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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123화 (123/166)

#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 123화

123화. 여기 왜 있어?

웅성거리는 인파가 자연스레 양쪽으로 갈라졌다.

그 사이의 카펫을 밟으며 유릭이 저벅저벅 걸어왔다.

“저자가…….”

“신검의 주인을 쓰러뜨린 놈이라고?”

“용병이라던데 대단하군.”

참가자들은 우승 후보였던 카를을 쓰러뜨린 유릭에 대해 큰 흥미를 보이고 있었다.

대부분의 호의와 부러움이 섞인 감정.

일이 묘하게 흘러감을 느끼며 마야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있었고, 오로지 카를만이 좋은 경기였다며 주변 분위기와 관계없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양한 감정이 살롱 내에 회오리치는 가운데.

꽈악.

“…….”

엘가이아는 무의식중에 허리춤의 검을 꽉 붙잡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대체 자신은 왜 이곳에 있는 것일까.

왕국의 업무와 각하의 보좌를 내팽개치면서까지 저 용병을 쫓아 온 것은 대체 무엇 때문일까.

지금, 그가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저 검은 머리의 용병과 다시 한번 검을 맞대보는 것.

그래야지만 그는 마음속에 작게 응어리진 심마(心魔)의 싹을 잘라 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응?’

한편 월터를 향해 걷던 유릭이 한쪽 구석에 있는 엘가이아를 발견했다.

순간 헛것이라도 본 것처럼 눈을 깜빡였다.

‘아니, 저놈이 여기 왜 있어?’

겉으로는 어떻게 평정을 유지했지만 속으로는 기겁할 정도로 놀랐다.

스카디 왕국에 있어야 할 저놈이 대체 왜 여기 있단 말인가?

-우리를 따라왔나 봐요.

유릭만큼은 아니어도 메르 역시 꽤나 놀란 듯했다.

‘설마……. 그냥 검술 대전을 보고 싶어서 온 거 아냐?’

유릭이 애써 현실부정을 해보지만 메르는 어림도 없다는 듯 대답했다.

-그런 것치곤 어르신을 죽일 듯 쏘아보고 있는데요?

‘…….’

반론할 말이 없었다.

메르의 말대로 엘가이아는 지금 자신을 뚫어져라 응시하는 중이었다.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그 모습에선 광기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날 왜 따라오는데! 스토커야?’

-저나 하인놈의 스토커는 아닐 테니 어르신의 스토커겠죠?

‘아니, 시발.’

좀처럼 육두문자는 사용하지 않는 유릭도 이번만큼은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한 일이라곤 놈이 리헨델 왕자를 암살하려 했을 때 막아냈던 것뿐이다.

물론 그 일로 미레유 왕비와 크라우 공작의 힘 관계가 크게 기울었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미 끝난 일이 아닌가?

한가한 사람도 아니고 마스터씩이나 되는 이가 뭐 하러 자신의 뒤를 밟고 있단 말인가?

‘큼…….’

뭐 어쨌든 당장은 표정 관리에 집중했다.

엘가이아가 무슨 목적으로 온 건지는 몰라도 지금 이 자리에서 뭘 하진 못하겠지.

‘지금은 월터 베르넘에게 집중하자.’

우승을 했다고 하지만 유릭의 목적은 우승이 다가 아니다.

베르넘의 비고에 있는 영약 중 하나, 그중에서도 불도마뱀의 심장을 얻어내는 것.

소풍이 집에 도착할 때까지가 소풍이라고 하듯, 유릭 역시 불도마뱀의 심장을 얻어내기 전까진 목적을 이룬 것이 아니었다.

저벅저벅.

그가 보폭을 유지하며 성큼성큼 월터를 향해 걸었다.

“만나서 반갑네, 유진. 월터 베르넘이네.”

“반갑습니다.”

유릭과 월터가 악수를 나눴다.

월터에 대한 첫인상은 ‘베르넘답지 않은 사내’였다.

대부분 충직하고 무뚝뚝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기사의 이미지를 가진 베르넘답지 않게 월터 베르넘은 무척 쾌활하고 다부져 보였다.

나쁘게 말하면 잔머리만 잘 굴릴 것처럼 생겼다.

“A급 용병이시라고? S급이 되지 못한 것은 아직 마스터가 아니기 때문인가?”

“내 검이 아직 부족하기 때문이죠.”

일반적으로 용병의 등급은 A급이 최고라 칭해진다.

왜냐하면 S급부터는 8성 이상의 마스터에게만 주어지는 명예가 깃든 등급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마스터쯤 되면 어느 왕국에 가더라도 당장 귀족 위를 받을 수준이다.

그런데도 용병 신분에 머무는 마스터는 매우 적었고, 당연히 S급 용병이란 것은 무슨 환상 속의 존재처럼 취급되었다.

물론 그런 괴짜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축하하네. 본가는 뛰어난 실력을 가진 검사라면 언제든 환영하지. 부디 마음껏 머물다 가게나. 괜찮다면 본가의 어린 기사들에게 한 수 가르쳐 준다면 고맙겠군. 그리고…… 아 참.”

월터가 남들이 들리지 않게 목소리를 작게 하여 덧붙였다.

“마야에게 드래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마경의 심층에서 목격했습니다.”

“그것도 물어보지 않을 수 없겠군. 다만 검술 대전과는 관계없는 이야기니 나중에 함세.”

드래곤의 화제는 일단 거기서 끝내고 월터가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자네도 지루한 찬사 따위로 시간을 보내긴 싫겠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세나.”

“상품 말이군요.”

“잘 알고 있겠지만 원하는 영약 하나일세. 지금 당장 비고로 가겠나? 이런 기회가 아니면 본가의 비고를 구경하긴 쉽지 않을 게야.”

유릭이 고개를 저었다.

비고 같은 은밀한 장소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득책이 아니다.

지금 이 자리, 수많은 눈과 귀가 있는 오픈된 공간에서 얘기해야 한다.

“아뇨. 미리 생각해 놓은 물건이 있습니다.”

“오호, 뭔지 물어도 되겠나?”

“불도마뱀의 심장입니다.”

유릭의 말에 불도마뱀의 심장을 알고 있는 몇몇 이들의 눈이 커졌다.

-불도마뱀의 심장이라면…….

-옛 제국의 그……?

-수도를 반파했다던 화염룡의 심장이 아닌가?

그것은 본디 제국의, 정확히는 제국 황실의 물건이다.

황가의 몰락과 함께 베르넘이 맡게 된 보물.

‘아마 베르넘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주지 않으려고 뻗대겠지.’

-제국의 물건이라서요? 하지만 제국은 이미 몰락했잖아요.

‘베르넘은 자기들이 제국의 보물을 그저 맡아 놓고 있을 뿐이라고 얘기하고 있으니까.’

카를의 존재를 찾아 빛의 신검을 뽑도록 하고, 이 정도 규모의 검술 대전을 준비해 카를의 존재를 공표하려 하였다.

그가 우승하진 못했지만 이미 빛의 신검의 주인에 대한 정보는 대륙 곳곳에 퍼지고 있을 터.

베르넘이 제국에 대해 향수에 가까운 감정을 품고 있음은 이미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니까 제국의 보물 중 하나인 불도마뱀의 심장을 반출하고 싶진 않겠지.’

-어떻게 하시게요?

‘글쎄…… 솔직히 어떤 식으로 나올지는 모르겠어. 임기응변으로 할 수밖에.’

그나마 은밀한 비고가 아닌 공개된 장소에서 얘기를 꺼내 말을 돌리기 힘들게 하였다.

장소의 이점은 획득한 셈이니, 남은 건 어떤 말에도 넘어가지 않도록 주의하는 일뿐이다.

라고 생각하며 긴장하고 있으려니.

“좋네.”

월터가 너무도 시원스럽게 웃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마야. 비고로 가서 불도마뱀의 심장을 가져오거라. 행여나 터지지 않게 주의하고.”

“아버님! 그 물건은……!”

“어서.”

마야가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지만 월터의 미소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어?’

-어라?

생각보다 일이 너무 쉽게 풀려, 유릭과 메르가 눈을 깜빡거렸다.

* * *

“축하하오.”

“대단한 검술이더군. 나도 당신한테 탈락했는데,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어.”

유릭은 어느새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들에게 적당히 대답해주며 유릭은 가슴팍에 넣어둔 목함의 존재감을 강하게 느꼈다.

월터에게 받은 불도마뱀의 심장이 들어 있는 목함.

이 자리에서 열어보진 못했지만 대신 메르의 보장이 있었다.

-안에서 느껴지는 마나를 보니까 진짜 맞아요.

혹시라도 가짜를 주는 것이 아닐까 하였지만 메르가 이렇게 말할 정도면 정말로 진짜가 맞다.

덧붙여 이 함 자체에도 상당히 뛰어난 마법이 새겨져 있다고 하였다.

심장의 마나를 봉하기 위한 봉인 마법이 걸려 있다고.

‘용케 이걸 넘겨주었군.’

유릭이 남몰래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

베르넘의 입장에서 자신은 절대 좋게 볼 수 없는 사람이다.

당초 계획했던 카를의 우승을 방해했으며, 제국의 보물인 불도마뱀의 심장을 달라고 한 남자.

당연히 갈등이 있으리라 생각해 대비하고 있었는데, 너무나 시원스럽게 건네는 것이 의문이었다.

그래도.

‘여차하면 이대로 튀면 되니까.’

무슨 속셈이든 이젠 상관없다.

물건이 한 번 손안에 들어온 이상 이건 이제 자신의 것이다.

뒤에서 뭘 꾸미든 간에 수틀리면 이대로 도망가면 그만이다.

“괜찮다면 나와도 한번 검을 겨뤄주겠나?”

“나도, 나도!”

“나도 부탁하네. 신검을 꺾은 이가 얼마나 대단한지 꼭 좀 경험해 보고 싶군.”

그 와중에도 유릭 주변의 검사들은 떠날 줄을 몰랐다.

꼭 한번 자신과도 겨뤄달라 요청하는 검사들.

개중엔 귀족도 있고 기사도 있었지만 그들은 유릭의 용병 신분에 전혀 개의치 않아 했다.

하나같이 검에 미친 이들이었기에, 그들 사이에선 검 실력이 또 다른 신분인 셈이었다.

‘뭐, 남자들끼리는 게임 잘하는 게 형이라는 말도 있었으니.’

새삼 현대에 살던 때를 떠올리니 작게 미소가 나왔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비슷하다고, 전혀 다른 두 세계였음에도 이런 비슷한 구석을 보면 꽤나 반갑게 느껴진다.

그때.

“잠시 비켜줄 수 있나?”

“헙!”

“에, 엘가이아 경!”

낮은 목소리에 유릭을 둘러싼 인파가 순식간에 갈라졌다.

엘가이아 로젠베르그.

월터의 손님으로 검술 대전을 참관하러 왔다고 하는 스카디의 소드 마스터.

6성 혹은 7성의 경지가 대부분인 참가자들 사이에서 마스터라 함은 당연히 선망의 대상이다.

아예 검을 처음 배울 때의 어린애 같은 동경이 아닌, 검의 세계에 깊이 발을 담그고 몇 번이나 한계에 부딪혔기에 생겨나는 진정한 동경.

특히 마스터까지 단 한 계단만을 남겨둔 7성의 검사들 사이에서 뜨거운 눈빛이 새어 나왔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엘가이아 경.”

“나도 반갑다, 유진. 아 유진이라 불러도 되겠지?”

“그럼요.”

유릭이 엘가이아가 내민 손을 잡고 위아래로 흔들었다.

그 얼굴은 웃고 있었으나 내심으론 경계심을 올린 상태였다.

“왕국에서의 일은 미안하게 됐군. 각하께서 특별히 명하신 일이라 손이 먼저 나가버렸어.”

“그 마차 말입니까? 괜찮습니다. 별 피해 없었으니까.”

“그전의…… 그웬델에서도 꽤나 신세를 졌었지. 후유증은 없나?”

“예. 완치했습니다. 말끔히요.”

묘한 신경전이 오가며 주변이 조용해졌다.

참가자들은 그 엘가이아와 우승자인 유릭이 아는 사이란 것에 신기해하면서도 또 납득했다.

실력 있는 검사들 사이니 언제 어디서 연이 있더라도 이상하지 않았다.

물론 그 연이 왕자 암살을 꾀한 자와 그걸 막아낸 자라는 것까진 알지 못했지만.

‘적의는…… 딱히 없어 보이는군. 왕자 암살에 실패한 분풀이로 쫓아왔던 게 아닌가?’

유릭은 이미 눈앞의 인물을 적으로 규정하고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있었다.

당장 검을 뽑을 생각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친목을 위해 다가오는 다른 검사들과 크게 차이가 없어 보였다.

‘친해질 생각은 없는데.’

유릭에게 그런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말이다.

“유진.”

“뭡니까.”

엘가이아가 무언가 결심한 듯 말을 꺼냈다.

“나랑-”

그때, 그의 말을 끊으며.

-위대한 철의 검가의 선대 가주, 검의 세계에 드높게 빛나는 위대한 별, 검성 베르트랑 베르넘 님께서 입장하십니다!

입구에서 예정에 없던 시종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대번에 사람들의 시선이 그곳으로 끌렸고, 개중엔 유릭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

말이 끊겨 또다시 목적을 이루지 못한 엘가이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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