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110화 (110/166)

#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 110화

110화. 신검의 주인

엘가이아의 옆에는 예의 황색 로브의 마법사가 함께 있었다.

그가 크게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멈추시오! 우린 당신들을 해할 의도가 없소! 그냥 얘기만 듣고 싶은…….”

그렇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유릭 일행을 멈춰 세우려던 그때.

스릉.

엘가이아가 검을 뽑았다.

그 검에 피는 황금빛 오러가 스산한 살기를 흩뿌리기 시작했다.

“잠시 비켜 있어라.”

“아, 알겠습니다!”

마법사가 대번에 옆으로 대피하는 것을 보곤 엘가이아가 검을 들어 올렸다.

“차라리 성문이 내려와 있는 쪽이 나았겠는데…….”

그런 엘가이아를 보며 유릭이 식은땀을 흘렸다.

“어쩔 거냐!”

이를 갈고 있으려니 글렌이 유릭을 재촉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마차는 시시각각 성문에 가까워지고 있고 그 아래엔 엘가이아가 검을 뽑고 있다.

당장 결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

유릭이 아주 잠깐 눈을 감았다 뜨고는 얘기했다.

“돌파한다.”

그가 나직이 한마디 던지곤, 문을 열고 그대로 마차의 천장으로 뛰어올랐다.

“돌파? 미쳤어?”

글렌이 눈을 부릅떴다.

마스터가 대기하고 있는데 거길 돌파하겠다니.

아무리 이쪽은 달리는 마차고 저쪽은 서 있는 인간이라지만, 그래도 너무 무모한 일이다!

“일단 달려봐!”

경악하는 글렌을 두고 유릭이 마차 천장에서 검을 뽑았다.

스릉-

달그락거리는 말발굽 속에서도 녹시아를 뽑는 소리는 기이하게 그의 귀에 꽂혀 들었다.

-…….

유릭과 저 앞의 엘가이아의 눈이 마주친다.

맞서는 것을 택한 유릭의 선택에 엘가이아가 눈을 빛내며 검을 치켜들었다.

“유진!”

정말 저걸 뚫을 수 있는 거냐!

글렌이 경악성을 내뱉으며 그런 질문을 던졌지만.

유릭에게 대답할 여유 따윈 없었다.

“후우…….”

<화룡검화 5중첩>.

호흡을 고르며 검에 불을 지른다.

이전과 같은 익스플로전의 술식은…… 이번에는 새기지 않았다.

성문에서 그런 폭발을 일으켰다간 까딱하면 생매장을 당할 수도 있다.

다행히 익스플로전 말고도 유릭에겐 검화를 업그레이드할 술식이 하나 더 있었다.

<프로미넌스(prominence)>.

화르륵!

녹시아에 얽히며 불타올랐던 화룡이 붉게 변모한다.

흉포한 적염의 용이 당장에라도 뛰쳐나갈 듯 그의 검에서 끓어올랐다.

자세를 낮춘 유릭이 검을 움켜쥐었고.

-흡!

엘가이아가 눈을 부릅뜨며 마차를 반으로 쪼갤 듯 검을 내리쳤다.

황금빛 초승달을 닮은 그의 오러가 벼락처럼 떨어져 내렸다.

그도 분별이 없는 것은 아니었기에 검은 글렌과 유릭을 피해 오로지 마차만을 노리고 있다.

그러나 직격했다간 마차가 반 토막이 날 것은 자명한 사실.

으득.

유릭이 이를 악물곤 떨어지는 초승달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키이이이이잉!

황금의 벼락과 적염의 용이 부딪치는 그 순간, 과거의 일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웬델의 수정산에서 떨어지는 엘가이아의 검기를 받아냈던 그때의 일.

그때는 간신히 버텨내었으나 한동안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할 중상을 입었었다.

엘가이아의 검기는 그때보다는 조금 강했으나.

‘……그때만큼 버겁지는 않다.’

그걸 받아내는 유릭은 더욱 강해졌다.

상황은 같았으나 결과는 전혀 다르다.

카-앙!

유릭이 검을 비틀어 올리며 뒤편으로 휘둘렀고, 붉은 불꽃과 황금빛 오러가 뒤엉키며 비스듬히 하늘로 치솟았다.

“역시 네놈…….”

엘가이아의 눈이 점점 커지며, 그 초점이 마차가 아닌 유릭에게 잡혔다.

이윽고.

콰아아아앙!

뒤쪽 하늘에서 두 기운이 부딪치며 거센 폭발이 일었다.

등 뒤로 거센 바람을 받으며 글렌이 모는 마차가 엘가이아를 스쳐 성문을 돌파했다.

그 순간, 마차 위에 있던 유릭과 엘가이아의 눈이 마주쳤다.

“…….”

그러나 마주친 것은 아주 잠시.

한껏 속도를 올린 마차는 그 길로 쌩하니 지나가 도시를 뒤로했다.

탁.

엘가이아가 소득 없이 검을 집어넣었다.

“엘가이아 경! 놓치시면 어떡합니까!?”

다그치는 마법사의 말을 한쪽 귀로 흘리며, 엘가이아가 떠나가는 마차를 바라보았다.

“찾았군.”

그 입가엔 더없이 즐거운 듯 미소가 걸려 있었다.

* * *

어느 날, 대륙 전역에 하나의 공고가 울려 퍼졌다.

<베르넘에서 대륙의 모든 검사들을 위한 검술 대전이 개최된다!>

매년 이 시기에 나도는 그 공고는 수많은 검사의 마음을 움직였고, 그들은 베르넘으로 모여들게 되었다.

그런데, 올해는 뭔가가 달랐다.

-검술 대전이 열린 진정한 이유는 빛의 신검의 주인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 소문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알음알음 퍼져 나갔다.

마치 누군가가 일부러 흘린 것처럼.

* * *

“멈추시오. 들어가고 싶거든 신분과 목적을 밝히시오.”

“아이고, 더운데 고생 많으십니다. 저는 저 위쪽 루벨라에서 내려온 상인입니다. 신분패는 여기, 자. 보시지요.”

“확실하군. 목적은 상행을 위해서요?”

“물론이지요. 상인이 이런 기회를 놓쳐서 되겠습니까! 상처 재생에 그렇게 효과가 좋다는 루벨라 표 고약을 바리바리 싸 들고 왔습니다. 경비님들도 한번 써보시렵니까?”

“괜찮소. 들어가시오.”

우락부락한 덩치의 경비가 뒤쪽을 향해 통과! 하고 소리쳤고 부하 경비들이 상인을 통과시켰다.

다음은 상인을 호위하던 용병들의 차례였다.

물론 그들도 경비에게 붙잡혀 하나하나 확인을 받은 것은 당연했다.

“보자…… 이름이 유진이고…….”

경비가 유릭의 신분패를 천천히 살폈다.

유릭과 글렌. 스카디에서 떠난 두 사람은 마차를 타고 내려오다, 도중에 들른 도시에서 말과 마차를 모두 처분했다.

그리고 용병 길드를 통해 베르넘으로 가는 상인을 하나 잡아 호위 의뢰를 받은 것이다.

검술 대전의 소식 덕에 베르넘으로 향하는 상인은 벌떼처럼 많아서 자리를 구하기 어렵진 않았다.

“흡?”

그때 유릭의 신분패를 보던 경비가 숨을 삼켰다.

A급이라는 용병 등급을 본 탓이었다.

“이야, 많이 앳돼 보이는데 실력이 상당하시군요.”

“감사합니다.”

경비의 목소리가 한층 더 나긋나긋해졌다.

상인에겐 시종일관 고압적이던 그가 A급이란 등급을 보곤 친절해진 것이다.

보통은 A급이든 B급이든 간에 영지의 경비가 용병을 대우해 주는 경우는 흔치 않다.

다만 이곳은 베르넘.

검의 성지라 불리는 이곳에선 그 어떤 것보다도 검술 실력을 높이 치곤 하였다.

“문제없군요. 들어가시죠.”

다음은 글렌의 차례였고 글렌 역시 무사히 통과되었다.

성문을 통해 베르넘의 영지로 돌아온 두 사람은 호위하던 상인과 이별의 시간을 가졌다.

다시 말해 정산의 시간을 가졌다는 말이다.

“다들 수고 많았네. 여기 잔금일세.”

유릭 말고도 상인을 호위하던 용병은 몇몇 있었고, 상인은 그들 모두에게 나머지 잔금을 치러주었다.

“크으, 드디어 일 하나 끝났구나. 어떠신가? 다들 한잔하러 갈 텐가?”

“이것도 인연인데 한 잔 걸치러 가지!”

일이 끝난 용병들이 희희낙락 돈주머니를 챙겼고, 유릭만이 고개를 저었다.

“미안합니다만 할 일이 있어서요.”

“아, 검술 대전에 참가하겠다 했었지? 역시 A급은 다르구만.”

“열심히 하시게.”

검술 대전이 모든 검사들의 축제라곤 하나 그들 같은 평범한 용병들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행사다.

주로 베르넘이나 다른 검술 가문과 같이 검술로 유명한 가문의 귀족들.

혹은 용병 중에서도 소수의 재능이 뛰어난 이를 위한 축제였다.

“그럼 이만.”

그들의 격려에 피식 웃고는 유릭이 글렌과 함께 자리를 떴다.

일단은 몸을 뉠 여관부터 알아봐야겠지.

일시적으로 사람이 몰린 덕에 지금 베르넘에선 숙박비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었다.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길거리 노숙을 하는 이도 많았지만, 유릭과는 관계없는 이야기였다.

돈이라면 엘린이 챙겨준 것이 넘치도록 남아 있었으니.

여관을 찾아 걸으며 두 사람이 베르넘의 영지를 이곳저곳 구경했다.

성문의 경비를 봤을 때도 느낀 것인데, 베르넘의 첫인상이라 하면…….

“왜 이렇게 다 크냐?”

“그러게 말이다.”

좌우지간 사람들이 크다는 것이었다.

남자든 여자든 가리지 않고 죄다 키가 크고 또 근육질 몸매를 가지고 있다.

그뿐이 아니었다.

분명 용병도 아니고 병사도 아닌, 길거리에서 호객을 하고 있는 상인들인데 모두 허리에 검 한 자루를 차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선을 파는 아저씨도 과일을 파는 아낙도, 하다못해 길에서 꽃을 파는 소녀도 작은 검 한 자루씩은 매달고 있었다.

-아하하하하!

-거기 서! 내 검을 받아랏!

한쪽에서 몇몇 아이들이 놀고 있는 것을 보니, 그나마 어린아이들은 목검을 가지고 노는 것 같았다.

영지민들이 죄다 진검 한 자루씩은 가지고 있는 것에 비하면 굉장히 평범한 광경이었기에 유릭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으나.

-뽀각!

-에계! 나 칼 부서졌어! 어떡해!

검이 부서졌다는 아이의 모습을 보니, 겉의 나무 부분이 부서지고 속에 철심이 들어 있는 것이 보였다.

“…….”

철심이 들어 있는 목검이라니.

그건 말만 목검이지 사실상 흉기나 다름없는 물건이다.

무게부터가 진검과 크게 다르지 않을 물건으로 대장 놀이를 하고 있다니…….

“어릴 때부터 저래서 다들 우락부락하게 자라나 봐.”

“그런가 보군.”

얼떨떨한 유릭의 말에 글렌은 흥미 없다는 듯 적당히 대꾸했다.

그도 베르넘의 영지는 처음 와보는 것이지만, 그래도 유릭처럼 신기해하지는 않았다.

제국의 핏줄인 그는 베르넘에 대해서도 나름 들은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현재 그의 관심사는 오직 하나였다.

“신검이 그렇게 신경 쓰이나?”

“!”

유릭이 한마디 툭 던지자 글렌이 딱딱한 표정으로 움찔거렸다.

이곳으로 오면서 그들 역시 소문을 접했다.

베르넘이 검술 대전을 여는 이유가 빛의 신검의 주인이 나타났기 때문이라는.

빛의 신검 라엘라.

그건 제국을 건국한 초대 황제이자 글렌의 선조이기도 한, 영웅 테메레르 대왕이 사용하던 검이었다.

그 라엘라는 제국이 멀쩡하던 시절부터 이 베르넘의 땅에 꽂혀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테메레르 대왕이 라엘라를 꽂은 장소에 베르넘이 가문을 세웠다는 것이 올바르리라.

초대 베르넘.

테메레르 대왕의 가장 충실한 부하이자 제국의 개국공신이었던 그는, 상을 원하는 대왕의 말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당신의 검을 수호하고 싶다고.

그때부터 베르넘은 빛의 신검의 수호자이자, 제국의 가장 충실한 기사로서 역사를 이어온 것이다.

가끔은 자격이 있는 황족이 검의 주인이 되어서 나가기도 했지만, 그들은 언제나 마지막 여정엔 이곳으로 돌아와 같은 장소에 검을 꽂아두었다.

마치 이곳이 신검이 정한 제 자리인 것처럼.

베르넘의 영지가 검의 성지라 불리는 이유는 그들이 뛰어난 검술을 가진 명가이기도 했지만, 언제나 자리하고 있는 빛의 신검 때문이기도 했다.

“보러 갈까?”

유릭이 은근히 얘기하니 글렌이 입을 꾹 다물었다.

말로는 관심 없니 뭐니 해도 사실은 누구보다 신경을 쓰고 있을 테지.

‘신검의 주인이라고 하면 녀석의 친척일지도 모를 이라는 얘기니까.’

신검은 테메레르 대왕의 핏줄이 아니면 인정하지 않는다.

물론 대왕의 핏줄이라고 해서 모두 인정하는 것은 아니고 그중에서도 자격을 갖춘 이에게만 반응하지만.

“뭐…… 여기까지 와놓고 신검을 안 보는 것도 좀 그렇군. 베르넘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 상품 아닌가?”

“관광 상품이라니. 누가 들으면 큰일 날 소리를 하는군.”

괜히 다른 곳을 바라보며 흥미 없는척하는 글렌을 보며 유릭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럼 검 먼저 구경하고 여관을 잡는 걸로 하지.”

유릭은 신검 자체에는 딱히 관심이 없었지만, 그 주인이라는 자에 대해선 무척 관심이 있었다.

‘분명 신검의 주인이 나타나 검술 대전을 휩쓸고 우승을 했다고 그랬었지.’

회귀 전 베르넘의 검술 대전에서 우승한 남자가 신검의 주인이라는 소문을 들었었으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