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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107화 (107/166)

#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 107화

107화. 상극인 기운

어째서 실패했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알 방법이 없었다.

유릭은 마법에 대한 조예가 별로 없었고, 그게 아니더라도 발렌티나가 작성한 대법은 그녀만의 오리지널 마법이다.

회귀 전으로 돌아가 실패한 순간을 목격한다 할지라도 실패 원인을 알아낼 수는 없으리라.

‘나 혼자 알아낼 수 없다면.’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하면 된다.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일을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건 모든 업무에서 당연한 일.

다만 물어볼 수 있는 이는 한정되어 있었다.

발렌티나보다 강한, 최소한 동급은 되는 이여야 유의미한 조언을 얻을 수 있을 텐데, 그런 사람이 어디 흔하겠는가?

‘메르는 잘 모른다고 했고.’

당장 옆에 있는 메르에겐 진작 물어보았으나 전혀 모르겠단 대답만 돌아왔다.

메르 외에 어머니와 동급이라 할 수 있는 이라면 아칸의 가주인 라그룬이나 그 옆에 있는 칼리오르페.

‘물어볼 수 있을 리가 없지.’

하지만 지금 시점에 그 둘에게 접근하는 건 ‘나 잡아줍쇼’ 하고 들어가는 꼴이다.

호시탐탐 자신을 노리고 있을 텐데 최소한의 안전장치 없이는 접근할 수 없다.

그 둘까지 제외하고 나면 남은 것은 한 사람.

어머니와 비슷한, 아니, 어쩌면 어머니보다 더 강하다고 할 수 있는 그 노인.

‘천마.’

천마 설군악.

유릭이 당장 유화에게 연락을 넣었다.

* * *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기에 확신하진 못하겠지만 한 가지 의심되는 부분이 있으시대요.”]

유화에게 연락하는 것은 꽤 오랜만이었다.

티르옌에서 돌아오는 마차 안에서 했던 연락이 마지막.

그때 데릭을 소환한 후에 다시 연락했더니 정략결혼이라니 무슨 소리냐며 한창 시끄러웠었지.

‘의심되는 부분?’

[“그 아이가 4살이라고 하셨죠? 그리고 음기가 폭주하는 상태였다고.”]

‘응. 급히 손을 방도가 없어 그 상태 그대로 얼렸다고 하셨어.’

[“으음…… 할아버지 말로는 아마 그 기운의 폭주를 다스리지 못한 게 원인이 아닐까 한다는데요?”]

‘폭주를 다스리지 못했다라…….’

[“얼린 장본인이니까 무사히 녹이는 것도 시간을 들이면 불가능하진 않을 거예요. 하지만 구음절맥의 기운이 폭주한 상태일 때 그걸 가라앉히는 것은 대라신선이 와도 불가능하다고 해요.”]

대라신선이 뭔진 잘 모르겠지만 어떤 비유인지는 잘 알겠다.

어떤 대단한 신선이 와도 그 상태의 아이를 살리는 것은 무리라는 뜻이리라.

[“심지어 성인의 육체도 아니고 4살이라면…… 이런 말은 조심스럽지만…… 할아버지도 방법이 없다고 하세요.”]

‘…….’

마음만 먹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신선에 오를 수 있다는 그 천마가 이렇게 말할 정도라면, 확실하다고 봐도 좋으리라.

어머니가 실패한 원인은 그것 때문이다.

‘어쩌면 로즈를 녹이는 마법 자체는 진작 완성됐을지도.’

로즈를 얼린 것은 갓 초월을 이룩한 때의, 즉 일천의 경지에 있을 때의 어머니다.

그리고 지금의 어머니는 그때보다 두 단계나 높은 경지인 삼천의 경지.

로즈를 죽이지 않고 무사히 녹이는 마법 자체는 이미 완성되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수십 년의 시간을 쏟아붓고 있는 것은.

‘폭주하는 월하무녀의 기운을 잠재울 방법을 찾지 못해서.’

그것이 회귀 전 어머니가 실패한 원인.

아마도…….

[“폭주하는 구음절맥의 기운을 막으려면 무슨 짓을 해야 하는지 감도 안 오신다고 하는데, 그래도 한 가지는 알고 계신대요.”]

‘뭐를?’

[“무슨 방법이든지, 일단 시험이라도 해보려면 아주 잠깐이라도 좋으니 기운을 가라앉혀야 한다고.”]

과연.

모종의 방법을 시도해 보려면 일단 날뛰는 기운부터 억눌러야 한다는 말.

그리고 어떤 기운을 가라앉히는 데 필요한 것은 간단했다.

그것과 상극인 기운.

‘불의 기운…… 말인가.’

깜깜했던 통로에 아주 조금, 빛이 비친 것 같았다.

그 빛이 희망의 별빛인지 아니면 금방 사라질 찰나의 반짝임에 불과한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 빛을 향해 걷는 것 외에 방법이 없었다.

‘고마워. 덕분에 가닥이 잡힌 것 같아.’

[“저는 말만 전했는데요 뭘.”]

‘할아버님께도 고맙다고 전해주고.’

[“네. 저 근데…… 그 정혼자 분과는 지금도 만나고 있어요?”]

‘아니, 그건 취소됐다니까.’

아직까지 물어보는 유화의 말에 쓰게 웃으며, 그가 유화와의 대화를 마쳤다.

* * *

지상에 무슨 일이 있었든 관계없이 해는 똑같이 떠오른다.

다음 날 아침, 유릭의 일과는 가족회의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아니 가족회의가 아니라 형제회의라고 보는 것이 옳으리라.

참가자가 유릭과 데릭, 그리고 엘린뿐이었기 때문이다.

“누나. 지금 바로 가주가 될 생각은 없어?”

“뭐, 뭐?”

모이자마자 던진 유릭의 발언에 엘린이 화들짝 놀랐다.

현 가주가 아직 건재한데 저런 발언은 반역을 종용하는 것으로도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뒤에서 뭘 하라는 게 아니라 정식으로 받을 생각 없냐고.”

“아, 응. 그런 뜻이구나.”

잠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킨 엘린이 이내 고개를 저었다.

“가주의 승계는 내 생각만으로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당연하지만 어머니의 뜻이 필요하고, 설령 어머니도 동의한다 할지라도 이 타이밍에 뜬금없는 승계는 가문에 혼란을 불러올지도 몰라.”

“가신들이 의아해할 거란 말이지?”

“그렇지.”

그 정도야 발렌티나의 영향력을 생각하면 별문제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승계를 제안한 이유를 생각해보면 좋은 선택지는 아니었다.

‘어머니는 로즈의 일에 전념했으면 좋겠는데.’

엘린에게 가주가 되라고 한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그 승계 탓에 가문이 시끄러워지고 가신들의 목소리가 높아지면, 오히려 더 로즈의 일에 전념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가문이 흔들린다는 것은 곧 적들에게 빈틈을 보이는 것.

어머니의 성격상 이 모든 걸 무시하고 로즈의 일에만 매달릴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그 제안은 역시 어, 음…… 언니의 일 때문에?”

4살 아이에게 언니라고 부르는 것이 영 어색한지 엘린이 더듬거리며 물었다.

유릭이 고개를 끄덕였다.

발렌티나가 말하길 대법의 완성까지 앞으로 3년.

하지만 유릭은 알고 있었다.

그건 실패하리란 것을.

‘그 미래를 피하려면 대법의 완성도를 높여야 돼.’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선 좌우지간 시간을 갈아 넣는 수밖에 없다.

3년이라고 할 게 아니라 더 오랜 기간을 생각하든가, 아니면 이 3년 사이에 더 많은 시간을 쏟아붓든가.

당연한 얘기지만 둘 중 하나가 아니라 둘 모두 택하는 것이 가장 좋다.

이 3년 사이에 더욱 시간을 들이붓고, 그래도 완성시키지 못했다면 더 기간을 늘리는 방식으로.

‘3년 동안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까.’

혹시 모를 변수를 생각하면 단순히 기간만 늘리면 된다고 안이하게 있을 순 없었다.

“가주 승계까지는 무리지만 최대한 가문의 일을 모두 도맡아 해보마. 이미 7할 정도는 내가 하고 있으니 조금만 더 노력하면 될 거야.”

“힘들겠지만 부탁해.”

“응. 할아버지도 알게 모르게 도와주고 계시니까 문제 될 건 없어.”

“데릭. 너도 누나를 좀 도와줘.”

“알겠다.”

유릭의 지시에 데릭이 지체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곧바로 대답하는 모양새가 이미 각오는 하고 있던 모양이다.

이솔렛을 가진 데릭이 엘린을 도와주는 모습을 보인다면 내부의 결속도 더욱 다져질 터.

거기에 레오폴딘의 도움까지 있다면 가문의 일은 99% 엘린의 선에서 처리가 가능할 것이다.

그 남는 시간으로 어머니는 더욱 로즈의 일에 매진하겠지.

“너는 뭘 할 거지?”

데릭이 유릭에게 물었다.

딱히 탓하거나 빈정거리는 것이 아닌 순수한 질문이었다.

“나는…….”

유릭이 할 일은 정해져 있다.

어머니의 대법을 더욱 완벽하게 성공시키기 위한 ‘무언가’를 찾는다.

정확히는 폭주하는 월하무녀의 기운을 일순간이나마 가라앉힐 불의 기운을 찾는 것.

‘영약이든 뭐든 닥치는 대로 찾아서 염화신무를 키우면 돼.’

마침 유릭의 단전에 잠자고 있는 것이 바로 그 불의 기운이다.

대륙을 돌며 무슨 수를 쓰든 단전을 키운다.

그리고 그 염화신무의 기운으로 로즈의 기운을 최대한 억누른다.

‘근본적인 해결은 어머니에게 맡겨야 하겠지만, 로즈의 기운을 억누르는 건 내가 도울 수 있다.’

어머니의 대법에 자신이 참견할 수는 없었다.

자신은 마법에 조예도 별로 없었고, 애초에 아무리 뛰어난 마법사라도 어머니에게 조언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어머니는 대륙 최고의 술사였고, 로즈를 얼린 장본인이며, 얼기 직전의 로즈를 직접 살핀 이이기도 하니까.

유릭이 할 일은 어머니의 대법이 발동할 때까지 폭주하는 로즈의 기운을 억누르는 것.

그건 불의 단전을 가진 자신이 해야 할 일이다.

“나는 아이작 그놈을 찾아볼게.”

사실대로 얘기할 순 없고, 딱 괜찮은 변명이 있었기에 유릭이 그 이름을 대었다.

어머니가 로즈의 일로 상심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아이작 역시 어머니의 아들이다.

아이작이 떠난 것이 순전히 오해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그 일 역시 걱정하고 있겠지.

‘-라는 핑계면 제법 그럴싸하겠지.’

그렇게 얘기하지만, 물론 유릭은 아이작에겐 별로 관심이 없었다.

놈이 비뚤어진 게 오해 탓이었던 것은 동정이 가지만, 동정만으로 받아주기엔 놈은 죄를 너무 많이 저질렀다.

“그래. 오라버니의 일도 중요하니까.”

“적당한 인원 분배군.”

엘린과 데릭은 유릭의 핑계에 넘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

유릭이 잠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러곤 잠시 눈을 감았다 뜨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미안. 거짓말이야. 아이작은…… 뭐 지나가다 소식을 듣게 되면 한번 찾아보긴 하겠지만 내 목표는 아냐.”

“유릭?”

뜬금없는 말에 두 사람이 눈을 깜빡거렸다.

“어머니의 대법은 실패해. 나는 그 때문에 대륙으로 나갈 생각이고.”

“뭐?”

“무슨 소리야?”

눈을 크게 뜨는 둘에게 유릭이 얘기했다.

“믿지 못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믿어 줘. 이대로면 어머니의 대법은 실패해. 원인은 모르겠지만…… 아마 폭주하는 월하무녀의 기운을 제대로 가라앉히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아.”

그걸 어떻게든 하기 위해서 대륙으로 나간다.

그게 유릭의 결심이었다.

“…….”

“…….”

두 사람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보이며 입을 다문다.

유릭은 가만히 두 사람의 대답을 기다렸다.

침묵의 시간이 흐른 뒤.

“알았다. 믿지.”

먼저 고개를 끄덕인 것은 데릭이었다.

뒤이어 엘린이 얘기했다.

“승계 얘기도 그것 때문에 꺼낸 거였구나.”

“응.”

“그래, 알았어. 가문의 일은 맡기렴. 어머니껜 조금도 폐가 가지 않도록 잘 처리할 테니까.”

이내 그녀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가족들에게 상냥한 그녀라도 이런 말을 대뜸 믿을 정도로 맹목적이진 않다.

하지만 그녀는 지난 7년간 유릭의 행적을 알고 있었다.

때문에 괜한 소리를 꺼내지 않을 것이란 것도 잘 알고 있었다.

7년 전의 유릭 그대로였다면 아무리 그녀라도 순순히 믿어주진 않았을 테지.

“나는 내일 바로 출발할 생각이야. 왔다 갔다 하는 시간이 아까우니까 중간에 돌아오는 일은 없을 거고.”

“따로 필요한 건 있니? 사람을 좀 붙여줄까?”

“사람은 글렌 하나면 충분해. 금화만 넉넉히 챙겨줘.”

“알았다.”

이 자리에 없는 글렌이었지만 이미 그를 끌고 가는 것은 확정이었다.

그리고 굳이 얘기하진 않았지만 메르까지.

편하게 부려 먹을 수하 하나랑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용 한 마리라면 대륙을 주유하기엔 충분한 구성이리라.

“성과가 있든 없든 3년 후엔 돌아올게. 나 오기 전까지는 절대 대법을 시행하면 안 돼. 알았지?”

“그래. 어머니한테도 꼭 당부해 놓으마.”

“몸조심해라, 유릭. 어머니가 로즈를 소중히 생각하는 만큼 너 역시 소중히 여기고 있단 사실을 명심하고.”

데릭의 말에 유릭이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뭐야, 왜 그렇게 보는 거지?”

“아니. 너치곤 꽤 좋은 말을 하는구나 싶어서.”

“빨리 꺼져!”

자기도 가끔 덕담 한마디 정돈 한다며 툴툴거리는 데릭을 일별하곤, 유릭이 피식 웃었다.

앞으로 3년.

그 안에 어떻게든 염화신무의 단전을 최대한 키워야 한다.

‘해보자.’

각오를 다지며 유릭이 떠날 채비를 위해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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