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109화 (109/166)

#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 109화

109화. 그런 타입은 싫어해

유릭과 글렌은 왕비와 헤어져 알현실에서 나왔다.

“공자! 왕궁을 안내해 드릴게요!”

리헨델 왕자는 유릭과 같이 나와 왕궁을 구경시켜 주겠다며 들뜬 모습으로 걸어갔다.

그 뒤를 따라가며 유릭은 방금 왕비에게 물었던 영약에 대해 떠올렸다.

불도마뱀의 심장.

이름이 저렇다고 진짜로 도마뱀의 심장인 것은 아니다.

먼 옛날, 무슨 이유인지 두 날개를 잃고 제국의 수도에 추락했던 이름 모를 화룡.

상처를 입은 탓인지 다른 이유 때문인지 이성을 잃고 날뛰는 화룡을 제압하기 위해 많은 희생이 있었고, 수도는 절반이 불타올랐다 전해진다.

그때 처치한 화룡의 가슴을 갈라 꺼내었던 심장.

그게 불도마뱀의 심장이다.

‘그나저나 도마뱀이라니.’

당시 사람들이 왜 그것을 불도마뱀의 심장이라 이름 붙였는지는 이해한다.

자신들의 터전을 절반이나 불태우고 수많은 희생자를 낳았던 용을 대단한 듯 부르는 것이 싫었겠지.

마침 날개도 잘려있겠다 멸칭의 뜻으로 불도마뱀이라 부른 것이 아니겠는가.

‘메르, 그렇게 불리면 화나지 않아?’

그래도 다른 용이 들으면 무척 화를 내진 않을까.

살아 있는 다른 용이 소식을 듣고 찾아와 분노하면 대참사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 메르에게 물었지만.

-화요? 왜요?

메르는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듯 갸웃거릴 뿐이었다.

‘그야 용을 도마뱀에 비유하는 건 너무하잖아.’

-딱히? 그런 생각은 도마뱀한테 실례잖아요. 결국은 다 똑같은 하나의 생명인데.

‘어, 응. 그렇구나.’

그러자 생각 외로 어른스러운 대답이 돌아왔다.

그 철딱서니 없던 메르에게서 이런 대답이 돌아오다니.

아무리 유릭이라도 이번만은 한 수 배웠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불어 동족의 심장을 찾고 있는 모습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은 것을 보니, 그쪽으로도 별문제는 없는 듯했다.

‘용은 용이라는 건가.’

평소에 장난치고 까불며 놀면서도, 이런 모습을 보면 새삼 서로 다른 종족이란 것을 깨닫게 된다.

‘불도마뱀의 심장은 영약이라기보단 폭탄이나 다름없다고 하던데.’

전해지기로 그 심장은 잘못 건드리면 터져 버리는 폭탄과 같다 하였다.

실제로 일설에는, 제국 수도 절반이 불탄 이유가 화룡 때문이 아니라 화룡을 처치하고 심장을 꺼내는 작업 때문이었다는 설도 있다.

그 과정에서 잘못 건드려 심장의 절반이 터져 버렸고, 간신히 절반만 건질 수 있었다고.

그 근거로 현재 남아 있는 불도마뱀의 심장은 누가 봐도 절반만 남은 형상이라 한다.

뭐 어쨌든.

그 폭탄이 지금의 유릭에게 필요했다.

물론 누굴 터뜨리거나 그런 용도가 아니라 스스로가 복용할 용도로.

‘<폭심공(爆心功)>을 익히려면 필요하다고 하니까.’

초대가 작성한 염화신무의 비급에 적혀 있던 무공 중 하나.

그것을 익히려면 반드시 화룡의 심장이 필요하다 하였다.

그리고 현재 유릭이 구할 수 있는 화룡의 심장은 불도마뱀의 심장뿐이다.

‘그 폭탄을 삼켜야 한다는 게 너무 뒤숭숭해서 신경도 안 쓰고 있었는데.’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그가 목적으로 하는 것은 폭주하는 월하무녀의 기운을, 잠깐이라도 좋으니 완전히 제압하는 것.

그걸 위해선 <폭심공>의 습득이 필수 불가결이다.

과연 불도마뱀의 심장을 제대로 소화할 수 있을지는 조금 걱정되긴 하지만…….

-불도마뱀의 심장은 베르넘에서 회수했어요. 그 자리에 저희 황금가도 자리해 있었기에 확실하답니다.

미레유 왕비는 그렇게 공언했다.

과거, 수많은 세력과 분노한 민중에 의해 천년제국이 붕괴하고, 많은 이들이 황실을 약탈하기 위해 몰려왔다.

거기서 그들을 모두 물리치고 황실의 재산을 지켰던 것이 베르넘이다.

베르넘은 그곳에 모인 이들과 엄정한 시시비비를 가렸고, 가져갈 자격이 있는 이들만 비고로 들여보냈다.

황족에게 부당하게 가보를 약탈당했다든가, 사기에 가까운 방법으로 영지를 빼앗겼다든가.

당시 황족에게 막대한 금전과 보석을 빌려주었던 황금가 역시 그 자리에 있었다.

그렇게 모든 채무 관계를 청산한 후, 남은 황실의 재산은 베르넘이 모두 회수했다.

그렇다고 사리사욕으로 빼앗은 것은 아니어서, 지금도 금화 하나 반출하지 않고 그대로 보관 중이라고 한다.

후일 제국이 다시 일어설 때를 위한 보물들이라며.

“도련님. 베르넘에 가실 생각이십니까?”

그때 글렌이 조용히 물었다.

“그런데 왜.”

“……아닙니다.”

글렌이 눈을 찡그리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만하다.

“베르넘에 정체라도 들킬까 걱정인가?”

글렌은 황가의 마지막 직계 자손.

그리고 베르넘은 황가에 충성했던 기사의 가문.

자칫하면 정체를 들켜 귀찮은 일이 되진 않을까, 그런 걱정을 하는 것이 아닐까.

“저는 들키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라고 생각했으나, 글렌은 딱 잘라서 그렇게 얘기했다.

자신은 절대 들키지 않을 자신이 있다며.

“그럼 뭐가 문젠데?”

“…….”

유릭의 말에 글렌이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유릭이 손가락으로 스스로를 가리키며 물었다.

“설마 나? 내가 까발릴까 봐 그래?”

“예.”

글렌이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그런 일을 왜 해?”

“제가 아는 도련님이라면 절 던지고 그 틈에 영약을 도둑질하러 들어가는 정도는 충분히 할 것 같아서요.”

“…….”

사실 제일 먼저 떠올렸던 방법이 그거다.

글렌을 미끼로 베르넘에 식객으로 들어가 불도마뱀의 심장을 훔치는 계획.

물론 그다지 현실적이진 않은 계획이라 지금은 폐기한 안이다.

그런 말을 굳이 할 이유도 없기에 유릭은 얼굴에 철판을 깔고 얘기했다.

“아무리 나라도 섀도우를 함부로 미끼로 쓰거나 하진 않는다. 너 정도 섀도우가 얼마나 고급 인력인데.”

“고급 인력이라고 생각은 하고 계셨군요.”

“당연하지. 나 못 믿어?”

글렌이 가늘게 눈을 뜨며 유릭을 바라보았다.

그런 것치고는 쓸데없는 심부름에 자주 부려 먹었던 것 같은데…….

예를 들면 시장에 내려가서 뭔 육포를 사 오라든가 그런 심부름이 진짜 많았다.

그렇게 사 온 육포를 자기가 먹는 것도 아니고 애완동물에게 먹이는 것을 볼 때면 자괴감이 올라오곤 했었지.

짐승 먹이 심부름이나 하려고 그 힘든 섀도우 훈련을 받아왔나…… 하고.

“공자? 글렌 경? 싸우는 건가요?”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는지 리헨델 왕자가 뒤를 돌아보았다.

유릭이 피식 웃으며 왕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저희는 어릴 때부터 무척 친한 사이라 가끔 격하게 의견 교환을 할 뿐입니다.”

“그렇군요. 정말 부러워요. 저도 그렇게 가까운 사이가 있다면 좋을 텐데.”

“저하껜 제가 있지 않습니까.”

“공자!”

유릭의 말에 왕자가 감격스러워하며 왕궁 안내를 계속했다.

그 뒤를 따라가는 유릭을 불만스럽게 바라보며 글렌이 작게 얘기했다.

‘애 다루는 솜씨가 아주 수준급이시군요.’

‘맨날 애같이 툴툴대는 누구랑 다니다 보니.’

‘…….’

글렌이 입을 꾹 다물었다.

더 말해봤자 본전도 못 건질 것 같았다.

* * *

마법사의 수행을 받으며 엘가이아가 왕궁의 복도를 걸었다.

그의 주군인 크라우 공작이 기다리고 있는 곳을 향해서.

그러던 도중, 그와 마법사가 동시에 걸음을 멈췄다.

저 앞에 다가오는 왕자 리헨델을 보았기 때문이다.

“강녕하셨습니까, 저하.”

그와 마법사가 정중히 길을 비키며 고개를 숙였다.

방금까지 기분이 좋아 보였던 왕자는 엘가이아를 보곤 흠칫 떨더니, 이내 입술을 깨물었다.

엘가이아는 자신의 목숨을 노렸던 인물.

아무리 어린 왕자라도 그 사실을 모를 수는 없었다.

“겨, 경은 왕궁에 어인 일이십니까.”

“각하의 호출을 받고 들른 참입니다. 그런데…… 뒤의 분들은?”

엘가이아가 슬쩍 왕자의 뒤쪽을 보았다.

흑발의 사내와 금발의 사내.

둘 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내 손님들입니다. 신경 끄시지요.”

왕자가 그리 얘기하곤 급히 걸음을 걷기 시작했다.

엘가이아와 당장에라도 멀어지고 싶은 모습.

왕자의 손님이라던 두 사내도 그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고.

“…….”

“…….”

그중 흑발의 사내가 엘가이아의 앞을 스쳤다.

묘한 기시감.

엘가이아가 그를 돌아보았으나, 흑발의 사내는 이쪽은 관심도 없다는 듯 왕자의 뒤를 쫓았다.

“경? 아는 얼굴입니까?”

엘가이아가 흑발 사내의 뒷모습을 계속 바라보고 있자, 마법사가 의아하게 물었다.

엘가이아가 대답했다.

“글쎄.”

참으로 미묘한 대답이었다.

* * *

다음 날.

유릭과 글렌은 왕자와 헤어져 왕궁 밖으로 나왔다.

더 머물다 가라고 붙잡는 것을 바쁘다고 억지로 떼어내고 나온 것이다.

실제로 바쁜 것은 맞았으니 딱히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나저나 어제는.’

왕궁 안내를 받다가 엘가이아를 마주쳤을 땐 깜짝 놀랐다.

이쪽도 엘가이아의 얼굴은 몰랐던 터라 후에 왕자의 설명을 듣고 알게 되었지만, 정말 크게 한숨 돌렸다.

‘어차피 엘가이아도 내 얼굴은 모를 테니까.’

아마 그 덕에 큰일이 벌어지지 않은 것이리라.

놀라긴 했지만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닐 테지.

그리 생각하며 유릭이 글렌이 몰고 온 마차에 올라타려 할 때.

“A급 용병인 유진 맞습니까?”

누군가가 조용히 유릭에게 접근했다.

A급 용병 유진은 현재 그가 쓰고 있는 가짜 신분이었다.

“뭡니까?”

이 스카디에서 자신을 불러 세울 사람은 많지 않다.

왕비가 뭐 챙겨줄 거라도 있어서 사람을 보냈나?

“당신을 찾고 계신 분이 있습니다.”

“찾는 사람?”

“크라우 공작 각하십니다.”

유릭의 눈이 가라앉았다.

크라우 공작이 왜 자신에게?

“왕자의 손님으로 온 당신에게 각하께선 꽤나 관심이 많으십니다. 시간을 많이 뺏진 않을 터이니 한 번만 만나 주실 수 있겠습니까?”

말은 정중하게 하고 있지만 눈빛은 더없이 강압적이었다.

공작 각하의 명령을 네깟 용병이 감히 거절할 수 있느냐, 그런 눈빛.

“당신, 박쥐에 관한 동화를 아나?”

“동화?”

“날짐승과 들짐승이 편을 갈라 싸울 때, 한 박쥐가 생긴 걸 이용해 이쪽에 붙었다가 저쪽에 붙었다가 그랬다는 동화.”

“……현명한 짐승이 아닙니까. 들키지 않게 처신만 잘한다면 그게 실리를 취하는 방법이 아니겠습니까?”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유릭이 몸을 돌려 마차에 발을 올렸다.

그 동작에서 거절의 의미를 읽은 공작의 부하가 눈을 번뜩이며 손을 뻗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빠악!

‘어?’

눈앞이 번쩍이는 것을 느낀 부하는, 어느새 자빠져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스스로를 볼 수 있었다.

‘A급이라지만 용병 따위가……?’

6성에 달하는 기사인 자신을 눈 깜짝할 사이에 자빠뜨린다고?

순간적으로 정신을 못 차리는 부하를 일별하곤 유릭이 마차에 완전히 몸을 실었다.

“나는 그런 타입은 싫어해. 내가 당하는 것도, 내가 하는 것도.”

유릭이 마차 벽을 톡톡 노크하자 글렌이 곧바로 고삐를 내리쳤다.

“이랴!”

채찍질을 하니 말이 당장에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쓰러졌던 부하가 급히 정신을 차리며 벌떡 일어났다.

“잡아!”

그의 명령에 주변 곳곳에서 평상복을 입은 도시민들이 일제히 들고일어났다.

일반 시민으로 위장한 공작의 부하들이었다.

“멈춰! 멈춰라!”

그들이 다급히 마차의 뒤를 쫓아보지만 말의 다리를 따라갈 수 있을 리 없었다.

다그닥! 다그닥!

뻥 뚫린 도로를 유릭을 태운 마차가 시원스레 달렸다.

주법까지 사용하며 그 뒤를 쫓는 공작의 기사들.

“뭐지?”

“죄인을 쫓는 건가?”

시내에서 그들의 모습을 본 진짜 시민들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뭐라고 떠들든, 유릭은 창밖으로 고개를 내민 채 바람을 맞으며 마차의 진행 경로를 보고 있었다.

향하는 곳은 도시를 나가는 성문.

이윽고 저 앞쪽에 성문이 보였다.

문이 닫혀 있지는 않다.

진짜로 죄인을 추적하는 것이 아니라 공작의 개인적인 초대였기에, 문을 내리란 지시까지는 차마 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유진! 앞에!”

“……나한테도 보인다!”

저 앞쪽, 성문에 서 있는 한 남자를 보고 유릭이 뿌득 이를 갈았다.

검 한 자루를 허리춤에 매단 채 옷자락을 펄럭이고 있는 금발의 기사.

엘가이아 로젠베르그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