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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147화 (147/166)

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 147화

147화. 남쪽으로

홀로 루메루스를 떠난 지도 꽤 시간이 흘렀다.

남부로 향하는 도중의 평원.

유릭은 근처에 있는 호수에서 말에게 물을 먹이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폭심공을 더 수련할 곳이 필요한데.’

나무 그늘에 앉아 유릭이 손가락을 살짝 비볐다.

파파팟!

그러자 자연스레 일어난 기운이 폭죽처럼 터지며 눈앞을 수놓았다.

흡사 마술 같은 그것은 사실 폭심공의 기초적인 내력을 발출한 것일 뿐이었다.

‘자체적으로 내력을 폭주시키는 공능.’

경지가 낮을 때의 그것은 단순한 폭발 마법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경지를 높이게 되면 흡사 주화입마와도 비슷한 상태가 된다고 한다.

스스로 주화입마에 들어 폭주하는 기운을 유도해 한계를 뛰어넘는 무공.

-말도 안 된다니까요! 일부러 주화입마에 들기 위한 무공이라니 들어본 적도 없어요!

과거 폭심공의 구결을 처음 알려줬을 때 유화는 그런 소릴 하며 비명을 지른 적이 있었다.

물론 그 뒤에 한마디 덧붙이긴 했다.

-그야 무림의 역사는 깊고도 넓으니 제가 모르는 무공이야 수없이 많겠지만…… 하지만 적어도 제가 아는 한에는 없네요.

유화가 저리 얘기할 정도니 폭심공이 흔한 종류의 무공은 아닌 듯했다.

일부러 주화입마에 든다는 발상 자체가 무림에선 매우 드문 일인 모양.

무림의 상식 따윈 거의 없는 유릭은 그러려니 받아들일 뿐이었지만 말이다.

‘어쩌면 그래서 이그네시아의 심장까지 필요했던 걸지도.’

폭심공의 습득 조건에는 화염룡의 심장이 명확하게 기술되어 있다.

무림에는 존재하지 않는 화염룡의 이름이 구결에 등장한다는 것부터 심상치 않은 일이다.

그 말은 즉 폭심공은 무림이 아닌 이 세계에서 창안된 무공이라는 뜻.

아마 초대가 이 세계서 얻은 지식을 십분 활용하여 무공과 결합한 것 결과물이 아닐까.

그렇다면 무림의 상식에 벗어나는 것도 이해는 간다.

‘역천의 무공이니 뭐니 대단한 말이 쓰여 있던 것 같은데……. 뭐 그냥 구결에 흔히 있는 수식어겠지.’

폭심공의 구결에는 무려 순리를 거스르는 역천의 무공이란 굉장한 말이 붙어 있었다.

그렇다고 크게 대수롭게 여기진 않았다.

유릭이 본 온갖 무공 구결들엔 정말 하늘을 뚫고 우주까지 치달을 듯한 거창한 것들이 많았다.

당연히 묘사만 그럴 뿐이지 실제 현실은 그보다는 훨씬 약했으니, 의미를 두는 만큼 손해였다.

대충 그런 이미지를 잡으라는 느낌으로 적어놓은 말이겠지.

‘뭐 대단한 건 대단한 거고, 내가 숙달해야 할 건 다른 부분이란 말이지.’

유사 주화입마에 들게 되는 폭심공은 당연히 그 상태를 제어하는 방법도 존재한다.

사실상 그쪽이 유릭의 본래 목적이었다.

폭주하는 기운을 -천마의 도움 없이- 다스리는 방법을 충분히 익혀놔야 월하무녀의 폭주에도 대처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그러려면 일단 폭심공 자체의 경지를 올려야 했고, 그 경지를 올리기 위해선.

‘실전이 최곤데.’

실전 경험보다 좋은 건 없다.

가능하면 훈련이나 대련이 아닌 진짜 실전.

그 때문에 유릭은 좌우지간 남쪽으로 내려가고 있는 것이었다.

로스카 출신인 그로서는 아래로 내려갈수록 위험도가 증가한다.

가문과의 거리도 멀어지고, 13기사단의 배치도 더 듬성듬성해지며, 로스카와 동맹인 왕국이나 가문들도 뜸해진다.

반대로 아칸의 영향력은 완전히 역방향으로 작용한다.

거리가 가까워지고, 놈들의 심복은 더욱 자주 보이며, 아칸의 동맹국들이 넘쳐나게 되는.

내려갈수록 실전에 맞닥뜨릴 가능성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지는 셈이다.

-그냥 싸우러만 가는 거예요?

‘그건 아닌데.’

다만 단지 그것 때문에만 내려가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요?

‘나중에 얘기해 줄게.’

괜히 숨기니 메르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말을 안 해주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회귀 전의 지식이기 때문에.

‘근데 그 지식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완전히 아칸의 영역으로 들어가야 한단 말이지.’

회귀 전 20살 때 유릭은 아칸의 볼모로 팔렸다.

그곳에서 수년간 지내며 온갖 것들을 봐오고 들어왔다.

그러니 자연스럽게도 그가 가진 회귀 전의 지식은 아칸에서 일어난 일들로 치중되어 있었다.

단지.

‘……지금 수준으론 힘든데.’

지금의 경지로 아칸의 영역에 파고드는 것은 자살 행위인 것이 문제일 뿐.

지금껏 아무 일이 없었다면 모르겠지만 티르옌에서의 일이 있다.

라그룬 아칸이 자신에게 탐욕스럽게 눈독 들이던 그 일.

그 후로 아칸 놈들과 부딪친 적은 없었다.

아마 조약을 맺은 직후이니 조금은 몸을 사리고 있는 거겠지.

하지만 그 라그룬이 언제까지나 가만히 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어쩌면 이미 물밑에선 움직이고 있을지도…….

‘어쨌든 당장 아칸에 쳐들어가는 건 무리고.’

대신 그 가까이 정도는 갈 수 있다.

아칸의 영역 가까이에 위치해 있으면서 중립적인 스탠스를 유지하고 있는.

더불어 아칸이라고 해도 좀처럼 손을 뻗치기 힘들 정도로 커다란 대도시.

운하도시 벨파스트.

골든하트의 여섯 세력 중 하나인 벨스 가의 영지로 하루에도 수많은 배와 마차가 드나드는 물류와 상업, 그리고 문화의 도시다.

호사가들이 말하길 대륙에서 가장 돈이 많은 도시.

‘이맘때 그곳이 좀 시끌시끌했었지.’

흘러가는 소문으로 얼핏 들었던 터라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진 모른다.

다만 소문이 돌 정도의 무언가가 터졌다는 정도는 알고 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가보면 정확히 알게 되리라.

“슬슬 일어나자, 메르.”

-넹.

풀밭에서 쉬던 메르를 거둬들이고 유릭이 말에 올라탔다.

히히힝-!

그를 태운 말이 우렁차게 울며 남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 * *

“후우…….”

글렌이 한숨을 내쉬었다.

차디찬 기온 탓에 하얗게 얼어붙은 숨이 하늘로 피어올랐다.

방한복을 껴입은 그의 눈앞엔 거대한 얼음의 성이 있었다.

로스카의 본가, 겨울성.

성안으로 들어간 글렌이 가장 먼저 한 일은 가주에게 알현을 신청하는 것이었다.

“왔느냐, 글렌. 발렌티나는 바빠서 내가 대신 왔다.”

“노친네?”

“쯧. 네놈의 입버릇은 어째 해가 갈수록 심해지는 것 같구나.”

그러나 알현실에 들어온 것은 가주 발렌티나가 아닌 레오폴딘이었다.

그러고 보니 요새 가주가 두문불출하며 술법 연구를 하고 있단 얘기는 들었다.

아마 그 때문에 레오폴딘이 대신 온 것이겠지.

“뭐 됐고, 말해보거라. 유릭의 곁을 지키라 하였는데 어째서 혼자 돌아온 것이지?”

건방진 말투에는 크게 개의치 않았던 레오폴딘이 유릭의 곁을 떠난 것에는 강하게 반응한다.

흡사 사냥감을 앞에 둔 사자와 같이 강렬한 안광이 쏘아졌다.

허튼소리를 했다간 당장 삼켜버리겠다는 듯.

“그 도련님의 명령으로 온 겁니다.”

“유릭의?”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에 글렌이 차분히 그간의 일을 얘기했다.

핵심만 짚어 보고하는 것에는 매우 익숙한 그였으나 그럼에도 이야기는 길어졌다.

그만큼 많은 일이 있던 탓이다.

흑철검가 베르넘에서 카를 클라인과 신검과 조우한 일.

거목림에서의 일과 그 심층에서의 일.

검성의 명령을 받은 제국 특암부의 습격을 받았던 일.

베르넘에서의 일만 해도 이 정도인데 여기에 루메루스의 일까지 포함하면 하루를 꼬박 얘기해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핵심만 짚어 차 두어 잔 마실 시간에 모든 보고를 마칠 수 있었고.

“으하하하하하!”

잡아먹을 듯 노려보던 레오폴딘의 눈빛은 어느새 기꺼움으로 가득한 것으로 변해 있었다.

“그랬단 말이더냐? 우리 유릭이 검성 그 노친네한테 한 방 먹였구나! 으하하하! 심지어 루메루스에선 교황에게 빚을 지웠다고?”

“빚은 남지 않았습니다. 그 대가로 성물을 받아왔기에.”

“상관없다, 상관없어. 은혜를 입혔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지 않더냐.”

레오폴딘이 기분 좋게 웃으며 턱의 수염을 쓰다듬었다.

손주의 성과에 무척이나 기뻐하는 조부의 모습.

그러나 글렌은 보았다.

레오폴딘의 눈에 담긴 것은 그저 기쁨만이 아니었다.

경악.

이 짧은 시간에 유릭이 이룩한 것에 대한.

‘역시 노친네라도 기겁할 수밖에 없나 보군.’

글렌은 괜히 기분이 좋아져 피식 입꼬리를 올렸다.

그동안은 유릭 옆에 있는 자신만 놀라 자빠졌었는데 같은 감정을 가진 동료를 얻게 되니 친숙함이 느껴진 것이다.

“큼큼…….”

글렌이 웃는 이유를 눈치챘는지 레오폴딘이 헛기침을 하며 웃음을 멈췄다.

“내 너를 믿고 유릭도 믿고 있으니 이런 말을 하고 싶진 않은데 말이다……. 정말이더냐?”

“뭐가 말입니까?”

“전부!”

“당연히 전부 정말입니다. 제가 보고할 때 거짓말하는 거 봤습니까?”

“크음.”

레오폴딘이 머쓱한 표정으로 관자놀이를 긁었다.

방금 그가 웃어젖힌 건 정말로 기뻐서 그랬던 것이다.

그 감정엔 한 점 거짓도 없다.

하지만 한편으로 의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베르넘에서 신검을 탈취하고, 마경의 심층을 발견해 그 알테라를 움직이게 만들었으며, 검은 늪의 대마녀를 처치해 성국의 반란을 막았다고? 고작 1년 남짓한 시간에?”

“아뇨.”

“역시 좀 과장한 것이냐?”

“탈취는 아니죠. 정당하게 양도받은 겁니다.”

글렌이 검집에서 라엘라를 살짝 빼 보여주었다.

그 사이에서 새어 나오는 약간의 빛만으로 레오폴딘은 그것이 신검이라 확신할 수 있었다.

그 빛엔 그만한 격이 담겨 있었으니까.

글렌이 라엘라을 다시 집어넣었다.

“나머지는 뭐, 얼추 맞군요.”

“허, 허허…… 결국 모두 진실이란 말이군…….”

아무리 레오폴딘이라도 이번만은 넋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가문을 나간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간에 이 정도의 성과를 얻어내다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유릭이 범상치 않은 아이임은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다.

하지만 가문을 나간 것이 처음은 아니지 않은가?

임무로 사막에 간 적도 있었고 아칸을 만나러 티르옌에도 간 적이 있다.

물론 그때도 유릭은 큰 성과를 내긴 했지만, 적어도 이번 여정만큼은 아니었다.

그 정도로 이번에 얻어낸 성과는 차원이 달랐다.

‘혹시…….’

레오폴딘의 머릿속에 한 가지 이유가 떠올랐다.

유릭의 과거의 여정과 이번 여정은 한 가지 큰 차이가 있다.

물론 나이와 경지가 다르다는 것도 있긴 했지만, 그보다는 더욱 근본적인 차이.

과거의 여정은 가문이 정한 목표와 목적지가 있었지만, 이번 여정은 온전히 유릭의 자유의사로 떠났다는 점.

그 차이가 혹시 여정의 결과물에도 크게 반영된 것일까?

정해진 틀이 있는 것보다 자유롭게 풀어놓는 편이 유릭의 재능을 보다 끌어낼 수 있다는 뜻일지도.

“흐음…….”

레오폴딘이 사색을 거치며 스스로의 생각에 빠져들려 하고 있다.

아직 보고할 것이 남아 있어 글렌은 그가 완전히 빠져들기 전에 품을 뒤졌다.

“이게 교황에게 받아온 은촛대입니다. 불을 붙이면 담겨 있는 신력이 풀려나온다더군요.”

“아, 그래. 가져오느라 고생 많았다.”

레오폴딘이 상자를 열어 촛대를 실제로 확인했다.

정말로 글렌의 말처럼 루메나의 신력이 가득 담겨 있는 촛대였다.

방금까지 조금 멍했던 레오폴딘의 눈이 번뜩였다.

‘이거라면.’

로즈의 소생에 분명히 도움이 된다.

더불어 글렌을 시켜 굳이 미리 보내온 유릭의 저의까지 알 수 있었다.

발렌티나에게 미리 건네줘서 술법의 작성에 이 촛대를 포함하란 뜻이었다.

대법을 치르는 날 부랴부랴 가져오는 것보단 대법의 한 요소로 포함하는 것이 훨씬 효과가 좋을 테니까.

‘어찌 이리 사려가 깊을꼬…….’

레오폴딘의 눈이 아련해졌다.

유릭이 대견한 것도 있지만, 그 이상으로 이런 뛰어난 아이가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는 것이 안타까웠다.

본래라면 또래와 경쟁하고 재능을 꽃피우는 데에만 모든 시간을 쏟아도 모자랄 나이인데.

젊을 때의 그 귀중한 시간을 유릭은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있는 것이다.

레오폴딘의 입가에 쓴맛이 맴돌았다.

“유릭은 이제 어디로 간다고 하더냐?”

“오는 도중에 만난 13기사단의 전언으론 벨파스트를 향하고 있다 들었습니다. 시간과 거리를 생각해 보면 지금쯤 도착했을지도 모르겠군요.”

“벨파스트? 이거 참 우연이로군.”

“그곳에 뭐가 있습니까?”

“발렌티나의 심부름으로 발터가 비밀리에 그곳에 가 있다. 꼭 필요한 재료가 경매로 나온다지 뭐냐.”

레오폴딘이 마침 잘 됐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유릭 그 아이 혼자서 이만큼이나 되는 일을 하였으니, 이젠 어른에게 의지해도 좋을 때다.

“유릭과 발터에게 연락하거라. 둘이 같은 곳에 있으니 합류하여 발렌티나의 심부름을 수행하라고. 아, 혹시 유릭에게 다른 목적이 있다면 발터에게 그쪽도 거들어주라 일러라.”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글렌이 고개를 숙이곤 뒷걸음질로 떠나갔다.

알현실에 혼자 남은 레오폴딘이 한쪽 팔로 턱을 괴며 은촛대를 살펴보았다.

루메나의 성역과 비슷하게 즉사나 질병만 아니라면 어떤 부상자도 단숨에 치유해 준다는 성물.

성국의 끈끈한 동맹국이 아니라면 결코 반출되지 않는다는 성국의 보물.

그걸 받았다는 것은 유릭의 존재가 그들에게 있어 동맹국만큼이나 큰 영향을 주었다고 인정받은 것이었다.

“허 참, 대체 어찌.”

고작 스물한 살 난 아이가 성국에서 이런 보물을 끌어냈는지.

다시 생각해도 혀를 내두를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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