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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141화 (141/166)

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 141화

141화. 보상은 보상대로

메이브의 시야가 불현듯 멀어졌다.

영혼이라도 빠져나온 것처럼 몸이 움직이지 않고 보이는 모든 것이 흐릿해진다.

이 느낌, 알고 있다.

언젠가 오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드렉키아의 마력에 몸을 빼앗기게 될 그 순간.

100년 전, 드렉키아의 성물을 삼키고 그 마력을 몸에 들일 때부터 그녀는 언제나 싸우고 있었다.

자신의 몸을 뺏기 위해 호시탐탐 웅크리고 있는 마물에게.

마물은 그녀에게 강대한 힘과 주술을 안겨주었지만, 동시에 언제라도 육신을 빼앗길 수 있다는 두려움을 주었다.

그날이, 결국 오게 된 것이다.

이제 그녀의 영혼과 육신을 연결하고 있는 건 아주 가느다란 실 하나뿐.

의지가 조금이라도 약해진다면 대번에 끊어질 한 가닥.

‘……흥.’

흐릿해지는 시야 속에서 한 사내의 얼굴이 보인다.

유릭 로스카.

귀여운 딸의 목숨을 빼앗은 증오스러운 남자.

저 남자를 길동무로 삼을 수 있다면 마왕에게 영혼을 파는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다.

그녀는 간신히 유지하던 한 가닥 끈을 그냥 끊어버렸다.

죽어.

* * *

검은 연기는 메이브가 기세를 피울 때처럼 요란하게 솟아오르진 않았다.

그때에 비하면 오히려 절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

하지만 등골을 타고 흐르는 위기감은 결코 그 정도가 아니었다.

‘마왕의 힘.’

천 년 전 마왕의 경지를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좋을까.

1성이니 2성이니 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기준이고, 무엇보다 천 년 전에는 널리 통용되던 기준도 아니다.

당시 마왕의 힘을 기록한 문서에는 한 손으로 산을 베었느니, 고함으로 바다를 갈랐느니 하는 동화책 같은 이야기밖에 없었다.

때문에 그들의 힘을 수치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최근 유릭은, 그것을 얼추 짐작할 만한 이야기를 들었다.

칠색의 마경을 빨아들여 크레마뉴의 힘을 그 몸에 받은 채 떠나간 그의 형, 아이작 로스카.

듣기로 레오폴딘과 알프레도, 그리고 엘린이 그를 붙잡으려 했다가 결국 놓쳤다고 한다.

한쪽 팔을 베어내고 큰 내상을 입히긴 했지만 결국은 붙잡는 데 실패했다고.

9성 둘과 8성 하나가 포위했는데도 뚫고 빠져나갔다고 한다면, 그 강함은 결코 천 년 전의 케케묵은 힘이라 폄하할 만한 게 아니었다.

‘……도망치기엔 늦었어.’

유릭이 가라앉은 눈으로 검을 내밀었다.

녹시아의 검신을 타고 5마리의 용이 휘감아 오르더니 이윽고 붉게 물든다.

5중첩의 화룡검화, 그리고 6성 마법 프로미넌스.

페널티가 어쩌고 하며 힘을 세이브할 여유 따윈 없었다.

검과 그를 감싼 불꽃이 모조리 핏빛으로 물들며 사나운 야수처럼 날뛰기 시작했다.

-…….

메이브의 시체의 갈라진 피부 틈에서 수많은 눈동자가 호를 그린다.

비웃음의 표정.

유릭이 으득 이를 갈며 단전의 남은 한 톨의 기운마저 모조리 끌어 올렸다.

그대로 검을…….

-어르신!

휘두르기 직전.

그보다 먼저 움직인 것이 있었다.

쿠웅!

용의 발톱이 쾅, 하고 떨어지며 메이브의 시체를 그대로 짓밟아버렸다.

유릭이 눈을 크게 뜨며 반사적으로 두어 걸음 물러났다.

어느새 본체로 돌아간 메르가 그 앞발로 메이브를, 정확히는 그 몸에 깃들었던 드렉키아의 잔재를 완전히 짓뭉개 놓은 것이다.

-휴우. 큰일 날 뻔했네요.

메르가 반대쪽 앞발로 이마의 땀을 닦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유릭이 그대로 굳어 있으니 메르가 다시 새끼 호랑이로 변해 유릭의 품에 돌아왔다.

보드라운 털의 감촉이 느껴졌지만, 그럼에도 유릭의 등골은 아직도 차가웠다.

‘큰일, 날 뻔했구나.’

최선을 다했다.

이 한순간에 낼 수 있는 모든 힘을 부딪칠 생각이었고, 어떻게든 극복할 생각이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하지만 방금만큼은, 지금까지와 달리 정신력만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걸 알아챈 메르가 재빨리 본체로 돌아가 놈의 시체를 밟아버린 것이고.

‘아직…….’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은 역부족이다.

근래 유릭은 꽤나 물이 올라 있었다.

적색 지대에서 서리거인을 무찌르고 1년 만에 7성에 도달해 최연소로 7성에 올랐다.

그 기세를 몰아 엘가이아의 검도 무사히 흘려낼 수 있게 되고, 신검을 들고 있던 카를도 어렵지 않게 상대할 수 있었다.

심지어 반시룡과의 일전에서도 나름 잘 움직였고.

그래서 자신감에 충만해 있었다.

누구보다 빠른 성장에 자만하고 있었다 봐도 좋으리라.

하지만 성장이 빠르다 하여 정말로 강자인 것은 아니다.

진정한 강자들은 대륙에 무수히 널려 있다.

그 엘가이아 역시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 정면에서 맞붙는다면 아마 몇 합 겨루지도 못하고 자신이 패배하겠지.

‘이젠 더 위를 봐야 한다.’

성장이 빠르다고 좋아할 단계는 지났다.

자신의 적들의 면면을 보라.

엘가이아는 이젠 적이라 하기엔 애매하니 걸러놓고 보더라도, 루카스에 샤니스, 아직 만나지 못했지만 필리페 역시 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

거기에 대륙에 단 셋뿐인 초월자, 라그룬 아칸.

아직은 움직임이 없지만 놈은 자신을 노리고 있다.

심지어 곁에 칼리오르페라는 용까지 두고 있으니 이쪽에 메르가 붙어 있다는 메리트도 없다.

그리고 칠색의 마왕 크레마뉴의 힘을 가지고 내뺀 아이작과 반시룡을 만든 정체불명의 존재까지.

‘……젠장.’

유릭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메르가 잠시 본체로 돌아갔던 탓에 천장이 모두 무너져 푸른 하늘이 보이고 있었다.

환한 태양 빛이 내리쬔다.

“으으…….”

“대체…… 무슨…….”

사람들이 조금씩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메이브의 주술에 초점을 잃었던 눈에 빛이 돌아오며, 그들은 회의실 중앙에 서 있는 유릭을 목격했다.

태양 빛을 한껏 받고 있는 그의 모습은 마치 신성한 빛에 휩싸인 영웅처럼도 보였다.

그러나.

‘…….’

정작 하늘을 보는 유릭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다.

대마녀를 쓰러뜨렸단 기쁨보단, 진정한 강자의 반열에 오르려면 아직 멀었다는 초조함만이 가득했다.

* * *

그들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방금까지 모두가 환각을 보고 있던 탓이다.

스스로가 주인공이 되어 악적을 물리치고 교황과 성녀를 구하는 환상.

분명 환상 속에서는 교황의 극찬과 함께 훈장을 수여받고 있었고, 귀엽고 아리따운 성녀님이 살포시 웃으며 그 훈장을 가슴에 걸어주고 있었다.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 웬 무너진 방에 널브러져 있는 것이 아닌가?

넘어질 때 부딪치기라도 한 듯 머리는 지끈거렸고, 몸에는 더러운 흙먼지가 가득했다.

번쩍거리는 갑옷을 입고 훈장을 받던 환상 속과는 너무나 괴리감이 컸다.

“이, 이건…….”

“꿈이라도 꾼 건가?”

한동안 혼란스러워하던 그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서히 정신을 차렸고.

무너진 회의실 중앙에 서 있는 남자를 보았다.

격렬한 전투의 흔적, 그리고 그 앞에 짓눌린 시체.

“흡!”

“웁, 우욱!”

시체를 본 그들은 얼굴이 새파래지며 입을 틀어막을 수밖에 없었다.

분명 여성처럼 보이는 그 시체는, 그러나 도저히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손과 발, 등, 옆구리 등등에서 기괴한 마수의 신체들이 삐져나와 터져 있던 것이다.

마치 잉크를 채운 풍선을 터뜨리기라도 한 듯, 여성의 시체 속에서 마수의 육신이 터져 나와 피와 진액이 튀어있었다.

개중엔 아직 완전히 숨이 끊어지지 않았는지 꿈틀거리고 있는 촉수도 보였다.

딱.

중앙의 남자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꿈틀거리는 그것들에 불꽃이 점화되더니, 타올라 잿더미로 변해 흩어졌다.

그들은 자연스레 알아챌 수밖에 없었다.

저 기괴한 마수를 가득 품은 마녀를 쓰러뜨린 이가 대체 누구인지.

“유, 유안……?”

그중에서도 남자의 정체를 알고 있는 멜딘의 눈은 혼란스럽기만 했다.

분명 잡화점 주인이라 생각했는데, 알 수 없는 마법을 사용하는가 싶더니, 이젠 격렬한 전투의 흔적의 한중간에 서 있다니.

누가 봐도 그가 저 괴이한 마녀를 물리쳤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리라.

도저히 평범한 잡화점 주인이라곤 생각할 수 없었다.

“정신 차려라!”

그때, 니콜라이의 고함이 울려 퍼지며 성기사들이 번쩍 정신을 차렸다.

“뮬베인을 잡아! 반란자들을 제압해라!”

아군, 적군 가릴 것 없이 멍해 있던 성기사들이 정신을 차리곤 다시 검을 잡았다.

메이브의 등장으로 잠시 멈췄던 전화가 다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다만 이미 승패는 명백했다.

“뮬베인 추기경이 보이지 않습니다!”

“어디 갔단 말이냐!”

“찾아!”

메이브의 시체를 본 뮬베인이 그 즉시 도주했기 때문이다.

그 어떤 강군이라도 지휘관을 잃으면 미숙한 잡병이 되게 마련.

머리를 잃고 어영부영하는 반란군들을 교황 측의 성기사들이 차근차근 제압해 나갔다.

그사이 니콜라이는 메이브의 시체를 살피며 유릭에게 다가왔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유안!”

그의 물음에 답을 알려준 것은 곁에 있던 자클린이었다.

“유안이라면?”

“그, 제 옆집에 있는 잡화점 주인이에요.”

“아…… 그 고양이의 주인이라던 사내 말이군요. 그러고 보니 잘 안겨 있군요.”

자클린의 말과 유릭의 앞섬에 들어가 있는 메르를 보곤 니콜라이는 자초지종을 파악했다.

저 고양이가 구조를 요청하는 메시지를 제 주인에게 전했고, 그 주인이 성기사들을 데리고 구하러 와준 것이다.

“감사합니다, 유안.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니콜라이가 가슴에 손을 얹곤 깊이 허리를 숙였다.

고개를 돌리며 니콜라이와 유릭을 번갈아 보던 자클린이 자신도 급히 예를 차렸다.

“고마워요, 유안. 메르가 유안한테 돌아갔었군요. 저희 메시지가 전해져서 다행이에요.”

메시지?

유릭이 메르를 보니 메르가 간단히 설명했다.

원래는 이들의 메시지를 적은 옷자락을 매고 있었는데 중간에 메이브를 만나 뺏겨버렸다고.

유릭이 고개를 끄덕이곤 손짓을 했다.

“괜찮습니다. 위험할 땐 돕고 살아야죠.”

적당히 대답하며 고개를 들라 하자 니콜라이와 자클린이 고개를 들었다.

“아직 젊어 보이는데 무척 겸손하시군요.”

“그런데 유안, 그 검은…….”

“아, 이거?”

유릭이 아무렇지 않게 녹시아를 수납했다.

당연히 검에 대해 묻는 것이 아닐 터이다.

저 앞에 죽어 있는 시체에 대해 묻는 것이겠지.

“나중에 멜딘에게도 듣겠지만, 검은 늪의 마녀들이 침입했다. 뮬베인이란 놈이 데려온 모양이야. 다른 마녀는 숲에서 모두 쫓아냈는데 신전에 잠입한 녀석이 있어서 달려왔지.”

늪의 마녀라는 말에 니콜라이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신전에 침입해 오다니……. 범상한 녀석은 아니었겠군요.”

“대마녀라고 하더군. 이름이 메이브라던가.”

“대마녀!”

니콜라이가 경악성을 터뜨렸고 자클린이 의아하게 그를 보았다.

대마녀라니, 교황이 저렇게 놀랄 정도의 존재일까?

확실히 그냥 마녀보단 대단해 보이긴 하는데.

평소 같았으면 자클린의 의문을 눈치채고 친절히 알려주었을 니콜라이였지만, 지금만은 그럴 겨를이 없었다.

늪의 대마녀라니…….

“그 대마녀를 당신이 처치했단 말입니까? 혼자서?”

“예, 뭐.”

처음엔 글렌과 함께 신전에 잠입했지만 대마녀의 주술이 펼쳐져 있음을 감지한 즉시 글렌은 퇴각시켰다.

환각을 다루는 적을 상대할 때는 아군이 오히려 발목을 잡을 수 있으니까.

물론 유릭이 글렌에게 걸린 주술을 풀어줄 순 있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다.

싸우면서 적이 계속 글렌을 노려 주술을 걸어대면 아무리 유릭이라도 케어해 줄 수가 없었다.

때문에 결과적으로 혼자서 싸우게 된 것이다.

신전을 뒤덮은 대마녀의 주술이 사라지면 돌아오라고 했으니 지금쯤 합류하러 오고 있겠지.

“대단하군요! 당신 이름이, 아 유안이라고 했던가요? 성녀님의 옆집에서 잡화점을 하는…… 아니, 잡화점?”

“취미로 하는 겁니다.”

“허…….”

당연히 그런 말을 믿을 리가 없다.

방금까지 반색하며 감사 인사를 하던 니콜라이의 표정이 살짝 달라졌다.

그 얼굴에 경계의 빛이 담기기 시작한 것이다.

“교황님.”

그때 자클린이 옆에서 그를 툭툭 치곤 귀에 입을 가져갔다.

그러곤 작은 목소리로 속닥거리기 시작했다.

작게 얘기한다곤 했지만 바로 앞에 있는 유릭에게도 훤히 들리는 소리였다.

“유안은 몰락귀족 출신인데, 동생의 병을 고치려고 성국에 왔대요.”

“동생의 병을 말입니까?”

“네. 잡화점을 하는 건 아마 이 도시에 녹아들려고 그러는 것 같아요. 그래야 동생을 고칠 방법도 더 쉽게 찾지 않겠어요?”

“과연…… 그렇군요.”

니콜라이가 짐짓 안쓰러운 표정을 짓더니 위로라도 하듯 유릭의 손을 붙잡았다.

“그런 사정이 있는 줄도 모르고 죄송합니다. 동생분이 많이 아프시다고……?”

“예. 어머니께서 봐주고 계십니다만 그것만으론 나을 것 같지 않아서요. 고칠 방법을 찾으러 여행 중입니다.”

니콜라이의 눈 깊은 곳이 작게 반짝였다.

거짓이 아니다.

그의 직감은 유릭의 말이 진실함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랬군요.”

그제야 니콜라이가 대부분의 의심을 풀고 유릭의 손을 놓았다.

그가 친절하게 웃으며 -물론 의심했다는 말은 일절 하지 않고- 얘기했다.

“당신은 이 성국의 은인입니다. 원하는 게 있다면 무엇이든 보답하겠습니다.”

니콜라이의 확언에 메르가 탁탁 유릭을 치며 좋아했다.

-이걸로 땅굴로 갈 필요도 없어졌네요! 보답으로 성역에 들여보내 달라고 하면 되겠어요!

그러자 유릭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메르.’

그가 니콜라이를 보며 대답했다.

“보답에 대한 건…… 죄송합니다만 조금 나중에 얘기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언제라도 편하실 때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그런데…….”

“그런데?”

“마녀와 싸우다 내상을 많이 입었는지 몸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듣자 하니 루메나의 성역이 어떤 상처라도 치유해 주는 장소라고 하던데…….”

눈을 크게 뜨는 메르에게 유릭이 얘기했다.

‘보상은 보상대로 받고 성역은 성역대로 들어가야지.’

이만큼 고생했으면 이 정도 잔꾀는 용납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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