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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145화 (145/166)

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 145화

145화. 한 번이 끝이 아니라고?

유릭의 눈은 이미 모든 것이 흐릿하게 보이고 있었다.

마치 시신경에 갈 힘조차 끌어모아 몸을 일으키는 것에 쏟아부은 듯했다.

도움 되지 않는 눈 따윈 감고서 그가 스스로의 내면세계에 파고들었다.

-콰과과광!

편안한 모습이었지만 실제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화염룡 이그네시아의 마력은 유릭을 지속적으로 갉아먹고 있었다.

그나마 이 정도 버틸 수 있는 것은 유릭의 초인적인 정신력과 루메나의 신력 덕분이었다.

-내게 도움받는 것을 너무 개의치 말거라.

천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바로 등 뒤에서 들려오고 있을 소리가 마치 천애절벽의 저 멀리에서 들리는 듯 멀게만 느껴졌다.

그만큼 유릭이 바깥세상이 아닌 내면세계에 집중하고 있다는 뜻.

-본래라면 유화를 위해 준비했던 대법이니 말이다.

그 대법을 자신에게 써주겠단 말이다.

개의치 말라고 하지만 유릭은 그런 마음 따윈 조금도 없었다.

당장 아파 죽겠는데 체면치레 따위가 눈에 들어오겠는가?

뭔가를 해준다니 사양 않고 감사히 받을 따름이다.

‘후우…….’

그사이 유릭은 정신을 가다듬는 것에 온 힘을 쏟았다.

더 이상 이그네시아의 마력을 진정시키는 것에 신경을 쏟지 않고 차분히 기다린다.

천마의 대법과 동시에 단숨에 승부를 보기 위해.

-쿵!

‘흡……!’

이윽고 등에 강한 충격과 함께 파직하고 몸에 번개가 내달렸다.

엉망진창인 유릭의 내면세계에 천마의 내력이 침입하며 하늘과 땅, 그리고 유릭의 몸을 이으며 한 줄기 선을 그었다.

폭풍우에 단번에 날아갈 것 같은 가느다란 실.

그러나 그 실은 폭풍우 속에서도 유유히 살랑이며 하늘과 땅을 잇고 있었다.

‘이건…….’

그 실은 이그네시아의 마력을 가라앉히는 데 도움을 주진 않았다.

하지만 유릭은 그것에서 활로를 찾았다.

거센 폭풍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

가느다란 실에 불과한 그것은 지금 이 순간엔 무엇보다 믿음직한 동아줄이었다.

‘……시작하자.’

천마의 대법이 발동됨과 동시에 유릭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번이 정말로 마지막 기회.

으득.

단단히 입을 닫은 채 그가 이그네시아의 마력을 유도하기 시작했다.

중구난방으로 폭발하는 용의 마력은 유릭 같은 일개 인간이 다룰 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아주 약간.

약간의 흐름을 만드는 정도는 가능했다.

유릭이 만든 그 약간의 흐름은 천마가 만들어준 실을 중심으로 돌기 시작했다.

-콰과과광!

무질서한 폭발의 흐름이 실을 중심으로 회전하기 시작한다.

유릭이 한 일은 가장 처음의 작은 흐름을 만든 것뿐이지만, 이윽고 다른 마력들도 점점 그 흐름에 휘말리기 시작했다.

이 혼돈 속에 탄생한 유일한 질서.

‘큭…….’

물론 그 와중에도 전신의 삐걱거림은 가시질 않았다.

뼈가 뒤틀리고 근육이 뭉개진다.

루메나의 신력이 치료를 해주고는 있지만 고통마저 없애주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을 감내하며 흐름을 관조한 결과.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른 후, 실을 중심으로 용솟음치는 거대한 마력의 소용돌이를 목격할 수 있었다.

겉으로는 평범한 용권풍으로 보이지만 조금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콰과과과광!

기겁할 정도의 폭음이 그 안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후우.’

이거면 가능하다.

천마가 중심을 잡아준 덕택에 유릭은 이 무질서 속에서 법칙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대로 시간을 들여 마력을 받아들이면, 언제가 됐든 자신은 완전히 이그네시아의 마력을 흡수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그때.

‘저건?’

유릭은 보았다.

위를 향해 치솟은 용권풍.

그것이 아슬아슬하게 하늘에 닿지 못한 모습을.

아니, 저것은 하늘이 아니다.

이곳은 자신의 내면세계. 자신은 아직 하늘을 품을 그릇은 되지 못했으니.

용권풍을 가로막은 그것은 하늘이 아니라 천장이었다.

천장, 즉 벽.

한계를 상징하는 것.

‘…….’

어찌 보면 기뻐하는 것이 맞으리라.

저 용권풍은, 반쪽이라곤 하지만 용의 심장으로 이루어진 폭풍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계에 다다르지 못했다는 건 그만큼 자신이 수용 가능한 한계치가 높다는 뜻이겠지.

하지만 지금 유릭의 머리를 지배하는 것은 그런 의미 없는 자부심 따위가 아니었다.

오기.

천장이 바로 눈앞에 보이는데 이곳에서 멈출 수는 없다는 생각뿐.

‘달리려면 지금밖에 없어.’

남이 들었다면 미쳤냐며 뒤통수를 처맞을 생각이었다.

혼자선 어찌할 수 없어 천마의 도움까지 받아가며 간신히 여기까지 왔으면서, 주제도 모르고 더 오르겠다니.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유릭은 지금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이대로 만족하고 물러났다간 저 천장을 부수기 위해 앞으로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까.

천마의 대법이 발동하고 있는 지금, 바로 이 순간이 단숨에 뚫고 올라갈 유일한 기회다.

‘아직 내 내력이 남았다.’

유릭의 단전에 있던 염화신무의 기운은 모두 이그네시아의 마력을 유도하는 데 쓰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가 용권풍을 형성한 지금.

염화신무의 기운은 할 일을 잃고 조용히 대기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 내력을 저 용권풍 속으로 집어넣는다.

다만 있는 그대로 넣어봤자 거센 폭발에 휩쓸려 순식간에 흩어질 뿐.

저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그의 내력도 이그네시아의 마력에 버금갈 폭발력을 가져야 하리라.

‘아…… 폭심공.’

그제야 유릭은 깨달았다.

초대가 어째서 폭심공을 익히는 데 화염룡의 심장이 필요하다 했는지.

애초에 폭심공이 없다면 화염룡의 마력을 100% 흡수하는 것은 불가능했던 것이다.

‘……유화야.’

유릭이 호흡을 가다듬으며 유화를 불렀다.

혹시 이곳에서도 그녀와 연락이 가능할까?

[“아저씨! 어떻게 된 거예요! 아까 그 소리는 뭐구요!”]

다행히 연락이 된다.

다만 미안하지만 자세히 설명할 시간은 없었다.

‘내가 예전에 상담했었던 폭심공의 구결 기억하고 있어?’

로즈의 상황을 알게 되고 폭심공을 익혀야겠다 판단했을 때, 유화와 상담했던 적이 있다.

벌써 몇 개월이나 지난 일이었지만 유릭은 유화가 기억하고 있을 거라 확신했다.

[“아, 네. 익히는 데 뭔가 특수한 기물이 필요하다던 그 무공 맞죠?”]

‘미안한데 그 구결 좀 천천히, 반복해서 읊어줄래? 내가 그만이라고 할 때까지 부탁할게.’

[“네? 뭐 괜찮긴 한데…….”]

의아해하면서도 유화는 군말 없이 유릭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녀가 천천히 폭심공의 구결을 읊기 시작한다.

중요한 부분은 천천히, 크게 의미가 없는 부분은 다소 빠르게.

폭심공을 익히진 못했지만 무공 구결에 대한 그녀의 이해도는 천마에 버금갈 정도다.

낭랑한 목소리를 들으며 유릭이 내력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용권풍에 섞여들어, 저 높은 천장을 뚫기 위해.

* * *

설군악은 유릭의 등에 손을 댄 채 조용히 대법을 실행하고 있었다.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을 이어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잡아주기 위한 대법.

마음만 먹으면 실같이 가느다란 게 아니라 쇠심줄처럼 단단하게도 만들 수도 있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유릭의 내면에 제삼자인 자신이 그렇게까지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그때.

“음?”

쿠웅, 하는 기척과 함께 유릭의 몸이 한 번 들썩였다.

유릭의 등에 손을 댄 그대로 설군악의 눈이 꿈틀거렸다.

쿠웅!

쿠웅!

몇 차례나 유릭의 몸이 들썩인다.

가부좌가 풀리거나 자세가 흐트러지는 것은 아니었으나 아무리 봐도 심상찮은 모습이었다.

설군악은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었다.

어떤 고수의 기세가 하늘을 뚫을 만큼 높아졌을 때, 비로소 처음으로 맞이하는 벽.

고수가 되기까지도 많은 벽이 존재하지만 천마가 보기에 그것들은 벽이라 부를 것도 아니다.

진정한 벽은 고수가 된 후, 그 후에 처음으로 찾아온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임맥과 독맥 양맥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그 벽.

‘환골탈태를 이루고 있구나.’

설군악의 눈이 크게 뜨이며 반짝이기 시작했다.

환골탈태.

몸 자체가 무공을 익히기 최적화된 신체로 변화하는 과정.

그 자체가 놀라운 것은 아니었다.

환골탈태 정도야 그 역시 수십 년도 전에 경험한 바이고, 탈태를 이룬 고수도 수없이 보아왔다.

그가 놀란 이유는 단 하나.

‘폭주하고 있던 그 내력만으론 벽에 도달하지 못했을 텐데?’

유릭의 내면에 대법을 행하고 있는 그는 유릭의 몸 상태를 상상 이상으로 자세히 파악하고 있었다.

유릭의 안에서 폭주하고 있던 정체불명의 기운.

그것의 힘만으론 벽에 오르기는 아슬아슬하게 무리였다.

아슬아슬하다고는 하지만 그 작은 차이는 누군가에겐 수년, 수십 년이 될 수도 있을 그런 차이였으니.

그럼에도 유릭은 벽에 도전하고 있다.

그것이 뜻하는 바는 하나였다.

유릭이 기운의 폭주를 진정시키는 걸로는 만족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멍청한 놈. 진정 목숨이 아깝지 않은 모양이더냐.’

멍청하다고 욕하고 있지만 설군악의 입에는 짙은 미소가 감돌았다.

위기 상황에서 기회를 찾아내는 것.

그리고 기회를 찾아내었을 때 물러서지 않고 탐욕스럽게 잡아채는 것.

말로 하기는 쉽지만 누구도 간단히 행하지는 못할 일이다.

그 일은 유릭은 하고 있는 것이다.

조금만 삐끗했다간 당장 목숨이 날아간다 하는데도.

-콰아앙!

이윽고, 몇 번이나 되는 들썩임 끝에 유릭의 몸이 가장 크게 움직였다.

환골탈태의 과정은 익힌 무공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유릭의 경우는 불이었다.

발끝부터 붙기 시작한 불이 그의 전신을 불태우며, 낡은 세포를 태우고 뼈와 근육을 바꾸었다.

수년에 걸친 세월 동안 전신에 입었던 자잘한 흉터들이 모두 사라지며 뽀얀 피부가 돋았다.

설군악이 피식 웃으며 유릭에게서 손을 떼고 뒤로 물러났다.

더 이상 대법을 지속할 필요는 없다.

유릭의 신체가 무공에, 정확히는 그가 익힌 염화신무에 가장 적합하도록 변화하는 과정.

그것은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것만큼이나 경이로운 광경이었다.

이윽고.

“…….”

유릭이 천천히 눈을 떴다.

하지만 그의 눈은 아직 이 성역을 바라보고 있진 않았다.

다른 곳을 보고 있다.

초점 없는 두 눈앞에서 설군악이 물었다.

“무엇이 보이느냐.”

“…….”

유릭의 입이 달싹거린다.

말로 형용하기가 힘든 것인지 몇 번이나 우물거리던 그가, 마침내 대답했다.

“문이…… 보입니다.”

그것은 하늘 위의 하늘, 상천(上天)에 오르기 위한 문.

무림의 방식을 따르자면 절정을 넘어선 초절정의 경지에 이른 무인이 목격하는 문이다.

유릭의 세계에선 그것을 8성, 마스터라 칭하였다.

상천의 문이 보인다는 건 유릭 역시 그 경지에 다다랐단 뜻이었지만.

“문이라…….”

설군악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가 보기에, 유릭에게는 아직 이르다.

미안한 말이지만 유릭은 아직 준비가 안 됐다.

지금 당장 억지로 초절정에 오를 순 있겠지만 그 조급함은 언젠가 그를 망치게 될 터이니.

“물러나거라 유릭. 아직 네겐 이른 길이다.”

“하, 지만…….”

유릭이 망설인다.

당연한 일이다.

마스터의 길이 눈앞에 보이는데 이제 와서 물러나란 것이 말이 되는가?

그러나 설군악은 단호했다.

“네가 지금 문을 보고 있는 것은 정체불명의 기물과 내 대법이 있기 때문 아니더냐. 당장 그 경지에 오른다면 필히 후회할 날이 올 것이다.”

“…….”

“나를 믿거라. 걱정하지 않아도 너는 반드시 다시 그 문 앞에 서게 될 것이니. 만약 네 목적이 문을 보는 것만으로 끝이라면 상관없겠지만 그렇지는 않겠지?”

“…….”

유릭은 망설였다.

정말로 이대로 물러나도 되는 것일까?

이것이 일생일대의 찬스가 아닐까?

그러나.

“문의 너머를 보고 싶지 않더냐.”

문의 너머.

그 말이 결정적이었다.

그 지평을 보고 싶다면 지금은 물러나야 한다는 천마의 말.

모든 망설임을 털어내고 유릭의 눈에 빛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의 육체를 태우고 새로 만들던 염화신무의 불꽃이 갈무리되더니 그의 양 눈에 모인다.

번쩍, 하는 안광과 함께 그가 진정한 의미로 눈을 떴다.

비록 마스터의 길에선 물러났지만 그가 이룬 것이 사라진 건 아니다.

문을 보았다는 것, 그리고 임독양맥을 뚫어 환골탈태를 이룩한 것.

“축하한다, 유릭. 첫 탈태를 이루었구나.”

“노부께서 돌봐주신 덕택입니다.”

설군악이 내미는 손을 이번에야말로 붙잡으며 유릭이 샘에서 일어났다.

그의 눈에선 이전과는 전혀 다른 형형한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성과는 나중에 확인해 보는 걸로 하고 지금은 일단 본래 세계로 돌아가야…….

‘아니, 잠깐.’

그때 문득 방금 천마가 한 말이 신경이 쓰였다.

첫 탈태라니.

‘이거 한 번이 끝이 아니라고?’

허 참, 유릭이 헛웃음을 토했다.

간신히 벽을 넘었다 생각했는데, 넘고 보니 더 크고 험난한 산들을 수도 없이 마주친 기분.

‘이게 우매함의 봉우리라는 건가.’

대학 시절 들었던 말을 떠올리며 유릭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곳에 도달했다는 것 자체가 그에겐 크나큰 성장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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