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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124화 (124/166)

#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 124화

124화. 불도마뱀의 심장

검성 베르트랑 베르넘.

소싯적엔 최연소로 황실의 기사단장직에 올라 수많은 공을 세웠다고 하는 남자.

마지막까지 제국에 충성하며 황가의 부패를 어떻게든 바로 잡아보려 하였던 기사.

결국 실패하여 제국은 몰락하고 황가의 일족은 모조리 참살당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충심이 깃든 일화는 많은 이의 심금을 울려 베르넘의 힘이 되어주었다.

베르넘이 10대 가문에 오를 수 있던 것은 비단 검성이라 불리는 그의 실력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은 탓도 있었다.

완고하고 고집이 대단해 보이는 주름살 가득한 노인.

검성이란 칭호에 어울리지 않게 왜소한 체구의 노인이 성큼성큼 들어오더니 월터에게 다가갔다.

“앗…….”

“저…….”

검을 든 이라면 누구나 선망하는 검성의 등장에 몇몇 이들이 용기를 내 말을 걸어보려 하였다.

그러나 지옥에서 올라온 악귀 같은 표정으로 분노하는 베르트랑의 얼굴을 보고는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아무의 방해도 받지 않고 월터에게 다가간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짜악-!

손을 들어 아들의 뺨을 후려갈기는 일이었다.

“누구 마음대로 제국의 보물을 꺼내 간 것이냐?”

으르렁거리는 베르트랑의 말이 실내에 울려 퍼졌다.

아무도 소리를 내지 못한 채 숨만 죽이고 있을 때, 월터가 픽 웃으며 얻어맞은 뺨을 어루만졌다.

“그 말씀 하나 하시려고 이곳까지 찾아온 겁니까? 은퇴하시더니 대단히 한가하신 모양이군요.”

얻어맞은 뺨은 잔뜩 붉어지고 입술이 찢어졌는지 피가 흘러나온다.

그런 상태에서도 월터는 익숙한 일이라는 듯 태연하기만 했다.

짜악!

베르트랑이 불같이 타오르는 눈으로 한 번 더 월터의 뺨을 갈겼다.

“누구 마음대로 제국의 보물을 꺼내 간 것이냐?”

그러곤 똑같은 질문을 다시 한다.

월터가 피가 섞인 침을 한곳에 퉤 뱉어내곤 대답했다.

“우승자가 요청한 겁니다. 저는 그에 따랐을 뿐이구요.”

“그 용병 놈의 말에 옳다구나 건네주었단 말이냐?”

“그야 그런 규정이었으니까요. 검술 대전에서 우승한 이에게 원하는 영약 하나를 건네기로요.”

“이 병신 같은 놈이!”

퍼억!

이젠 손찌검을 하는 정도로 끝나지 않았다.

베르트랑의 발이 월터의 명치를 걷어찼고, 도저히 버틸 수 없었던 월터는 쿠당탕 테이블 위에 쓰러졌다.

“네놈은 일을 이렇게까지 진행하고도 내 뜻을 알지 못한단 말이냐? 대체 얼마나 무능한 것이냐! 대체!”

“……잘 압니다. 검술 대전도, 그리고 상품인 영약도 모두 카를 클라인을 위한 것이란 말씀이시죠?”

“그래! 그런데 우승을 뺏긴 것도 모자라서 영약까지 고스란히 건네줘? 그냥 영약도 아니고 제국의 보물을?”

“말씀에 어폐가 있군요. 카를 클라인이 우승하지 못한 건 제 탓이 아니라 순전히 그의 탓입니다. 아니, 표현이 좀 그런가요? 그가 약한 탓이 아니라 우승한 용병이 더 강했기 때문이라고 정정하죠.”

“이놈이……!”

베르트랑이 다시 한번 손을 치켜들었으나 월터도 이제는 뒤로 물러나 피해냈다.

“이쯤 하시죠, 아버지. 사람들 앞에서 그리 추태를 보이는 건 좋지 않습니다.”

“…….”

그제야 베르트랑은 주변을 좀 의식했는지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하지만 그건 분노를 가라앉힌 것이 아니라 그저 숨겼을 뿐이었다.

이미 물건은 넘어갔다.

이렇게 많은 이가 보는 곳에서 어찌할 방법은 없다는 건 알고 있다.

그가 홱 몸을 돌려 성큼성큼 살롱을 떠나기 시작했다.

도중에.

“…….”

“…….”

인파 사이에 서 있는 유릭과 눈이 마주쳤다.

순간 다시 한번 그의 눈에 불이 붙을 뻔했으나 이번에는 어떻게든 참은 그였다.

“축하한다, 용병. 아주 기분이 좋겠구나?”

그가 비꼬듯 한마디 던지고는 그대로 문밖으로 걸어 나갔다.

베르트랑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고서도 한동안 살롱 내에선 숨소리 하나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드디어 존경하던 검성을 보는가 싶었는데, 아들의 뺨을 때리는 광경을 보게 될 줄이야.

많은 이들이 충격을 받은 듯 멍해 있었다.

짝짝.

“흉한 모습을 보여 미안합니다. 가끔 부친께선 과하게 제 훈육을 하곤 한답니다. 나이를 먹을 대로 먹었지만 부모 눈에는 아직 어리게만 보이는 거겠죠. 하하하.”

월터가 손뼉을 치며 사태를 수습했다.

한쪽 뺨은 부어올랐고 입술은 터졌다. 셔츠의 명치 부근엔 베르트랑이 남긴 발자국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런 월터가 웃으며 얘기하는데 계속 분위기를 망칠 이는 없었다.

“과, 과연 소문대로 성정이 불같은 분이시군.”

“그 정도는 되어야 검성이란 칭호를 얻을 수 있는 것 아니겠나.”

“생판 남인 우리가 봐도 무서운 데 적이 보면 얼마나 무섭겠어.”

검사들이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적당한 말로 분위기를 환기했다.

그 보람이 있었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살롱은 다시 축제 분위기로 돌아왔다.

유릭은 월터가 이렇게 쉽게 불도마뱀의 심장을 내어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둘 사이가 좋지 않군.’

정확한 사정은 모르겠으나 베르트랑과 월터의 사이가 정말로 나쁘다.

그리고 보건대 제국의 이름에 집착하는 것은 월터가 아닌 베르트랑 쪽.

그래서 월터는 유릭에게 불도마뱀의 심장을 내어주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베르트랑에게 한 방 먹일 기회라며 좋아라 했을 수도.

‘뭐, 덕분에 나만 이득 봤군.’

유릭이 웃으며 인파 사이를 빠져나가려 할 때.

“잠시.”

엘가이아가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유릭이 와락 얼굴을 구겼다.

‘쯧, 이놈이 있었지 참.’

구긴 얼굴을 애써 펴며 그가 엘가이아를 돌아봤다.

“뭡니까, 경? 내게 볼일이 있다면 확실히 말해줬으면 합니다만.”

“나랑 대련해다오.”

유릭이 얼굴을 씰룩거렸다.

내가 왜?

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꾹 참으며 그가 대답했다.

“오늘은 이미 늦었으니 좀 그렇고…… 내일은 어떻습니까?”

매번 스토커를 달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이 기회에 한번 확실하게 대화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 * *

유릭은 베르넘 가의 식객으로 정중히 초청되었다.

그들이 마련해 준 방에서 유릭은 고급스러운 목함을 응시하고 있었다.

뒤에는 글렌이 서서 유릭과 함께 목함을 보았다.

“연다.”

“……그래.”

유릭이 조심스레 목함의 뚜껑을 열었다.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함의 내부가 공개되었다.

안쪽의 모습은 생물의 심장이라기보단, 흡사 귀중한 보석을 보관하는 것처럼 보였다.

벨벳에 둘러싸인 엄지손가락만 한 크기의 붉은 보석.

그것은 용의 심장이 수백 년에 걸쳐 조그맣게 응축된 물건이었다.

극도로 순수하고, 동시에 방대한 마나의 덩어리.

‘반쪽짜리라고 하더니 이 모습에선 전혀 모르겠는데.’

절반이 잘린 심장이 응축되고 응축되니 이젠 겉으로는 반인지 아닌지 알 수 없게 되었다.

더불어 이 목함도 평범한 함이 아니다.

벨벳 천을 살짝 뒤집어보니 상자 안쪽에 빼곡히 룬어가 적혀 있는 것이 보였다.

-봉인 술식이에요. 심장의 마나를 봉하고 있는 것 같아요.

‘굳이 봉인할 필요가?’

-네. 심장의 상태를 보니까 이그네시아가 죽은 시점에서 이미 폭주 상태였던 것 같아요. 그걸 막으려고 봉인한 것처럼 보여요.

제국의 수도에서 폭주하여 날뛰었던 화염룡 이그네시아.

토벌하는 것엔 성공했지만 심장의 폭주까지 막진 못하였고, 결국 당대의 마법사가 심장을 봉인하는 마법을 펼쳤다.

대충 그런 이야기인 듯싶었다.

‘이 함의 술식…….’

술식은 심장을 단단히 묶고 있었다.

자칫 실수로라도 심장이 터지지 않도록 최대한 안전장치를 걸어놓은 것이다.

아무리 죽은 후에 꺼낸 것이라곤 하지만 드래곤의 심장을 이 정도로 단단히 묶고 있다니.

이 술식은 충분히 쓸 만해 보였다.

‘로즈를 해빙할 때 쓸 수 있겠어.’

로즈를 얼린 얼음을 녹이는 것 자체는 큰 문제가 없다.

문제가 되는 것은 그 과정에서 폭주하는 월하무녀의 기운을 억누르는 것.

폭주하는 심장의 기운을 억누르고 있는 이 봉인 마법은 로즈의 기운에도 응용할 수 있겠지.

‘잘 기억해 둬. 부탁한다.’

-걱정 마세요. 이런 걸 잊지는 않으니까.

‘……근데 이거 진짜 먹어도 괜찮은 거야?’

지금껏 어떻게든 이걸 얻겠다 달려왔으나, 새삼 직접 보니 걱정이 되었다.

불도마뱀의 심장은 외부 술식에 의해 봉인되어 있을 뿐이지, 실제론 들끓는 용암 덩어리나 마찬가지다.

먹으려면 당연히 술식을 걷어내야 할 테고, 그 즉시 심장은 폭발 직전의 용암 폭탄이 되는 셈이다.

-초대의 책에는 먹어야 한다고 쓰여 있다면서요?

‘그건 그런데.’

염화신무의 비급에 적혀 있던 무공 중 하나인 폭심공(爆心功).

전신의 기운을 일부러 폭주시켜 그 폭발력을 활용하는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의 무공이라 하였다.

‘체내에서 폭주하는 기운을 제어’한다는 점에서 로즈의 상황과 무척 겹친다.

폭심공을 익히면 로즈의 기운에도 어느 정도 대처가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 유릭은 이 무공에 주목한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삼켜도 되는 건지.’

막상 폭탄을 삼키라고 하니 주저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자칫 잘못했다간 배 속에서 그대로 쾅 터져 버릴 수도 있지 않은가.

-일단 최대한 준비해서 먹어보죠.

‘……그래. 그래야지.’

그러나, 이제 와서 물러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자칫하다간 죽을 수 있다는 건 이해했다.

하지만 그게 물러서야 할 이유는 되지 못했다.

죽음의 위기라면 이미 숱하게 겪어온바.

유릭이 제 목숨만을 생각하며 주저하는 남자였다면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지도 못했다.

지금쯤 볼모 신분으로 아칸에 가 있었겠지.

‘먹고 죽을 수도 있다면, 죽지 않게 철저히 준비해 복용하면 그만이다.’

-저도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다행히 유릭에겐 메르라는 훌륭한 조력자도 있었다.

용의 심장을 복용하는 데 있어 용이 도와주는 것만큼 든든한 건 없겠지.

이러고도 실패한다면, 그저 자신의 역량이 거기까지라는 얘기일 뿐.

유릭이 다시 목함의 뚜껑을 덮었다.

이 영약은 말했듯 최적의 장소에서 최적의 준비를 마치고 복용할 예정이다.

베르넘을 나간 다음 목적지는 바로 그 최적의 장소.

이제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은…….

“메르. 육포 줄게.”

이번에 특히 일을 많이 해준 메르를 달래줄 때다.

-얏호!

메르가 날아오를 듯 점프하며 튀어나왔고 유릭은 잘 보관 중이던 육포 주머니를 꺼냈다.

그때부터 메르의 시선은 오로지 주머니에만 고정되었다.

“여전히 식탐 하난 대단하군.”

글렌이 피식 웃으며 비아냥거렸으나 메르는 대꾸하지 않았다. 들리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똑똑.

그때, 방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여니 집이라 그런지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은 마야 베르넘이 있었다.

“무슨 일이지?”

“그게…….”

마야가 이야기를 꺼내기 어렵다는 듯 우물쭈물거리다 입을 열었다.

“할아버님께서 잠시 부르십니다.”

유릭이 눈을 빛냈다.

올 게 왔군.

“바로 가지.”

그가 육포 주머니를 글렌에게 넘겼다.

“잠깐 갔다 올 테니까 애한테 육포 좀 줘. 10개만 주면 돼.”

“오늘은 좀 많네.”

피식 웃으며 주머니를 받아 드는 글렌을 두곤, 유릭이 마야를 따라 방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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