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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166화 (166/166)

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 166화

166화. 왜 여기 있어?

다음 날, 출발의 시간이 되어 일행은 밀밭의 가운데에 섰다.

엘프 부녀를 포함한 총 7명.

조그마한 가지 하나로 모두 이동할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7명 정도라면 괜찮다고 한다.

“휴우.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무사히 가지를 돌려받아 안도의 한숨을 쉰 디올가가 집중하기 시작했다.

약간 긴장을 하는 일행들.

가장 어른인 발터조차 꽤나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있는 듯했다.

요정계에 가는 것은 처음일 테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완전히 새로운 장소에다 가문의 지원도 전혀 바랄 수 없으니. 여차할 때의 퇴로도 확실치 않고.’

그렇기에 더더욱 이만한 전력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헤쳐 나갈 수 있도록.

더해서 하이 엘프의 영역을 뚫고 들어가 세계수에 접할 수 있도록.

‘그곳에도 언령을 가진 존재들이 있겠지.’

엘프들은 어떤 방식으로 언령을 깨닫고 또 다루고 있을까.

다이앤의 말론 하이 엘프가 그렇게 무서운 존재라는데, 하이 엘프의 강자는 어떤 언령을 가지고 있을까.

‘그러고 보면 아니스와의 대련은 잘 안 됐지.’

어제 했던 아니스와의 대련은 크게 특출난 것은 없었다.

오랜만에 검을 나눈 것은 좋았지만 발터 때와 마찬가지로 언령의 습득은 실패한 것이다.

하긴, 발터는 안 되는데 아니스만 되는 것도 또 이상한 일이다.

‘새로운 적이 필요해.’

역시 자신이 강해지기 위해선 적이 필요하다.

보다 뛰어난, 문의 존재를 아는 강자가.

요정계, 그 땅엔 어떤 적이 도사리고 있을까.

이상하게도 유릭의 마음을 채우고 있는 것은 긴장이 아닌 설렘이었다.

‘단련에 중독이라도 된 건가.’

유릭이 피식 웃으며 소맷자락을 단단히 여몄다.

예전에는 볼모로 팔려가지 않겠다는 일념뿐이었는데 어느새 다른 감정이 섞이기 시작했다.

문 너머를 보는 일.

그때의 <외우주>에 다시 한번 발을 들이는 일.

거창하게 얘기하지만 사실 단순한 이야기다.

누구보다 강해진다.

남자로 태어나 그걸 바라지 않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

-다 됐나 봐요.

메르의 말과 함께 유릭이 고개를 들었다.

“가시죠!”

디올가의 손에 들려 있던 세계수의 가지가 빛을 흩뿌리기 시작했다.

* * *

빛이 가시자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쨍쨍 내리쬐는 햇빛이었다.

사막의 태양에 비견될 정도로 뜨거운 태양볕과 말라비틀어지다 못해 쩍쩍 갈라진 잿빛의 토지.

간간이 보이는 나무나 식물들도 대부분이 마르고 초췌해 이렇게 살풍경할 수가 없었다.

“여기가 요정계인가?”

“그런 모양입니다, 외숙.”

발터와 데릭이 신기한 표정으로 이리저리 주변을 둘러보았다.

글렌과 아니스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아, 일행 전체가 무슨 처음 관광지에 온 여행객처럼 되어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환영합니다, 모두들.”

“이런 곳이지만 조금만 참아주세요. 일단 그늘부터 찾죠.”

고향에 돌아온 덕분인지 조금 생기가 돌아온 디올가와 다이앤이 일행을 안내했다.

그들이 찾아간 곳은 땅에 파여 있는 한 토굴로, 쉼터처럼 마련되어 있는 곳이었다.

안에는 흙을 적당히 빚어놓은 네모난 물체가 있었는데, 아마 테이블과 의자로 보였다.

“그래도 그늘에 오니 괜찮지 않습니까?”

디올가가 멋쩍게 웃으며 얘기했다.

유릭이 물었다.

“원래 이렇게 더운 건가?”

“이 바깥쪽은 그렇습니다. 태양볕을 막아줄 것이 아무것도 없거든요.”

“안쪽은 달라?”

“일반 엘프들의 영역은 대기에 퍼져 있는 세계수의 꽃가루 덕에 비교적 쾌적합니다. 하이 엘프의 영역은 말할 것도 없죠. 거긴 애초에 세계수의 그늘로 덮인 곳이라 기온도 습도도 완벽하다고 하더군요.”

핍박받고 있다는 다크 엘프의 처지는 많이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심지어 기온은 삶의 질에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가 아닌가.

“힘들겠군.”

“저희는 익숙해서 괜찮습니다. 자 이쪽으로 오시죠. 마을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디올가가 토굴 한쪽의 문을 열더니 아래 지하로 내려갔다.

지상의 태양볕 때문에 다크 엘프는 주로 지하에 땅을 파 생활한다고 한다.

마을 역시 이 아래쪽에 형성되어 있다고.

“생각보다 힘든 임무가 되겠구나.”

발터가 유릭에게 얘기했다.

“당장은 지하를 거점으로 삼는다 해도 세계수에 어찌 접근할지…….”

“엘프들의 영역에 들어가는 것부터 일이겠군요.”

“거기다 그 안에서 또 하이 엘프의 영역까지 숨어들어야 하니까.”

확실히 쉬운 임무는 아니다.

그런 반면에 이쪽은 시간도 많지 않았다.

제대로 된 보급이 없는 만큼 임무는 최대한 속전속결로 끝내야 했다.

“마을에 도착하면 거처를 잡고, 흩어져서 조사를 해보자.”

발터가 각각에게 역할 분담을 하였다.

“일단 나는 요정계의 전체적인 지리를 알아보도록 하마. 만에 하나 몸을 숨길 만한 장소도 물색해 보고. 데릭, 너는 나를 좀 도와다오.”

“예.”

“글렌은 식량과 식수를 보충할 곳을 알아보렴. 엘프들도 물 없이 살지는 못할 테니까 식수는 있을 것 같은데, 식량은 조금 불안하구나.”

“저는 뭘 하면 될까요?”

“아니스 너는 거처를 지켜다오. 한 명은 있어야 하니까. 너는 정령이 있으니 지키는 일엔 적임이라 생각한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유릭은-”

다음으로 발터가 유릭을 보았다.

유릭이 할 일은 명백했다.

“저 부녀와 함께 행동하거라.”

“다크 엘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라는 거죠?”

“그래. 애초에 우리가 이곳에 있는 건 저들이 네 힘을 원했기 때문이니까. 하는 김에 마을의 분위기도 살펴보고 가능하면 친분을 만들어두렴. 현지의 조력자는 많을수록 편해.”

유릭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각자의 역할을 상기하며 그들이 디올가의 뒤를 따라 다크 엘프의 마을로 향했다.

일행은 그리 오래지 않아 디올가의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뭐야. 너희가 다야?

-그, 그렇습니다. 마을의 남자는 이게 전부입니다.

-어휴, 삐쩍 말라비틀어져서는 제대로 써먹을 수 있을지 몰라.

마을의 분위기가 조금 이상했다.

토굴의 문을 완전히 열기 전에 디올가가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했고, 뒤쪽을 돌아보며 입술에 검지를 대었다.

조용히 하란 신호를 보낸 그가 문을 살짝 열고 마을 안을 엿보았다.

문 틈새로 마을의 광경이 비쳤다.

광장이라고 만들어 놓은 중앙의 공터에 마을의 남자들이 줄을 지어 시립해 있다.

모두가 허름한 천을 입고 있거나, 그조차도 없어 상의는 입지 않은 이들도 많았다.

새삼 자신들의 처지가 비참해지는 디올가였으나,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저들은…….’

‘아, 아빠!’

디올가와 다이앤이 숨을 삼켰다.

마을 사람들을 세워놓은 그 앞엔, 하얀 갑주를 입고 창을 든 늑대 수인이 넷 있었다.

그리고 그 넷의 가운데 앉아 있는 여인.

윤기 나는 녹색의 머릿결과 보석과 같이 수십 갈래로 빛을 반사하는 영롱한 눈동자.

잘못 볼 리가 없다.

하이 엘프였다.

‘하이 엘프가 왜 여기에?’

다크 엘프의 특징은 잿빛의 피부에 있다.

피부가 하얀 것은 일반 엘프와 하이 엘프의 특징인데, 그 둘을 구분하는 것이 바로 저 눈동자였다.

일반 엘프의 눈동자는 다크 엘프나 아니면 인간들과도 크게 차이가 없다.

귀가 길고 대부분 미인이라는 점만 빼면 인간과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저 특징적인 다면체의 보석 같은 눈동자는 오로지 하이 엘프만이 가진 특성이었다.

‘어, 어쩌죠?’

‘일단 지켜보자꾸나.’

하이 엘프의 왕림은 마을엔 천재지변과 같은 것이었다.

그들의 변덕 하나에 마을이 사라질 수조차 있으니, 괜히 지금 나가서 시선을 끌 수는 없었다.

‘특히 지금은 안 된다. 우린 인간을 데려왔으니. 조용히 있자꾸나.’

‘네, 네에…….’

만약 허가 없이 인간을 데려온 것을 들켰다간 어떤 벼락이 내릴지 모른다.

딸을 진정시키며 디올가가 숨을 죽인 채 마을을 지켜보았다.

그곳엔 고개를 조아린 마을의 촌장과 하이 엘프가 대화하는 것이 보였다.

“뭐 이 근처 마을은 여기뿐이니 이 정도로 만족해야겠네. 일단 준비해.”

“저…… 준비라 하심은…….”

“요새 쫓고 있는 짐승이 있는데 이 근방으로 도망쳤거든. 꼭 애완동물로 삼고 싶은데 어찌나 영리한 지 몇 차례나 놓쳤지 뭐냐. 그러니 너희가 도와야겠어.”

“저, 저희같이 허약한 다크 엘프가 수인 병사도 놓치는 짐승을 어찌 붙잡겠습니까.”

“누가 너희보고 잡아 오래? 그냥 내가 말하는 데서 자리만 지키고 있으면 돼. 도망치지 못하게 포위만 하고 있으라고.”

“하지만…….”

그거나 그거나 같은 말이 아닌가.

몇 번이나 놓쳤다고 했으니 이번에도 놓칠 테고, 짐승은 포위를 뚫기 위해 자신들을 공격할 테지.

도저히 무사히 끝날 일이 아니다.

거기다 최악의 경우 포위가 뚫렸단 걸 빌미로 큰 벌을 받을 가능성조차 있었다.

불합리한 일이지만 그런 불합리를 당연히 겪어온 그들이었기에 그만큼 불안했다.

“하아…… 거 되게 말이 안 통하네. 알았다. 내 말을 들어주면 이걸 주도록 하지.”

그때 하이 엘프가 옆에 있던 수인병의 허리춤을 뒤져 나뭇가지 하나를 꺼냈다.

세계수의 잔가지로, 그곳엔 무려 작은 꽃봉오리가 2개나 달려 있었다.

“헙!”

촌장이 떨리는 눈으로 그것을 보았다.

모여 있는 다른 다크 엘프들 역시 살짝 눈이 충혈되었다.

아주 적은 양분으로 겨우겨우 버티고 있는 그들이다.

흙을 파내 말라비틀어진 오래된 뿌리를 찾아내거나, 강의 하류에서 뜰채질을 해 다 부스러진 낙엽을 떠내거나.

혹은 가끔 강한 바람이 불 때 일반 엘프의 영역에서 날아오는 꽃가루를 흡입하거나.

그 정도가 고작인 그들에게, 잔가지라곤 하지만 온전한 세계수의 가지는 그만큼 진귀한 보물이었다.

심지어 꽃봉오리가 2개나…….

“음, 이건 좀 많나? 하나는 뗄게?”

그 귀한 꽃봉오리 하나를 하이 엘프가 아무렇지 않게 떼어선 입에 넣었다.

간식거리라도 씹는 듯 오물거리는 것을 보며 다크 엘프들의 눈에 실망스러움이 떠올랐다.

그래도 그 실망감은 금방 가셨다.

줄었다곤 하나 꽃봉오리 하나만 해도 충분히 귀했으니.

“하여간 징글징글하긴. 다크 엘프들 욕심이 그렇게 끝이 없다고 하더니 그 말이 정말이구나?”

이쪽은 사활이 걸린 문제인 것도 모르고 하이 엘프는 경멸 어린 시선을 보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당연히 필사적일 수밖에 없는 걸 알 테지만, 그녀는 그 조금의 생각도 하기 싫은 거겠지.

울컥하는 다크 엘프들이었으나, 감히 말대꾸할 수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곧바로 준비해 올 테니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빨리빨리 해. 이러는 사이에 놈이 도망가면 어쩔 거야?”

재촉하는 하이 엘프를 두고 촌장이 마을 사람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조금이나마 무장을 하기 위해 그들이 뿔뿔이 흩어졌고.

‘지금이다.’

디올가는 지금이 타이밍이라고 보았다.

“내려가시죠. 다만 조용히 하셔야 합니다. 저 하이 엘프에게 들켰다간 일이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알겠다. 내려가자, 얘들아.”

디올가가 조심스레 문을 열고 마을의 구석에 있는 빈 건물로 일행을 안내했다.

다행히 들키진 않았다.

늑대 머리를 한 수인 병사가 있길래 냄새로 들키지 않을까 우려했는데 괜찮았던 모양이다.

토굴을 지나오며 굴의 냄새가 밴 것일지도.

“휴우…….”

“다행히 안 들켰네요, 아빠!”

“그러게 말이다.”

함께 안도의 한숨을 쉬는 부녀를 보며 유릭이 물었다.

“타이밍이 좋지 않은 모양인데.”

“그러게 말입니다. 하필 이럴 때 하이 엘프가 나타날 줄이야……. 이런 일은 거의 없는데 말입니다.”

“일단은 기다리면 되나?”

“부탁드립니다.”

마을 쪽에서 들려오던 목소리는 유릭도 들었다.

작은 소리였으나 내기를 끌어올려 그쪽에 집중하고 있었기에 못 들을 것도 없었다.

다른 일행도 대충의 사정은 모두 꿰고 있었다.

“일단 저 혼자 나가서 촌장님을 만나고 올게요.”

“다이앤! 위험하단다. 아빠가 가마.”

“아빠는 남자니까 들키면 끌려갈 거 아니에요. 제가 얼른 가서 얘기하고 올게요.”

“다이앤!”

말릴 기색도 없이 다이앤이 건물 밖으로 나갔다.

디올가가 초조한 기색으로 기다렸고, 발터는 조금 고민을 하고 있었다.

어찌 됐건 자신들은 하이 엘프의 영역에 들어가야 한다.

그 하이 엘프가 밖에 나와 있는 지금 상황은 좋은 기회인 것이 아닐까?

‘어떡할까. 납치라도 해봐? 말하는 거 들어보니 납치하는 데 죄책감도 없겠는데 말이다.’

‘괜찮을까요? 아직 이곳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데 성급한 건 아닐지…….’

‘하지만 확실히 기회는 지금뿐일지도 모르잖아. 하이 엘프가 여기까지 행차하는 건 거의 없는 일이라는데.’

발터와 데릭, 그리고 유릭이 조용히 의논을 시작했다.

데릭은 반대의 입장을 비쳤고 유릭은 강행해보잔 입장이었다.

양쪽의 얘기를 들으며 발터가 조용히 고민하고 있을 때.

“저 왔어요. 촌장님한테 잘 얘기했어요.”

“다이앤! 다행이다, 다행이야.”

무사히 돌아온 딸을 보며 디올가가 크게 안도를 하였다.

다이앤이 얘기했다.

“그나저나 저 하이 엘프가 쫓고 있다는 짐승 진짜 위험해 보이던데요.”

“그러니?”

“촌장님한테 얼핏 들었는데 세상에 세계수의 정령을 데리고 다닌대요. 어떻게 동물이 정령을 부릴 수 있지?”

그 말에 가장 먼저 귀가 쫑긋한 것은 유릭이었다.

“그 얘기 진짜야?”

“성자님? 네, 네에, 진짜예요. 하이 엘프가 그렇게 떠들었다고 촌장님이 그러셨어요.”

세계수의 정령을 부리는 짐승…….

하지만 이 넓은 세상에 그런 짐승이 또 있을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럴 가능성을 생각해 보았지만.

“털빛이 새하얀 호랑이라고 하던데. 아 그러고 보니 성자님이 데리고 다니는 새끼 호랑이도 하얬던가요?”

이건 확정이다.

유릭이 눈을 깜빡였다.

‘니네가 왜 여기 있어?’

대령과 힐라사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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