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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136화 (136/166)

#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 136화

136화. 네 뒤로 숨으마

자클린이 신전에 간 이후로 멜딘은 계속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근무를 섰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녀가 걱정되는 그였지만.

“수상한 놈들이라고?”

유릭의 제보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어디지? 바로 가보지.”

“너 혼자론 조금…….”

아직 그 마녀들이 숲에 진을 치고 있을지 모른다.

멜딘 하나만 데려갈 수는 없었다.

유릭의 말에 멜딘은 자존심 상해할 법도 했지만.

“……잠깐 와봐. 자세한 얘기를 듣지.”

멜딘이 그 즉시 유릭을 데리고 경비소로 향했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의 상관과 유릭을 만나게 했다.

“잡화점 주인이 아닌가?”

그 상관은 일전에 유릭의 잡화점에 검문을 왔었던 기사였다.

“수상한 자들을 봤다 하여 데려왔습니다. 유안, 이젠 얘기할 수 있겠지?”

유릭이 고개를 끄덕이곤 찬찬히 설명했다.

숲에서 목격한 묘령의 여인과 노파들.

그리고 그 여인이 젊은 사제의 시체를 이용해 변신을 하였다는 것.

아마 늪의 마녀들이 아닐까 생각된다는 것.

당연히 갑작스럽겐 믿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상관은 시종일관 진지하게 얘기를 들었다.

“기이한 주술을 쓰는 마녀들을 봤다라……. 경비를 강화하라고 지시가 내려온 건 그녀들 때문인가? 어쩌면 계시의 내용이 혹시…….”

계시라는 단어에 유릭의 귀가 쫑긋거렸으나 지금은 일단 가만히 있었다.

상관이 찌푸린 눈으로 중얼중얼하더니,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지시를 내려 근방의 성기사들을 모두 소집했다.

“현장으로 안내해라, 잡화점 주인.”

“유안입니다.”

“그래, 유안.”

그때 멜딘이 한마디 하였다.

“잠시만요. 유안은 일반 시민인데 위험할지도 모르는 곳에 데려가도 됩니까? 혹시 전투라도 벌어진다면…….”

“어쩔 수 없다. 숲 내부는 미로와 같이 얽혀 있어 얘기만 듣는 걸론 알기 힘들어. 안내가 필요하다.”

“하지만…….”

“잡화점 주인. 불안하겠지만 내가 책임지고 지켜주겠다. 그러니 믿고 길을 안내해 다오.”

“예. 문제없습니다.”

유릭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멜딘은 아직 불만인 듯했지만 상관이 이렇게까지 얘기하고 본인도 괜찮다는데 더 반대할 수는 없었다.

유릭의 안내를 받아 멜딘과 상관을 포함한 십수 명의 기사가 도시 바깥으로 향했다.

“유안. 만에 하나라도 일이 터지면 내 뒤에 꼭 붙어 있어라. 샌님 하나 지킬 실력은 되니까.”

“참고하지.”

“참고만 하지 말고 들어.”

유릭이 새삼스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 녀석, 날 눈엣가시로 여기고 있지 않았었나?

유릭의 의뭉스러운 눈빛을 알아챘는지 멜딘이 찡그리며 얘기했다.

“널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도시민들을 지키는 게 내 일이니까.”

유릭이 피식 웃었다.

나이도 어리면서 책임감은 있군.

아니, 어쩌면 아직 어려서 더 그런 것에 목매는 것일지도.

사명감이나 책임감 같은 무형의 가치를 가진 그런 것들.

“그래. 뭔 일이 생기면 네 뒤로 숨으마.”

지킬지 어떨지 알 수 없을 약속을 하며, 유릭이 성기사들을 데리고 숲으로 향했다.

* * *

덴델의 손을 잡고 있는 니콜라이는 그의 질문에 고개를 갸웃했다.

“다른 것 말인가? 글쎄…… 왠지 몰라도 무척 들떠 있다는 것 정도?”

“하하하, 정확하시군요. 들뜰 만도 하지요. 성역에 들어가는 것도 무척 오랜만이 아닙니까.”

니콜라이가 피식 웃으며 덴델의 손을 놓았다.

“아무튼 젊다고 방심하지 말게나. 밤샘은 몸에 좋지 않아.”

“명심하겠습니다. 자 그럼 제가 마지막인 것 같으니 슬슬 준비할까요?”

덴델이 나서서 출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사제들과 성기사들에게 이런저런 지시를 내리며 열심히 움직인다.

유일하게 젊은 추기경인 만큼 더 책임감을 갖고 움직이고 있었다.

덴델이 그렇게 준비하는 사이 자클린이 니콜라이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저…… 눈이 불편하신가요?”

니콜라이가 웃으며 대답했다.

“나이를 먹으니 워낙 흐릿하게 보여서 말입니다.”

“아.”

“실루엣 정도는 보이니 큰 불편함은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아쉽더군요. 사람의 얼굴이나 혈색을 살피지 못하게 됐습니다. 눈칫밥 하나로 이 자리에 올라온 저인데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 그랬군요.”

“그래도 손을 만져보면 대충은 알 수 있답니다. 이 손이 지금은 제 눈 대신인 셈이죠.”

자클린이 불안도 잊고 살짝 감탄했다.

이것이 노년의 지혜라고 하는 것일까?

수십 년을, 그것도 교황이라는 성국의 톱 자리를 지켜온 그였으니 그런 마법 같은 능력이 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성녀님은 어제 만날 때부터 주저함이 많아 보입니다. 많이 불안하십니까?”

갑작스러운 질문에 자클린이 깜짝 놀랐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저으려던 그녀는, 조금 생각한 후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제게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해서.”

그녀는 평상시의 평온한 생활을 사랑했다.

젊을 적에 흔히 갖는 특별함에 대한 환상도 없었고, 무언가 다른 존재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그저 평범한 일개 사제로서 루메나를 섬기며 평범한 나날을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하룻밤의 꿈이 그녀를 특별한 존재로 내몰았다.

“사람은 누구나 신께서 내리신 일을 해가며 살아갑니다. 계시를 받은 당신은 그 일이 남들보다 조금 특별할 순 있겠죠.”

“역시 그렇겠죠……?”

니콜라이 역시 그렇게 얘기한다.

역시 얌전히 운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녀가 쓴웃음을 짓고 있으려니, 니콜라이가 천천히 덧붙였다.

“이렇게 생각해 보시지요. 다른 사람들은 당신을 특별하게 볼 수도 있지만 신의 입장에선 그리 특별하지 않을지도 모르지요.”

“예?”

“루메나께선 스스로의 말을 전달할 역할로 당신을 고르셨지만 그분껜 극히 평범한 일일 겁니다. 우리 교단에는 수십 년에 한 번 있는 특별한 일이라도 루메나 님의 입장에선 5분쯤 졸다가 다시 말을 건 정도의 느낌일지도 모르지요. 당신은 그저 귀가 조금 좋아 루메나 님의 목소리를 가장 먼저 들은 것뿐입니다.”

“아니, 교황님, 성녀님을 너무 깎아내리는 것 아닙니까?”

근처에 있던 다른 늙은 추기경이 끼어들자 교황이 허허 웃었다.

“그런가요? 미안합니다, 괜한 소리를 했군요.”

“……아니에요.”

옆의 추기경은 성녀의 특별함을 깎아내리지 말라고 했지만, 자클린은 오히려 편안함을 느꼈다.

자신이 생각하는 특별함 따위, 결국 저 높은 천상에서 보면 조금도 특별하지 않은 것이다.

모래 한 톨이 아무리 아름답더라도 모래사장에선 보이지도 않듯이.

“교황님은 듣던 거랑은 많이 다르시네요.”

“그런가요? 대체 어떤 말을 들어오셨던 거죠?”

“아.”

말실수를 깨닫고 자클린이 입을 어버버거렸다.

목적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든가, 성국을 제 마음대로 주무르는 악독한 독재자라든가 그런 소문을 본인 앞에서 할 순 없지 않은가.

“뭐 대충 이빨 빠진 호랑이라든가 그런 소리 아니겠습니까, 으허허허.”

“너무하는군요.”

늙은 추기경의 말에 교황이 쓴 미소를 지었다.

그때.

-서걱!

스산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회의실 내의 공기가 얼어붙으며 시선이 한곳으로 쏠렸다.

성기사들에게 이런저런 지시를 내리던 덴델 추기경.

그가 번쩍거리는 예식용 검을 빼 들고 있었고.

“꺄아아아아악!”

“덴델 추기경님!”

그의 목은 땅에 떨어져 공처럼 구르고 있었다.

덴델의 목을 벤 것은 그의 앞에 서 있던 한 명의 성기사.

“이게 무슨……!”

갑작스러운 참상에 니콜라이가 급히 몸을 일으키려 할 때.

옆에 있던 늙은 추기경이 니콜라의 목에 작은 나이프를 들이대었다.

작다고는 하지만 목의 경동맥을 끊기엔 차고 넘치는 물건이었다.

“얌전히 계시지요, 교황님. 성역에 가는 건 조금 미뤄주셔야겠습니다.”

“뮬베인 추기경…….”

니콜라이가 눈을 부릅뜨며 침음성을 토해내었다.

미리 철저히 계획이 된 것인지 성기사들이 조금의 동요도 없이 회의실 문을 가로막는다.

“어? 어어?”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클린이 어버버거렸고.

-이건 또 뭐야?

그녀의 품에 안겨 있던 메르가 어리둥절하며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 * *

“그 검은 뭐냐? 너 칼질도 할 줄 알아?”

“그냥 호신용이다. 나도 무기는 있어야지.”

“그냥 호신용이라면서 두 자루씩이나 들고 다녀?”

숲으로 향하는 길, 멜딘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얘기했다.

유릭으로선 검을 챙겨오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노파들만 있는 정도라면 맨몸으로도 괜찮을지 모른다.

성기사들도 있으니 크게 위험하진 않을 터.

하지만 사제로 변했던 고위 마녀가 함께라면 얘기가 다르다.

‘변신을 했다는 건 도시에 잠입할 생각인 것 같지만.’

하지만 이미 잠입을 했을지 아니면 숲에 남아 있을지는 아직 모를 일이다.

때문에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유릭은 성기사들과 함께 숲으로 향했다.

그렇게 얼마간 가던 중.

근방에 다다랐을 때부터 이미 위화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

그 위화감은 목적지에 도착한 후 최고조로 올라갔다.

“정말 여기가 맞나?”

“아무것도 없는데?”

마녀가 머물렀던 흔적이 전혀 없던 탓이다.

누군가 머물렀던 흔적은커녕 나뭇가지 하나 꺾이지 않은 모습에 성기사들이 눈을 가늘게 떴다.

특히 상관은 이를 데 없이 엄한 모습으로 유릭을 보았다.

“잡화점 주인.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설마 장난질을 치진 않았겠고…… 거짓 신고로 우리를 유인한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수상한 것은 유릭이 된다.

왜냐면 그들이 숲에 옴으로써 도시 내의 경비가 상당수 빠졌으니까.

불순한 목적을 가진 자가 성기사들을 유인하기 위해 거짓 신고를 하였다, 이 상황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추측이었다.

“아니요. 이곳이 맞습니다.”

물론 유릭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이봐, 유안…….”

상관과 유릭 사이에서 멜딘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을 때.

유릭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가 한쪽의 나무를 바라보았다.

아까 마녀들을 훔쳐보고 있을 때 자신이 숨었던 나무.

분명 고위 마녀의 공격으로 저 나무는 물론 그 일대가 쑥대밭이 되었었지만, 지금은 멀쩡하기만 했다.

이건 흔적을 지웠니 뭐니 하는 수준이 아니다.

아예 그런 일 따윈 없었다는 듯 숲이 그대로 복원되어 있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계십시오. 당황해서 어버버거리지 말고.”

“뭐? 무슨 소리야?”

“…….”

멜딘이 눈을 깜빡이며 반문했고 상관은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으로 유릭을 바라본다.

그는 허리춤의 검을 붙잡고, 아니, 아예 검을 뽑아 들고 있었다.

굳이 말릴 이유는 없다.

검은 뽑아 들고 있는 편이 좋으니까.

-화륵.

유릭이 손바닥을 펼쳤고, 그 손에서 자그마한 불꽃이 피어올랐다.

“뭐야. 너, 마법사였어?”

깜짝 놀라는 멜딘을 뒤로한 채 유릭이 불꽃을 조정했다.

얇고 넓게, 이 근방을 모두 덮을 수 있도록.

이윽고 불꽃을 꽈악 움켜쥐니.

종잇장처럼 얇은 불꽃이 파동처럼 일대에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염화신무의 불꽃이 퍼져 있던 검은 늪의 기운을 모조리 삼켜 태워버린다.

아지랑이와 같은 일렁임과 동시에 숲이 변화했다.

방금까지 멀쩡히 서 있던 나무가 사라지고 그 일대의 땅이 뒤엎어진 것이 드러났다.

바로 눈앞에 검은 잿가루 같은 것이 나타났다.

고위 마녀가 빨아들였던, 죄 없는 여사제의 시체가 녹아내린 흔적.

“들켰다!”

“대체 어찌!”

주변에서 느긋하게 웃고 있던 노파들이 비명을 지르며 지팡이를 들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성기사들이 경악하여 흔들리고 있었고.

“공격해! 마녀들이다!”

“쳐, 쳐라!”

유릭의 일갈에 정신을 차린 상관이 더듬거리며 명령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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