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135화 (135/166)

#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 135화

135화. 늪의 마녀들

천신전 내부의 성역까지 도달하기까지 앞으로 한 걸음.

그러나 단 한 걸음 남은 이 시점에서 일이 터져 버렸다.

종종 놀러 오던 옆집 아이가 갑자기 계시를 받아 성녀가 되질 않나, 그 탓에 성국 전역이 비상사태가 되어 경비가 강화되질 않나.

덕분에 외지인인 유릭은 가는 곳마다 순찰 중인 성기사에게 불려 신원 확인을 받아야 했다.

신전은 물론 이 도시 전체에 찌릿찌릿한 긴장감이 감도는 상태였다.

‘계시가 그리 좋은 내용은 아니었나 보군.’

그 분위기로 얼추 짐작은 할 수 있었다.

신의 계시와 성녀의 탄생은 축제를 열어도 모자랄 기쁜 이벤트일 터.

그런데도 불구하고 성기사들이 잔뜩 긴장한 채 도시를 순찰하고 있는 걸 보면, 내려왔다는 계시가 긍정적인 내용은 아닌 모양이었다.

정확한 내용은 메르가 돌아와 봐야 알겠지만.

‘당분간은 몸 사리고 있자.’

메르가 돌아올 때까지 섣불리 움직일 필요는 없다.

계시의 내용과 성역의 위치.

정확한 정보를 얻고 나서 움직여도 늦진 않을 테니까.

지금껏 열심히 굴을 판 글렌에게 대기라는 이름의 휴가를 주고, 유릭은 한동안 경공의 수련에 매진했다.

처음 익힐 때에 비하면 성장세가 줄어들긴 했지만, 그래도 하루가 다르게 자세가 정교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남는 흔적도 조금씩이나마 줄어들고 있었고, 속도도 빨라졌다.

이제는 글렌과의 달리기 경쟁을 벌여도 충분히 쫓아갈 수 있을 수준이었다.

“대체 어디서 이런 주법을 배워 오신 건지…….”

그 빠른 습득력에 글렌이 혀를 내두를 정도였으나 유릭은 아직 멀었다며 고개를 저었다.

분명 속도만은 글렌의 주법과 엇비슷하게 나오게 됐지만, 은밀성에 있어선 아직 상대가 되지 않는다.

글렌의 주법은 전문적인 추적 기술을 배운 자가 아니라면 알아채기도 힘들 정도의 흔적밖에 남지 않았다.

‘유화 말대로 꾸준한 훈련밖에 답은 없나.’

이미 요령은 잡을 만큼 다 잡았다.

나머지는 조금씩 숙련도를 높여가는 일뿐.

그런 생각에 유릭은 하루에도 루메루스 주변의 숲을 몇 바퀴나 돌고 오곤 했다.

체력 단련도 겸할 겸 마라톤 수준의 달리기를 매일같이 해온 것이다.

물론 매일 하는 운기조식과 검술 훈련도 빼먹지 않고 있기에, 근래의 훈련량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그날도 경공을 사용해 숲을 돌던 중.

‘……?’

풍겨오는 냄새에 그가 나무 위에서 발을 멈췄다.

저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역한 냄새였다.

마치 시체가 썩는 냄새와 같은.

‘이건…….’

그는 한 번, 이 냄새를 맡아본 적이 있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가 조심스레 냄새의 진원지로 향했다.

그곳에는.

“스승님. 적당한 소재를 찾아왔습니다.”

“잘했다.”

묘령의 여인과 함께, 그녀를 둘러싼 몇 명의 노파가 보였다.

기이한 것은 가장 나이가 어린 그 여인에게, 노파들이 고개를 조아리고 있단 점이었다.

유릭이 멀찍이 떨어진 나무 그늘에 숨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의 코를 찌르듯 풍겨오는 냄새들.

콧속으로 침입하는 냄새 분자들을 모조리 태워 버리겠다며 들끓는 아랫배의 단전.

과거 데릭을 꾀어내려던 마녀 알리샤를 보았을 때와 똑같았다.

‘……늪의 마녀들인가?’

<검은 늪>의 마녀들.

그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알리샤 때와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훨씬 지독하군.’

그녀의 냄새보다 지금 풍겨오는 냄새가 몇 배는 더 지독하다는 점.

단순히 마녀들의 숫자가 많기 때문이 아니다.

노파들이 떠받들고 있는 묘령의 여인.

그 여인에게서 풍기는 냄새가 알리샤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독했다.

“정말이지 귀찮기 짝이 없구나. 이 내가 이런 변장까지 해야 하다니.”

“추기경의 말로는 꽤나 불온한 계시가 내려왔다고 합니다. 그 때문에 성국 전체의 경비가 강화되었다고…….”

“흥. 신이면 신답게 얌전히 관망이나 하고 있을 것이지, 어딜 인간 세상에 개입을 하겠다고.”

노파가 소재랍시고 가지고 온 것은, 죽어있는 한 여인의 시체였다.

그것도 루메나의 사제복을 입고 있는 시체.

젊은 마녀가 시체의 얼굴을 손바닥을 펼쳐 움켜쥐었다.

그리고 중얼중얼 무언가를 읊조리는가 싶더니,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

츠츠츠츠츠-

여인의 시체가 검게 변하며 그대로 녹아내린다.

동시에 젊은 마녀의 얼굴과 체형이 죽은 여사제의 것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겉보기론 조금의 차이도 없이 동일하다.

유릭은 이 정도 수준의 변신 마법을, 메르의 폴리모프 이외에는 본 적이 없었다.

물론 메르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역한 마법이었지만.

“옷을 다오.”

“예, 스승님.”

마녀가 입고 있던 옷을 훌렁 벗어 던지곤 노파들의 도움을 받아 시체가 입고 있던 사제복으로 갈아입었다.

그것으로 끝.

시체는 사라지고 남아 있는 건 살아 있는 한 사람의 사제뿐이었다.

‘…….’

유릭이 침을 꿀꺽 삼키며 조심스럽게 발을 떼었다.

지금은 들키지 않고 이 자리를 벗어나는 게 최선이다.

그때.

“누구냐!”

마녀의 날카로운 외침과 함께 유릭이 있던 나무로 검은 칼날이 쏘아졌다.

칼날은 순식간에 나무를 베어내더니, 그에 그치지 않고 콰과광 터져 나가 일대를 순식간에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스승님?”

“누가 있었습니까?”

주변의 노파들도 지팡이를 꺼내 들며 주변을 경계했다.

칼날을 쏘아 보낸 마녀가 의구심 짙은 눈으로 그 장소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곳엔 산산 조각난 살점도, 흩뿌려진 핏방울도,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기분 탓인가 보구나.”

묘한 기분이긴 했지만 실제로 발견된 건 아무것도 없다.

변이의 주술을 쓴 직후라 조금 예민했던 것일까.

실제로 언제나 변이의 주술을 쓸 때는 감각에 혼선이 오곤 했다.

제 것이 아닌 다른 이의 몸으로 변하는 것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단순한 착각으로 치부하며 사제복의 마녀가 머리를 쓸어 넘겼다.

한편, 그 시각 유릭은.

‘후우…… 큰일 날 뻔했군.’

가슴을 쓸어내리며 최대한 조용히 그 자리를 벗어나고 있었다.

* * *

“아, 성역이요. 금방 준비할게요. 앗, 저 혼자 갈아입을 수 있어요!”

“안됩니다, 성녀님. 중요한 의식이니 시중을 받아주세요.”

자클린이 사제들에게 둘러싸여 의식을 위한 복장으로 갈아 입혀졌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이런 대접을 받은 적 없던 그녀는 내내 목석처럼 긴장하고만 있었다.

쫑긋.

성역이란 단어에 침대에 웅크리고 있던 메르의 귀가 팔랑거렸다.

-드디어 가나?

어르신에게 받은 두 가지 임무 중 하나.

성역의 위치를 알아낼 시간이다.

다른 임무인 계시의 내용을 알아내는 것은 아직 못했지만, 그것도 시간문제였다.

-계시의 내용도 그곳에서 알 수 있을지도?

자클린이 성역으로 향하는 이유는 그곳에서 기도를 드려 또 다른 계시를 받기 위함이다.

그 의식에 따라갈 수만 있다면 이번에 들은 계시의 내용도 알아낼 수 있을 터.

이윽고 자클린의 준비가 끝나고 그녀가 방을 나서기 시작했다.

메르가 폴짝 뛰어 그녀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어? 메르?”

자클린이 조금 곤란한 표정으로 메르를 보았다.

아무리 그래도 중요한 의식의 자리에 메르를 데려가도 좋은 것일까?

고민하며 방을 돌아보니 처음 자신이 이 방에 왔을 때가 떠올랐다.

아무도 없이 혼자만 멀뚱히 놓여있던 방.

메르를 두고 가는 것도 영 마음에 걸렸다.

“성녀님. 교황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 네…….”

시중을 들어주던 고위 사제가 재촉한다.

역시 자기 마음대로 중요한 자리에 애완동물을 데리고 갈 수는 없겠지.

자클린이 아쉬운 눈빛으로 메르를 두고 일어서려고 할 때.

“교황님을 만나 여쭤보시지요.”

“예? 그래도 돼요?”

“그럼요. 그 정도 융통성도 없는 분은 아니십니다.”

사제가 살짝 미소 지으며 그리 얘기했다.

자클린이 기뻐하며 메르를 품에 안았다.

-성공이다.

메르 역시 성공의 기쁨에 눈을 초롱초롱 빛내고 있었다.

자클린이 사제의 수행을 받으며 성역으로 향했다.

정확히는 성역에 찾아가기 전, 집합 장소인 대회의실을 향했다.

성역을 약속 장소로 삼는 불경스러운 짓을 할 순 없으니 대회의실에 모두 모여 한꺼번에 움직인다고 했던 것이다.

이윽고 도착한 대회의실.

성기사들이 철통같이 둘러싼 회의실 안에 교황과 추기경들이 모여 있었다.

교단의 높으신 분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풍경.

어제에 이어 두 번째로 보는 광경이었지만 전혀 익숙해지지 않는 광경이었다.

“오오, 오셨습니까, 성녀님. 음? 그 동물은?”

“그게…… 방에 혼자 두기가 좀 그래서…….”

“과연, 상냥하시군요. 데려가도록 하지요. 의식의 도중에는 기사에게 맡겨놓으면 될 테니.”

“가, 감사합니다!”

-야호!

둘의 대화에 메르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가만히 애교만 조금 부려주면 끝나는 이렇게 쉬운 임무가 또 있을까?

그때 회의실의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이런. 제가 제일 늦은 모양이군요.”

머쓱한 듯 머리를 긁으며 등장한 남자는 30대 초중반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사내였다.

“어서 오게, 덴델 추기경. 그렇게 늦지도 않았다네.”

루메나 교의 열두 추기경 중 가장 젊은, 최연소로 추기경의 자리에 오른 남자.

그가 교황 니콜라이를 보더니 웃으며 악수를 건넸다.

그러자 니콜라이가, 악수를 나누던 그의 손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덴델이 쓴웃음을 지었다.

“교황님은 여전하시군요. 오늘도 잘 보이지 않으십니까?”

“늙어 노쇠한 것이니 어쩌겠나. 아무리 루메나 님이라 하여도 늙은 몸을 젊게 되돌려 주진 못하신다네.”

“신의 능력을 의심하다니, 불경한 거 아닙니까?”

“딱히 전능함이 신의 본질인 것은 아니지. 신의 본질은…… 아니, 그보다 자네, 기운의 흐름이 좋지 못하구만. 요새 밤잠을 설치고 있는 게 아닌가?”

“여전히 귀신같으십니다, 하하하.”

니콜라이의 정확한 진단에 덴델이 겸연쩍게 웃었다.

나이를 먹을 대로 먹은 니콜라이가 시력이 떨어진 대신 얻은 능력.

그건 사람의 손을 잡아 그 사람의 상태를 진단하는 일이었다.

물론 어느 날 내려온 초능력 같은 것이 아니라, 성국의 교황으로서 수십 년을 지내며 갈고닦아온 그가 기른 능력이다.

오랜 연륜으로 얻은 직관이라도 해도 좋겠지.

덴델이 니콜라이의 손을 놓았다.

그러곤 대뜸 질문했다.

“그런데 교황님. 혹시 다른 것은 안 느껴지십니까?”

그의 얼굴엔 여전히 싱글거리는 미소가 걸려 있는 채였다.

* * *

알리샤를 보았을 때도 그렇고 지금도 똑같았다.

어째서 염화신무는 검은 늪의 마녀들에게 유독 거세게 반응할까.

알리샤의 목을 벤 후에 유릭은 한 가지 가설을 세웠었다.

염화신무의 기운이 검은 늪의 기운과 완전히 상극이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가설.

그 이유라면 지금껏 염화신무의 기운이 일반적인 불의 기운과 달랐던 점들도 모두 설명할 수 있었다.

‘검은 늪. 지저(地底)의 마경을 본거지로 삼고 있는 저주술사들의 세력.’

지저의 마경.

과거 마신을 섬기는 수십의 마왕들 중 누구보다 마신에 가까웠으며, 마왕 중 가장 강대했던 이라고 일컬어지는 지저의 마왕을 주인으로 품고 있던 땅.

실제로 테메레르 대왕의 연대기를 보면 마신 다음으로 가장 토벌이 어려웠던 것이 지저의 마왕이라 기록되어 있다.

이른바 중간 보스 같은 느낌.

그 지저의 마경의 입구는 검은 독물이 가득한 늪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때문에 그곳을 본거지로 삼은 저주술사들의 세력을 <검은 늪>이라 부르곤 했다.

‘알리샤보다 훨씬 대단할 정도라면 상당한 고위 마녀인 것 같은데.’

당시 알리샤도 6성의 기사 셋을 단숨에 제압한 적이 있다.

염화신무 덕에 이기기는 했지만 실력만 보자면 결코 그저 그런 말단은 아니었다.

그런 알리샤보다 몇 배는 더 독한 냄새를 풍기는 여인.

분명히 이 땅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멜딘. 근무 중인가?”

도시로 돌아온 유릭이 순찰 중인 성기사를 찾았다.

아무나 괜찮았지만 마침 아는 얼굴이 있어 그에게 다가갔다.

“뭐냐, 갑자기.”

멜딘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검은 늪의 고위 마녀가 출몰했다는 건 확실히 비상사태다.

하지만 이곳이 로스카도 아니고 유릭이 해결해야 할 일은 아니었다.

그가 할 일은 이 일을 어떻게 이용해 먹을 수 있을까 고민해 보는 정도.

스스로 몸을 던져 위험을 자초할 필요가 없다.

“바깥의 숲에서 수상한 놈들을 발견했는데.”

그래서 유릭은 일단 신고부터 하러 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