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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121화 (121/166)

#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 121화

121화. 시나리오 한번

지금껏 메르의 심장만을 노리고 달려들던 놈이 갑자기 방향을 튼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

이 제단을 지키는 것이 사라진 심장을 되찾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것.

아직 거리가 있음에도 온몸이 저릿거릴 정도의 압박감이 밀려왔다.

흡사 달리는 기차의 정면에 서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지금 벤다.’

유릭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검을 치켜들었다.

전투에서 중요한 것은 기회가 왔을 때 확실히 잡아채는 것.

특히 상대가 지금처럼 정체 모를 마법에 휩싸인 상대라면, 처음 한 번의 기회가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법이었다.

―크와아아아아!

불안요소는 산더미처럼 많았다.

놈에게 치이기 전까지 검을 내려칠 수 있을까?

검을 내려치면 제단과 마법진을 베어낼 수 있을까?

마법진에서 꿈틀거리는 이 불길한 촉수들을 염화신무가 모조리 태워낼 수 있을까?

심장이 터질 듯 뛰어왔지만, 반대로 손끝은 차가웠다.

날카롭게 선 정신이 검 끝을 차갑게 달군다.

이윽고.

콰과과과과광!

5중의 검화에 휩싸인 녹시아가 제단을 갈랐다.

제단이 파괴되고 마법진이 뭉개진다. 징그러운 검은 촉수들이 밝은 불꽃에 휩싸여 모조리 타들어 갔다.

“……!”

그 즉시 유릭이 전력으로 옆으로 뛰었다.

콰아아아아아!

바로 방금까지 유릭이 있던 자리로 반시룡이 덮쳐들었다.

가까스로 직격은 피했지만 풍압까지 피할 수는 없었다.

쿠웅!

강하게 압축된 공기에 유릭의 몸이 튕겨져 날아갔다.

“큭!”

유릭의 몸이 저 멀리 밀림 속에 처박혔다.

전신을 덮치는 통증에도 유릭은 우선 고개부터 들어 반시룡의 상태를 살폈다.

녀석 역시 유릭과 마찬가지로 날아오던 기세를 죽이지 못해 밀림에 그대로 몸을 처박았다.

유릭과 달리 들이받는 나무를 모조리 짓이기며 날아간 반시룡은, 그대로 나무의 잔해에 박힌 채 움직이지 못했다.

‘됐다!’

놈의 몸 절반을 이루고 있는 마물의 뼈와 철이 점차 녹아 사라지고 있다.

용의 비늘로 뒤덮인 절반의 몸은 다소 멀쩡했지만, 아무리 용이라 할지라도 육체의 절반만으론 움직일 수 없다.

이걸로 끝났다는 생각에 유릭이 크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크…… 아아…….

반시룡이 꿈틀거렸다.

유릭이 깜짝 놀라며 놈을 보니 아직 그 눈에서 빛이 꺼지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꺼질 듯 미약하고 깜빡거리는 빛이었지만, 그럼에도 아직 한 수가 남았다.

놈이 팔을 더듬더니 주변에 쓰러진 나무 한 그루를 잡아 들어 올렸다.

그리곤 유릭을 향해 그것을 크게 치켜들었다.

유릭이 이를 악물곤 두 팔로 땅을 짚었다.

전신을 내달리는 찌릿한 통증을 참으며 어떻게든 일어서, 나무를 뿌리째 치켜든 놈을 응시하자.

―콰아아아아아앙!

“!”

하늘에서 보랏빛의 기둥이 떨어졌다.

하늘을 울리고 땅을 꿰뚫는 위력에 전신의 솜털이 곤두섰다.

태어나 처음 보는 광경이지만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메르베키아의 브레스.

용들에게만 허락된, 심장의 고동으로 빚어낸 빛의 창.

―크어어아아아아!

빛의 기둥 속에서 반시룡의 남은 절반의 몸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놈뿐만 아니라 그 주변 역시 모조리 가루가 되어 사라진다.

그 빛의 여파는 자로 재기라도 한 듯 정확히 유릭의 발 앞에서 멈추었다.

이윽고 서서히 빛이 잦아들고.

―어르신, 괜찮아요?

“어, 응.”

메르가 유유히 날아 유릭의 앞에 쿵, 착지했다.

유릭이 새삼스럽게 눈을 깜빡이며 메르를 보았다.

“너…… 생각보다 대단하네.”

―에헤헤, 뭘요. 실은 저 브레스 하나만은 장난 아니라고 어릴 때부터 칭찬 많이 받았거든요. 일반 마법은 좀 약하긴 한데.

몸을 배배 꼬며 말하는 녀석을 보곤 유릭이 침을 꿀꺽 삼켰다.

‘앞으로는 좀만 더 잘해줄까…….’

어쩌다 다투기라도 하면 저 브레스가 머리 위로 떨어지는 것이 아닐까.

……상상만 해도 끔찍한 광경이었다.

* * *

반시룡을 처치한 후 유릭은 그 자리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다행히 큰 부상은 없었으나 전신의 통증이 좀처럼 가시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도 잠시 앉아 운공을 하니 어느 정도는 제 컨디션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 후 주변을 둘러보며 무언가 단서를 찾아보았으나.

“딱히 뭐 없네.”

―그러게요.

특별히 단서로 보이는 것은 없었다.

반시룡의 시체는 모두 증발해 버렸고 마법진은 염화신무의 불꽃에 불타 사라졌다.

남은 건 파괴되고 불타오르던 제단의 일부 파편뿐.

유릭은 그 파편을 모조리 모은 후 다시 불을 놓아 모조리 태워 버렸다.

딱 한 조각만을 손에 든 채로.

“챙긴 건 이것뿐인가.”

―무슨 문양일까요?

“글쎄.”

마치 나비처럼 보이는 뒤틀린 문양이 새겨진 파편이었다.

“널 공격했던 놈은 어땠어. 이런 문양이 몸에 있었어?”

―너무 빨리 지나가서 못 봤어요. 공격받을 거라곤 생각도 못 하고 있었기도 했고…….

메르는 그렇게 얘기하지만, 같은 기운이 느껴진 이상 같은 놈인 것은 확실하겠지.

나비 문양을 머릿속에 잘 새겨 넣곤 유릭이 파편을 주머니에 챙겼다.

이건 후일 조사를 해본다고 하고.

‘그러고 보니 하나 더 있었지?’

생각해 보니 얻은 것이 한 가지 더 있었다.

“메르, 이곳에 펼쳐져 있던 마법진 기억했지?”

―네. 좀만 해석해 보고 알려 드릴게요.

마법진은 본디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겉으로 보이는 진의 모양을 외운다고 해도, 그곳에 담긴 술식의 의미나 내부에 흐르는 마나의 흐름 등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무용지물이다.

유릭 혼자였다면 정체 모를 마법진을 목격한다고 해서 아무런 소득도 없었을 터.

하지만 이곳엔 메르가 있다.

본인은 일반 마법엔 약하다곤 하지만 그 약함의 기준은 인간으로 치면 9성에 필적하는 지식이겠지.

처음 보는 마법진이라 할지라도 모습을 보았고, 효과를 알고 있으며, 실제 발동하는 것까지 보았으니, 해석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반시룡을 일으켰던 사령술의 마법진.’

정확히 어떤 마법들이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인지, 그래서 그걸로 뭘 할 수 있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메르의 해석을 기다려야 할 테지.

그래도 뭐 이 정도면 한번 목숨을 건 보상은 되었다고 생각한다.

어디에서 이런 귀중한 마법을 얻을 수 있겠는가.

“출구를 찾아볼까.”

이제는 거목림으로 돌아갈 때였다.

* * *

빌헤인은 지금은 은퇴한 지 오래된 베르넘 소속의 마법사였다.

젊은 시절에는 전투 마법사로서 수많은 전장을 전전한 그였으나, 나이를 먹고 여러 제자를 키우다 보니 점차 마법이란 학문 자체에 대한 갈망이 커져 왔다.

전장의 마법사와 탁자의 마법사는 같은 마법사라도 전혀 다른 법.

어떻게 하면 매직 미사일 따위의 기초 마법을 더 빠르고 정확하게 적의 머리에 처박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이 전자.

반면 후자는 다종다양한 마법 그 자체의 발생과 역사 등지에 대해 연구하고, 그것이 세상의 구조와 어떻게 닮아 있는가 사색하는 직업이었다.

애초에 그는 마법이 좋아서 입문한 마법사다.

나이를 먹고 전장에서 물러나면 자연스레 학문으로서의 마법에 흥미가 이는 것이 당연했다.

그렇기에 어떻게든 알테라에 연을 만들고 싶은 그였으나.

“큭, 제길!”

쾅!

현장에 설치한 천막 안에서 그가 탁자를 내리쳤다.

유진이란 용병이 실종된 자리에서 기이한 기운을 확인하기는 했다.

하지만 아무리 살피고 연구해도 기운의 정체나 어떻게 균열을 열 수 있는지에 대해선 알 수가 없었다.

“스승님. 고정하십시오. 하루 이틀 만에 해결할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아, 아아, 그래 그렇지.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 미안하구나.”

조수로 데려온 제자들의 시선을 느끼며 빌헤인이 몸가짐을 바로 했다.

아직 알테라에 연락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다.

그들이 당도할 때까진 충분히 시간이 있을 터.

그 안에 무언가 하나만, 최소한 연구의 방향을 결정할 단서 하나만 발견하더라도 충분한 성과이리라.

“좋아, 다시 실험을 시작하자꾸나. 3번 시약이 얼마나 남았지?”

“이제 반병 정도 남았습니다.”

“그러면…….”

그가 척척 새로운 실험에 대한 지시를 내렸다.

한창 그러던 중.

“스, 스승님! 빨리 나와보십시오! 균열이 열리고 있습니다!”

“뭣이!”

천막 바깥에서 현장을 관측하던 제자가 급히 알린 말에 그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달음에 달려간 그가 목격한 것은, 제자의 말대로 정말로 허공에 균열이 열리는 과정이었다.

“오오오오!”

이미 열려 있는 마경의 입구라면 그는 몇 개나 보았다.

하지만 이렇게 눈앞에서 기운이 움직여 균열이 열리는 광경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 기운의 흐름을 세밀하게 관측하고 있으려니.

파지직!

이윽고 허공이 깨지고 한 사내가 걸어 나왔다.

나오자마자 그는 모여 있는 사람들을 보고는 살짝 놀라 눈을 깜빡였다.

“뭐야 당신들?”

마경의 심층에 끌려 들어갔던 유릭이었다.

“당신이 유진 맞소?”

“그런데…….”

“잘 돌아왔소! 무사했구려! 단서가 제 발로 걸어 나왔어!”

“아니, 무슨…….”

처음 보는 중년 마법사가 손을 붙잡고 방방 뛴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유릭이 질색하며 몸을 뒤로 뺐다.

* * *

달빛 펜던트로 열렸던 균열은 유릭을 빨아들이곤 사라졌다.

그러나 안쪽에서 찾아 나온 균열은 기묘하게도 거목림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거목림 심층으로 가는 길이 열려 있는 셈이다.

“……가 보죠.”

마야가 침을 꿀꺽 삼키더니 조사단을 이끌고 균열 안으로 발을 들였다.

그 일행엔 방금 막 심층에서 나온 유릭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게 댁이 말한 마신의 창이오!? 단순한 전설이 아니었단 말인가!”

심층에 진입한 직후, 누구보다 먼저 소리친 건 빌헤인이었다.

“아니, 내가 그렇게 생각했단 거지 진짜 마신의 창인지는 모르지. 그냥 그런 느낌의 구조물이란 거고…….”

“대발견이오, 대발견!”

유릭의 말은 귓등으로 흘린 채 빌헤인은 잔뜩 흥분해 있었다.

이 정도 발견이라면 알테라도 필시 큰 관심을 가지리라.

뿐만 아니라 학자로서의 순수한 흥미 역시 상당했다.

그의 머릿속에선 이미 수십의 가설과 가정이 돌아다니며 행복한 사고의 미로에 빠져 있었다.

유릭은 더 방해하지 않고 그를 내버려 두었다.

한편으로 마야를 포함한 조사단으로 온 흑기사들은.

“이건…….”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반시룡이 죽었던 자리, 즉 메르가 브레스를 갈긴 그 장소를 보며 망연자실해 있었다.

“유진. 심층에 들어오면 얘기해 주기로 했죠? 대체 무슨 일이 있었죠?”

심층에 들어오기 전 유릭은 안에서 있었던 일은 안에서 얘기하겠다고 했었다.

이 흔적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진행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이…….”

유릭이 말을 꺼내려 입을 열 때.

화아아아아―

허공에서 거센 바람이 불어 닥쳤다.

마야와 흑기사들이 반사적으로 위를 올려다보았고.

“…….”

전원이 숨을 삼켰다.

그곳엔, 미리 약속한 대로 정확한 타이밍에 등장한 메르가 있었다.

―무슨 일로 들어왔느냐. 필…… 필…….

‘필멸자.’

대사를 잊은 것 같아 유릭이 얘기해주었다.

―아 그래, 필멸자여. 이곳은 너희에게 허락되지 않은 땅이다.

“허업!”

“드, 드래곤!”

조금 더듬은 메르였으나 아무 상관 없었다.

메르를 보는 조사단 전원이 새파래진 얼굴로 벌벌 떨고 있었으니까.

‘좋아, 잘하고 있어. 말은 더듬지 말고.’

―이런 민망한 대사를 어떻게 제정신으로 해요!

‘괜찮아, 멋있어, 멋있어. 아주 위엄이 넘쳐. 그러니까 얘기한 대로만 해.’

제단과 반시룡을 만든 모종의 적에게서 몸을 감추기 위해.

시나리오 한번 쓸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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