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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134화 (134/166)

#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 134화

134화. 빵값은 해야겠지

-그러니까 그 사제를 찾아가면 된다는 거죠?

‘그래. 네가 가면 쫓아내진 않을 거야. 지금 많이 불안할 테니까.’

갑작스레 계시를 받아 성녀로 추대된 자클린.

어제까지만 해도 까마득한 존재였던 교황과 추기경들에게 둘러싸여 있다면 기쁨보단 불안한 마음이 더 클 것이다.

그럴 때 귀여운, 평소에도 알고 지냈던 동물이 찾아온다면 매정하게 쫓아낼 리가 없다.

다만.

‘자클린한테 도착하기 전에 성기사한테 들키는 게 문젠데.’

신전 외부나 정원 등지를 돌아다니는 정도라면 괜찮다.

하지만 성역이 있는 내부에까지 고양이가 돌아다니는 걸 본다면 십중팔구 내쫓아진다.

-그런 거야 뭐! 걱정 마세요!

유릭의 걱정에 메르가 가슴이라도 탕탕 치듯이 자신 있게 얘기했다.

그러면서도 그 눈은 유릭이 가진 육포 주머니에만 향하고 있다.

유릭이 하나 꺼내주자 단숨에 달려들어 챱챱챱 먹기 시작했다.

“또 얘한테 시키려고 그러십니까?”

글렌이 헛웃음을 뱉으며 얘기했다.

“그러려고.”

“신전 내엔 수상한 아티팩트는 가지고 들어가기 힘들 텐데요.”

글렌은 거목림에서의 메르의 활약이 유릭이 맡긴 아티팩트 때문이라 알고 있다.

실상은 메르의 마법이었지만.

다만 글렌의 말대로 신전 안에서 마법을 쓰는 것은 무리다.

마법은 마나를 이용해 세상의 섭리를 비트는 힘.

그것을 감지하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고, 반대로 들키지 않고 쓰는 것은 극히 어렵다.

천신전은 거목림과는 달리 그런 종류의 마법 대책도 충분히 하고 있을 터.

그러나 그런 대책 따위 아무런 상관도 없다.

“괜찮아. 나중에 돌아와서 직접 알려주면 되니까.”

알아낼 것만 알아내고 돌아와서 알려주면 그만 아닌가.

그렇게 얘기하니 글렌이 의심스럽다는 눈으로 메르를 바라보았다.

“성역의 위치 정도는 알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정도 지능은 되는 겁니까? 이게?”

“이거라니, 그런 말 했다가 또 싸울라.”

“듣지도 않는데요 뭘.”

빨려 들어가기라도 할 듯 육포에 머리를 박고 있는 메르를 보며 글렌이 픽 웃었다.

이윽고 몇 조각의 육포를 전부 먹은 메르가 손을 핥으며 얼굴을 닦았다.

글렌은 그런 메르가 영 못 미더운 모양이지만, 이미 거목림에서 완벽히 임무를 완수한 경력이 있다.

설령 들킨다 해도 리스크라곤 신전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쫓겨나는 것뿐.

시도하지 않을 이유가 없기에 반대의 소리도 내지 않았다.

“메르.”

육포를 넉넉히 먹은 메르를 출발시키며, 유릭이 한마디 덧붙였다.

“만약 자클린에게 뭔 일이 생길 것 같으면 지켜줘.”

얻어먹은 빵값은 해야겠지.

* * *

열두 추기경과 교황까지 모인 자리에서 자클린은 지난밤 꾸었던 꿈에 관해 얘기했다.

그러나 들렸던 것이라곤 어두운, 다가오는, 괘씸한, 세 단어뿐.

그것으로 알아낼 수 있는 것은 매우 적었다.

하지만 셋 모두 불온하기 짝이 없는 단어.

회의실 전체가 긴장되며 교황은 그 즉시 비상을 선포해 영지 전체의 성기사들을 소집했다.

그리고 그들이 긴 시간에 걸쳐 계시의 해석과 대응에 대해 의논을 하는 사이.

자클린은 잠시 휴식을 허락받아 큰 방에 안내되었다.

“앞으로 이곳에서 머무시면 됩니다. 혹시 방이 마음에 안 드시면 다른 곳으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아, 괘, 괜찮아요.”

어제까지만 해도 똑바로 얼굴도 마주치기 힘들었을 까마득한 고위 사제가 손수 방을 안내해 준다.

하루아침에 뒤바뀐 취급에 몸 둘 바를 모르며 자클린이 방으로 들어왔다.

안내받은 방 역시 그녀는 평생토록 본 적도 없을 정도로 고급진 방이었다.

침대는 집에 있는 것보다 네 배는 커 보였고 천장의 샹들리에엔 번쩍거리는 투명한 보석이 수십 개나 달려 있었다.

‘하아…….’

그녀가 불편한 한숨을 내쉬며 침대에 앉았다.

그러다 손과 엉덩이에 닿는 보드라운 감촉에 흠칫 몸을 떨었다.

몸을 눕히고 싶어 앉은 건데 오히려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대, 대체 얼마나 비싼 원단이야!’

이런 침대를 더럽히기라도 했다간…….

아직 교육 중인 견습 사제의 봉급으론 몇 달을 모아도 모자랄 것이다.

그녀가 벌떡 일어나 방 안을 서성였다.

그러다 한쪽에 놓인 커다란 전신 거울에 눈이 갔다.

갈색 단발과 살짝 햇볕에 탄 구릿빛의 피부.

무척 건강해 보이긴 하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껏 그녀가 상상해온 성녀의 이미지와는 180도 달랐다.

여신과 같은 긴 금발에 핏줄이 보일 정도로 하얀 피부, 세게 쥐면 깨져버릴 듯한 유리 조각 같은 가녀린 인상.

그러면서도 중요한 순간에는 모두를 이끌 수 있는 강인한 내면이 깃든 여인.

그런 게 이야기책 속에 나오는 진짜 성녀의 모습이 아닐까?

‘나랑은 정반대잖아…….’

내리쬐는 햇볕 아래에서 빨래를 하느라 살은 탔고, 힘든 빵 반죽을 하느라 팔에는 근육이 붙어 있고.

겉으로는 건강하고 활기차 보이지만…… 정작 이런 중요한 순간에는 나약하기 짝이 없는.

대체 루메나께서는 왜 이런 자신에게 계시를 내리신 걸까.

방에 혼자 남으니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지금까진 그저 평범한 삶을 살거라 생각했다.

천신전의 기숙학교에 다니며 적당히 졸업하고, 어딘가의 교회에 부임하여 찾아오는 사람들과 따뜻하고 인간적인 교류를 나누는.

그런데 대뜸 자고 일어났더니 성녀가 되었다니.

물론 계시가 내렸다는 것은 루메나의 사제로서 무척 영광스러운 일이었지만, 그것이 자신의 일이라고 하니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이 시간이면 갓 구운 빵을 스튜에 찍어서 먹고 있을 때인데.’

그러고 보니 주머니에 빵 하나 가져온 것이 있었다.

꺼내보니 이미 시간이 꽤 지나 다 식어 있는 상태였다.

그걸 작게 찢어 입안에 넣으니, 익숙한 고소한 향기가 퍼져 나갔다.

집의 향기.

‘…….’

다신 갈 수 없는 것도 아닌데 괜스레 울컥했다.

마음만 먹으면 신전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집까지는 그리 멀지도 않다.

하지만 어쩐지, 다시는 어제의 자신으론 돌아가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식은 빵 탓인지 다른 무언가 탓인지 목이 먹먹해져 갈 때.

-거기서!

-젠장! 대체 어디로 들어온 거야!

왠지 바깥이 소란스러웠다.

살짝 문을 열고 내다보니 근처에서 순찰을 돌고 있던 성기사들이 뛰어다니는 것이 보였다.

다 큰 어른이 몇 명이나 뛰어다니며 작은 짐승을 쫓고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아, 성녀님! 소란스러워 죄송합니다. 어디서 들어왔는지 고양이 한 마리가 들어와서 말입니다.”

“고양이요?”

그 하얀 고양이는 지금 막 벽을 차고 점프하며 성기사의 머리를 뛰어넘고 있었다.

몸도 작은데 운동 능력이 대단한 고양이였다.

저도 모르게 눈길이 가는 모습에 지켜보고 있으려니, 그 고양이와 눈이 맞았다.

그녀의 눈이 살짝 커졌다.

“너는…… 유안의 잡화점에 있던?”

“애옹~”

고양이가 자못 반갑다는 듯 이쪽으로 훌쩍 뛰었다.

무의식중에 그녀가 가슴으로 고양이를 받아 안아 들었다.

“성녀님!”

“만지시면 안 됩니다. 더럽습니다!”

“크앙!”

고양이가 몸을 뻗더니 방금 그 말을 한 성기사의 손을 할퀴려 하였다.

다행히 불발로 끝났으나 성기사는 깜짝 놀라 몸을 움찔거렸다.

자클린이 고양이를 감싸 안으며 이야기했다.

“괜찮아요. 제가 아는 아이예요.”

“그 길고양이가 말입니까?”

“길고양이는 아니고, 제 이웃이 기르던 고양이예요. 아마 산책을 나왔다가 제 냄새를 맡고 따라왔나 봐요.”

그녀가 기쁜 얼굴로 그리 얘기했다.

잡화점에서 쓰다듬을 땐 쳐다보지도 않고 도도하게 굴던 아이인데 이렇게 따라왔을 줄이야.

거기다 스스로 자신의 품에 뛰어들기까지 하니 저도 모르게 진한 감동까지 피어오를 정도였다.

“그, 그렇습니까?”

“혹시 신전 안에 고양이를 데리고 오면 안 되는 건가요?”

“그런 규정은 없습니다만…….”

그러나 그건 굳이 만들어놓지 않았을 뿐이다.

일반 시민도 들어와 미사를 보는 신전 외부라면 모를까, 이 내부에까지 굳이 애완동물을 데리고 오는 이는 없었으니.

“뭐, 규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신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일도 아니니…… 아마 괜찮을 겁니다. 혹시 모르니 제 쪽에서 교황님께 보고드려 보겠습니다.”

“고마워요.”

자클린이 환한 얼굴로 고양이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왔다.

고양이는 그녀의 품에서 뛰어내리더니 종종걸음으로 침대에 훌쩍 올라갔다.

보드라운 비단의 감촉이 마음에 드는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몸을 웅크려 누웠다.

“후훗, 분명 이름이 메르라고 했었지?”

자클린이 바닥에 앉아 침대에 턱을 괸 채, 메르를 살짝 쓰다듬었다.

입을 쩍 벌리며 하품을 하는 메르의 모습이 그저 귀엽게만 보였다.

‘이상하지.’

똑같은 방에 아는 고양이가 한 마리 더해졌을 뿐인데.

그것뿐인데 왜인지 방금까지의 불편했던 분위기는 씻은 듯 사라져 있었다.

* * *

자클린을 쉬라고 보내고 나서도 니콜라이와 다른 추기경들의 회의는 계속되었다.

그들을 가장 골머리를 썩이게 한 것은 역시 계시의 해석에 대한 것이었다.

“어렵군요.”

“당최 무슨 뜻인지…….”

어두운, 다가오는, 괘씸한.

계시로 내려온 세 단어.

가장 단순하게 생각해 보면 이렇다.

어두운 곳에서 다가오는 괘씸한 이가 있으니 이를 찾아내어 심판해라.

무언가 이 성국에 위기가 닥쳐오고 있다는 것일까?

“우선은 성기사들을 배치합시다. 신전뿐만 아니라 도시 쪽도 경계를 늦춰선 안 될 겁니다.”

“그게 좋겠습니다. 덧붙여 수상한 이들이 숨어들지 않았나 다시 한번 검문해 보도록 하죠.”

좌우지간 지금은 주의해서 경계를 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곧바로 대응할 수 있도록.

“그리고 내일 성녀님을 데리고 성역에 들어가겠습니다. 그곳에서 기도를 올리면 다시 계시가 내릴지도 모릅니다.”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최선이었다.

교황의 결정에 다른 추기경들이 그렇게 하자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들 열두 명 중 한 명의 미간이 남몰래 찌푸려졌다.

‘제길. 설마 계시가 나를 말하는 건가?’

이 시기에 갑자기 저런 의미심장한 계시가 내리다니.

설마 자신의 계획이 들통난 것일까?

아니, 들통났다는 표현은 조금 이상할 것이다.

루메나께선 이미 모든 것을 지켜보고 계실 테니.

‘원래 좀 더 철저히 준비하고 싶었지만.’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더 이상 거사를 늦췄다간 간신히 끌어들인 성기사들이 계시에 겁먹어 술술 불어버릴지 모른다.

‘더 늦기 전에 시작하자.’

이건 쿠데타가 아니다.

수십 년을 군림하며 교단을 쥐락펴락하는 저 악독한 독재자, 니콜라이를 실각시켜 성국을 정상화하기 위한 작업.

그래, 이건 교단을 위한 일이다.

그러니 계시에서 말하는 괘씸한 놈이 자신일 리 없다.

그렇게 생각은 했지만 마음속 불안은 가시질 않았다.

‘어쩌면 혹시 몰라 늪을 끌어들인 게 잘못인가?’

성국 내부의 세력만 가지고는 도저히 교황의 세력을 넘을 수 없어, 할 수 없이 외세를 끌어들였다.

이 대륙에서 가장 은밀하고,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을, 그러나 돈만 준다면 어떤 더러운 일이라도 받아주는.

검은 늪의 저주술사들.

무려 그곳의 대마녀 중 하나가 제자들이랑 함께 찾아왔다.

어쩌면 루메나께선 그것이 괘씸하다 생각하는 것일까.

하지만…….

‘이제 와선 늦었어.’

자신은 이미 달리는 호랑이 위에 올라탄 상태다.

이렇게 된 이상 남은 길은, 최대한 빠르게 계획을 실행하는 일뿐.

더 늦어졌다간 또 일이 어떻게 틀어질지 모른다.

‘성역에 가기 직전.’

그때가 가장 좋다.

내일 아침, 교황을 비롯한 모든 추기경들, 그리고 성녀까지 한곳에 모이는 자리.

남자의 눈에 결의의 빛이 깃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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