어들어 간다면 물자가 충분하다는 가정하에 수년 정도는 버틸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뿐.

결국 꾸준히 수색하다 보면 언젠가 붙잡힐 터.

“후.”

엘린의 말에 아이작이 피식 웃었다.

그가 대꾸한 말은 엘린에 대한 대답이 아닌 전혀 다른 얘기였다.

“원래는 정식으로 가문에 돌아올 생각이었다. 그걸 위해 여러 안배를 해놨었지. 부하를 심어놓은 것도 그 일환이고.”

“…….”

“그런데 실패해 버렸어. 부하들은 죽었고 어머니와 너희는 내가 지금도 마왕의 힘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 버렸지. 원래는 마왕의 힘 따윈 진작 버렸다며 돌아올 생각이었는데.”

알리샤가 죽어 데릭을 아군으로 만드는 데 실패했다.

브랜든이 죽어 기사단 내부에 부하가 있다는 사실이 들켰고, 이후 발렌티나와 레오폴딘의 집요한 수색 끝에 모든 부하가 색출되어 추방되었다.

그리고 사막에서의 일 때문에 마왕의 힘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들켜 버렸다.

도저히 가문에 돌아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참으로 신기하지. 이 모든 상황이 단 한 놈 때문에 벌어졌다.”

“……유릭 말이군요.”

“그래, 그놈. 그 맹랑한 녀석 때문에 수년에 걸쳐 일궈놓은 내 모든 게 엎어졌어. 그놈은 대체 뭐지? 미래를 읽는 예언가나 뭐라도 되나?”

그럴 리가 없다는 걸 그도 엘린도 알고 있다.

단지 하소연을 하기 위해 토로했을 뿐.

“아무리 나라도 이렇게까지 꼬인 이상 가문에 돌아오는 것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루카스 아칸과의 동맹 역시 진작 끝났다.

두 사람이 손을 잡은 건 서로가 서로의 가주 승계에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이작이 그것이 불가능해진 이상, 루카스에겐 더 이상 아이작의 뒤를 봐줄 이유 따윈 없었다.

두 가문의 회담으로 로스카의 가주가 자리를 비울 것이란 정보를 마지막으로, 루카스는 아이작과의 연락을 끊었다.

그것은 결국.

“완전히 끈 떨어진 신세란 말이지.”

아이작은 이제 아무런 뒷배도 연고도 없다는 얘기였다.

그런 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간단했다.

힘.

그가 일부러 로스카에 방문한 것은 그걸 위해서였다.

“딱히 도망치려고 이 마경 앞까지 온 게 아니란다, 엘린.”

아이작이 마경의 입구에 손을 대었다.

일렁이는 거울과 같은 형상을 띤 게이트.

그것은 사람의 몸을 통과시켜 마경으로 보내버리는 기기묘묘한 현상의 집합체였지만.

콰직!

신기하게도 아이작의 팔은 통과되지 않았다.

그의 손아귀가 일렁이는 게이트를, 마치 찌그러진 철판이라도 잡듯이 콰득 우겨 잡았다.

“!”

엘린의 등줄기에 전기라도 통한 듯 소름이 스쳐 지나갔다.

오라버니가 무엇을 하려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위험한 일을 시도한다는 것만은 확실히 느껴졌다.

“돌격!”

엘린의 명령과 동시에 기사들이 기다렸다는 듯 달려들었다.

엘린 자신도 반짝이는 입자와 같은 마나를 피어 올리며 아이작의 주위를 덮었다.

그러나 아이작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그의 눈이 가라앉았다.

“늦었어.”

콰득! 콰드드득!

마경의 입구가 아이작의 우악스러운 손아귀에 마구 일그러졌다.

챙그랑!

이윽고 깨져 나간 그것이 마치 유리 파편처럼 쏟아져 아이작의 왼팔을 뒤덮었다.

동시에 아이작을 중심으로 폭풍이 일기 시작했고.

콰과과과광!

항거할 수 없는 거력이 쏟아지며 덮쳐오던 기사와 엘린을 모조리 튕겨내었다.

“끄악!”

“큭!”

무거운 갑주와 검을 장비한 기사들이 낙엽처럼 떨어져 나간다.

그러나 중심에 있는 아이작은 이보다 평온할 수 없었다.

엘린만이 간신히, 갈라진 땅에 손을 박아 압력을 견뎌내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렇지. 이거 말고도 쓸 만한 게 하나 있었지.”

모든 적을 무릎 꿇린 와중에도 아이작의 입엔 그 흔한 미소 하나 걸려 있지 않았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하는 듯한 담담함.

“초대의 검을 회수하러 가야겠어.”

다음 엘린이 정신을 차렸을 땐.

아이작은 물론이고, 마경의 입구 자체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모두 일어나라! 당장 가문으로 내려간다! 데릭이 위험해!”

그러나 놀랄 틈 따윈 없었다.

다급히 명령을 내리며 엘린 본인도 달리기 시작했다.

* * *

사막의 토굴에서 유릭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공간에 빨려 들어간 적이 있다.

아마 초대가 준비했을 거라 생각되는 그 공간.

거기서 그는 유화의 세계의 절대자인 천마를 만났고 여러 대화를 나눴다.

초대의 검인 마검 이솔렛, 무림에서의 이름은 북천멸강검이라 하던 그 검의 정체를 알아봐 주겠다고 한 건 천마의 호의였다.

‘뭐 하는 검이래?’

[“빙궁의 지보였던 검이라고 하더라구요.”]

‘빙궁?’

[“북해빙궁이라고 중원무림과는 꽤 떨어진 새외무림 중 하나인데, 빙공을 극한으로 발전시킨 곳이에요.”]

얘기를 듣던 유릭이 눈을 크게 떴다.

빙공을 주력으로 사용하는 북해에 위치한 세력.

로스카와 너무 비슷한 느낌이 아닌가?

‘초대는 그 빙궁의 사람이었다는 건가?’

그렇다고 한다면 초대가 대륙의 북쪽, 얼음의 땅에 가문을 세운 이유도 이해가 간다.

고향의 가문과 비슷한 가문을 다시 세우고 싶었겠지.

[“정확한 시기는 모르지만 어느 순간 모습을 감췄다고 하네요. 혹시 아저씨가 들고 있어요?”]

‘그건 아닌데……. 누가 들고 갔다거나 그런 말은 없고?’

[“그런 말은 없었어요. 정확히 언제 사라졌는지 그런 기록까지는 없대요.”]

초대가 빙궁의 사람이었다는 건 알았지만 정체를 추측할 단서까지는 없었다.

빙궁의 직계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우연히 기연을 얻은 하급 무사 출신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빙궁의 전설 중엔 그 검을 쥔 자는 일검에 땅을 갈라 빙산을 만들었다든지, 수만의 병사를 모조리 얼려 버렸다든지, 하늘의 용을 떨어뜨렸다든지, 뭐 그런 전설이 꽤 있다고 하더라구요.”]

‘대단하구만.’

[“뭐, 오래된 전설이니 다소는 과장이 섞여 있겠죠.”]

수만까지는 아무래도 과장이긴 하겠지만, 그래도 그런 전설이 돌 만큼 대단한 검인 건 사실이다.

검이 가진 힘의 편린을 끌어내는 게 고작인 데릭조차도 칼질 한 번에 거대한 샌드웜을 단숨에 얼려 버리지 않았던가.

[“무림의 4대 지보 중 하나인 만큼 허무맹랑한 전설이 많았는데, 그중 할아버지가 특히 관심을 보인 부분이 있었어요.”]

‘어딘데?’

[“검의 탄생한 부분이요. 보통 다른 지보들은 전설에 남을 명장이 두드렸다든지, 제사를 통해 천신의 가호를 받았다든지 그런 얘기가 내려오거든요. 근데 이 검은 좀 특이하더라구요.”]

‘특이하다?’

[“북천멸강검은 과거 빙궁이 외부의 침략 때문에 멸망하려 할 때, 하늘을 쪼개며 떨어져 내렸다고 해요. 그 일파로 침략자들을 모조리 물리치고 빙궁을 구했다고.”]

‘하늘을 쪼갰다라…….’

[“누가 만들었다거나 이미 있는 검에 신의 힘이 내렸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 하늘에서 뿅 하고 나타났다네요.”]

유릭이 팔짱을 끼며 생각에 잠겼다. 이걸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좋을까.

평범하게 생각하면 이렇다.

대단한 검을 들고 방랑하는 낭인이 있어, 우연한 길로 빙궁을 돕게 되어 침략자를 무찌른 것이라고.

그런데 운 나쁘게도 낭인은 일찍 죽거나 하여 검만이 조명되어 전설로 남은 것이라면.

그런 경우라면 유화가 말한 형태의 전설이 쓰여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할아버지가 전해 달란 말은 이게 다예요. 생각보다 별건 없었죠?”]

‘아니, 아주 도움이 됐어. 고맙다고 전해드려.’

검의 유래나 초대가 빙궁이란 곳의 사람이었다는 것만 해도 충분히 훌륭한 정보다.

이 세계에선 수천, 수만 권의 책을 뒤져보아도 절대 알지 못할 다른 세계의 정보였으니.

흔들리는 마차 속에서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유릭이 유화가 알려준 것들을 곱씹었다.

초대의 고향. 이솔렛에 얽힌 갖가지 전설.

그리고 하늘을 쪼개고 나타났다는 설화까지.

[“그나저나 아저씨 쪽은 뭐 재밌는 일 같은 거 없었어요? 아직도 틀어박혀서 수련만 하세요?”]

전할 말을 다 전해서 그런지 유화가 담소를 나누고 싶다는 사인을 보내왔다.

초대와 이솔렛에 대한 것으로 머리가 가득 차 있는 유릭은 적당히 대꾸했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 혼담 얘기가 나왔는데.’

[“……네? 지금 뭐라고…….”]

‘혼담.’

[“호, 혼담이라니! 결혼 말이에요!?”]

‘그거 말고 뭐가 있어.’

[“너무 이른 거 아니에요!?”]

‘이르긴 무슨. 나도 이제 스무 살인데.’

[“저희 세계에선 일반인들은 모를까, 무림인들은 서른 정도가 적령기인데!”]

그건 이쪽 세계와 얼추 비슷하긴 했다.

이쪽 세계도 마나를 익힌 기사나 마법사는 서른이 넘어 결혼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마나를 익히면 노화가 늦춰져 서른이어도 한창 청춘인 것도 있고, 그리고 10~20대엔 보통 검과 마법을 단련하는 데 매진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사이에 연애 같은 것은 알아서 하겠지만.

‘확실히 그렇게 생각하면 이르긴 하네.’

[“그쵸!?”]

‘그래도 얘기가 나올 순 있지.’

[“그건! 그렇지만…….”]

적당히 담소를 나누며 유릭이 이솔렛을 떠올렸다.

유화가 얘기해 준 마지막 전설이 어째 계속 마음에 걸렸다.

하늘을 쪼개고 나타났다.

그의 머리는 허황된 신화고 전설일 뿐이라고 얘기하지만, 어쩐지 다른 예감이 들었다.

혹시 다른 해석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정답이라면?

초대는 무림의 사람이고 이 세계에 갑자기 나타났다.

그건 빙궁의 위기에 하늘을 쪼개며 ‘갑자기’ 나타난 이솔렛의 전설과 닮아 있었다.

‘이솔렛은 무림의 검. 초대가 이 세계에 나타날 때도 손에 들고 있었을 터.’

맞추기 힘든 퍼즐 조각 같은 것이 몇 개나 되어 유릭의 머릿속을 헤집었다.

[“아저씨! 그래서 혼담은 어떻게 됐는데요!”]

말없이 고민하고 있으려니 초조해진 것인지 유화가 다음 말을 재촉했다.

‘아, 그게-’

잠시 이솔렛에 대한 것은 내려두고 유릭이 대답해 주려 할 때.

-두근.

전조도 없이 그의 심장이 고동쳤다.

머리로 피가 쏠리며 동공이 열린다.

시야가 확장되는 감각과 함께 그의 정신이 부유했다.

‘이 감각은…….’

느껴본 적이 있는 감각이다.

예의 사막의 토굴에서, 천마와 만났던 알 수 없는 공간에 빨려들었을 때와 같은 감각.

달라진 점은 그때는 저항할 여지도 없이 빨려들었지만, 지금은 저항하고자 한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다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아무런 원인도 없이 갑자기 일어날 리가 없다.

유릭이 표정을 굳혔다.

‘유화야, 미안하다. 바쁜 일이 생겨서.’

[“네? 아저씨? 아저씨!”]

눈을 감고 부유하는 정신에 집중하니, 유화의 외침이 점점 멀어졌다.

그의 머리가 툭 떨어졌다.

제삼자가 본다면 졸고 있는 걸로밖에 보이지 않으리라.

그러나 다음 순간.

“역시.”

유릭의 눈앞엔 그때 봤던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커다란 기와집, 붕어 한 마리 없는 썰렁한 연못, 그리고.

정원에 덩그러니 꽂혀있는 빙화의 마검 이솔렛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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