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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156화 (156/166)

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 156화

156화. 주제를 아는 게

눈을 감고 장고를 하던 안토니가 이내 눈을 떴다.

그가 조용히 손을 들자 유릭을 포위하고 있던 검들이 천천히 방 틈새로 다시 사라졌다.

“굉장히 흥미롭긴 한데, 그게 내게 무슨 메리트가 있지? 우리 사냥개는 아직 꼬박꼬박 토끼를 물어오고 있다만.”

“렉사나가 돈이 된다곤 하지만 당신한텐 수많은 돈벌이 중 하나일 뿐이잖아? 마약이라는 위험 부담을 계속 끌어안고 가려고?”

“도련님이라 그런지 장사의 세계를 잘 모르고 있군. 원래 장사란 건 리스크가 클수록 이익은 막대한 법이야.”

“위험 부담에 상응하는 돈을 벌어다 주고 있다 이건가?”

“그 이익을 포기하면서 자네 제안에 올라탈 이유는 딱히 없는 것 같아.”

안토니가 실실 웃으면서 이야기한다.

그는 유릭 같은 애송이가 자신을 설득할 수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설득당하지 않는다면 입장은 자신이 우위다.

그렇게 생각한 그였으나.

“그래서 그 렉사나가 당신 건가?”

“…….”

유릭은 대번에 아픈 곳을 찔러 들어갔다.

키득거리던 안토니의 웃음이 조금씩 멎어간다.

유릭이 피식 웃었다.

“지금이야 필리페가 당신한테 설설 기고 있겠지. 렉사나가 아직 완벽히 자리 잡은 것도 아닌 데다, 이건 추측이지만 놈은 넥타르를 상당히 원하고 있는 것 같아. 그렇지 않나?”

“그야 뭐…… 그 귀한 꿀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단순히 귀한 아이템이란 의미를 넘어서 말이지.”

유릭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던 건 필리페가 왜 굳이 이곳에서 마약 사업을 하고 있냐는 것이었다.

그야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돈을 가져와도 살 수 없는 것이 세상엔 존재했으니.

시간이었다.

‘마약을 부하를 시켜서 팔고 있으면 모르겠는데 본인이 직접? 얻는 거라곤 단순 돈벌이에, 여차할 때 꼬리 자르기도 못 하고, 여러모로 손해 보는 게 클 텐데.’

필리페는 아칸의 차기 가주 후보 중 하나다.

루카스도 샤니스도 가주가 되기 위한 공적을 쌓기 바쁜 이때, 공로는커녕 자칫하면 약점이 될 약 장사나 하고 있다?

천금이 굴러들어 온다고 하더라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놈이 직접 시간을 쏟아가면서 얻어야 할 것이 벨파스트에 있다는 뜻.’

이 도시에 그만한 물건이라곤 넥타르 이외엔 없다.

즉 필리페가 이 도시에서 하는 모든 일은 넥타르를 얻기 위함이라 해석하는 것이 타당할 터.

“당신이 넥타르를 쥐고 있을 때는 놈도 신사적으로 나오겠지만, 그게 사라지고 난 후에도 그럴까? 놈과 동업을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 넥타르를 넘겨줘야 하는 순간이 올 거잖아?”

“…….”

안토니가 입을 다물었다.

유릭의 말은 그가 내심 골치를 썩이고 있던 문제를 정확히 짚고 있었다.

필리페와 손을 잡아 기존 마약 조직들을 소탕한 것은 좋다.

그 과정에서 굴러 들어온 막대한 황금엔 매일 밤 실실 웃으며 잠자리에 들 정도다.

하지만, 이 뒤가 문제였다.

‘확실히. 결과적으론 늑대를 쫓기 위해 범을 불러들인 꼴이 되었으니…….’

필리페와 계속해서 우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저쪽의 마음이 변한다면?

넥타르를 쥐고 있는 지금이야 자신이 우세를 점하고 있지만, 이게 사라지면 힘의 관계는 역전된다.

그럴 때 필리페는 지금처럼 우호 관계를 유지할까?

안토니는 그럴 거라 낙관할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거의 확신한다.

필리페 아칸은, 넥타르를 얻게 되면 반드시 변심할 것이라고.

“그러니까…… 녀석이 아직 신사의 가면을 쓰고 있을 때 우리가 먼저 배신하자는 건가?”

“우리라니. 배신하는 건 당신이고 나는 그냥 힘을 빌려줄 뿐이고.”

내가 놈과 손을 잡은 것도 아닌데 왜 배신이냐며, 유릭이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묘하게 신경을 긁는 언동에 안토니가 흥, 코웃음 치며 턱을 괴었다.

‘건방진 꼬맹이.’

그의 눈이 가늘어진다.

나이도 어린 주제에 건방진 것이 아주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제안 자체는 지극히 합리적이었다.

필리페가 평생의 동반자가 될 것도 아니고, 언젠가는 반드시 잘라내야 할 존재다.

그리고 그 시기는 이르면 이를수록 좋았다.

빠르게 도려낼수록 후유증도 덜할 테니까.

‘구체적으로는 내 손에 아직 넥타르가 남아 있는 지금.’

지금이 딱 적기다.

골든 스케일까진 아직 시간이 남았고, 필리페는 본인이 배신당하리란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은 유릭의 정체를 파헤치는 것에만 급급한 상황.

하지만.

“좋은 의견 감사하지. 지금이 놈의 뒤통수를 치기에 적기라는 사실은 잘 알겠어.”

“그럼…….”

“뒷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자네는 빠져. 의견을 주었으니 나중에 한턱 정돈 내지.”

안토니가 히죽 웃으며 손을 휘휘 저어 축객령을 내렸다.

유릭의 의견이 날카로웠던 건 인정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유릭과 손을 잡을 필요성은 없었다.

이곳은 그의 도시, 그의 영지다.

온 도시에 그의 사병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다.

굳이 유릭 로스카를 끼어 로스카에 빚을 질 이유는 없었다.

“가주…… 진심이야?”

유릭이 눈을 찡그리며 물었다.

“그럼. 진심이고말고. 필리페 아칸이 마스터라고 했던가? 확실히 경이로운 존재이긴 하지만 마스터 하나에 흔들릴 정도로 벨파스트는 약하지 않아. 그랬다면 진작 망했겠지.”

안토니의 자신만만한 대답에 유릭이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상대가 지금 농담을 하고 있는 것인지 유릭은 잠시 고민해야 했다.

하지만 안토니의 표정은 진심이었다.

“허 참.”

드륵, 유릭이 의자를 젖히고 일어났다.

그리고.

-쿠웅!

한 걸음, 땅을 밟자 웅장한 파동이 울려 퍼졌다.

“큭!”

털썩!

눈앞에 있던 안토니가 가슴을 옥죄는 듯한 압박감에 의자에서 넘어졌고, 그때.

“가주님!”

유릭의 머리 위 천장에서 한 사내가 떨어지며 급히 검을 내질렀다.

안토니를 호위하고 있는 호위대의 대장이 위험을 감지하고 뛰어든 것이다.

“게올드! 그 건방진 꼬맹이 잡아!”

주인의 명령에 그가 눈을 번뜩이며 유릭의 정수리로 검을 내려쳤다.

“!”

그러나 회심의 일격은 유릭의 손에 간단히 잡혀 버렸다.

유릭은 그대로, 손아귀의 힘만을 이용해 검을 산산이 부서뜨려 버렸다.

카칭-!

비산하는 파편을 보며 게올드가 눈을 크게 떴다.

궤적이 읽혀 잡혀버린 것도, 오러를 담은 검이 유릭의 손바닥조차 뚫지 못한 것도, 맥없이 부서져 내린 것도.

단 한 수에 그는 세 번의 실력 차를 체감해야 했다.

“벨스 가주. 골든하트의 일원이라 해서 정말로 10대 가문과 동등한 위치라고 생각하는 건가?”

“뭣…….”

“아칸은 10대 가문 중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곳이다. 골든하트 본가가 와도 상대가 안 될 텐데 고작 일원 중 하나인 너네들이 뭘 어떻게 하겠다고? 주제를 아는 게 좋을 텐데.”

“큿……! 게올드! 다른 놈들은 뭐 하고 있어! 왜 너만 나오는 것이냐!”

안토니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하지만 게올드는 핼쑥한 얼굴로 간신히 안토니의 앞만을 지킬 뿐이었다.

게올드의 무기력한 모습도, 그리고 나타나지 않는 게올드의 부하들에게도 갑갑함을 느끼며 안토니가 역정을 냈다.

“게올드!”

“가주는 얌전히 놈을 체포할 준비나 하고 있으면 돼. 아 그리고 명분 작성도. 필리페 아칸의 패악질이 심해져 유릭 로스카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간단하지?”

“이익!”

유릭이 방을 나갈 때까지 안토니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상인일 뿐인 그에겐 유릭에게 달려들 실력도 배짱도 없었다.

호위들을 탓하며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뿐.

“게올드! 대체 뭘 하는 것이냐! 지금이라도 가서 잡아! 상대는 꼬마 한 놈에 불과하잖아!”

“불가능합니다, 주군.”

조용히 입술을 깨물고 있던 게올드는 유릭이 보이지 않게 되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뭐가!”

소리 지르는 주군에게 게올드가 이유를 보여주었다.

방 곳곳의 비밀 공간을 열어 숨어 있는 부하들의 상태를 보여준 것이다.

“……!”

그걸 본 안토니는 숨을 삼켰다.

“뭐, 뭐냐, 이건……. 다 죽은 거냐?”

“아뇨. 기절했습니다.”

게올드가 쓰러진 부하들의 맥을 짚으며 얘기했다.

그때, 유릭이 한 걸음, 태양천보를 밟았을 때.

안토니는 알지 못했지만 방 주위로 유릭의 내기가 퍼져 나가 부하들의 뇌리를 강타했다.

거대한 망치 따위가 내려친 듯한 느낌에 머리가 흔들린 것이다.

게올드만은 간신히 정신 차리며 뛰어내릴 수 있었지만 부하들은 무리였다.

그 역시 조금만 방심했다면 맥없이 기절해 있었겠지.

“주제넘게 한 말씀 올리자면 필리페의 일은 유릭 로스카에게 맡기는 게 현명할 듯합니다. 놈들은…… 진짭니다.”

게올드가 침을 꿀꺽 삼키며 진언했다.

정말로 다르다.

일개 상인 가문에 불과한 자신들과 대륙의 정점에 있는 무가.

그 차이는 상상 이상으로 크고 깊었다.

“큭…….”

안토니는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못했다.

어느새 손에 흥건한 땀을 옷깃에 박박 닦고 있을 뿐.

* * *

넥타르.

마시면 수명이 늘어날 정도의 마력을 가지고 있다는 그 요정의 꿀은 필리페에게 반드시 필요한 물건이었다.

그는 형제들 중 가장 먼저 마스터에 올랐지만, 누구보다 먼저 한계에 봉착했다.

자신이 벽에 몇 번이나 몸을 부딪치고 있을 때 형인 루카스는 수월히 위로 올라갔다.

어릴 땐 분명 자신보다 아래였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한참이나 추월당한 후였다.

그러나.

그는 하지 못했다.

이를 악물고 몇 번이나 부딪쳐 봐도 한계란 이름의 벽은 뚫리질 않았다.

넥타르는 간신히 찾은 그의 답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신사답게 널 대해줬는데, 이런 작은 부탁 하나 못 들어줘?”

그렇기에 그는 재스민에게도 분노할 수 있었다.

그녀에 대한 연심은 거짓이 아니었지만, 그에게 중요한 건 연심 따위가 아니라 넥타르였다.

“고, 공자님?”

“아칸이란 이름이 우습게 보이나? 난 널 강제로 납치할 수도 있었고 억지로 약을 먹일 수도 있었어. 춤과 노래로 먹고사는 계집 하나가 사라진다고 해봤자 이 도시에선 삼 일 술안줏거리나 되면 다행인 일이지.”

필리페가 무서운 얼굴로 다가가자 재스민이 뒷걸음질을 쳤다.

“하지만 난 그러지 않았다. 언제까지나 호의로 널 대했지.”

툭.

재스민의 등이 벽에 부딪혔다. 이 이상은 뒤로 갈 수가 없다.

필리페가 벽을 짚어 그녀의 도주로를 봉쇄하곤 차가운 얼굴로 내려다보았다.

“오지 마세요! 혀 깨물 거예요!”

“하.”

재스민이 필사적으로 얘기했지만, 필리페의 얼굴엔 냉소가 깃들 뿐이었다.

“혀를 깨물어? 너한테 그게 가능해?”

재스민이 필리페를 노려봤다.

너 같은 놈이 나에 대해 뭘 안다고!

그런 말로 항의하려 하였으나.

“클레어한테 내 정보를 가져다주기 전에는 못 죽잖아?”

“!”

항의가 나오기도 전에, 그녀의 눈이 부릅떠졌다.

특기인 표정 관리도 잊은 채 그녀의 입이 벌어진다.

“아, 알고 있었어요……?”

“그럼 모를 거라고 생각했나? 사람 좋게 대해주니 날 완전 핫바지로 보고 있었구나, 재스민.”

아칸의 2공자. 그 타이틀은 그의 힘이 아닌 태생으로 주어진 것이다.

그저 태어날 때의 운으로 얻은 것이라는 뜻.

하지만 아칸의 차기 가주 후보라는 이름은, 운 따위론 결코 이룩할 수 없는 것이었다.

“어, 어떻게…….”

재스민이 겁에 질린 토끼처럼 파르르 떨었다.

그 앞에서 필리페가 다시 미소 지었다.

평소에 짓는 것과 같은 훈훈한 미소였으나, 재스민은 그것에서 더욱 섬뜩함을 느꼈다.

“재스민. 그동안 내가 보인 호의와 신사다운 모습을 잘 생각해 봐. 그걸 생각하면 그깟 로스카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란 걸 알게 될 테니까.”

필리페가 입꼬리를 비틀며 그런 말을 남기고 떠나갔다.

그가 떠나간 후, 다리가 풀린 재스민은 털썩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녀가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확실히 깨달았다.

아칸이란 이름을 너무 경시하고 있었단 것을.

그녀를 둘러싼 우리는 그녀의 생각보다 더 클 뿐만 아니라, 만지면 베일 듯한 날카로운 칼날까지 달려 있었다.

그때, 저 멀리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무대가 시작했단 뜻.

그녀는 일그러진 표정을 어떻게든 수습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떤 일이 있었든 무대를 펑크낼 순 없는 일이다.

그녀는 배우였으니까.

‘어떡하지…….’

하지만 이미 정신은 반쯤 나가 있는 상태였다.

* * *

“숙부님. 필리페 아칸의 모습은 확인되었습니까?”

“그래. 언제나처럼 재스민을 만나러 갔다고 하더군. 놈은 항상 공연이 시작하기 전과 끝난 후에 재스민을 만나러 가거든.”

막이 오르고 노랫가락이 울려 퍼진다.

주역의 등장은 아직이지만 조역들이 나와 사막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유릭한테 신호는 왔느냐?”

“예. 아까 벨스 가 쪽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확인했습니다. 잘 얘기했다더군요.”

“유릭 덕분에 일이 술술 풀리는구만.”

이번 일에서 발터와 데릭은 크게 한 일도 없다.

정보를 가져온 것도 계획을 세워 실행한 것도, 가장 어려운 벨스 가의 가주를 설득한 것도 유릭이다.

“그 애는 어디서 이런 걸 배웠다던?”

“모르겠습니다. 전 그냥 검 휘두르는 것 말고는 잘 못하겠던데 쌍둥이라도 이렇게 다르군요.”

데릭이 자책하는 듯하자 발터가 깜짝 놀라 손을 내저었다.

“데릭! 상심하라고 한 말은 아니란다. 너에겐 너만의 장점이 있으니 그런 걱정은 하지 말거라.”

“아, 네. 감사합니다.”

사실 데릭에겐 익숙한 일이라 그렇게까지 상심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발터의 위로는 고마웠다.

데릭이 조용히 무대를 바라보았다.

이미 극장 바깥에 기사들을 모두 배치해 놓았다.

시민으로 위장하느라 제대로 무장하진 못했지만 필요한 건 모두 챙겼다.

기사들은 모두 커다란 악기 가방을 메고 있었는데, 그 안에는 검과 간단한 보호구가 담겨 있었다.

오페라가 열리는 극장 주위에서 악기 가방을 들고 있는 모습은 그렇게 드문 모습도 아니었다.

“좋구나. 이런 기분 오랜만이야.”

옆에 앉은 발터가 씨익 웃었다.

그의 몸이 점차 달궈지는 것이 느껴진다.

전투의 열기가 그의 몸을 감싸고 있다.

“무슨 기분 말입니까?”

데릭의 질문하자, 발터가 대답했다.

“아칸 놈들과의 전쟁 말이다.”

협정 이후론 거의 없었던 두 가문의 분쟁이, 이 벨파스트에서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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