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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132화 (132/166)

#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 132화

132화. 회귀 전엔 이런 거

고금동서 땅굴 작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다.

대상에게 들키지 않을 것.

유릭에게 있어서 그 대상은 좁게 보면 루메나 교였고, 넓게 보면 이 루메루스의 모든 시민들이었다.

혹시나 만에 하나의 경우, 그래도 일반 시민에게 들키는 정도는 어떻게 수습할 수 있다.

잔뜩 돈을 안겨주고 도시에서 떠나게 하던가, 조금 거친 방법이라 쓰고 싶진 않지만 일이 끝날 때까지 납치해두는 방법도 존재는 한다.

하지만 루메나 교에 들키는 것은 절대 안 됐다.

그들이 성역에 침입하려는 불순분자를 내버려 둘 일은 결단코 없을 테니까.

“왜 말이 없어! 앙? 자클린이랑 무슨 사이냐고!”

그렇기에 유릭에겐 이 상황이 달갑지 않았다.

그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매일 오는 그 여사제 하나만 해도 거슬려 죽겠는데 뒤꽁무니에 성기사까지 따라붙다니?

“아무 사이도 아니다만.”

손님이 아니라면 경어를 쓸 이유도 없다.

“거짓말 마! 매일 널 만나러 간다고 아주머니가 그러셨다고!”

그때.

“멜딘! 너 여기서 뭐 해!”

빵 바구니를 든 자클린이 멱살 잡힌 유릭을 발견하곤 비명을 지르며 달려왔다.

그녀가 둘 사이에 끼더니 성기사를 떼어내 밀쳤다.

멜딘이라 불린 성기사가 칫 혀를 차며 한 발자국 떨어졌다.

“너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유안한테 왜 그래?”

“아니, 난 그냥…….”

“그냥 뭐?”

“……넌 몰라도 돼!”

멜딘은 그렇게 쏘아붙이더니 씩씩거리며 사라졌다.

떠나가면서 유릭을 힐끗 째려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가 가고 나자 자클린이 면목 없다는 표정으로 유릭에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멜딘이라고 제 소꿉친군데, 뭐만 하면 참견이라 피곤해요, 진짜. 지가 내 아빠야 뭐야.”

“괜찮다. 그럴 수도 있지.”

유릭이 적당히 대꾸하곤 그녀를 다시 돌려보냈다.

오늘도 빵을 너무 많이 구웠다고 전해주러 온 모양이었다.

그날 저녁 글렌과 식사를 하며 유릭이 낮에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아무래도 우리 가게가 어린놈들 연애하는 장소가 된 거 같다.”

유릭의 눈에 그 둘은 그런 사이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필 그게 또 사제랑 성기사라니 아주 골치다.

“주인님도 충분히 어리십니다만.”

“나 정도면 어른이지 뭔 소리야.”

스무 살밖에 안 된 유릭이 그렇게 얘기하자 글렌이 픽 웃었다.

그러나 유릭이 괜한 소릴 한 건 아니다.

회귀 전의 인생까지 생각하면 글렌보다 배는 더 살아온 그였으니까.

“어쨌든 전 계속 몸을 숨기면서 땅굴만 파고 있겠습니다. 지상 쪽은 부탁드립니다.”

“하아…… 그래, 알았다.”

빵을 찢어 스튜에 찍으며 유릭이 대답했다.

참고로 빵의 맛은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 * *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오는 사람에 성기사가 추가되었다.

유릭과 자클린이 이상한 짓을 하진 않는지 감시하겠단 명목에서였다.

덧붙여 이상한 짓이 뭐냐고 물었더니 말만 더듬으며 제대로 대답하진 못하는 그였다.

‘큰 문제는 아직 없지만, 긴장을 늦춰선 안 되겠어.’

자칫 신전 쪽으로 땅굴을 파고 있다는 것이 들키면 모든 것이 말짱 도루묵이다.

자신들은 도적으로 수배당해 루메루스에서 쫓겨날 것이며, 다시는 성역 쪽을 밟을 수 없어진다.

그렇게 되면 불도마뱀의 심장의 복용 장소를 새로이 찾아야 하고, 결국 베르넘에서 이 성국까지 달려온 시간도 모두 날리게 되는 셈이다.

3년을 약속하고 가문을 나왔던 유릭에게 있어선 뼈아픈 손실.

그러니 무슨 일이 있어도 성공시켜야 한다.

“너도 유안을 좀 보고 배워봐. 얼마나 섬세하고 나긋나긋해?”

“쳇! 남자는 좀 거칠고 막 나가는 게 멋있는 법이라고! 저런 샌님이 무슨…….”

“그건 너 같은 바보들이나 하는 생각이고. 여자들은 섬세한 남자를 좋아한다고.”

“젠장.”

두 사람이 적당히 놀고 있는 사이에 유릭은 몸속의 내기를 정돈하고 있었다.

하도 찾아오는 게 익숙해지다 보니 이젠 두 사람이 있는 와중에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오히려 자클린 혼자 올 때는 그녀를 상대해 줘야 했는데, 멜딘이 오면 멜딘이 그녀의 상대를 해주어서 더 편할 정도였다.

때문에 유릭을 싫어하는 멜딘과는 달리 유릭은 그가 오는 것을 꽤 환영하는 편이었다.

“분명 무슨 좋은 집안사람일 거야. 교육받은 태가 나.”

“교육은 무슨……. 그런 사람이 이런 낡은 잡화점이나 하면서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냐?”

“사정이 있을 수도 있지.”

한번은 그런 화제가 나와 두 사람이 유릭에게 물었다.

딱히 숨길 것도 없었기에 유릭은 가짜 신분의 얘기를 그대로 해주었다.

“소르닐 왕국 아드레이 자작가의 당주입니다. 몰락해서 이름만 남은 가문이긴 하지만요.”

“아…….”

“미, 미안합니다.”

괜히 아픈 곳을 찔렀다는 생각에 자클린과 멜딘이 사과를 하였다.

가짜 신분이었기에 유릭은 아무렇지 않았지만.

유릭이 비교적 태연한 듯하자 자클린이 살짝 눈치를 보며 물었다.

“저…… 소르닐 왕국에서 여기까지 왜 오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얌마, 자클린!”

멜딘이 그녀를 말렸지만 자클린의 호기심은 가라앉을 기미가 없어 보였다.

유릭이 피식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여동생을 고칠 방법을 찾으러 왔습니다.”

“예……?”

“여동생이 아파서 누워 있거든요. 여기 오면 고칠 방도가 생길 것 같아 찾으러 왔습니다.”

가문이 몰락했단 얘기만큼이나 무거운 이야기에 자클린이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멜딘이 팔꿈치로 그녀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그러니까 왜 그런 걸 또 물어봤냐며 질책하는 것이었다.

자클린이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사과했고, 유릭은 적당히 그것을 받아주었다.

‘사실 누나긴 하지만.’

유릭이 그때 보았던 얼어붙은 로즈의 모습을 떠올렸다.

신체 나이로 생각하면 여동생이라고 불러도 이상할 건 없다.

로즈의 시간은 4살인 채로 멈춰 있었으니.

더불어 멈춰 있는 시간 속에 사는 것은 로즈뿐만이 아니었다.

로즈의 소생에 수십 년의 세월을 바쳤던 어머니.

유릭의 이번 여행은 로즈는 물론 발렌티나를 구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반드시.’

다시금 목적을 상기하며, 유릭의 눈에 결의의 빛이 깃들었다.

그날 저녁, 자클린이 돌아가고 웬일로 멜딘이 혼자 남았다.

자클린이 목적인 그였기에 그녀가 돌아가고 혼자 남는 일은 전혀 없었는데.

“넌 안 가나?”

“오늘 일은 미안하게 됐다, 유안.”

“오늘 일? 아, 아까 낮에 물어봤던 그거?”

“자클린도 악의가 있어서 그랬던 건 아냐. 애가 워낙 남들에게 관심이 많고 참견을 좋아해서 그래.”

자클린은 멜딘을 참견쟁이라 불렀는데, 그는 또 자클린을 참견쟁이라 한다.

유릭이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둘 다 관심 좀 꺼줬으면 좋겠는데.

“아무튼 미안했다. 그 말 하려고 남았어.”

“딱히 미안해할 건 없는데.”

“아, 아무튼! 나 간다!”

멜딘이 도망치듯 가게를 나가 뛰어 돌아갔다.

낮의 일 따위는 금세 머릿속에서 지운 채 유릭이 가게 문을 닫았다.

숲으로 가 경공을 수련할 시간이었다.

그런 날이 계속되던 어느 날.

“주인님, 신전의 지하에 도착했습니다.”

글렌이 기쁜 소식을 전해왔다.

드디어 천신전의 지하까지 통하는 땅굴을 모두 팠다는 얘기.

루메루스에 도착한 지 시간이 꽤 지나긴 했으나, 대부분 글렌 혼자서 작업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괄목할 만한 성과였다.

“가보자.”

당장 그가 글렌을 따라 파놓은 땅굴로 들어갔다.

얼마간 걸어가니 땅굴의 끝자락엔 금세 도착할 수 있었다.

“신전 아래인 건 확실해?”

“계산상 확실합니다.”

지도와 나침반을 확인하며 거리를 측정해 본 결과, 정확히 천신전의 지하 가운데가 맞았다.

이대로 위쪽으로 뚫고 올라가기만 하면 천신전의 중심부가 나오는 것이다.

“그럼 이제 성역을 찾는 일만 남았군.”

“신전 내의 경비 상황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경비가 비는 장소, 혹은 시간대를 찾아 위쪽으로 올라간다.

가져온 천신전의 지도에는 성역이 있을 곳으로 추정되는 후보지가 몇 군데 있었다.

그것들을 하나하나 찾다 보면 성역을 발견할 수 있을 터.

“이젠 시간문제입니다. 주인님도 확실히 준비해 두시길.”

“그래.”

글렌의 말에 유릭이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성역을 발견하면 최대한 빠르게 치고 빠져야 한다.

곧바로 영약을 복용하고 흡수한 다음에, 폭심공의 구결을 외워 온다.

그 모든 것을 최대한 단시간 내에 행한 다음 빠져나가야 한다.

머무는 시간이 길면 길어질수록 들킬 확률도 올라가니까.

‘그래도 하루 정도로는 끝날 리 없겠지.’

아마 최소로 잡아도 이틀은 필요할 터.

다행히 성역에 사람이 상주한다거나 하는 얘기는 들은 바가 없으니, 위치만 알면 나머지는 일사천리일 것이다.

“오늘은 이쯤하고 돌아가자. 고생 많았다.”

“감사합니다.”

유릭이 글렌을 격려하며 가게로 돌아왔다.

어둑한 가게에 둘이 앉아, 달빛을 안주 삼아 술을 한 잔 들이켰다.

아직 모든 일이 끝난 것은 아니니 딱 한 잔만.

‘다 왔다. 남은 건 앞으로 한 걸음.’

목적을 완수하고 성국을 뜰 때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남지 않았다.

* * *

같은 시각.

유릭의 잡화점의 옆집에는 자클린과 그 가족이 살고 있었다.

침대에 누워 새근새근 자고 있던 자클린이, 어디가 불편한 듯 찡그리며 몸을 뒤척였다.

“으음…….”

그녀는 꿈을 꾸고 있었다.

꿈이란 것이 으레 그렇듯 흐릿하고 뭐가 뭔지 잘 알 수 없는 그런 꿈이었다.

꿈에서 그녀는 홀로 주저앉아 있었고, 머리 위에서 무언가가 메아리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수백의 산봉우리에서 수백 겹의 메아리가 치는 것마냥 어지러워서, 당최 무슨 소린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어두운…… 다가오는…… 괘씸한…….

그나마 몇몇 단어만이 듬성듬성 들려올 뿐이었다.

그녀가 최대한 그것들을 머릿속에 새기며 집중하고 있으려니.

“헉!”

어느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정신을 차린 그녀는 헛숨을 들이키며 침대에서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그리 덥지도 않은데도 전신이 땀으로 범벅이고, 짙은 탈력감이 몰려온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녀의 시선을 붙잡은 것이 있었으니.

“이, 이건!”

그녀의 손목 안쪽에서 루메나의 문양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 * *

다음 날 유릭은 상쾌한 기분으로 아침 공기를 쐬고 있었다.

그 상쾌함이 당혹감으로 변한 것은 한순간의 일이었다.

저벅, 저벅.

이른 아침부터 수십이나 되는 성기사가 근처를 빼곡히 둘러싸고 있었다.

순간 땅굴이 들킨 건가 생각했지만, 성기사들의 진영은 이곳이 아닌 옆집을 중심으로 포진해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인가 경계하고 있으려니.

“이 집의 사제님이 루메나의 계시를 받았단 말이 정말인가?”

“그렇다니까! 손목에 성흔이 확연히 보이고 있었다고! 지금 교황께서 직접 확인하고 있으시네.”

“세, 세상에, 그게 진짜라면 성녀가 탄생했단 소리가 아닌가!”

성기사들의 말을 엿듣곤 유릭의 표정이 굳어왔다.

자클린이 루메나의 계시를 받아 성녀의 자격을 얻었다는 얘기가 아닌가?

왜 하필 자클린이?

라는 생각 이전에 그의 머릿속을 뒤덮는 의문이 있었다.

‘회귀 전엔 이런 거 없었잖아?’

회귀 전 이 시기엔, 아니, 이 시기뿐만 아니라 그가 죽기 직전까지도.

루메나 교에 새로운 성녀가 탄생했단 소식 따위 유릭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무언가가 시작되려 한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어두운 촉수처럼 그의 다리를 휘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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