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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158화 (158/166)

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 158화

158화. 둘 다 마찬가지

맹수가 사냥감을 덮치는 것마냥 발터가 날아올랐다.

그의 손에는 푸른 얼음으로 된 장창이 들려 있었는데, 본래 그가 사용하던 단창에 오러를 덧씌운 것이었다.

마스터 특유의 단단한 오러를 덧씌워 장창처럼 휘두를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그 아이를 내놓아라!”

쌔애애애액-!

눈이 뒤집힌 발터가 떨어져 내리며 창을 내질렀다.

필리페가 혀를 차더니 다급히 데릭을 옆의 부하에게 던졌다.

그러곤 양손을 들어 필리페의 창을 막아냈다.

끼기기기긱!

그의 손에서 펼쳐진 반구형의 불꽃이 서릿빛 창을 저지한다.

단단한 창이 파고들며 불꽃을 찢어놓으려 하였으나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흡!”

발터가 창을 우드득 움켜쥐며 반 바퀴 굴린다.

창이 회전하는 절묘한 타이밍에 그가 한층 더 나아가며 창을 내질렀다.

카가강!

필리페가 펼친 불꽃의 오러가 깨져나가며 파편이 비산했다.

발터의 창은 기세를 죽이지 않은 채 그대로 필리페를 찔러갔다.

“큭!”

필리페가 고개를 흔들어 피하며 그대로 발터의 옆으로 이동했다.

동시에 그의 주먹이 발터의 옆구리를 향해 쏘아졌다.

콰과과과광!

일순간 다섯 번의 연격이 이어지며 발터의 창대를 가격한다.

마스터의 오러가 깃든 주먹은 이 세상 부수지 못할 것이 없었으나, 그걸 막는 발터 역시 마스터다.

두 오러는 짙은 수증기만을 내뿜으며 상쇄될 뿐이었다.

탓!

공격을 받은 기세를 이용해 발터가 두 걸음 물러난다.

창의 이점을 살리기 위해선 당연한 행위였다.

권격을 사용하는 필리페로선 평소처럼 틈을 주지 않고 파고들 타이밍이지만.

“튀어!”

“예, 예!”

지금은 정면으로 싸울 때가 아니라 도망칠 때다.

애초에 방금의 연격도 발터를 떼어 놓으려 했을 뿐이다.

“거기 서라!”

데릭을 데리고 도망가는 모습에 발터가 눈이 뒤집혀서 쫓았다.

“단장님! 너무 깊이 쫓아가시면 안 됩니다!”

부관인 체르가 급히 그를 만류했지만 발터의 귀에는 지금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오로지 기절한 데릭뿐.

당연히 그가 노리는 것도 필리페보단.

쌔애애액!

“으아아악!”

데릭을 들쳐 매고 있는 부하 쪽이었다.

발터가 벼락처럼 떨어져 내리며 필리페의 부하를 덮쳤다.

그러나 그의 창은 옆에서 들어온 주먹 탓에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허망하게 튕겨 나갔다.

“필리페 아칸!”

발터의 창끝이 방향을 바꿔 필리페를 향해 쏟아졌고 그것은 애꿎은 땅을 말 그대로 뒤집어 놓았다.

콰과과과과광!

닿는 모든 것을 파괴하며 성난 수소처럼 돌진하는 발터의 모습에 필리페가 혀를 찼다.

‘역시 발터 로스카인가.’

발터 로스카. 발렌티나 로스카의 동생이자 그 호위.

초월자인 발렌티나의 위명에 가려져 잘 조명되지 않는 남자였지만, 아칸인 그는 발터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손에 매장당한 아칸의 술사들이 몇이었던가.

특히 전장에서의 발터는 사나운 맹수와도 같아, 전대 가주인 레오폴딘을 떠올리게 한다는 평가마저 있었다.

그나마 발렌티나의 호위가 되면서 전장에서 조우할 일은 없어졌다고 하는데.

‘하필 여기서 만날 줄은!’

왜 하필이면 자신이 있는 곳에 왔단 말인가?

형이 있는 곳에 갈 수도, 샤니스가 있는 곳에 갈 수도 있었을 텐데!

발터의 창을 피하며 그가 건물의 지붕에서 지붕으로 뛰었다.

같은 마스터인 만큼 맞상대는 가능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둘 사이엔 경험의 차가 너무나도 컸다.

그가 코 흘리며 용사 놀이를 하던 시절 발터는 이미 한 자루 창과 함께 전장에 서 있었다.

“그 아이를 내려놓아라!”

발터가 소리치며 창을 찌르지만 들어줄 수 없는 말이다.

이놈을 건네준다고 발터가 안 쫓아올 것도 아니고, 그나마 획득한 중요한 인질을 허무하게 내버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 녀석을 반대 방향으로 도주시키면…….’

필리페가 가늘게 뜬 눈으로 옆에서 달리는 부하를 바라보았다.

그의 생각을 짐작도 못 하는 부하는 확실히 매고 있다며 데릭의 몸을 더욱 단단히 붙잡을 뿐이었다.

잠시 고민한 필리페였으나.

‘나랑 떨어지자마자 발터의 창에 몸이 꿰뚫리겠지. 시간 벌이도 안 되겠어.’

이 잠깐의 고민으로 부하의 운명이 갈렸다.

만약 부하의 실력이 출중해 발터의 창을 한 수라도 막을 수 있었다면, 필리페는 망설임 없이 그를 미끼로 던졌을 것이다.

별 볼 일 없는 실력이 오히려 그의 목숨을 구한 셈이었다.

“크아아아아아!”

콰아앙!

등 뒤에서 창이 포탄처럼 쏘아져 필리페의 허벅지로 쇄도했다.

일단 기동력부터 빼앗겠다는 심산.

분노에 몸을 맡긴 것처럼 보여도 지극히 냉철하단 증거였다.

“큭!”

간신히 피할 수는 있었으나 허벅지가 스치며 상처가 생겼다.

쩌적.

상처 부위가 얼어붙으며 흘러내리던 피가 붉게 굳는다.

핏빛서리.

아칸의 몇몇 술사들은 이름만 들어도 몸서리를 친다는 발터 로스카의 성명절기.

그 붉은 얼음은 조금씩 조금씩 필리페의 다리를 잠식하기 시작했고 그걸 막기 위해 필리페는 적지 않은 마나를 쏟아부어야 했다.

그럼에도 당장 진행을 막는 것에 그쳤을 뿐, 근본적인 치유는 되지 않았다.

‘……안 되겠군.’

필리페가 결단을 내렸다.

품을 뒤져 그가 묘한 물건을 꺼내 들었다.

그건 검은 구름이 뭉친 것같이 생긴 작은 구슬이었다.

‘아버님.’

이 구슬은 그의 아비인 라그룬이 그에게 건넨 것이다.

루카스도 샤니스도 받지 못한, 오직 필리페에게만 건넨 물건.

그러나 필리페는 전혀 기쁘지 않았다.

-크카카카! 버러지들 중 유일하게 너라면 그걸 써먹을 수 있을 거다. 어디 한번 요긴하게 써먹어 보거라.

그게 결코 칭찬의 의미가 아님을, 오히려 조롱이 담겨 있음을 알고 있는 필리페는 분노했지만.

‘예, 그러죠. 기왕 주신 거 잘 써먹겠습니다.’

받은 것을 쓰지 않을 이유도 없다.

바로 다음.

발터의 창은 한층 더 정교하게 필리페를 향해 날아왔다.

이번에야말로 정말로 다리를 꿰뚫을 것만 같았다.

검은 구름을 담은 구슬이 그의 창끝에 떨어진 건 바로 그 순간이었다.

챙그랑!

“……?”

창에 닿아 맥없이 깨져나간 구슬에 발터가 눈을 찡그렸다.

그러나 다음 순간.

구슬에 담겨 있던 흑연(黑煙)이 퍼져 나가 발터의 창을 감싸고 팔을 감싸고, 이윽고 그 전신을 감쌌다.

‘뭐지?’

발터가 가장 먼저 느낀 건 당혹감이었다.

흑연에선 기이한 열기가 느껴지긴 하지만 데미지가 될 정도의 열은 아니다.

그러나 다음 순간.

“큽!”

그가 경악했다.

단단한 오러로 감쌌던 그의 창이 녹아내리며 유체와 같은 형상의 오러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더 이상 그것은 장창이 아니라 본래의 단창으로 돌아가 있었다.

창뿐만이 아니다.

그의 전신을 도는 오러 전체가 강도를 잃고 맥없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이건…….”

“아버님의 걸작이지.”

당황스러워하는 발터에게 필리페가 피식 웃으며 얘기했다.

흑연.

저것은 라그룬이 고대의 비술을 되살려 개량해 만들어낸, 마스터의 ‘그릇’을 깨는 연기다.

상천의 신수 속에서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한 그릇, 라그룬은 언령이라 부르는 그것을 제거하기 위한 비술.

물론 효과는 일시적이며 전투에서 벗어나 명상을 한다면 언령은 곧바로 돌아온다.

하지만 그전까지는 마스터가 아닌 평범한 기사로 전락하는 것이다.

‘아버님다워.’

라그룬이 어떤 생각으로 이 비술을 되살려 개량했는지 필리페에겐 훤히 보였다.

그는 만인의 정점에 서기를 원했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높이기보단 상대를 땅에 처박는 쪽을 택한 것이다.

모든 적과 경쟁자들을 진창에 처박으며 가주직에 오른 라그룬다운 비술이었다.

“지금이다! 놈을 막아라! 명상을 못 하게 해!”

필리페의 신호와 함께 주변에서 간신히 합류한 수십의 술사들이 일제히 발터에게 달려들었다.

언령을 빼앗겼다곤 해도 발터의 실력 자체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시간 벌이밖에 되지 않겠지만.

‘이 틈에 도주한다.’

그거면 충분했다.

부하들을 발터에게 달려들게 한 후, 필리페는 기절한 데릭을 빼앗아 도주하기 시작했다.

“그아아아아! 필리페 아카아아안!”

뒤에서 발터의 분노에 찬 고함이 들렸지만, 더 이상 아까와 같은 추격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 * *

“지시는 해놨나?”

“예, 옙! 필리페 아칸이 나타나면 억지로 맞서지 말고 자연스럽게 유도하라 일렀습니다!”

“그게 좋을 거야. 괜히 막아봤자 피해만 늘어날 테니까.”

유릭과 경비대장은 벨파스트의 동쪽 성문 앞에 나와 있었다.

둘만 있는 것은 아니고 도시의 수비 병력이 빼곡히 포진해 있었다.

성문 역시 빈틈 하나 없이 닫힌 상태.

이곳은 사건 현장인 극장에서 가장 가까운 성문이었다.

‘필리페가 도주를 시작했다면 그걸로 이미 가장 큰 목적은 달성이다.’

이번 일에서 가장 우선시되는 것은 넥타르의 입수. 즉 필리페를 도시에서 배제하는 일.

필리페가 안토니에게 배신당해 도시 밖으로 쫓겨나는 상황은 그 자체로 목적 달성이나 마찬가지다.

이 뒤의 일은 일종의 추격 섬멸전 같은 것이다.

퇴각하는 적을 쫓아 최대한의 피해를 입히기 위한.

-콰앙! 쾅! 쾅!

저 멀리 극장 부근에서부터 들려오던 폭음과 연기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시민들은 이미 대피시켰기에 이 근방에 있는 인간은 단 세 종류뿐이었다.

아칸의 술사들, 로스카의 기사들, 그리고 벨파스트의 병사들.

그들의 전투가 어찌나 치열한지 극장 부근에선 폭음이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한층 더 커다란 폭음이 성문 쪽으로 점점 가까워진다.

그러던 중.

‘끊겼다.’

가까워지던 폭음이 멎었다.

어느 쪽이 이겼는진 모르겠지만, 상황이 끝났단 뜻이다.

발터가 이겼다면 곧 이 싸움은 멎을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쿠웅-!

그때, 하나의 인영이 떨어져 자욱한 먼지를 피워 올렸다.

유릭이 눈을 가늘게 떴다.

‘어째서 필리페와 싸워야 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을까.’

바로 조금 전까진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분명 발터가 이겨주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고 또 가장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어째서 자신은 놈이 무사히 도망칠 것을 전제하여 작전을 세웠는가.

당연히 발터 쪽에 힘을 실어 도주 자체를 막는 것이 더 합리적인 작전이 아닌가?

만에 하나를 생각했다고 하기엔 유릭은 지나치게 이쪽에만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놈의 예감 때문에.’

그 예감이 어디서 온 것인지 몰랐다.

회귀의 기억도 아니었고 메르도 그런 것은 모른다고 했다.

그랬던 것이, 지금 이 순간 알게 되었다.

“네놈! 그렇군, 역시 이쪽은 가짜였어!”

필리페가 유릭의 얼굴을 확인하더니 악귀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린다.

그의 어깨에는 기절한 데릭이 매여 있었다.

유릭이 힐긋 데릭을 보곤 다시 필리페에게 시선을 돌렸다.

“내 동생이 신세가 많군.”

“……빌어먹을 놈. 안토니를 어떻게 구워삶았는진 모르겠지만 내 뒤통수를 때린 건 칭찬해 주마.”

필리페의 눈빛이 유릭을 향한다.

“하지만 마무리가 어설펐어.”

그곳엔 숨길 수 없는 짙은 살의가 담겨 있었다.

날 것 그대로인 마스터의 살기.

막아주는 이 하나 없이 유릭은 살의에 온전히 노출되어 있었다.

“네놈만 죽이면 내 승리다, 유릭 로스카!”

이 감각을 다시 한번 마주하고 싶었다.

엘가이아에게서 느꼈던 이것을 다시 한번. 이번엔 그때와 달리 정면으로.

지난날 유릭에게 왔던 건 사실 예감 같은 게 아니었다.

보다 단순한, 놈과 맞붙고 싶다는 마음이 일었던 것을 그가 직감 같은 것이라 착각했을 뿐.

“와보든가.”

유릭이 검을 뽑았다.

마음이 향하니 의식하지 않아도 저절로 불꽃이 피어오른다.

필리페의 것과 같이 어둡고 칙칙한 살의가 아닌 보다 순수한 의미의 투지.

‘그거나 그거나.’

하지만 유릭은 둘을 굳이 구분하지 않았다.

둘 다 마찬가지다.

결국 상대를 때려눕히고 싶다는 건 다르지 않았으니.

‘나찰 염환(羅刹 炎丸).’

그의 불꽃이 일점에 모여 응축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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