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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120화 (120/166)

#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 120화

120화. 반시룡

피이이이이잉―

거목림의 하늘 높이 노란 연기가 치솟아 올랐다.

경기의 일시 중단을 의미하는 신호탄이었다.

신호탄을 본 사람들은 저마다 검을 멈추고 갑작스러운 중단에 의아해했다.

그런 이들의 눈에 일단의 흑기사 무리가 비친 것은 잠시 후의 일이었다.

“무슨 일이지?”

“글쎄.”

인식표가 없고 옷도 깔끔하고 먼지 한 톨 없는 것을 보니 경기에 참가한 흑기사들이 아닌 바깥에서 들어온 이들이다.

무리 지어 한곳으로 향하는 그들을 보며 참가자들은 눈을 찌푸렸다.

일시 중단도 그렇고 갑자기 들어온 흑기사 무리도 그렇고, 아무래도 무슨 일이 터진 것이 분명했다.

한편.

“정확히 이 자리다.”

카를은 유릭이 사라진 자리에서 마야가 데려온 흑기사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여기서…… 그 용병과 싸우셨던 겁니까?”

“그래. 못 믿겠나?”

“그것이…….”

흑기사들은 카를이 안내한 장소를 보며 할 말을 잃었다.

분명 발도 들이기 힘들 빽빽한 밀림이었을 그 장소는, 커다란 재해라도 맞은 마냥 휩쓸려 공터가 되어 있었다.

커다란 대검에 찍혀 쓰러지고 불타는 화마에 쓸려 타오르고.

이것이 단 두 사람이 전투한 흔적이라고?

“그 용병, 이름이 뭐라고 합니까.”

마야가 굳은 표정으로 질문했다.

카를의 우승을 의심치 않는 그녀였지만, 이 흔적을 보니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정도의 검사가 참가자 중에 섞여 있었을 줄이야.

“이름은 못 들었는데. 검은 머리에 푸른 눈동자를 하고 있더군. 검은 나처럼 두 자루 차고 있었고.”

“흐음…… 여기 있군요. 이름은 유진. 퀘른 왕국에서 주로 활동했고 등급은 A입니다.”

마야가 참가자들의 신청서 목록을 살피며 유릭의 기록을 찾았다.

이만한 흔적을 남기며 카를과 대등하게 싸운 이에 대한 흥미도 있었지만, 행방불명된 이의 신원을 파악할 필요도 있었다.

“이곳에 갑자기 균열이 생기더니 빨려들었다 이거죠?”

“그래. 딱 내가 서 있는 여기다.”

카를의 증언을 듣고 마야가 뒤의 인원에게 손짓했다.

따라온 흑기사들이 파팟, 주변으로 퍼지며 수상한 흔적들을 찾기 시작했다.

동시에 함께 데려온 가문의 마법사는 카를이 가리킨 허공과 바닥을 주의 깊게 조사했다.

베르넘이 검술명가라곤 하지만 가문 소속의 마법사가 아예 없지는 않았다.

“아가씨.”

잠시 살피던 마법사가 마야를 불렀다.

마야가 따라가 마법사가 가리키는 땅을 살폈다.

“균열은 보이지 않습니다만 확실히 수상한 기운이 남아 있습니다. 거목림의 입구를 구성하는 기운과 비슷한 기운으로 보입니다.”

“그럼 이 마경 안에서 또 다른 마경이 열렸다는 말입니까?”

“정황상으론 그렇습니다.”

마경 안에 또 하나의 마경이?

들어본 적도 없는 일이다.

마경 자체가 마신이 심어 놓은 다른 세계의 파편일진대, 그 안에서 또 하나의 마경의 입구가 열리다니.

마야가 턱을 잡곤 고민의 표정을 지을 때, 마법사는 잔뜩 흥분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이건 대발견입니다, 아가씨. 기존의 마경은 대부분 탐색이 완료된 후죠. 다른 마경에서도 이런 현상이 존재한다고 한다면 마신의 세계에 대해서 무언가가 또 밝혀질지도 모릅니다.”

아무래도 그런 쪽이 전문이 아닌 마야와 세상에 대한 탐구를 업으로 삼는 마법사는 온도 차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가문의 행사에서 사람이 하나 실종된 일이기에 마야는 전혀 들뜰 수 없었으나.

“그럼 확실하게 조사 부탁드립니다. 인력이 필요하면 더 가져다 쓰시구요.”

“예!”

마법사의 의욕이 대단한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조사에 대한 권한을 위임받은 마법사가 사명감 깃든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에게 마야가 덧붙였다.

“혹시 모르니 마도성 쪽에 협조 요청을 해놓겠습니다. 이 현상에 대해 설명하면 그들도 한달음에 달려오겠죠.”

“알테라시아에 말입니까!?”

마법사가 크게 흥분하며 대답했다.

마도성 알테라시아.

그곳은 이 세상 모든 마법서가 보관되어 있다고 거대한 도서관이자 성채였다.

수백 년 전엔 작은 도서관 하나뿐이었으나, 작금에 이르러선 훌륭히 10대 가문에 이름을 올린 세력.

마도성의 성주는 200살 이상을 살아온 현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발렌티나, 라그룬과 함께 대륙에 셋밖에 없는 초월의 경지에 오른 10성 마법사이기도 했다.

마법사에게는 짙은 선망의 대상으로, 알테라시아의 모든 마법사들이 바로 그 성주의 양자이자 제자라고 한다.

같은 마법사라고 해도 변두리 출신의 마법사와 알테라시아 출신의 마법사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었다.

그런 알테라시아와 연을 맺을 기회라니…….

“열심히 하셔야 할 겁니다. 알테라시아의 마법사가 찾아왔을 때 아무것도 밝혀내지 못한 상태라면 그들도 무척 실망할 테니까요.”

“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나이도 경력도 쌓일 대로 쌓인 중년의 마법사가 갓 들어온 신병마냥 직립 부동으로 대답했다.

마야는 아직 젊은 나이임에도 어떻게 사람을 부려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이걸로 마법사는 조금도 게으름피우지 않고 한계 이상의 일을 해주겠지.

그녀가 그렇게 조사단을 지휘하고 있을 때.

“이곳에 있었나.”

카를은 조사단에서 한층 떨어진 나무그늘을 찾아갔다.

그곳엔 팔짱을 낀 채 나무에 등을 기댄 글렌이 있었다.

“확실히 무슨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한다. 베르넘은 보유한 마법 수준이 그렇게 높지는 않지만, 알테라시아도 부른다고 하였으니 어떻게든 될 거다. 마경은 그들이 전문이니까.”

“알테라시아라…….”

확실히 알테라시아라면 이 이상 걱정할 것은 없다.

아니 반대로 알테라시아도 밝혀내질 못할 마경의 비밀이라면 대륙의 그 누구도 밝혀낼 수 없다.

그야말로 누천년을 산 드래곤이 나타나지 않는다면야.

알테라시아의 이름을 들은 시점에서 글렌이 할 일은, 그저 기다리는 일만 남은 셈이다.

‘신경 쓰는 만큼 손해겠군.’

글렌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지금 유릭의 실종에 대해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러니 지금은 최대한 안정하면서 체력과 정신력을 가다듬는 것이 우선이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글렌이 나무에 등을 기대고 있으려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 네 동료는 무사할 테니.”

카를이 무뚝뚝한 어조로 위로의 말을 건네 왔다.

글렌이 콧잔등을 찡그렸다.

“걱정? 내가?”

“걱정하고 있지 않나?”

“그놈은 어디 가서 객사할 놈이 절대 아냐. 어지간히도 오래 살다 뒈질 거다 그놈은.”

“그런 것치곤 꽤나 신경 쓰이는 모양인데.”

대체 이놈이 뭔 소릴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꺼져.”

“안 그래도 예민할 텐데 귀찮게 굴어 미안하군.”

“……좀 가라.”

마지막까지 카를은 ‘네 마음 이해한다’라고 말하듯 글렌의 어깨를 토닥이곤 사라졌다.

글렌이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뭘 안다고 아는 척을 하는 것인지.

“…….”

그러고서도 한동안, 그는 계속 눈을 감고 있었다.

* * *

당연하지만 한 번 빗나갔다고 공격을 멈출 유릭이 아니었다.

유릭은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고, 그중 몇 차례는 놈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에 성공했다.

그렇게 하던 중 유릭은 점차 더 적중률이 높은 방법을 찾아냈다.

‘<익스플로전>.’

유릭의 주변에서 불의 기운이 압축되며 술식을 그린다.

동그란 구체 형태의 불덩어리가 몇 개, 몇십 개.

파이어 볼트와 달리 발사 따윈 되지 않고 그곳에 가만히 있을 뿐이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쉬익―!

콰과과과과광!

메르가 빠르게 지나치고 바짝 뒤따라온 이그네시아가 만들어두었던 폭발에 휘말린다.

익스플로전의 술식을 만들어 아주 잠깐 늦게 터뜨리는 것만으로 이그네시아에게 상당한 유효타가 들어갔다.

직접 요격하는 것보다 공격을 깔아놓는 쪽이 적중률이 높은 건 조금 슬프긴 했지만…….

―크아아아아아아!

이그네시아는 어떻게든 몸을 비틀며 폭발을 피해내고 있었다.

용의 비늘로 덮여 있는 쪽이야 익스플로전 정도엔 꿈쩍도 하지 않았지만, 뼈와 철로 되어 있는 몸쪽은 그렇지 못했다.

유릭은 집중적으로 그곳을 노려 익스플로전을 깔아두었고, 이그네시아는 날아오던 몸을 비틀며 쫓아와야 했다.

―괜찮은 것 같은데요?

“거리는 좀 벌린 것 같긴 한데…….”

놈이 직선으로 날아오지 못하게 하는 것만 해도 충분히 견제가 되었다.

다만.

‘이대로면 시간만 끌릴 뿐이야.’

결과적으로 놈을 늦추는 데는 성공했지만 따돌릴 정도는 되지 못했다.

이대로라면 그저 영원히 쫓고 쫓길 뿐.

놈은 지치지 않는 좀비고 메르는 언젠간 지치기에 영원히 추격전이 이어지면 이쪽이 지게 된다.

애초에 그렇게 추격전을 벌일 시간도 없었다.

‘체력이 남아있는 사이에 싸우는 게 맞겠어.’

결국은 싸워야 한다는 결론.

“메르, 마신의 창으로 돌아가자.”

―거기로요?

“아무래도 싸워야 할 것 같아.”

메르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그 제단을 파괴하면 놈도 쓰러질지도 몰라. 네가 싸우고 있으면 내가 부숴볼게.”

―네.

메르가 결연한 어조로 대답했다.

화염용 이그네시아, 지금은 절반의 시체만 남았으니 반시룡(半屍龍) 따위로 부르는 것이 맞을까?

아무튼 녀석은 지금의 자신들로선 따돌릴 수가 없었다.

싸워서 쓰러뜨리는 것이 최선.

―그럼 돌게요.

메르가 뒤쪽의 눈치를 살피더니, 큰 원을 그리며 U턴하기 시작했다.

* * *

마신의 창에 도착한 유릭이 적당한 틈을 봐 뛰어내렸다.

유릭이 뛰어내렸지만 반시룡의 시선은 여전히 메르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심자아아아아앙!

―으악!

앞뒤 없이 달려드는 반시룡을 피하며 메르가 재빨리 하늘로 치솟는다.

쿠웅―!

반시룡은 제 속도를 못 이겨 마신의 창에 몸을 부딪쳤다.

충격을 받긴 했는지 잠시 꿈틀거린 녀석이었으나, 이내 다시 초점을 맞춰 메르를 쫓기 시작했다.

쾅, 콰과과광!

메르가 마법을 난사하며 조금씩 거리를 벌리지만 역시 큰 피해는 입히지 못했다.

반시룡의 절반의 몸을 덮고 있는 비늘은 메르보다도 훨씬 격이 높은 드래곤의 것.

메르의 마법으로도 뚫을 수 없는 것이었다.

―크아아아아아!

메르의 마법의 폭풍을 뚫은 녀석이 몸을 회전하며 꼬리를 내리쳤다.

그 꼬리는 메르의 옆구리 깊이 박혀 들었다.

―아악!

눈앞에 별이 번쩍일 정도로 충격을 받은 메르였으나 그래도 곧바로 정신을 차렸다.

메르가 옆구리에 박힌 꼬리를 두 손으로 단단히 잡더니, 몇 차례 돌려 마신의 창 쪽으로 집어 던졌다.

쿠우우우웅!

아까보다도 더욱 굉음을 내며 마신의 창에 부딪힌 반시룡.

이걸로 끝이 아니라는 듯 메르가 입을 쩍 벌리곤 마력을 모았다.

드래곤 브레스.

마나의 원천인 심장을 펌핑시켜 강대한 숨결을 토해내는, 용에게만 허락된 최강의 무기.

메르의 심장이 고동치며 그 입에 거대한 마력이 몰려 반시룡을 겨눴다.

―크아아아아! 심자아아아앙!

그 직후, 눈이 붉어진 녀석이 순식간에 튀어 올라 메르의 목을 잡아챘다.

―켁! 켈록 켈록!

한창 모으던 브레스의 마나가 그 탓에 흩어져 버렸다.

심장을 사용한 것이 놈의 역린을 건드린 것일까?

반시룡은 아까보다도 더욱 붉어진 눈으로 폭주하기 시작했다.

한편으로 그들이 그렇게 치고받고 싸우는 와중에도 마신의 창은 금 하나 가지 않았다.

저런 거구의 용이 몇 차례나 부딪치고 밟아 차올리는데도 부서지기는커녕 상처 하나 없는 것이, 역시나 절대 평범한 구조물은 아니었다.

―크아아아아아!

―악! 아프니까 그만 좀 해요!

쾅쾅!

꼬리로 치고 이빨로 물고 머리로 들이받고.

괴수 대전을 방불케 하는 광경이 하늘 위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그렇게 메르가 분투하고 있는 사이, 유릭은 어느새 반시룡이 처음 묶여 있었던 제단에 도착했다.

“큭!”

다시 보니 새삼 올라오는 불길한 기운과 꿈틀거리는 촉수에 유릭이 소매로 코와 입을 가렸다.

이 제단의 정체도 마법진의 효력도, 그리고 만든 놈의 정체도 알지 못했지만.

그래도 이 설비와 내재된 마나가 용의 시체를 움직일 만큼 대단한 것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아까는 잘못 건드렸다 터지기라도 할까 봐 조심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터뜨려야 하는 상황.

다행히 이 불길한 기운을 몰아내는 데 제격인 기운을 유릭은 가지고 있었다.

염화신무의 내기.

심지어 요 몇 년 메르의 상처를 치유하며 나름 숙련도까지 쌓은 참이다.

‘프로미넌스…… 아니, 익스플로전으로 하자.’

스릉.

뽑아 든 녹시아의 검신에 익스플로전의 술식이 새겨진다.

프로미넌스는 당장 화력이 높아지긴 하지만 그건 염화신무의 내기에 프로미넌스의 화력이 추가되는 식이다.

반면 익스플로전은 염화신무의 내기를 그대로 터뜨리는 마법.

이 제단에 가득한 기운이 염화신무에 약하다고 한다면 이쪽이 정답이겠지.

<화룡검화 5중첩>

<익스플로전>

5겹의 주홍빛 불꽃이 녹시아의 검신에서 치솟아 오르고 동시에 금방이라도 터질 듯 그 세를 부풀린다.

거대한 불의 검을 유릭이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목표는 눈앞의 제단과 불길한 촉수들, 그리고 검은 마법진.

―크아아아아아아!

―어르신! 위험해요!

그 순간, 유릭의 모습을 눈치챘는지 반시룡이 유릭의 눈앞으로 사선으로 떨어져 내렸다.

순식간에 쇄도하는 거대한 용을 보며 유릭은.

‘역시 이 제단이 답이다.’

오히려 눈을 빛냈다.

흡사 전차마냥 돌진하는 반시룡을 보며 이를 악물곤.

콰아아아아앙!

유릭이 치솟은 불의 검을 내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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