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 140화
140화. 지저의 마왕
콰아아앙!
새빨간 불꽃이 솟구쳤다. 그것은 마치 승천하는 용처럼도 보였다.
메이브의 양산과 그 안에 기생 중인 마수를 모조리 태워버린 불꽃이 천장을 뚫고 하늘로 타오르고 있었다.
유릭이 차분하게 불길에 휩싸인 녹시아를 회수했다.
“크읏……!”
양산과 마수를 던져버리곤 뒤로 뛰었던 메이브가 입술을 깨물며 유릭을 노려보았다.
그녀는 이제 빈손이었다.
딱히 무기가 필요 없는 그녀였지만 이상하게도 맨손이라는 사실이 불안했다.
반듯했던 앞머리 한 가닥이 어느새 흐트러져 있었지만, 다시 정리할 여유가 없을 정도로 그녀는 당혹감을 느끼고 있었다.
‘뭐지 저건?’
유릭의 불꽃.
그녀가 살아온 100여 년간 불을 쓰는 술사들은 수도 없이 만나 보았다.
개중엔 그 유명한 아칸의 술사들도 가득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유릭과 같은 불꽃을 뿜어내진 못했다.
그녀의 마력을 손쉽게 먹어치우고 지저의 마수조차 꼼짝을 못하는.
환하게 타오르는 태양의 불꽃.
‘이 정도로 ‘태양’을 형상화하는 데 성공한 오러가 있었다고?’
무의 기원은 자연의 존재를 닮고 형상화하는 데 있다.
그 대상은 맹수가 될 수도, 맹금류가 될 수도, 때론 곤충이 되기도 한다.
고대의 사람들은 발톱과 부리, 강인한 근육 등 인간이 갖지 못한 무기를 가진 많은 것들을 형상화하여 몸을 단련하고 그들의 힘을 얻고자 했다.
그리고 마나와 오러, 주술과 마법이 발달하기 시작했고.
그 대상은 더욱 추상적인 존재로까지 확장되었다.
그중에서도 천상의 태양은 모든 불을 다루는 이들이 꿈꾸는 이상과도 같은 대상이었으니.
‘아칸에서도 이 정도 불꽃은 보지 못했는데!’
이상이라는 것은 곧 아직 도달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100여 년을 살아온 그녀는 수많은 아칸의 술사들을 봐온 경험이 있었고, 개중엔 적으로서 목숨을 빼앗은 이도, 애인으로서 곁에 둔 이도 있었다.
그러나 누구도 태양에 도달했던 이는 없었다.
그 라그룬 아칸조차도.
‘……태양의 속성을 가진 오러라면 지저의 마나와는 극도의 상극.’
하늘의 빛은 땅속의 존재들에겐 너무나 눈부시다.
심해의 물고기가 태양의 빛을 버텨낼 수 없듯이 지저의 마나 역시 태양의 빛을 두려워한다.
상극이라는 표현도 사실 옳지 않다. 그보단 상성이라고 하는 것이 맞으리라.
나락의 존재는 하늘을 두려워하지만 천상의 태양은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주홍빛 불꽃에 휩싸여 타오르는 유릭은 그야말로 지상에 강림한 태양과도 같이 보였다.
‘하지만.’
그저 그렇게 보일 뿐, 정말로 태양인 것은 아니다.
제대로 봐라.
아무리 대단한 듯 부풀려도, 결국 눈앞에 있는 이는 약관이나 됐나 싶은 젊은 사내에 불과하니.
메이브가 떨림을 가라앉히며 손을 펼쳤다.
펼쳐진 양손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라 그녀의 전신을 뒤덮었다.
쿠구구구궁!
지진이라도 나는 듯한 굉음과 함께 그녀의 기세가 크게 부풀어 오른다.
한 손을 앞으로 뻗고선 그녀가 자세를 낮췄다.
“와라, 꼬맹아.”
그녀의 입매가 꾹 다물어졌다.
동시에 유릭의 신형이 사라졌다.
팟!
단 한 걸음에 거리를 좁힌 유릭이 검을 휘둘렀고, 그 검은 뻗었던 메이브의 팔을 잘랐다.
솨아-
물론 그건 환영에 불과했다.
잘린 팔이 검은 연기로 변하더니 유릭의 검과 몸을 휘감는다.
유릭의 공세가 멎더니 연기를 떨쳐내기 위해 불꽃을 일으켰다.
아무리 상성이라지만 그렇게 숨 쉬듯 떨쳐버릴 수 있을 만한 기운이 아니었다.
“아직 어려.”
그녀가 양손을 겹치곤 유릭을 향해 손바닥을 폈다.
그 손바닥의 중앙에 금이 그어지더니, 찌걱거리며 눈꺼풀과 같은 것이 들어 올려졌다.
빙그르르 도는 청록색의 눈동자가 이윽고 유릭에게 초점을 맞췄고, 그 눈에서 보이지 않는 강한 파동이 쏘아졌다.
“…….”
검은 연기를 모조리 태워버린 유릭이 파동을 피하며 뛰어올랐다.
동시에 그가 거꾸로 돌며 메이브의 머리에 검을 휘둘렀다.
꽈악.
그녀가 주먹을 쥐자 퍼져 나가던 파동이 뭉치더니 하늘을 향해 창처럼 쏘아졌다.
속도를 받은 창기병의 랜스와도 같은 일격이 허공에 떠오른 유릭의 심장을 정확히 노렸다.
“쯧.”
유릭이 혀를 차며 다급히 검로를 틀었다.
메이브의 목을 향하던 검을 억지로 틀어 공기의 창을 갈라낸다.
그 순간 뭉쳐 있던 공기가 다시 터지며 수십의 칼바람이 되어 유릭을 덮쳤다.
‘이걸로……!’
메이브가 다시 손을 폈다.
그 손바닥의 눈은 여전히 유릭을 보고 있다.
이제 다시 주먹을 쥐면 모든 칼바람이 중심의 유릭을 향해 뭉쳐들 것이다.
바람이 적은 지저에서 유일하게 대기를 다루는 최상위 포식자.
그녀의 전신에는 지저의 온갖 마수가 깃들어 있었고 이 눈동자 또한 그런 마수 중 하나였다.
‘뭣……?’
그때, 그녀의 등골에 오싹 소름이 돋았다.
이유를 찾아보기도 전에 그녀는 전신의 솜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끼고 즉시 땅을 박찼다.
콰아아아앙!
그녀가 서 있던 곳을 중심으로 기다란 균열이 생겨났다.
유릭이 검을 휘두른 결과.
녹시아가 아닌 엑셀레아의 검격이 그녀가 펼친 바람을 힘으로 짓누르며 그대로 땅을 가른 것이다.
“아니……!”
그녀가 급히 손을 휘둘러 다시금 바람을 조종하려 해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아무리 섬세하고 치밀한 구조를 짜 올려도 그 모든 것이 일검에 파훼된다.
마검이 갖는 압도적인 힘 앞에 마수의 능력 따윈 나뭇잎처럼 휩쓸리기만 할 뿐이었다.
“그건 반칙이잖아!”
엑셀레아의 정체는 모르지만 범상치 않은 검임은 한눈에 알았다.
보검 정도가 아니다. 신검, 혹은 마검이라 불릴 정도의 검.
그녀가 비명을 지르듯 경악성을 토하며 크게 뒷걸음질을 하였다.
안 그래도 주력인 정신계 주술이 모두 막혀서 힘들어 죽겠는데, 마검까지 가지고 있다니!
어떻게든 거리를 벌려야 한다.
100년을 살아온 그녀였으나 육체 단련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동안 마주한 모든 곤경은 늪의 주술, 그리고 사역하는 마수들로 모조리 해결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떨어져!”
이렇게 미친 듯이 짓쳐들어오는 상대는 처음 겪는 것이었다.
그녀가 휘두르는 검은 연기가 수십의 주술을 발동하고, 그녀의 몸에 깃든 마수가 그 육신을 뻗어 유릭을 방해한다.
하지만 그 무엇도 유릭의 발을 늦추지 못했다.
어떤 환상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고 뻗어 오는 마수는 그의 몸을 감싼 태양의 불꽃에 모조리 타버렸다.
“상대가 안 좋았군, 대마녀.”
그때 처음으로 유릭이 입을 열었다.
푹!
그의 검이 이미 그녀의 심장을 찌른 후의 일이었다.
“너, 너…….”
메이브가 파르르 몸을 떤다.
상대가 안 좋았다는 유릭의 말엔 한 점 거짓도 없다.
달리 말하면 유릭의 입장에선 상대가 좋았던 셈이다.
검은 늪의 대마녀라면 자존심 강한 마스터들조차 싸우기보다 도망치기를 먼저 고려한다는 까다로운 이들이다.
그 마녀들 중에서도 전혀 다른 마녀였다면.
정신계 주술을 주력으로 하는 이가 아닌 다른 이였다면 아무리 유릭이라도 이리도 쉽게 심장을 꿰뚫진 못했을 터.
‘운이 좋았어.’
찾아온 대마녀가 다른 셋이 아닌 향기의 마녀였단 사실은 유릭에게 있어선 천운이었다.
아니, 어쩌면 필연일지도.
애초에 그녀가 이 성국에 찾아오는 미래는 유릭이 알리샤를 죽였기 때문에 변화한 것이니까.
“큭…… 이, 이게……!”
메이브가 번쩍 손을 들어 유릭의 뒷덜미를 잡았다.
그럴수록 유릭은 그녀의 가슴에 박은 검을 더욱 깊이 틀어박을 뿐이었다.
메이브의 상대가 다른 남자였다면 심장이 꿰뚫린 것도, 피를 토하고 있는 이 광경도 모두 환각이었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그녀는 지난 수십 년간 적들을 농락했다.
하지만 이건 진짜다.
그녀의 환각은 녹시아가 피워올린 불꽃에 모조리 잡아먹혀 어떤 힘도 쓰지 못하고 있었다.
검은 늪의 대마녀.
지저의 마왕 드렉키아의 힘을 계승한 네 마녀들 중 하나.
“아아아아아아악!”
그녀가 괴성을 지르며 힘을 끌어온다.
전신에 사역 중인 마수와 그녀 자신이 쌓아 올린 모든 마나.
지저의 마경에 근원을 둔 그 마나가 꿰뚫린 심장에 모이며 최후의 반격을 준비했다.
쿠르르르릉!
메이브의 몸에서 폭발하듯 검은 연기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얼핏 화산재가 흘러넘치는 것처럼도 보였다.
‘위험……!’
반사적으로 유릭이 검을 빼보려 하지만 뽑히지 않았다.
찔린 심장 근육이 기괴하게 움직여 녹시아를 꽈악 붙잡고 있었다.
유릭이 크게 눈을 뜨며 고개를 든다.
그를 마주 보며 킥킥거리는 메이브는 더 이상 인간과 같은 형상이 아니었다.
피부가 지층처럼 갈라지며 눈이 검고 붉게 물든다.
솟구치는 검은 연기가 그녀뿐만 아니라 유릭까지 휩싸며 이윽고.
푸슉! 푸슈슉!
그녀의 등이 터져 나가며 거대한 날개가 돋아났다.
천사와 같은 아름다운 날개가 아닌 벌레의 것과 같은 얇고 소름 돋는 날개가 몇 쌍이나.
그것이 수없이 진동하며 온 방향에서 유릭을 덮쳤다.
“주, 죽어……!”
죽어가는 메이브가 더듬거리며 살의를 내뱉었다.
붙잡혀 꼼짝도 하지 않는 검과 사방에서 덮쳐오는 칼날과 같은 수 쌍의 날개.
어떻게든 벗어나려 움찔거리는 유릭을 보며 메이브의 미소가 점점 짙어졌고.
쾅!
작은 폭발음과 함께 유릭이 확 검을 뽑았다.
검신을 물고 있던 심장을 그대로 터뜨리며 검을 빼낸 것이다.
“아!”
메이브의 시야가 번쩍거렸다.
심장이 터지며 급속도로 생명력이 빠져나가는 신호.
하지만 그녀는 마지막까지 유릭을 공격하는 손을 늦추지 않았다.
‘…….’
죽어 나가면서도 조금도 멈추지 않는 메이브를 보며 유릭이 눈을 번뜩였다.
그의 검이 원을 그린다.
<염무(炎武)>.
유릭을 둘러싼 후광과 같은 불꽃이 붉게 타올랐다.
그것은 쇄도하는 메이브의 날개를 모조리 태우며 허공에 뻗어 나갔다.
<일도열상(一刀熱想)>.
콰과과과과광!
“아아아악!”
원에서부터 뻗어 나간 불꽃이 지저의 마나를 연료 삼아 메이브에게까지 확 들이닥쳤다.
가뜩이나 심장이 터져 죽어가던 메이브는 더 이상 이 화력을 견딜 수 없었다.
한 줄기 비명과 함께 그녀의 몸이 급속도로 떨리기 시작했고.
“아…… 아…… 하, 한 번만…… 한 번만 더 기회를……!”
그녀가 갑자기 알 수 없는 소리를 지껄이며 떨기 시작했다.
유릭이 찌푸린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그러자 지층처럼 쩍쩍 갈라진 그녀의 피부 사이에서 다른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평범한 피와 속살이 아닌, 끝없는 어둠과 수백의 작은 눈동자들.
“드렉키아! 나는 아직……!”
그녀가 뭐라 더 말을 하려 하였으나, 도중에 뚝 끊기듯 말이 끊겼다.
동시에 그녀의 눈의 초점도 사라졌다.
죽은 것이다.
그러나 유릭은 승리를 기뻐할 수 없었다.
“…….”
꿀꺽.
유릭이 침을 삼켰다.
그녀의 갈라진 피부 사이에서 보이는 끔찍한 눈동자들이 비웃듯 호를 그리며 유릭을 응시하고 있었다.
불꽃을 두르고 있음에도 척추가 얼어붙을 것처럼 서늘해졌다.
-…….
눈동자는 아무런 말도 없다.
그것은 입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유릭을 응시하는 끈적거리는 시선은 명백한 의사를 보이고 있었다.
살의(殺意).
저것의 정체는 모르겠지만 정황상 짐작은 간다.
‘드렉키아!’
지저의 마왕 드렉키아의 잔재.
꽈악.
유릭의 손이 검을 강하게 움켜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