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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162화 (162/166)

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 162화

162화. 숲이 문제라면

잿빛 피부라면 다크 엘프다.

엘프 중에서도 최하위 신분이라 알려진 종족.

‘피부색이 이상해서 차별당하는 거야?’

-정확히는 오랫동안 차별을 당하다 보니 피부가 변색된 거예요.

‘?’

영문 모를 소리에 의아해하자 메르가 인간 세상엔 잘 알려지지 않은 엘프의 역사를 설명해 주었다.

-엘프는 세계수를 중심으로 살아가요. 그들은 평범한 음식에서 양분을 얻는 것이 아니라 세계수의 양분을 받아먹고 살거든요. 이슬이라든가 수액이라든가, 뭐 나뭇잎 같은 걸 씹기도 하구요.

‘그래?’

인간의 기록에 따르면 엘프는 고기를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라고 하였다.

그 이유가 생명을 소중히 하는 성품이라 동물을 죽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었는데…….

-아마 세계수의 잎이나 가지를 씹는 걸 보고 잘못 전해진 모양인데요?

실제론 채식주의자조차 아니었던 것이다.

아예 평범한 음식은 먹을 수 없는 모양.

-뭐 그러다 보니 세계수의 양분이 엘프들한텐 가장 중요한 자원이 되었는데…… 그 자원이 모두가 풍족하게 섭취할 만큼은 되지 않거든요.

‘세계수인데?’

-세계수는 굉장히 커다란 나무라서, 스스로를 유지하는 데만도 많은 양분이 필요해요. 엘프들이 앞뒤 안 가리고 세계수를 뜯어먹는다면 점점 말라버리고 말 거고, 그렇게 되면 엘프는 멸종이죠.

‘그렇단 말은…….’

뒷얘기는 얼추 상상이 되었다.

‘통제가 있었겠군.’

-맞아요. 강한 힘을 가진 엘프가 세계수의 자원을 통제해서 세계수에게 해가 가지 않을 만큼의 양분만 동족들에게 나눠줬죠. 반대로 힘이 약한 엘프들은 멀리 밀려나 양분이 거의 없는 척박한 땅으로 쫓겨나게 됐어요.

‘그 밀려난 이들이 다크 엘프의 선조라는 건가?’

-처음엔 다른 엘프와 마찬가지로 하얀 피부였는데 척박한 땅에서 살아가다 보니 세대가 지날수록 피부가 잿빛이 되었다고 해요. 뭐 벌써 몇천 년이나 전의 역사지만요.

다크 엘프의 탄생 과정은 천 년을 산 메르도 직접 본 것이 아니라 역사 공부로 들었을 뿐이다.

그만큼 오래된 얘기.

그 오랜 옛날부터 이어져 온 관습과 구조가 굳어져 지금의 엘프들의 신분 사회를 만들었다 하였다.

-세계수를 통제하는 이들이 하이 엘프. 인간으로 치면 귀족이네요. 세계수 근처에 자기들만의 영역을 만들어 놓곤 아무도 함부로 들이지 않아요.

그리고 그 바깥에 사는 이들이 일반 엘프들. 말하자면 평민들이라 한다.

일반 엘프가 사는 지역은 세계수에 가깝지는 않아도 그렇게 멀지도 않다고.

구체적으로 말하면 세계수의 꽃가루가 자연스럽게 떨어져 내리는 반경 안에 있다고 하였다.

꽃가루 역시 양분이기에 그들도 살아가기 위한 양분 자체는 크게 부족하지는 않다고 한다.

풍족하지도 않지만.

‘다크 엘프는 그 꽃가루도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먼 곳에 살고 있단 거군.’

-그렇죠.

그들은 살기 위한 양분을 얻기 위해 하이 엘프나 일반 엘프들에게 구걸을 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최하위 신분으로 전락했다고 한다.

말하자면 노예라는 뜻이다.

‘그 녀석들이 왜 여기 있는 거지?’

-넥타르를 원하는 것 같은데요.

유릭이 메르와 이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이에도 발터와 엘프들은 입찰 경쟁을 이어가고 있었다.

저 절실한 태도를 보면 넥타르가 꼭 필요하다는 것이겠지.

-넥타르는 세계수의 수액에 특별한 영초랑 향료를 이것저것 섞어서 만드는 거라 다크 엘프 입장에선 목숨줄처럼 보이겠죠.

‘그렇군.’

이야기를 들어보면 녀석들이 나타난 것도 이해는 된다.

천 년 전 이래로 엘프는 인간 세상엔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진짠지 거짓인지도 알 수 없는 목격담 정도나 간간이 유령처럼 나돌 뿐.

그 정도로 몸을 숨기고 있는데도, 이렇게 눈에 띄는 경매장에 나타났다.

그만큼 세계수의 수액이 절실하단 뜻이겠지.

‘뭐 사연은 안타깝지만.’

유릭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넥타르를 넘겨줄 순 없다.

이쪽도 가족의 사활이 걸린 문제니까.

그가 살짝 손을 들어 술을 따라주고 다니던 시종을 불렀다.

“무슨 일이십니까.”

시종이 몸을 굽히며 조곤조곤한 어조로 묻는다.

유릭이 그의 귀에 몇 마디 지시를 내렸다.

끄덕거리며 듣던 시종이 이내 고개를 푹 숙여 보였다.

“예. 확인해 보겠습니다.”

그가 떠나가 무대 뒤쪽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발터가 유릭에게 물었다.

“유릭, 뭐라고 한 거니?”

“저 둘에게 지불 능력이 있는지 확인해 달라고 했습니다. 금액이 이 정도로 커졌으니 한 번은 확인해야겠죠.”

“당연히 돈이 있으니 입찰을 하지 않았을까? 무슨 배짱으로 거짓 입찰을 하겠어?”

“글쎄요.”

유릭이 일단 지켜보자는 뜻으로 등받이에 몸을 묻었다.

발터는 조금 갸웃했으나 일단 확인하자는 말이 틀린 것도 아니어서 그냥 가만히 있었다.

잠시 후 벨스 가의 일원이 사람을 끌고 나타나 잿빛의 2인조에게 다가갔다.

그러곤 정중히 몇 마디 나누는 듯하더니.

“나가주십시오, 손님.”

이내 험악한 얼굴로 2인조를 쫓아내는 것이 보였다.

2인조는 어떻게든 사정을 하며 자리에 남고 싶어 하지만 벨스 가는 돈이 없는 이에겐 가차 없다.

곧 기사들이 나타나 둘을 강제로 끌고 출구로 향했다.

일체의 저항도 없이 웅크린 모습으로 2인조가 사라졌다.

‘후드가 벗겨질까 조심하고 있나 본데.’

조금 동정심이 드는 모습이었지만 말 그대로 조금이지 그 이상의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보단 넥타르다.

회귀 전엔 아마 얻지 못했을 그 비약.

이걸로 어머니는 성공할 수 있을까?

“잘했다, 잘했어! 덕분에 돈도 많이 굳었구나.”

발터가 싱글벙글 웃으며 유릭의 등짝을 탁탁 두드렸다.

2인조의 지불 능력이 확인되지 않아 그들이 입찰한 것은 모두 취소되었고, 발터는 처음 입찰했던 최소 금액으로 넥타르를 낙찰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야~ 저들에게 돈이 없는 건 어떻게 안 거니?”

“알고 있던 건 아니고 그냥 한번 확인해 본 거죠. 정체를 숨기고 있으니 수상하잖습니까.”

거짓말이다.

사실 다크 엘프의 설명을 듣자마자 돈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엘프 사회에서도 천대받는 노예 종족이라는데 무슨 재산으로 인간 사회의 돈을 대량으로 구할 수 있겠는가.

한 가지 가능성이라면 하이 엘프의 명령을 받고 넥타르를 회수하러 왔을 수도 있었지만.

‘그랬다면 돈 정도는 준비해 왔을 테니 그건 아니겠군.’

쫓겨난 것에서 그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본인들의 사정으로 왔다는 얘기.

뭐 어찌 됐든, 넥타르의 낙찰은 별 탈 없이 성공했다.

임무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끝난 것이다.

남은 건 무사히 가문까지 호송하는 일뿐.

‘그것도 쉽진 않겠는데.’

방금 기사들에게 붙잡혀 쫓겨난 다크 엘프들을 떠올렸다.

그들은 기사에게 저항하진 않았지만 시선만은 한곳에 또렷이 집중되어 있었다.

발터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이대로 포기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 * *

캉!

무수한 창끝이 허공을 덮으며 유릭을 압박한다.

유릭은 반격은커녕 막아내는 것만도 급급했다.

발터는 조금도 손을 늦추지 않고 유릭을 밀어냈다.

“그 둘이 엘프였단 말이냐? 진짜로?”

“예. 확실히 봤습니다. 귀가 기다랗고 피부가 잿빛이더군요.”

“세상에…….”

캉! 캉캉!

무사히 넥타르를 손에 넣고 도시를 떠나려는 준비 중.

발터의 부하들이 철수 준비를 하는 동안 잠깐 시간을 내어, 유릭은 발터에게 대련을 요청했다.

이유야 간단했다.

화령금안의 성능을 테스트하기 위해.

그리고 가능하다면, 발터의 언령을 보고 싶어서.

“엘프들까지 나타나다니. 넥타르는 자기들 물건이니까 회수하러 왔다는 건가? 돌아갈 때 조심해야겠는…… 흠?”

순간 창을 내지르던 발터가 멈칫했다.

유릭의 눈이 금빛으로 빛나며 그 안에 유령처럼 일렁이는 불꽃이 담겼다.

처음 보는 유릭의 변화에 그가 잠시 당황했으나 이내 정신을 차리곤 평소처럼 창을 찔렀다.

휙!

“……!”

발터가 눈을 크게 뜬다.

지금까지 막는 데 급급했던 유릭이 처음으로 창을 피한 것이다.

‘내 창에 익숙해진 건가? 아니, 그렇게 단조롭게 휘두르진 않았는데.’

그가 다시 창에 힘을 담아 찔러보지만, 유릭은 이번에도 피하는 데 성공했다.

그뿐만 아니라 안으로 파고들어 역공을 시도하기까지 했다.

캉!

대련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발터는 공세에서 수세로 돌아서야 했다.

“과연…….”

이게 필리페를 이길 수 있었던 힘이구나.

유릭의 눈이 자신을 관찰하는 게 느껴진다.

보통 달인급의 실력을 가진 이들은 상대의 미묘한 근육의 움직임을 보고 동작을 읽어낸다.

때문에 반대로, 그걸 이용해 페이크를 주어 상대를 교란할 수도 있다.

일종의 수 싸움인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유릭은 그런 페이크가 전혀 통하지 않았다.

유릭의 눈을 마주하니 오싹 소름이 돋으며, 마치 발가벗겨진 것만 같은 기분마저 들어왔다.

‘마나의 흐름이 보인다.’

유릭이 미묘한 근육의 움직임에 속지 않을 수 있던 이유는 이것에 있었다.

페이크를 주려는 근육의 움직임과 다르게 마나는 정직하다.

그것이 보이니 어느 쪽에서 공격이 들어올지 명명백백히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대련을 한 게 이거 때문은 아닌데.’

고작 이 정도를 시험해 보기 위해 바쁜 와중에 대련을 요청한 게 아니다.

발터의 언령이 알고 싶었다.

필리페와 다르게 완성된 그릇이 있는 건 알겠다.

다만 그릇이 보인다 하여 언령까지 보이는 것은 아니다.

‘생각해 보자.’

발터의 성명절기인 핏빛서리.

다만 엘가이아도 검기 자체는 그냥 기술이었듯이, 핏빛서리 역시 언령에서 파생된 하나의 기술에 불과할 것이다.

애초에 언령이란 상천의 신수 속에서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한 힘.

즉 자기 자신에 대한 것이지, 상대를 어찌하는 기술이 아니다.

그럼 대체 뭘까…… 하고 고민을 하던 중.

‘이게 아니지.’

그러다 깨달았다.

이렇게 고민을 하는 것 자체가 이미 글렀다는 것을.

언령의 깨우침은 하늘이 점지하는 것처럼 내려온다. 논리와 상식으로 추론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로 생각하고 판단하려는 것부터 이미 잘못된 것이다.

그리고 그 깨우침을 위해서는.

“외숙. 부탁할 게 있는데요.”

“응? 왜 그러니?”

캉!

달라진 유릭의 움직임에 익숙해졌는지 발터는 다시 공세로 돌아가 있었다.

역시 대단하다.

화령금안을 썼는데도 잠시 밀어붙인 게 다라니.

“좀 더 살기를 담아서 팍팍 안 됩니까?”

“뭐?”

유릭의 말에 발터가 당황했다.

“그래야 제대로 수련이 될 것 같아서요.”

“조카한테 그건 좀…….”

“저는 괜찮습니다.”

“내가 안 괜찮아. 살기란 건 마음이 동해야 하는 것인데 사람 마음이란 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잖니?”

그것도 그렇다.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아 유릭이 쩝 입맛을 다셨다.

좀 제대로 된 살기를 받아내야 깨우침이 있을 것 같은데.

카가강-!

슬슬 대련이 끝을 향해 치달았고, 발터가 마지막으로 얘기했다.

“필리페의 시체가 아칸 쪽으로 출발했으니 곧 그쪽에도 한바탕 소란이 일 거다. 주의하거라. 가문 단위의 대응은 나나 할아버지가 하겠지만, 아칸이 생각보다 통일된 가문이 아니니까.”

“가문의 뜻과는 별개로 원한을 가진 암살자가 찾아올 수도 있겠군요.”

“그렇게 되면 노리는 건 내가 아니라 너일 거다. 필리페의 목을 친 건 너니까.”

카앙!

커다란 타격음과 함께 두 사람이 크게 물러났다.

“조심하겠습니다.”

검을 집어넣으며 유릭이 수긍했다.

이미 각오했던 바이다.

필리페를 처리하려고 마음먹었을 때부터 예상했던 일이니까.

“이만 돌아가자. 슬슬 철수할 때가 됐어.”

“예.”

좋은 대련이었다며 만족하는 발터를 따라 유릭도 숙소로 돌아갔다.

* * *

벨파스트에서 일단의 무리가 빠져나왔다.

말을 탄 건장한 기사들만 수십여 명.

선두의 깃발에는 당당한 로스카의 깃발이 걸려 있었다.

“그럼 돌아간다!”

“예!”

발터의 지시에 우렁찬 대답이 들려왔다.

유릭과 데릭은 발터의 옆에서 나란히 말을 몰았다.

다그닥, 다그닥!

수십의 말발굽이 먼지를 일으키며 북상했다.

발터의 품속에 들어 있는 넥타르.

그것 하나를 호송하기 위해 이 많은 인원이 일제히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북상하던 중.

“잠시.”

선두의 발터가 말머리를 멈췄다.

어느 숲의 입구에서였다.

“매복이 있군요.”

“알겠느냐, 유릭?”

옆에 있던 유릭에게도 느껴진다.

숲에서 불온한 기운이 풍겨 나오고 있었다.

이 시점에서 숲에서 매복을 할 놈들이라면 짐작이 갔지만…….

“2명 정도가 아닌데요?”

문제는 기척의 숫자에 있었다.

절대 2명 수준이 아니다.

못해도 수십은 매복하고 있는 듯했다.

‘하긴, 경매장에서 2명을 봤다고 2명만 있으리란 법은 없으니.’

유릭의 옆에서 발터는 고민에 잠겨 있었다.

숲에서의 매복.

평범한 산적이라면 무시하고 지나가면 그만이지만, 상대가 정말 엘프라면 얘기가 다르다.

숲에서의 엘프는 1명이 능히 10명의 기사를 상대할 수 있다고 하였다.

10명의 병사도 아니고 기사.

그만큼 숲의 엘프는 무서운 존재라는 뜻이다.

“이 숲은 반드시 지나야 하는데…….”

끄응, 발터가 고민하고 있을 때.

“뭘 고민하고 계십니까.”

유릭이 앞으로 나섰다.

“좋은 생각이 있느냐, 유릭?”

좋은 생각이고 자시고, 숲이 문제라면 해결법은 간단하다.

“다 태우고 가면 되죠.”

화륵!

망설임 없이 유릭이 손바닥 위에 나찰 염환을 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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