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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153화 (153/166)

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 153화

153화. 무도회보단 캠프파이어지

데릭을 자리에 앉히고 세 사람은 회의의 시간을 가졌다.

“쳇, 이놈의 소환은 몇 번을 경험해도 익숙해지지가 않는군.”

“아직도 어지럽냐?”

“조금.”

예전에 처음 이 비술을 얻었을 때 유릭은 가문 내에서 몇 번이나 실험을 해봤었다.

처음에는 불평을 일삼았던 데릭도 이내 실험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협력해 주었다.

공간과 관련된 마법은 전문으로 공부하는 이도 적어 좀처럼 보기 힘든 마법이다.

원리는 모르지만 초대가 남긴 이 비술은 후일 반드시 큰 힘이 되어 주리라.

그런 생각에 그 필요성을 확실히 인정한 데릭이었으나.

“누님이 맡긴 일이 있었는데…….”

일상생활을 하는 중 갑자기 땅이 꺼지며 떨어지는 기분은 절대로 좋다고는 할 수 없었다.

“뭔데. 급한 일이야?”

“그냥 잡일이다. 뭐 상관없겠지. 내가 사라진 걸 보면 누님도 무슨 일인지 눈치챌 테니.”

그렇게 차 한 잔을 마시며 잠시 침착하는 시간을 가진 후, 세 사람은 본격적으로 회의에 들어갔다.

“그래서 무슨 일이지? 너인 척을 하라고?”

“응.”

“일단은 내가 잠시 상황을 설명해주마. 렉사나에 대한 설명도 더 필요한 것 같으니.”

전반적인 브리핑은 발터가 나서서 해주었다.

최종 목적은 골든 스케일에 출품될 요정의 꿀, 넥타르.

강력한 경쟁자로 여겨지는 필리페 아칸이 이 도시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

그리고 필리페가 반한 재스민이라는 여자를 통해 그의 약점이 될 정보를 얻었다는 것.

“마약, 말입니까?”

“그래. 이곳에서 돌고 있는 신종 마약이 아무래도 필리페의 작품인 것 같다. 근데 벨스 가는 오히려 필리페와 합작해 한몫 챙기고 있는 것 같아.”

“어째서 벨스 가가 그런…….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꼴 아닙니까?”

“자신이 있는 거겠지. 거위를 죽이지 않고 숨을 붙여두면서 황금알만 꺼내 갈 자신이.”

“그렇다면 결국 경매도 공정하진 않겠군요.”

“널 부른 건 그거 때문이야.”

마지막으로 얘기한 건 유릭이었다.

데릭의 시선이 유릭을 향했고 그가 빈 찻잔에 차 한 잔을 쪼르르 더 따랐다.

“둘이 한패인 이상 평범한 방법으로 필리페를 축출할 순 없게 됐다. 평범하지 않은 방법이 필요해.”

“그 방법이란 건?”

“둘의 뒷거래를 망쳐놓는 거지.”

유릭의 생각은 간단했다.

필리페와 벨스 가주 사이에 정확히 어떤 거래가 오갔는진 모르겠지만, 렉사나라는 마약이 핵심인 것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그 마약 사업을 완전히 뭉개놓으면 된다.

“그렇게 되면 벨스 가주가 필리페와 손을 잡을 이유가 사라지는 셈이지. 놈은 상인이야. 이익이 되지 않는데 끝까지 필리페의 편의를 봐줄 리는 없어.”

특히 이번 뒷거래에 오가고 있는 건 그 넥타르다.

상인이 의리를 지킨다고 넥타르 정도의 고가의 물건을 내던진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럴듯하군.”

“하지만 나와 외숙은 쉽게 움직일 수가 없다. 놈들이 두 눈 시퍼렇게 경계하고 있을 테니까.”

“그래서 나보고 너인 척을 하라는 건가…….”

이제야 앞뒤 상황을 모두 파악한 데릭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골치 아픈 상황일 거란 생각은 하고 있었다.

이미 이곳엔 외숙부와 1기사단의 기사 일부, 그리고 유릭까지 와 있다.

그 상황에서 굳이 자신까지 부른다는 것은, 그만큼 복잡하고 귀찮은 상황이란 얘기가 아닌가.

그런데 듣고 보니 생각보다도 더 어려운 상황이다.

필리페와 그 수하들만 해도 어려운 상댄데 거기에 벨스 가까지 붙어 있다니.

심지어 이곳은 놈들의 앞마당.

그야말로 도시 전체가 적인 상황이 아닌가.

“이야기는 알았다. 나는 그럼 너인 척 위장만 하고 있으면 되나?”

“그래. 굳이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방에만 박혀 있거나 하면 안 돼. 시간이 되는대로 밖으로 싸돌아다녀라.”

“사람들의 눈에 띌수록 좋다는 얘기겠지?”

“응. 온 김에 관광도 좀 하고 오페라 많이 하던데 그것도 봐보고. 맞다, 이거.”

“이건 뭐냐?”

“외숙한테 오는 파티 초대장인데 하루에도 몇 통씩 쏟아지고 있어. 적당히 골라서 같이 갔다 오고 그러면 될 거야.”

편지가 수두룩 쌓인 상자를 받으며 데릭이 끄덕였다.

상황은 복잡하지만 어쨌건 그가 할 일은 심플했다.

유릭인 척을 하며 가능한 많은 사람들의 눈에 띄고 다닐 것.

그가 활발히 돌아다닐수록 어둠 속에 있는 유릭의 운신이 더욱 편해질 테니까.

“외숙. 외숙은 항상 데릭의 곁에 있어주세요. 놈들이 미친 척하고 습격할지도 모르니까.”

“너는 괜찮겠니?”

“걱정 마세요. 정면으로 쳐들어가거나 그럴 생각은 없으니까.”

그 창고에 있었던 인원을 생각해 보면 혼자서 들어가긴 조금 위험하다.

혼자라도 질 거란 생각은 들지 않지만 포위를 당해 시간이 끌릴 우려는 있었다.

그렇게 발이 묶인 사이 필리페가 지원을 온다면 그땐 끝장이다.

“그러면 어떻게 할 생각이니?”

“굴속의 오소리를 끌어낼 방법은 하나뿐이죠.”

유릭이 대답했다.

“모조리 불 지르고 다닐 겁니다.”

* * *

이틀이 지났다.

그 이틀 동안 도시 내의 낡은 창고가 두 채는 더 불타올랐다.

처음의 것과 합하면 벌써 세 채의 건물이 몽땅 타버린 것이었다.

“세상에나 무섭기도 하지.”

“경비대는 뭘 하고 있는 거지요? 그런 방화범이 날뛰게 내버려 두고.”

“그들도 수사는 하고 있을 겁니다만…… 어려운 모양입니다. 그래도 안 쓰는 낡은 건물만 탄다니 그나마 다행이네요.”

단 이틀 만에 도시는 상당히 뒤숭숭한 분위기가 되었다.

진실을 아는 이는 소수였다.

이것이 단순 방화 사건이 아니라 유릭과 필리페의 전투의 일환이라는 것을.

“주의해서 경계하도록. 놈들은 확실히 우리를 노리고 있다. 수상한 자가 보이면 바로 붙잡아.”

“예.”

2번 상업지구 데메인 거리의 한 창고.

7번 창고보단 크기가 작지만 중요도만큼은 훨씬 위인 곳이다.

여러 루트를 통해 들여온 약의 재료를 배합하는 작업장이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대단한 설비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다른 곳보다는 훨씬 중요한 곳이었다.

“전달받은 말에 따르면 놈은 정면으로 들어오진 않는다고 한다. 우리를 노리기보단 불만 지르고 도망치는 느낌이라더군.”

“그런데 불이라면 우리가 끄면 되는 거 아닙니까? 여기 있는 게 다 화염술산데 어떻게 방화를 당한단 말입니까?”

부하의 말에 조장이 눈을 찌푸렸다.

“나도 그 점이 좀 의아하긴 한데…… 다른 조의 얘기론 좀처럼 쉽지가 않다고 한다.”

“쉽지 않아요?”

“놈의 불꽃이 생각과 다르게…….”

그가 막 다른 조에서 들은 얘기를 해주려던 때.

-불이야!

화르르륵!

환한 불꽃과 함께 검은 연기가 치솟는 것이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건 그들이 대기 중인 건물에서 나는 것이었다.

“왔다! 얘기했던 대로 소화조는 불을 막고, 나머지는 놈을 잡으러 간다!”

“예!”

술사들이 반으로 나뉘어 각자 맡은 임무를 위해 달려갔다.

조장을 포함한 발 빠른 조원들이 놈의 포획을 맡았다.

그러나 어두운 밤 속에서 한 사람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쪽엔 없나!?”

“아무도 보이지 않습니다!”

창고에 불을 놓은 놈은 어느새 다시 어둠 속으로 몸을 숨긴 후였다.

적의 흔적을 찾느라 그들이 잠시 방황하던 사이.

-뒤쪽에도 붙었다! 빨리 꺼!

-젠장! 왜 안 꺼지는 거야!

뒤쪽의 소란이 한층 더 커져 왔다.

뒤를 보니 불을 끄기는커녕 한층 더 커다랗게 타오르는 창고가 보였다.

“도, 돌아가서 우리도 소화 작업에 착수한다!”

놈을 잡을 때가 아니다.

조장이 황급히 회군해 창고의 소화 작업에 끼어들었다.

그리고 그제야 그는 다른 조가 했던 얘기를 몸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불꽃이…….”

화염술사가 불을 끄는 작업은 일반적인 소화 작업과는 다르다.

물이나 모래 등을 끼얹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기운을 움직여 불꽃을 유도한다.

그대로 불을 흡수하거나 혹은 타지 않는 흙바닥에 흩어버리면 불은 간단히 꺼진다.

그런데.

‘불꽃이 꿈쩍도 안 하잖아!?’

창고에 피어오른 불꽃은 아무리 유도해도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이기는커녕 흔들림조차 없다.

술사들이 아무리 제어하려 해도 무시한 채 창고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평범한 불의 기운이 아닌 건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 어떤 화염술사의 불꽃이라 해도 결국 이 세상의 불꽃이고, 그들은 불을 습득한 화염술사다.

불꽃의 성질이나 술사의 장악력 등은 다를지언정 이렇게 무반응인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단적으로 말해 성공과 실패를 떠나 줄다리기와 같은 과정 자체는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의 불꽃은 그런 밀고 당기는 과정 자체가 없다.

마치 화염술사인 그들이 물과 바람을 다루려 끙끙대다 실패하는 것처럼.

그들의 마나에 조금의 반응도 보여 오지 않았다.

화륵!

결국 창고는 타버렸고 안에 있던 약의 재료들과 작업 도구도 모조리 재가 되었다.

조장과 조원들이 허망한 표정으로 화마가 오르는 것을 바라보았다.

대비를 하고 있었는데도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해버리다니.

공자님께 또 어떤 꾸지람을 듣게 될지…….

‘유릭 로스카!’

그때, 화마 속에서 흐릿한 인영이 보였다.

조원들은 모두 바깥에 있으니 놈은 유릭 로스카가 분명했다.

어두운 후드를 뒤집어쓴 채 가면을 쓰고 있는 모습.

“조장! 놈이 분명합니다!”

“지시를!”

조원들이 당장에라도 달려나가려 전투태세를 갖췄다.

하지만 조장은 돌격 명령을 내릴 수 없었다.

“그만…… 이곳은 포기하고 후퇴한다.”

“조장!”

“어째서요!”

어째서라니 당연하지 않은가.

놈은 지금 불타는 화마 속에 있다.

자신들이 제어해 보려 아무리 노력해도 조금의 반응도 없던 불꽃.

“저 불꽃은 우리가 쓰는 불꽃과 아예 다른 원소라 생각해라. 지금 저 속에 돌진하는 건 물의 마법사를 잡는다고 바닷속으로 뛰어드는 꼴이다.”

“큭…….”

“그런…….”

도저히 납득하기 싫은 말이었지만,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 역시 조장과 같은 무력감을 절실히 느꼈으니까.

그들이 뒤로 물러나 후퇴할 태세를 취하자 화마 속의 인영이 흐릿하게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마치 짙은 아쉬움을 남기듯.

‘……무서운 놈.’

일부러 이쪽을 유인하고 있었다.

그렇게밖에 생각되지 않는 일이었다.

저 유혹에 걸려 돌격 명령이라도 내렸다면 상상도 하기 싫은 참사가 벌어졌겠지.

“돌아간다.”

“예…….”

사망자는 물론 부상자조차 하나 없다.

피해라곤 체력이 빠진 것과 얼굴에 검댕이 좀 묻은 정도가 전부.

그러나 그들은 이미 패배자였다.

* * *

“하는 김에 숫자도 조금 줄이고 싶었는데 그렇게 쉽진 않네.”

-자기들도 안 되는 걸 아는데 달려들겠어요?

근처 건물의 지붕 위에서 유릭은 활활 타오르는 창고를 보고 있었다.

가면 속의 푸른 눈동자가 붉게 범람하는 화마를 눈에 담는다.

어느새 출동한 경비대가 물과 모래를 뿌리고 있지만 그것으론 좀처럼 기세가 죽지 않았다.

‘창고 부지 밖으론 나가지 않게 해놨으니 다 태우면 꺼지겠지.’

아무리 유릭의 불꽃이라 해도 태울 것이 없으면 타지 않는다. 그 부분은 평범한 불꽃과 다르지 않았다.

불에 타는 가연성 물질이든, 아니면 유릭의 내기라도 있어야 계속 타오르는 것이다.

-동생분은 오늘 무도회라고 했죠?

“응. 외숙이랑 같이 갔을 거야.”

발터와 데릭은 항상 행동을 함께하도록 얘기해 놓았다.

자신이 계속 이렇게 훼방을 놓고 다니면 필리페도 가만히 있진 않을 거다.

무슨 수라도 쓰기 위해 몸을 비틀 테고, 그러다 최종적으론 직접 접근해 오겠지.

“사람은 시원찮아 보이긴 했지만 실력은 마스터니까. 데릭 혼자서는 위험해.”

-그래서 외숙부와 함께 다니라고 했던 거네요?

“놈이 접근하면 그때부턴 외숙과 데릭의 일이고.”

필리페는 최대한 시치미를 떼면서 이쪽의 허점을 찾으려 들 것이다.

반대로 이쪽도 시치미 떼면서 저쪽의 허점을 찾을 것이고.

한동안은 그런 첨예한 탐색전이 지속되겠지.

“어휴, 생각만 해도 골치 아파.”

-그래서 차라리 혼자 이러고 다니겠다고 한 거예요?

“그런 것도 있고. 이쪽이 더 맞는 역할 배분이라 생각해서.”

앞에서 상대의 이목을 끌며 굳건히 자리 잡고 있는다.

그런 와중 다른 한 사람이 상대의 뒤로 돌아 놈들을 혼란시킨다.

두 역할을 분배한다면 전자는 데릭, 후자는 유릭이 알맞았다.

얼음과 불이라는 능력의 차이로 봐도 그렇고, 성격적으로 봐도 그랬다.

“갑갑한 무도회보단 캠프파이어지.”

-거긴 좀 숨 막혀요.

유릭이 굴뚝에 몸을 기대며 활활 타는 창고를 바라보았다.

서늘한 밤공기 속으로 화마의 열기가 은은히 전해져 왔다.

메르도 동의한다는 듯 그의 배 위에 웅크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유릭은, 동시에 생각하고 있었다.

머릿속으로 이미지 한다.

저 불꽃 속에서 사투를 벌이는 자신, 그리고 필리페 아칸의 모습을.

‘결국 필리페와의 전투를 피할 순 없겠지.’

그는 진작부터 강한 예감을 받고 있었다.

이번 일은 결국 자신과 필리페가 승패를 가려야 결착이 날 것이라고.

‘내가 할 수 있을까?’

그 순간이 왔을 때, 자신이 마스터를 꺾을 수 있을까?

신체는 이미 마스터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유릭에겐 한 가지가 부족했다.

마스터에게 필요한 단 하나의 깨달음.

천마가 그를 말렸던 이유.

‘언령(言霊).’

정확히는 천마는 내면의 탐구와 심도 깊은 관조, 자아의 확립 등이 필요하다고 했다.

언령이라는 개념은 메르에게 들은 것.

하지만 천마와 메르의 말은, 비록 표현은 비록 다를지언정, 거의 동일한 맥락이었다.

‘언령이라…….’

어느새 그의 눈빛은 화마에서 멀어져, 스스로의 내면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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