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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118화 (118/166)

#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 118화

118화. 반쪽짜리

달빛 펜던트에서 빛이 나고 있었다.

평소에 저장해 둔 달빛과는 명백히 다른 빛.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유릭이 눈을 찌푸릴 때.

파직!

등 뒤에서 불길한 소리가 들려왔다.

카를이 눈앞에 있음에도 유릭은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곳은 펜던트의 빛이 유릭을 스치며 닿은 곳이었고.

마치 유리가 깨진 것처럼 허공이 깨져 일렁이고 있었다.

이곳에 들어올 때 통과했던 마경의 입구처럼.

‘마경의 입구? 여기가 마경인데?’

유릭의 눈이 점점 커져 왔고, 그의 인식보다도 빨리 그의 몸은 새로운 마경의 입구로 빨려들었다.

“어, 어이!”

카를이 깜짝 놀라며 그를 붙잡으려 달려왔지만 그땐 이미 유릭은 입구에 들어간 후였고.

깨어진 허공의 틈 따위는 없었던 것처럼 사라져 있었다.

“무슨…….”

카를이 크게 뜬 눈으로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바라보았다.

* * *

눈을 태울 듯한 빛이 번쩍여 유릭의 눈을 가렸다.

잠시 후 빛이 사라져 천천히 눈을 뜨니, 기묘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방금까지 있었던 밀림과 비슷하지만, 어딘지 조금 다른 느낌의.

이름 모를 거대한 식물들은 변함없어 보였지만 공기의 냄새가 전혀 달랐다.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땅에 비스듬히 꽂혀 있는 거대한 바위기둥.

-어르신, 괜찮으세요?

메르의 말에 유릭이 몸의 이곳저곳을 살폈다.

그러나 다치거나 부상을 입은 곳은 없었다.

‘어떻게 된 거지?’

그가 달빛 펜던트를 꺼내 보았다.

방금까지 환하게 빛을 내던 펜던트는 지금은 꺼져 있었다.

도대체 무슨 빛이었던 걸까.

빛이 나는 것 자체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만, 그때 느낀 감각은 언제나의 달빛과는 많이 달랐다.

“메르, 이거 언제부터 그랬었어?”

빛이라고 하면 수상한 빛과 싸우긴 했었다.

빛의 검 라엘라.

혹시 그 신검의 빛에 무언가 반응을 한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마경에 들어온 직후부터 그랬는데…….

유릭이 눈을 깜빡였다.

“마경에 들어온 직후?”

-그때도 살짝 빛나긴 했거든요. 근데 그냥 평소처럼 달빛을 빨아들이고 있는 건 줄 알았어요. 그 왜 처음 들어왔을 땐 해 뜨기 전이었잖아요?

마경에 들어온 후의 일이라면 신검의 탓은 아니다.

‘신검 때문이었으면 마경이 아니라 도시에서부터 빛났겠지.’

유릭이 신검의 빛을 처음 쬔 날은 도시에서 카를이 검을 뽑은 날이다.

그러나 그때 펜던트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신검 때문은 아니란 것이다.

‘그렇다면…….’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은 한 가지다.

마경 자체에 반응했을 가능성.

마경의 달빛에 무언가 반응을 하는 것일까?

“그냥 달빛을 저장하는 마법이라고 하지 않았어?”

-죄송해요. 마왕은 하나같이 저보다 경지가 높았던 존재들뿐이라 제가 놓쳤던 것 같아요.

메르가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처음 펜던트를 발견했을 때 간단한 마법밖에 안 걸려 있다고 얘기했던 것에 책임을 느끼고 있는 것이겠지.

“사과할 건 없어. 나도 몰랐던 거니까.”

-어르신도 모를 정도로 교묘하게 숨겨져 있었나요? 칠색의 마왕이 그 정도로 대단한 마왕이었다니…….

심각한 표정을 짓는 메르를 두고 유릭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거목림과 하등 다를 게 없는 주변 풍경.

다른 것이라곤 하나뿐이었다.

저 멀리 보이는 비스듬히 꽂힌 거대한 바위기둥.

바위기둥이라곤 하지만 정말로 바위라는 표현을 써도 좋을지 의심스러웠다.

왜냐면 그 끝이 하늘에 닿을 정도로 거대해 구름을 걸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구름을 뚫고 땅에 꽂힌 창처럼.

하지만 말이 안 되는 일이다.

그 누가 하늘과 땅에 닿을 만치 거대한 창을 휘둘러 꽂아 넣을 수 있단 말인가.

고대에 멸종했다는 거인이 다시 살아나도 불가능한 일이다.

그것이 가능한 존재가 있다고 한다면…….

‘……마신의 창?’

분명 기억하기로, 가장 오래된 마경의 기록 중에 이런 것이 있었다.

아홉의 날개와 뿔을 가진 악신이 하늘에 날아올라 수십의 가시를 떨어뜨렸다고.

그 악신의 가시가 꽂힌 대지는 검게 피어올라 사악한 땅으로 변모해 이윽고 마경이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악신이란 마신을 뜻하는 것이고, 그 가시를 후대의 사람들은 마신의 창이라 명명했다.

‘기록이 진짜라면 저건 거목림을 만들 때 꽂았던 창이로군.’

진실은 알 수 없다.

메르의 나이가 천 살이 넘긴 하지만, 일전에 물어본 바로 메르는 마신과 테메레르 대왕에 대해선 잘 모른다 하였다.

그땐 너무 어려 레어에서 부모의 품에만 안겨 지냈다는 모양.

어느 정도 자라 세상에 나왔을 땐 이미 마신도 테메레르 대왕도 모두 사라진 후라 하였다.

“아무래도 마경의 심층에 들어온 모양이야.”

마신의 창은 마경 어딘가에 있는 심층마다 꽂혀 있다는 전설이었지.

-저 펜던트가 열쇠였던 모양이죠?

“그렇겠지.”

달빛 펜던트는 칠색의 마왕의 측근이었던 서리거인의 거처에서 발견한 물건이다.

당연히 마왕과 연관이 있는 물건일 테고, 마경의 심층으로 들어가기 위한 물건이라 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근데 적색 지대에선 아무 반응이 없었잖아.”

-으음~ 마경 안의 달빛을 일정 시간 충전해야 한다던가?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닌데…… 좀 공교로운 느낌이군.”

적색 지대에서 아슬아슬할 때까지 충전이 되었다가, 거목림에서 잠깐 충전한 걸로 꽉 찼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긴 했지만 썩 느낌이 오진 않았다.

-아니라면 글쎄요…… 칠색 마경은 이미 심층이 존재하지 않는 마경이었다든가?

“심층이 없어?”

-심층에 들어가는 아이템이 있다는 건 마왕이 그곳에 볼일이 있었단 거잖아요. 그 볼일이 심층부를 폐쇄하거나 없애거나 하는 것일 수도 있죠.

“그것도 그럴듯하긴 한데…….”

벌써 수백 년 전에 죽은 마왕을 되살려 물어볼 수도 없고, 알 수 없는 일이다.

하물며 칠색의 마경 자체가 지금은 이미 사라지지 않았던가.

엘린에게 듣기로 아이작이 모종의 힘을 사용해 마경을 통째로 흡수해 사라졌다 하였다.

‘심층이 없는 게 진실이라면 아이작은 알맹이도 없는 마경을 흡수한 셈이구만.’

그렇게 생각하니 뭔가 유쾌했다.

팥 없는 찐빵을 먹은 줄도 모르고 우쭐해하고 있을 걸 상상하면 웃기지 않은가.

진짜 진실이 어느 쪽일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나가는 길이나 찾아보자. 들어올 수 있으면 나갈 수도 있겠지.”

-네! 일단 저기 마신의 창 쪽으로 가보죠?

그곳이 가장, 아니, 유일하게 수상한 장소다.

마신의 창 말고는 평범한 밀림뿐이었으니까.

“빨리 가자. 검술 대전이 끝나기 전에 나가야 하니까.”

주변을 잠시 살폈을 뿐이지만 위험한 마물 같은 것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빨리 돌아가는 것이 상책이다.

이런 사고로 불도마뱀의 심장을 놓친다면 그보다 억울한 일이 없으니까.

유릭이 급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 *

빽빽한 밀림 속에서 마야는 홀로 입술을 깨물며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정말로 혼자라면 검까지 빼 들고 이럴 필요가 없다.

그녀가 슬쩍 눈치를 보며 카를이 있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자.

파삭!

“큭!”

바위 사이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검이 그녀의 발목을 노리고 쏘아졌다.

급히 그림자를 막으니 이번엔 나뭇잎 아래의 그림자에서 작은 송곳이 튀어나온다.

목에 걸린 인식표를 정확히 노리고 쏘아진 그것을 그녀는 가까스로 잡아낼 수 있었다.

“비겁하게 숨어 있지 말고 나오시죠!”

채챙!

그림자 오러로 이루어진 송곳을 쥐어 깨뜨리며 그녀가 소리쳤다.

하지만 울리는 건 그녀의 목소리뿐.

그에 대답하는, 혹은 반응하는 소리조차 하나 없었다.

몸을 숨기기 용이한 밀림이라는 지형.

도와줄 이 하나 없고, 한시라도 빨리 카를을 도우러 가야 하는 상황.

올라오는 초조함은 뺨을 타고 흐르는 습한 땀과 함께 극도의 불쾌감을 불러일으켰다.

“사정이 급하여 느슨한 규정으로 대전을 연 것이 실수였나 봅니다. 그저 날붙이를 쓴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비열한 살수까지 참가를 허락하다니.”

-…….

“듣기 거북하시면 나와서 정정당당히 검을 나눠보시죠. 뭐 어차피 대답도 하지 않을 것은 압니다. 당신들은 사람만 해할 수 있다면 명예도 긍지도 없는 자들이지 않습니까.”

본래라면 대꾸할 가치도 없는 말이었지만.

“도발이 서툴러, 아가씨.”

나무 그늘 아래에서 글렌이 피식 웃으며 얘기했다.

마야가 눈을 번쩍 뜨며 단숨에 땅을 박찼다.

그녀의 검이 나무 아래에 보이는 흐릿한 기척을 찔렀고.

파삭!

“……!”

그녀가 찌른 건 외투를 적당히 걸쳐놓은 수풀이었다.

속았다는 것을 깨닫고 급히 몸을 틀었지만 그보다 글렌이 빨랐다.

쿵!

그의 우악스러운 손이 마야의 목을 틀어쥐곤 나무에 밀어붙였다.

마야가 검을 들어 반격하려 하였지만 목을 겨누고 있는 단검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정확히는 목에 걸어놓은 인식표에 닿아 있는 단검에.

“도발도 서투르고 이런 간단한 속임수에도 넘어가고, 베르넘의 딸도 별거 아니구만. 아니면 아직 어려서 그렇다고 변명할 텐가?”

“…….”

으득.

글렌의 비취색 눈동자를 응시하며 그녀가 이를 갈았다.

속임수일 거라는 생각은 당연히 했다.

하지만 속임수든 뭐든 상관없으니, 몸을 드러낸 글렌을 힘으로 붙잡아 물리칠 생각이었다.

살수 따위가 가까이서 자신을 이길 리가 없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당신, 당신은 용병이신가요?”

그러나 오산이었다.

모습을 드러낸 글렌을 붙잡기 전에 그녀가 먼저 잡혀 버렸으니.

“그런데?”

“저를, 아니, 카를 님을 방해하지 마십시오. 그분은 당신 같은 일개 용병 따위가 방해할 만한 분이 아닙니다.”

“어이쿠 무서워라. 신검의 주인인지 뭔지 그거 말야?”

“그냥 신검이 아닙니다. 빛의 신검 라엘라. 그건 테메레르 대왕의 이름을 계승했단 뜻입니다.”

웃고 있던 글렌의 입꼬리가 내려갔다.

그걸 대화의 뜻이라 받아들였는지 마야가 다소 숨을 고르며 말을 이었다.

“당신은 용병이죠? 제 뜻을 들어 드린다면 합당한 보상을 드리겠습니다. 저를 탈락시킨다고 해도 어차피 당신은 카를 님을 이길 수 없어요. 이번 검술 대전이 오로지 1등에게만 상을 준다는 건 기억하고 계실 테죠?”

“…….”

“빛의 검을 든 카를 님은 앞으로 무수한 행보를 이어가겠죠. 그 길은 대왕의 의지를 잇는 영웅의 길이 될 것입니다. 부디 방해하지 말아주십시오.”

“……아 그래?”

꽈악.

쿵!

마야의 목을 틀어잡은 글렌이 그녀를 바닥에 홱 내팽개쳤다.

콜록거리며 목을 감싼 그녀는 가장 먼저 인식표를 확인했다.

대화가 통해 풀어준 걸 보면 인식표는 무사…….

‘없어!?’

그러나 인식표는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마야가 고개를 드니 글렌이 그녀의 인식표를 쥐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러곤 망설임 없이 콰직! 그것을 쥐어 부쉈다.

“당신…….”

빠드득, 마야가 이를 갈았다.

글렌이 입꼬리를 올린다.

그의 얼굴에 다시 언제나와 같은 웃음이 돌아와 있었다.

일부러 만들어 비트는 것 같은 웃음이.

“당신이 말하는 그 영웅 나리 말야, 내 동료랑 싸우고 있거든. 근데 걔가 꽤 세단 말이지.”

“…….”

꽤…… 라는 단어로 표현해도 괜찮을까 글렌은 망설일 정도였다.

분명 옛날에는 자신보다 한참 아래였을 텐데.

그런데 지금은 자신조차 승패를 장담할 수 없다.

아니, 아마 정면으로 부딪쳤다간 십중팔구 질 테지.

그렇기에 더욱 자신할 수 있다.

“영웅의 재목이라는 놈이 고작 용병 따위에게 고꾸라지면 아주 재밌겠어?”

유릭은 이긴다.

별다른 변수가 없는 한 유릭이 지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그러니 자신이 할 일은 하나다.

혹시 모를 변수를 지우는 것.

“……하아.”

마야가 눈을 감더니, 크게 한숨을 쉬며 일어나 탈탈 바지를 털었다.

“정당한 시합의 결과니 딱히 보복하거나 하진 않겠지만, 후회할 겁니다. 제 제안을 받아 몇 푼 보상이라도 받아가는 것이 최선이었다고요.”

그녀의 인식표는 부서졌다.

더 이상 남아서 할 것도 없고, 할 수도 없었다.

결국 카를을 만나지 못하고 이렇게 탈락이라니.

짙은 아쉬움을 뒤로하곤 그녀가 출구를 향해 몸을 돌렸다.

바스락.

“마야. 여기 있었군.”

그때, 수풀을 걷어내며 카를이 나타났다.

“카를 님!”

마야가 깜짝 놀라고 글렌의 눈이 가늘어졌다.

왜 녀석이 여기 나타났지? 유릭은?

“급히 할 말이 있다.”

“아 그것이…… 실은 지금 막 탈락했습니다. 그래서 도움을 드릴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그래?”

카를의 눈이 글렌의 발치에 떨어진 인식표의 파편으로 향했다.

마야를 탈락시킨 남자인가…….

흥미롭긴 하지만 지금은 보다 급한 용무가 있다.

“오히려 잘 됐군. 실은 사고가 하나 생긴 것 같아서 말야. 시급히 가문에 알렸으면 하는데.”

“예? 사고요?”

“…….”

사고라는 불길한 단어에 마야, 그리고 듣고 있던 글렌의 눈이 크게 뜨였다.

* * *

“이거…… 그거 맞지?”

-네에…… 어딜 봐도 그걸로 보이네요.

“뭐 모형이라거나 만들어진 게 아니고?”

-아뇨. 제 이름을 걸고 보장하는데, 진짜예요.

마신의 창 아래 도착한 유릭이 침을 꿀꺽 삼켰다.

비스듬히 꽂힌 거대한 바위기둥 아래엔 마치 누군가 가져다 놓기라도 한 듯.

다소곳이 ‘그것’이 놓여 있었다.

몸의 절반이 없는 반쪽짜리 용의 시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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