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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106화 (106/166)

#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 106화

106화. 3년

발렌티나는 어릴 때부터 수련이라곤 질색하던 아이였다.

전형적인 재능만 믿고 까부는 그런 아이.

그러나 그런 아이들이 대부분 자라면서 평범해지는 것과 다르게, 그녀의 재능은 진짜였다.

남들이 연병장에서 구르며 수련을 할 때, 항상 땡땡이를 치고 엘드가르드 산맥을 오르며 놀러만 다녔다.

하지만 막상 테스트를 보면 언제나 남들을 압도하며 위에 올라섰다.

그 재능은 날이 갈수록 꽃피어 남들의 질시를 받는 수준을 넘어 경외심을 불러일으키게 되었고.

그렇기에 그녀는 더더욱 변하지 않았다.

당시 항상 그녀에게 밀려 2등을 하던 남자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가 분해하는 모습을 보며 언제나 깔깔 웃곤 했었다.

고된 수련을 싫어하고 무슨 일을 겪어도 미소를 잃지 않는.

그게 그녀의 어릴 때의 모습이었다.

지금과는 정반대인.

……그런 그녀의 어릴 때를 알고 있는 이는 이젠, 레오폴딘을 포함해 가문에서 오래 살아온 어른들밖에 없었다.

* * *

얼어붙어 있는 아이를 보며 모두가 말문을 잃었다.

유릭마저도 지금만큼은 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는 모종의 근거로 아이작의 말이 거짓이라 생각하고 있었고, 그랬기에 어머니에게 억울한 면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그 진실이 이런 것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저 아이가…… 저희의 누이인 로즈란 말입니까?”

“그래.”

무겁게 끄덕이는 발렌티나를 지나쳐 유릭이 천천히 아이에게 다가갔다.

아주 조심히, 행여나 뭐라도 잘못돼 아이를 얼린 얼음이 깨지지 않도록.

‘출생의 비밀까지는 그러려니 하겠는데…….’

누이가 하나 더 있었다는 정도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누이가, 타고난 체질 탓에 죽기 직전이어서 꽁꽁 얼어붙어 있단다.

심지어 그것을 행한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들의 어머니.

“그런 일이…….”

“유릭, 너는 알고 있었나?”

엘린이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데릭은 흔들리는 눈동자로 유릭에게 물었다.

두 사람에 비해 비교적 침착한 유릭이었고, 이곳에 오기 전에도 발렌티나를 믿는 듯한 태도를 보였기에 그런 것이겠지.

“그럴 리가.”

물론 그럴 리가 없다. 유릭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다만…….”

하지만.

그는 두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아이작이 타고난 기억력 덕택에 아기 때의 광경을 기억하는 것처럼, 유릭 역시 아직 요람에 있던 때를 기억하고 있다.

물론 유릭의 경우는 타고난 기억력이 아니라 <외우주>의 노인이 베푼 배려 덕분이지만.

-유릭…… 데릭…….

어느 날 밤, 요람에 나란히 누워 있던 두 아기를 보러 온 발렌티나.

당장에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인 그녀는 천천히 장갑을 벗고 그 손을 아기들에게 뻗었다.

그러나 차마 닿지는 못하고.

그녀는 그 손을 거두었다.

그것은 아이작이 생각했던 것처럼 관심이 없다거나, 미워서 만지기 싫다거나 하는 혐오의 감정이 아니었다.

두려움.

지금에서야 알게 된 것이지만, 그것은 스스로의 손으로 로즈를 얼린 트라우마였던 것이다.

그 방법밖에 없었다곤 하나 사랑하는 자식을 자신의 손으로 얼려 버린 것에 대한.

아버지가 죽고 장례 절차가 끝난 날 밤의 일이었다.

언젠가는 꼭 어머니를 이겨 보이겠다며 아기인 자신들 앞에서까지 호언장담을 하고 다니던.

유릭이 기억하는, 유일하게 어머니가 약한 모습을 보였던 날의 기억이었다.

“……이 술식들은 로즈를 살리기 위함인가요?”

과거의 기억을 잠시 치워두곤 유릭이 현재에 집중했다.

곱게 누운 로즈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펼쳐져 있는 각종 룬어들과 마법진들.

얼핏 그것은 무질서하게 자라난 나뭇가지처럼도 보였고, 혹은 아이를 감싸고 있는 천사의 날개처럼도 보였다.

“그래. 로즈의 소생을 위한 대법이다. 그날 이후로 연구를 거듭하여 작성 중인 대법이지.”

로즈의 폭주를 보고 더는 손 쓸 수단이 없다 판단한 발렌티나는, 당시 막 초월에 올랐던 서리 마나를 이용해 급속도로 그녀를 얼렸다.

하지만 무사히 얼리는 것엔 성공했지만, 녹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얌전히 녹이는 것 자체가 어려울 테고, 녹이면서 아이가 괴사하지 않도록 해야 하고, 동시에 폭주하는 월하무녀의 기운까지 가라앉혀야 하고.’

지금 막 사정을 알게 된 자신이 떠올린 난제만 해도 이 정도다.

직접 대법을 작성하고 있는 어머니가 느낄 어려움은 얼마나 될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새로운 마법을 창안하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닐진대 이만한 장해물이 즐비해 있다니.

‘아이작이 한 살이 되기 전의 일이라고 했으니 30년도 넘었잖아?’

그 30년 동안 발렌티나는 오로지 로즈의 소생을 위한 연구에만 매달려 있던 것이다.

수련에 미쳐 경지를 높이던 것도 모두 이 대법을 위해서.

“서, 성과는 있으셨나요?”

엘린이 무척이나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어쩌면 비수가 될 수 있는, 하지만 하지 않을 수 없는 그 질문을.

무거운 침묵이 자리하고, 이내 발렌티나가 대답했다.

“그래. 앞으로 3년 정도면 완성할 듯하다.”

예상과는 달리 발렌티나의 말은 무척 희망찬 것이었다.

그녀 본인은 아직 방심할 수 없다는 듯 굳은 표정을 짓고 있지만 듣는 이들은 조금 마음이 놓여왔다.

그래, 역시 어머니다, 대륙 제일의 술사라는 이름은 허명이 아니다, 등등.

‘3년?’

문득 유릭의 머리에 3년이란 숫자가 스쳐 지나갔으나, 달리 연상되는 것은 없었다.

그냥 기분 탓인가?

“이만 나가자꾸나. 얘기는 돌아가서도 할 수 있는 것이니.”

“예.”

무거운 비밀인 것은 사실이나 앞으로 3년이면 해결이다.

그 사실에 유릭도 데릭도, 그리고 엘린도 안도의 한숨을 쉬며 저택의 문을 닫고 나왔다.

발렌티나가 앞장서 가문으로 복귀하기 시작했고 세 자식은 그 뒤를 따랐다.

그런데.

‘…….’

장미궁을 벗어나 겨울성의 본성으로 돌아왔을 때쯤, 가장 뒤에서 걷던 유릭이 걸음을 멈췄다.

‘3년…… 이라고?’

그의 머릿속에서 강렬한 위화감이 휘몰아쳤다.

* * *

조금 전.

장미궁의 지붕 위, 다리를 꼬고 까딱거리며 앉아 있는 사내가 있었다.

남자는 지금까지 십수 년을 이 자리에서 보냈으나 누구도 남자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심지어 그 발렌티나조차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남자는, 얼핏 지금 이 장소에 있는 것처럼 보여도, 실상은 완전히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이였으니까.

[음?]

남자가 장미궁에 찾아온 네 남녀를 보며 눈을 반짝인다.

아니, 다른 셋에는 관심이 없다. 그가 보는 것은 오직 한 사람.

유릭이었다.

[저 녀석…… 호연 선배가 실수로 보내버렸다는 그 녀석 아냐?]

품이 넓은 검은색의 무복에 허리에는 금색의 동아줄로 된 5개의 매듭.

그는 실수로 수명이 남은 유릭의 영혼을 거두었던 호연의 후배쯤 되는 존재로, 이름은 자렴이라 하였다.

[직접 보는 건 처음이구만. 어디 보자…… 이제 스무 살이 될 즈음인가?]

보아하니 영혼의 질이 달라진 것이, 과거로 돌아오고 제법 애를 쓴 것이 보였다.

아마 많은 미래를 바꾸었겠지.

스스로의 운명을 뛰어넘어 위풍당당하게 미래를 그리는 회귀자로서.

[라고 생각하고 있으려나?]

자렴이 피식 비웃음을 보냈다.

그가 <외우주>에서 보낸 나날은 결코 적지 않았고, <외우주>에서 그만큼 구르다 보면 과거로 돌아가 운명을 바꾸었다고 소리치는 회귀자 몇 명쯤은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이들은 항상 진실을 알고 고개를 팍 숙이곤 했었다.

그들이 바꾼 운명은 사실 그들이 바꾼 것이 아니라, 시간이 돌아간 시점에서 새로 쓰인 새로운 운명이란 것을 알면.

[뭐 당연한 소리지. 호연 선배만 해도 인간 한 놈 수명보다 일찍 죽인 벌로 나락에 처박혔는데.]

과거로 돌아간 회귀자들은 스스로의 운명을 바꾸겠다며 이리저리 많은 행동을 일으킨다.

개중에는 회귀 전엔 떵떵거리며 잘 사는 악인을 미리 척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아니, 적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거의 필수로 들어가는 코스다.

즉 회귀자들은 악인을 본래 수명보다 일찍 죽인다는, 호연과 비슷한 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그래서 그 회귀자들이 호연처럼 모두 나락에 처박히는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실 어느 누구의 운명도 바꾸지 못했기 때문이다.

회귀 전에 떵떵거리던 악인을 회귀 후에 일찍 척살했다 하여 운명을 바꾼 것이 아니다.

그저 회귀를 기점으로 악인의 운명이 새로 쓰였을 뿐.

회귀자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스스로가 별의 운명을 비틀었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그럴 리가.

위대한 별의 운명을 미래의 일을 조금 알고 있을 뿐인 인간 따위가 바꿀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들에게 운명에서 벗어날 힘 따위는 없다.

[어디 보자…… 뭐야, 딱 3년 남았네?]

자렴의 눈에 유릭의 남은 수명이 비쳤다.

앞으로 3년.

회귀 전 30살까지 살았던 유릭의 수명은 회귀로 달라진 운명에선 고작 23살밖에 되지 않았다.

그 역시 자렴에게 있어선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사실 과거로 돌아가는 회귀자들 중에는 수명이 늘어나는 경우보단 줄어드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아마 미래의 기억을 믿고 천둥벌거숭이처럼 나대는 게 운명의 작성에 큰 영향을 주는 거겠지.

그리고 3년이라면 나름 납득이 되는 이유도 있었다.

[이 꼬맹이를 어떻게 하려다 죽는가 보군.]

장미궁에 얼어붙어 있는 어린아이.

이 아이의 운명 역시 유릭과 마찬가지로 3년이 남았다.

자렴의 임무는 3년 후 죽게 될 아이의 기운을 회수하는 일이었다.

아이가 품고 있는 그 기운은 하늘이 떨어뜨린 기운이니까.

이 세계에선 월하무녀라고 불렀던가?

그 체질의 원인이 되는 방대한 서리 마나는 인간이 낳은, 인간에게서 이어지는 힘이 아닌 하늘이 떨어뜨린 힘이다.

그걸 회수하는 것이 그의 임무.

[하암~]

임무에 변수 따윈 없다.

월하무녀의 기운을 회수하는 것을 방해할 무리도 없을뿐더러, 3년 후에 아이가 죽지 않을 가능성도 없다.

그 시기에 유릭 로스카도 죽게 된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자렴은 딱히 관심도 없었다.

임무를 마치고 빨리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

[이참에 잠이나 원 없이 자고 갈까.]

이미 유릭의 존재조차 잊어버린 채 그가 눈을 감았다.

이번 일이 끝나고 다음 일을 받게 되면 또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질 테니 지금이라도 자 둬야지.

딱 그 정도의 인식만 가지며, 자렴이 잠에 빠져들었다.

* * *

‘3년!’

방으로 돌아온 유릭이 골치 아프단 듯이 미간을 짚었다.

3년 후.

즉 그가 23살이 되는 해.

회귀 전의 유릭 로스카가 23살이 되던 해를 그는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볼모 교환까지 치르며 간신히 맺은 아칸과의 협정이 종이 쪼가리로 돌아가던 해.

가문을 장악한 아이작이 클레어의 목을 베어 전쟁의 시작을 알리고, 그걸 통제해야 할 어머니는 이상하게 칩거한 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물론 이번에 찾아올 23살의 해는 약간 다를 것이다.

아이작은 가문에서 완전히 쫓겨났고 볼모 교환은 없었다.

목을 베어 아칸의 가주를 분노케 할 인질 따위 가문 안엔 없는 것이다.

아마도 전쟁은 그리 쉽게 일어나지 않겠지.

하지만 지금 유릭이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그 부분이 아니었다.

전쟁에 대한 것이 아닌 어머니의 행방에 대한 것.

‘하.’

그러고 보니, 생각해 보면 너무나도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이었다.

아주 조금만 차분히 생각해 봐도 알 수 있는 것.

회귀 전 유릭 로스카는 30살에 죽었다.

말년까지도 가문에 돌아오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가문의 소식에 귀를 닫고 살았던 것은 아니다.

23살부터 30살까지 7년을 더 살았던 유릭.

그 유릭이 로즈 로스카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그러니까…….

“아.”

참았던 탄식이 저절로 입술을 빠져나갔다.

어머니.

발렌티나 로스카는. 한 번 실패했었다.

< 1장 얼음의 가문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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