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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105화 (105/166)

#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 105화

105화. 장미궁

유릭은 데릭을 데리고 발렌티나가 야영 중인 천막으로 향했다.

가주의 천막이라고 하지만 다른 인원들이 자고 있는 천막과 크게 다를 것은 없었다.

다른 점이라면 혼자 사용하고 있다는 점과 입구에 눈에 띄는 표식이 매달려 있다는 것 정도.

본래는 더욱 크고 화려한 천막이 가문에 있긴 하지만, 발렌티나가 일부러 이런 것으로 골라온 것이다.

그런 크고 화려한 천막은 접고 펴는 것이 신속하지 않아 군사 행동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 그녀의 지론이었다.

-딸랑.

“어머니. 유릭입니다.”

유릭이 노크 대용으로 있는 방울을 울리며 얘기하자 안쪽에서 들어오라는 소리가 들렸다.

입구를 젖히며 들어가자 간편한 복장과 편하게 하나로 머리를 묶은 발렌티나가 그들을 맞았다.

그녀의 옆의 테이블에는 와인 한 병과 치즈 조각이 놓인 접시가 있었다.

“쉬고 계시는 중에 죄송합니다.”

“괜찮다. 데릭도 함께 왔구나? 몸은 나아졌느냐.”

“걱정해 주신 덕분에…… 괜찮아졌습니다.”

데릭이 평소와 달리 조금 더듬으며 대답했다.

이유를 모르는 발렌티나가 갸웃거렸고 유릭은 팔꿈치로 살짝 그의 옆구리를 눌렀다.

‘쫄았냐?’

‘아니, 좀 어색해서…….’

이 하룻밤 사이에 데릭은 너무 많은 얘기를 들었고, 그 탓에 아직도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녀석에게 맡겼다간 될 일도 안 되겠단 생각에 유릭이 나섰다.

“어머니.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 무엇이냐?”

새삼스럽단 눈으로 유릭을 보는 발렌티나.

어머니와 시선을 똑바로 마주치며 유릭이 툭 내뱉었다.

“로즈 로스카란 아이에 대해 아는 것이 있으십니까?”

“…….”

아이작의 말이 사실이라면 로즈의 존재는 발렌티나에게 있어 결코 들켜선 안 되는 심부일 터.

그러나 발렌티나는 크게 놀라지도 얼굴을 붉히며 분노하지도 않았다.

그저 담담할 뿐.

그러나 유릭도, 그리고 데릭도 민감하게 느낄 수 있었다.

천막 안의 공기가 20도는 더 내려간 듯 차가워졌다.

“……어디서 그 이름을?”

그것이 이미 대답이나 다름없었다.

유릭이 침을 꿀꺽 삼켰다. 아이작의 말이 진짜였다는 건가?

-어, 어르신! 여차하면 폴리모프 풀 테니까 꽉 붙잡으세요!

덜덜 떠는 메르의 떨림이 유릭에게까지 전해졌다.

일단은 진정하라고 전한 후 유릭이 침착하게 물었다.

“아이작이 얘기했다고 합니다.”

“……놀랍구나. 아이작이 로즈를 알고 있을 줄이야.”

“그 말씀은…… 아이작의 말이 진실이라는……?”

“그 애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로즈가 태어났던 것은 사실이다. 아이작의 누나였지.”

꽈악.

뭔가 잡히는 기분이 들어 힐긋 봐보니 데릭이 옷자락을 꾹 붙잡고 있었다.

맨날 강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 다 하면서 정작 멘탈은 유리 같은 녀석이다.

-어르신! 전 준비 다 됐어요!

뿐만 아니라 메르 역시 당장에라도 폴리모프를 풀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데릭과 반대로 평소엔 미덥지 않으면서 이럴 때는 또 믿음직스러운 녀석이다.

‘잠깐 기다려 봐.’

하지만 유릭은 그런 메르를 만류했다.

어머니의 눈빛이 아이작의 이야기완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얘기해 주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다만…….”

“다만?”

아이작의 이야기로는 발렌티나는 10성의 벽을 뚫기 위해 제 자식을 잡아먹은 희대의 마녀다.

하지만 지금, 로즈의 이름을 입에 담는 발렌티나의 눈은 그런 마녀와는 거리가 멀었다.

근심이 깊은, 한껏 미간을 찌푸린 그런 눈빛.

“……이 자리에서 할 얘기는 아니다. 가문에 돌아가면 보자꾸나.”

감정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한 것일까?

그녀는 이야기의 보류를 원했고.

“알겠습니다.”

발렌티나의 표정을 본 유릭은 그렇게 답할 수밖에 없었다.

* * *

“퉤!”

아이작이 입을 우물우물하더니 끈적한 핏덩어리를 퉤 뱉어냈다.

선명하지 않고 거무죽죽한 색깔이 아무래도 내장을 꽤 당한 것 같았다.

한쪽 팔은 뼈가 완전히 박살이 났는지 소매 바깥에서 덜렁거리고 있었고 그 밖에도 몸 곳곳이 베이고 멍든 상처가 가득했다.

하지만 덕분에 가문에서 벗어날 수는 있었다.

부상이 심하긴 하지만 괜찮다.

목숨만 무사하다면 상처는 언젠간 낫게 마련이니까.

“도련님. 지시하신 대로 말을 데리고 왔습니다.”

아이작이 도착한 언덕에선 그의 수하 하나가 말 두 필을 끌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 수하는, 놀랍게도 유릭에게 목이 잘렸던 예의 남색 문양을 가진 수하였다.

동일인이란 것을 뜻하듯 그의 손목에도 똑같은 남색의 문양이 있었으니.

“잘했다. 일단 빨리 벗어나자. 우물쭈물하다간 노친네가 따라오겠어.”

“예.”

아이작이 훌쩍 뛰어 수하가 준비한 말 위에 올라탔다.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가장 뛰어난 말로 준비하라고 하였는데, 과연 지시대로 훌륭한 명마였다.

멀쩡한 한쪽 손으로 고삐를 잡은 아이작이 능숙하게 말을 제어했다.

그대로 출발하기에 앞서, 그가 아주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로스카.’

로스카의 본가인 겨울성과 그 겨울성을 둘러싼 떠들썩한 영지가 보인다.

활기차게 돌아가는 도시에 비해 아이작이 서 있는 장소는 고요하기만 했다.

마치 즐거운 축제가 끝나면 밀려오는 허전함처럼.

“후.”

그런 생각을 하던 아이작이 비틀린 웃음과 함께 미련을 모두 떨쳐버렸다.

빙하백가 로스카.

자신이 태어난, 그리고 자신이 버린 고향.

“잘 있거라. 내 다시는 이 땅을 밟을 일은 없을 터이니.”

누구에게 얘기하는 것일까, 아이작은 스스로도 그것을 알지 못했다.

‘원하는 형태는 아니지만.’

뭐 상관없다.

다 자란 새는 언젠가 둥지를 떠나야 하는 법.

자신은 조금 다른 형태로 독립을 맞이했을 뿐이다.

그의 어린 시절을 지배했던 어머니에 대한 혐오와 공포.

그 주박에서 벗어나 진정한 의미로 독립할 때가.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글쎄.”

괜히 터져 나오는 웃음에 킥킥거리며 아이작이 생각했다.

일단 당장은 상처를 치료하러 가야 하겠지.

그다음은 모처럼 얻은 칠색 마왕의 힘을 제대로 익히도록 해야 할 테고.

그리고…….

‘유릭.’

자신을 방해했던 귀여운 동생.

다른 할 일도 많은데 굳이 찾아가 보복하려는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내 눈에 띄지 않도록 하여라.’

길 가다 우연히 마주쳤을 때 그냥 놓아줄 생각 역시 전혀 없었다.

부디 유릭이 가만히 가문에 처박혀 다시는 자신의 눈에 띄지 않기를.

그런 생각을 하며 피식 웃은 아이작이 말머리를 돌렸다.

“어디로든 가자꾸나.”

“예, 따르겠습니다.”

이랴-

그들의 손이 말의 고삐를 내려쳤다.

* * *

가문에 도착하니 엘린이 격하게 반겨주었다.

먼 길을 나가 아칸과의 협정을 치르고 온 데다, 데릭의 무사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으니 기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엘린이 잠잠해질 때쯤 발렌티나가 얘기했다.

“엘린. 너도 따라오거라.”

올 게 왔다는 생각에 데릭이 얼굴을 굳혔고 엘린은 영문을 몰라 갸웃거릴 뿐이었다.

이윽고 발렌티나가 시녀도 대동하지 않고 어딘가로 향했고, 세 자식이 그 뒤를 따랐다.

“유릭, 대체 무슨 일이니?”

“어머니가 보여줄 게 있대. 그렇게 좋은 일은 아닌 거 같으니까 마음의 준비는 해둬.”

“으, 으응.”

유릭의 말에 엘린이 찝찝한 얼굴로 끄덕였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분위기가 이렇단 말인가.

그러는 사이에도 발렌티나는 더욱 어둡고 깊은 곳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가문의 심처. 가주가 허락한 이 외에는 누구도 발을 들이지 못한다는 금지(禁地).

몇 년이나 가주 대행으로 일해온 엘린조차 이렇게 깊은 곳까지 들어온 것은 처음이었다.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위를 둘러보고 있을 때.

끼익-

발렌티나가 문을 열었다.

열린 문 앞에 펼쳐진 것은 이런 곳에 있을 거라곤 결코 생각하지 못했던 저택이었다.

대저택이라 부를 정도로 커다랗진 않았지만 충분히 큼직한.

저택 앞 정원에는 탐스러운 장미 정원과 화사한 분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게 얼어붙어 있다.

붉은 장미도, 덩굴에 휩싸인 담벼락도, 솟구치는 분수의 물줄기도 모조리.

“월하무녀의 아이가 태어나면 5살까지는 이곳에서 길러진다. 아이의 보호와 기운의 안정을 위해서지.”

예로부터 월하무녀의 아이는 로스카에 큰 부흥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그 때문에 오히려 더 다른 가문들의 견제를 많이 받아왔고, 아직 로스카의 힘이 그렇게 강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열에 아홉은 암살을 당하거나 기운이 폭주해 죽곤 했다.

그 모든 위협에서 아이를 지키기 위해 지어진 것이 이 장미궁.

“로즈도 이곳에서 자라고 있었단다.”

엘린만이 처음 듣는 표정으로 아직도 어리둥절하고 있다.

유릭이 그녀에게 아이작에게 들은 로즈의 존재에 대해 설명해 주었고, 그제야 엘린은 충격을 받은 듯 눈을 크게 떴다.

발렌티나가 말을 이었다.

“아이작의 말은, 절반만 진실이란다. 그 아이가 그런 오해를 하고 있을 줄은 몰랐구나.”

모를 수밖에 없었다.

1살도 되지 않은 시절의 일을 기억하고 있을 거라고 그 누가 생각하겠는가.

다만 발렌티나는 그런 변명으로 책임을 벗어날 생각은 없었다.

자신이 더욱 아이작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면, 서로의 마음을 터놓고 대화할 수 있었다면 금방 풀렸을 오해가 아닌가.

하지만…….

“로즈가 그렇게 되고 나는 경황이 없어졌다. 나중에 태어난 너희에게는 그나마 조금 신경을 써줄 수 있었지만…… 아이작에게만은 그렇게 하지 못했구나. 모두 내 탓이다.”

그리 얘기하며 발렌티나가 얼어붙은 장미 정원을 가로질렀다.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도 벅찬 듯한 엘린과 데릭을 두고, 유릭이 그녀에게 물었다.

“그렇게 됐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내가 초월에 오른 날. 그 여파는 영지 바깥에까지 퍼져 나갔다. 하늘의 문을 연 것에 대한 대가였지.”

“…….”

“물론 그 여파가 물리적인 무언가는 아니었다. 마나라곤 조금도 모르는 영지민들은 조금 움찔하고 말았을 뿐, 마스터에 근접한 술사들 정도나 그 여파를 쬐고 작은 깨달음을 얻었을 정도였다.”

그런데 한 아이에게는 그런 작은 영향으로 끝나지 않았던 것이다.

월하무녀의 체질로, 그 작은 몸에 방대한 서리 마나를 품고 있던 로즈에게만큼은.

“초월에 오른 후 기운을 갈무리하던 중 나는 급한 연락을 받았다. 로즈의 이마가 펄펄 끓고 그와 반대로 손발은 끝부터 얼어붙고 있다는 연락이었지.”

발렌티나는 한달음에 장미궁으로 달려갔다.

거기서 목격한 것은 마나가 폭주하여 터지기 직전이던 딸아이의 모습.

월하무녀의 기운이 내부에서부터 날뛰어 아이의 몸을 빠르게 좀먹고 있던 것이었다.

“다른 방도가 없었다.”

당시의 그녀에겐 폭주하는 월하무녀의 기운을 억제하는 일도, 그와 동시에 로즈의 발작을 가라앉히는 일도 불가능했다.

그래서 그녀는 걸었다.

당시의 자신이 아닌, 미래의 자신에게.

끼익-

“로즈는 아직 살아 있단다.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지만.”

발렌티나가 장미궁의 문을 열었고 그곳에서 유릭은 목격했다.

저택 전체를 뒤덮은 복잡한 마법진과 술식들, 그리고.

하얗게 얼어붙어 있는 네 살 아이의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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