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 119화
119화. 멀리 있는 건
절대 자연적이지 않은, 누가 봐도 사람이 만든 듯한 넓은 제단 위에 용의 시체가 있었다.
절반만 남아 있는 시체.
다만 진짜 반만 있는 것은 아니다.
뼈와 강철 등으로 이루어진 구조물이 얼기설기 엮여 나머지 절반의 몸을 채우고 있었다.
반은 시체고 반은 무기물인.
“이 마법진은…….”
-이 시체를 유지하기 위한 마법진인 것 같네요.
제단 주위에는 검은빛의 마법진이 크게 펼쳐져 있었다.
그 마법진에서 수백의 촉수들이 나와 있어 시체의 몸 곳곳을 묶고 연결한다.
뭘 위한 것인지는 몰라도 어지간히 공을 들인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메르, 괜찮아?”
-네? 뭐가요?
“아니, 꽤 참혹해 보이는 모습이라.”
반만 남은 동족의 시체.
그 시체가 정체 모를 마법진에 묶여 뭔가를 위해 쓰이고 있다.
마물의 뼈나 철 따위로 메꾼 나머지 절반의 몸은 죽은 자에 대한 예의라곤 없는, 지독한 모욕뿐이었다.
-그냥 시체인데요 뭘. 영혼도 없는 육신에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그렇군.”
그러고 보면 드래곤은 수천의 생물로 변하여 그들의 삶을 살아가는 존재라 했던가.
때문에 영혼이 아닌 육신엔 커다란 의미를 두지 않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반쪽짜리 시체라니…….’
떠오르는 것이라곤 하나밖에 없었다.
불도마뱀의 심장이 얽힌 예의 일화.
과거 제국의 수도를 모조리 불태우며 난동을 부렸고, 제압당하는 과정에서 몸의 절반이 날아가 죽었다고 하는 불의 드래곤.
화염룡 이그네시아.
‘위치도 딱 근처고.’
베르넘은 과거 제국의 수도였던 도시와 꽤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
마경 거목림은 베르넘의 인근이긴 하지만, 제국 수도를 기준으로 하더라도 가장 가까운 마경이다.
애초에 제국의 수도 근처엔 다른 마경이 없으니까.
‘수도에서 죽은 화염룡의 사체를 가져다가 이곳에 숨긴 건가?’
크게 틀린 상상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누가? 그리고 뭘 위해서?
그런 것을 고민하고 있으려니.
-어르신.
메르가 나지막이 그를 불렀다.
처음 듣는 메르의 심각한 목소리에 유릭이 살짝 놀랐다.
“왜?”
-저 마법진에서 자라 있는 촉수들이요, 제 상처에 있는 검댕이랑 완전 똑같은 것 같아요.
“네 상처랑?”
-네.
그 말이 뜻하는 바는 하나다.
이곳에 화염룡 이그네시아의 사체를 갖다 놓고 이것저것 해놓은 범인과, 메르를 베었던 범인이 같은 놈이라는 사실.
유릭이 좀 더 자세히 마법진과 꿈틀거리는 촉수를 살폈다.
살피면 살필수록 단전의 기운이 꿈틀거린다.
메르 정도로 마나에 소양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두 기운이 같다는 것만큼은 알 것 같았다.
‘한번 불을 놔볼까.’
시험 삼아 단전의 기운을 일으켜 마법진에 살짝 대볼까 하였지만.
‘아니지. 섣불리 건드렸다가 뭐라도 잘못되면 큰일이니.’
어설프게 건드렸다가 무슨 대폭발이라도 일어나면 큰일이다.
이런 수상한 마법진은 시간을 들여 천천히 조사하는 것이 정석.
다만 지금 여기서 시간을 쓸 수는 없으니.
‘나중에 다시 오는 걸로 하자.’
검술 대전이 끝나고 불도마뱀의 심장까지 무사히 얻고 난 후에 다시 오는 걸로 하자.
달빛 펜던트가 있으니 다음에도 다시 올 수 있을 테지.
하지만 그전에 딱 한 가지, 살펴봐야 할 것이 있다.
“심장 반쪽이 남아 있을까?”
유릭이 살짝 기대가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현재 베르넘이 가지고 있는 불도마뱀의 심장은 반쪽짜리라 하였다.
그 남은 반쪽이 이곳에 남아 있지는 않을까?
그렇다면 여기서 절반을 얻고 검술 대전의 우승 상품으로 나머지 절반을 얻는다면, 온전한 드래곤 하트가 손에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한번 살펴보죠!
메르도 비슷한 생각을 하였는지 유릭을 재촉했다.
차마 정체불명의 마법진 내부로 발을 들일 수는 없어서, 유릭이 마법진 외곽을 크게 돌며 시체를 살폈다.
특히 주의 깊게 본 것은 시체의 단면 부분.
뼈와 강철 등으로 얽혀 있다곤 하지만 빽빽하게 채워진 것은 아니어서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였다.
그렇게 심장이 있을 만한 부분을 살펴보았지만…….
“없네.”
-텅 비었네요.
실망스럽게도 심장처럼 보이는 물건은 전혀 없었다.
제단 근처도 둘러보았지만 아무것도 없다.
아무래도 이걸 만든 장본인이 절반의 심장은 챙겨간 모양이었다.
“쩝…… 일단은 그냥 갈까.”
-검술 대전이 끝나면 다시 오죠.
지금은 그게 최선일 것이다.
유릭이 입맛을 다시며 몸을 돌렸다.
그때.
번쩍!
뒤쪽에서 느껴지는 불길한 기운에 유릭이 눈을 크게 떴다.
고개를 돌려보니 죽은 듯 -진짜 죽었지만- 누워 있던 이그네시아의 고개가 살짝 들려 있었다.
눈동자가 기괴한 동선을 그리며 빙글빙글 돌아가다, 이윽고 유릭에게 초점을 맞춘다.
“어……?”
-시…….
이그네시아의 입이 천천히 열리며 검은 연기가 흘러나온다.
짙은 사기가 눈에 보일 정도로 유형화되어 담배 연기마냥 하늘로 오르고 있다.
-시…… 심장…… 내 심장…… 내놔…….
유릭이 침을 꿀꺽 삼키며 뒷걸음질을 쳤다.
이그네시아의 시선이 그를 따라온다.
아니, 정확히는 그의 앞섶, 메르가 웅크려 있는 곳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어, 어르신?
“이거 왠지…….”
옛날에 괴담 따위에서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다리 없는 귀신이 내 다리 내놓으며 사람을 덮치는 내용의 괴담.
-심자아아아아아앙!
투두두두둑!
이그네시아가 몸을 들썩이자 그 몸에 연결돼 있던 촉수가 모조리 끊어지기 시작했다.
놈이 그대로 유릭을 덮쳤고.
“튀어!”
크게 소리치며 유릭이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쳤다.
* * *
쿵! 쿵! 쿵!
밀림을 헤치며 유릭이 급히 달려 나갔다.
그 바로 뒤쪽에선 마법진에서 뛰쳐나온 좀비 드래곤이 저돌적으로 쫓아오고 있었다.
우지지지지직!
빽빽한 밀림의 나무들은 이그네시아를 조금도 막아주지 못하고 있었다.
오히려 유릭의 앞길만을 막고 있으니 그저 야속하기만 했다.
‘무슨 쥐라기 공원이냐고!’
-심자아아아아앙!
“큭!”
어둑히 그림자가 지며 이그네시아의 발바닥이 떨어져 내렸다.
유릭이 급히 굴러 발을 피했다.
쿵!
놈의 발에 밟힌 땅이 움푹 패며 들어갔다.
“…….”
제대로 밟혔다간 뼈도 못 추릴 것 같은 광경에 유릭이 식은땀을 흘렸다.
-내 심장 내놔아아아아아!
“메르, 너 보고 쫓아오는 거 같은데!”
-어르신 보고 오는 거겠죠!
그런 대화를 하는 와중에도 뒤에선 계속 놈이 쫓아오고 있었다.
쿵! 쿵! 쿵!
유릭도 멈추지 않고 다리를 움직이고 있으나 덩치 차이가 너무 심하다.
유릭이 애써 몇 걸음을 달려도 이그네시아가 한 걸음만 걸으면 금세 따라 잡혔다.
-저쪽! 저쪽으로 가요!
“어딘데!?”
메르가 앞발로 가리키는 곳을 보곤 유릭이 눈을 크게 떴다.
“저긴 절벽이잖아!”
그곳은 바닥도 잘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였기 때문이다.
-제가 본체로 돌아갈게요!
“본체로? 고행은 어쩌고? 고행 중엔 본체로 돌아가면 안 된다며?”
-이번엔 실패했다 치고 담에 또 하면 되죠!
메르가 망설임 없이 쿨하게 대답했다.
어쩐지, 사실 유릭도 어렴풋이 느끼고는 있었다.
실은 메르는 고행엔 큰 관심이 없고 그냥 놀고만 있을 뿐이 아닌가…… 하는 것을.
맨날 이 정도는 괜찮다면서 지 편한 마법을 펑펑 쓰고 다니는데 그게 어디가 고행을 치르는 자세란 말인가.
그래도 지금은 그런 메르 덕분에 살았다.
“믿는다!”
유릭이 땅을 박차 전력으로 낭떠러지로 달려갔다.
그리고 속력을 줄이지 않고 그대로 뛰었다.
일순간 중력에서 해방되는 듯한 부유감을 느끼던 그의 몸이, 이내 급속도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갈게요!
그때 메르의 몸이 번쩍이며 아름다운 비늘을 가진 용이 나타났다.
끝 부분이 자색으로 빛나는 새하얀 비늘.
일전에 지하 호수에서 보았던 수정룡 메르베키아의 본 모습.
촤악!
메르가 크게 날개를 펼쳤고 그 날개 아래에 몇 겹의 마법진이 겹쳐졌다.
바람을 끌어오는 마법진.
술식의 인도를 따라 끌려온 바람이 아래쪽에서 불어 올랐고, 상승기류를 타곤 메르의 몸이 하늘로 날았다.
그 목덜미엔 비늘을 꽉 잡고선 유릭이 매달려 있었다.
“휴우…….”
무사히 날아오르니 유릭이 크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뭐가 잘못되어 그대로 낭떠러지에 곤두박질치는 미래도 잠깐은 스쳐 지나갔던 것이다.
그래도 이 정도면 따돌리지 않았을까, 하는 바람에 뒤를 돌아보니.
-심자아아아아앙!
주변은 전혀 보지 않고 메르만을 보며 쫓아오던 이그네시아가 절벽을 인지하지 못하고 다음 걸음을 밟았다.
당연히 그 앞은 허공뿐이어서, 이그네시아의 몸은 균형을 잃고 추락하기 시작했다.
“……됐나?”
-해치웠나요?
무사히 도망쳤단 생각에 둘이 안도를 하던 직후.
펄럭!
머리부터 떨어지던 이그네시아가 허공에서 날개를 펼쳤다.
녀석은 갓 성체가 된 메르보다도 두 배는 몸집이 커서, 날개까지 펼치니 그보다도 훨씬 더 거대해 보였다.
“설마…….”
날개를 펼친 채 무력하게 떨어지는가 싶던 이그네시아가, 추락하기 직전 몸을 비틀었다.
메르와 같이 마법으로 바람을 모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높은 낭떠러지에서 지면에 닿기 직전까지 떨어지니, 그것만으로 충분한 바람이 모였고.
-카아아아아아아!
밀림을 그대로 반으로 가르며 이그네시아가 날아올랐다.
한 번 떠오르니 몇 번 날개짓을 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고도를 높인다.
놈은 이미 메르와 같은 고도까지 올라와 그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으아악! 어, 어떻게 하죠, 어르신!?
“…….”
메르의 등에 바짝 붙어 바람을 피하던 유릭이 이내 결심한 듯 눈을 번뜩였다.
“넌 나는 데 집중해. 내가 요격할게.”
그가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워낙 빠르게 날고 있는지라 바람이 상당했지만, 천천히 균형을 잡으며 일어서니 어떻게든 일어설 수 있었다.
-가능하겠어요?
“시체라곤 해도 용의 비늘을 뚫긴 힘들겠지만, 반대쪽은 될 거야.”
이그네시아의 몸은 절반밖에 없다.
그 말은 비늘로 덮인 부분도 절반뿐이라는 뜻.
놈의 한쪽 날개는 뼈와 철로 이루어진 인공적인 날개였다.
그 날개를 부수는 정도라면 엑셀레아의 힘으로 충분하리라.
콱.
유릭이 두 발끝을 메르의 비늘 안쪽에 박아 넣곤, 엑셀레아의 손잡이를 잡았다.
콰아아아아아!
살짝 검을 뽑으니 어느 때보다도 강한 바람이 모여들었다.
고속으로 날고 있기에 생기는 바람, 그리고 아직도 메르의 날개 아래쪽에 있는 바람을 모으는 마법진.
그것들의 힘을 받은 엑셀레아의 위력은 지금까지 중 최고라 칭할 만했다.
‘이거면 된다.’
성공을 확신한 유릭이 몸을 낮췄다.
가장 위력이 강한 것은 ‘일점’의 바람이지만 그것으론 바람구멍 하나 나고 끝나겠지.
날개 한쪽을 완전히 떨어뜨리기 위해선 ‘선’의 바람을 써야 한다.
유릭이 조용히 목표를 노리고.
콰아아아앙!
검을 뽑았다.
지나친 바람에 미친 듯이 떨려오는 검신을 유릭이 가까스로 눌러 안정시킨다.
지금까지 중 가장 강한 바람이라곤 하지만, 유릭은 엑셀레아를 다루는 덴 이제 도가 텄다.
강하게 흔들리는 검신에 비해 검이 그리는 검로는 아름다울 정도로 정적이고 안정되어 있었다.
그 깔끔한 일검에 날카로운 칼바람이 쏘아졌고.
슈웅-
크게 그어진 칼바람은 이그네시아의 머리 위로, 아주 어림도 없게 빗나가 버렸다.
어처구니없는 결과에 유릭이 멍하니 입을 벌렸다.
-어르신!
“미안…… 나 멀리 있는 건 잘 못 맞춰서…….”
-으앙!!
상처는커녕 흠집 하나 나지 않은 채 쫓아오는 이그네시아를 보며 메르가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