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전생각성>
쏴아아⎯
거대한 장원의 어느 으슥한 골목.
장대비를 맞으며 대자로 뻗어 있는 소년이 있었다.
가늘게 숨을 내쉬고 있는 소년은 부어 오른 뺨과 터진 입술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흠씬 두들겨 맞은 몰골.
“아. 기억났다.”
불현듯 소년이 중얼거렸다.
멍이 들어 있는 눈두덩이 아래로 형형한 안광이 터져 나오는 것과 동시였다.
전생⎯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몇 가지 단편적인 사실만이 떠오를 뿐.
백 년이 넘도록 산속에서 검만을 휘두르며 살았다.
인연이라고 할 만한 이도 사부뿐이었다. 마찬가지로 검에 미쳤었던. 검귀(劍鬼).
‘본좌 대신 검의 끝을 보아라.’
천명을 다하면서까지 사부는 그에게 검에 미친 귀신의 삶을 강요했다. 물론 그는 그러한 강요가 아니어도 검귀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검이라는 것은,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매혹적인 어떤 것이었으니까.
그 후로 검의 극의를 깨닫고자 얼마나 많은 선을 그려댔었는지.
마침내.
생(生)의 막바지에서, 비로소 오의라 할 만한 깨달음이 찾아왔다.
검법(劍法)
검식(劍式)
검초(劍招)
검로(劍路)
검격(劍擊)
검공(劍功)
그가 평생 쌓아온 모든 것을 한 줄기로 관통하는 무언가.
검귀가 검신으로 화하는 순간이었다.
엄청난 성취감.
검의 끝을 보고 말았노라는 만족감.
그러나 지극한 황홀감 직후에 찾아온 것은 극도의 허무였다.
죽음이 코앞에 다가왔다는 것을 깨닫자 후회가 됐다.
‘결국 나는 제대로 된 인생(人生)을 살지 못했다. 사람이 아니었다. 검귀였지. 만약 다시 한 번 삶이 주어진다면....’
그깟 검짓이 뭐라고 그토록 생을 쏟았던가.
‘...차라리 평범하게 살 것을.’
그게 마지막 생각이었다.
전생각성(前生覺醒)이라 해야 할까.
쉽게 믿기 힘든 일이 소년의 몸을 빌려 일어났다. 족히 기사(奇事)라 할만 했다.
“후.”
소년은 한숨을 길게 내쉬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형형했던 안광이 순식간에 갈무리된다.
반박귀진(返璞歸眞)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비범함을 평범함으로 가렸다는 의미다.
이제 소년에게 일어난 일을 누구도 짐작치 못하리라.
그 누가 상상이나 할까.
이제 막 열 두어 살이나 되었을 것 같은 소년의 몸에 평범하게 살고자 하는 검귀, 아니 검신의 혼이 깃들었음을.
다시 눈을 뜬 검신, 아니 소년⎯
당연명(唐延命)
그가 누워 있는 곳은 바로 사천당가(四川唐家)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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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무림정세>
무림은 망했다!
저잣거리에서 민초들이 공공연히 떠드는 말이었다.
괴이한 호흡법을 익혀 무공이란 것을 구사하는 무림인이라는 괴력난신들이 활보하는 시대가 막을 내렸음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기존의 무림 질서가 송두리째 무너졌음을 말하는 것뿐이었다.
구파와 오대세가⎯로 대변되었던 무림은 이제 옛말이었다.
산속에서 고매한 무공으로 심신을 수양한다는 아홉 개의 뿌리 깊은 문파는 이제 여섯 곳... 소림, 화산, 무당, 곤륜, 공동, 종남뿐이었다. 구파(九派)가 졸지에 육파(六派)가 된 것이다.
오대세가는 그대로 오대세가였다.
다만 그 면면이 바뀌었을 뿐이다. 옛 오대세가의 명성을 그나마 조금이라도 이어가는 것은 안휘의 남궁세가와 하북의 팽씨세가뿐이었다. 다른 세 곳은 이제 세가(世家)라 불리지 못한다.
호북의 제갈가(諸葛家)
요녕의 모용가(慕容家)
그리고 사천의 당가(唐家)....
그들은 당장 가문의 명맥이 끊기는 것을 걱정해야 할 판국이었다. 주력 고수들은 모조리 죽어나갔고, 때문에 가전무공의 핵심요결들이 제대로 전수되지 않았다.
무가(武家)란 결국 지닌 무력에 의해 평가받는 법이다. 옛 영광은 더 이상 그들을 지켜주지 않았다. 가만히 있어도 창고가 터져 나갈 정도로 쌓이던 재물은 이제 온데간데없고, 주단으로 된 옷을 입던 가솔들은 거친 무명천으로 만든 옷을 입는 것도 모자라 해지면 기워 입고, 또 해지면 기워 입었다.
부자는 망해도 삼 대는 간다고 했던가.
무림세가에는 해당되지 않는 말인 모양이었다. 몰락은 몹시 빠르게 이루어졌다. 과거의 영광을 회복하고자 한 제갈가와 모용가는 남은 가산을 모조리 투입해서 가문의 부흥을 꿈꿨지만, 무색한 시도였다.
무학이라는 것이 그랬다. 오랜 세월 시행착오를 겪고, 또 엄청난 자질을 지닌 이들이 가다듬고 가다듬은 것이 바로 구전으로만 전해지는 핵심요결이었다. 그게 실전되었으니, 아무리 영약을 밥 먹듯이 먹고 절치부심하여 수련을 해도 예전의 무력과 성세를 되찾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결국은 가산만 탕진한 꼴이었다.
그나마 한때 독과 암기의 조종이었던 당가는 좀 나은 처지였다. 그들은 영초보다는 독물을 수집했고, 암기야 자체적으로 만드는 까닭이었다. 또한 독을 연구하며 자연스레 발전한 약학 덕분에 용한 의원 행세를 하며 벌어들이는 돈도 적지 않았다.
물론 몰락의 진행 정도가 더디다뿐이지, 그들 역시 무가로서의 명성은 점차로 옅어져 가고 있었다.
아무튼 작금의 정도무림이 어쩌다 이런 꼴이 되었는가 하면 바로 불세출의 기재 둘의 출현 때문이었으니....
사도(邪道)에서는 흑사련주(黑蛇聯主) 유길준!
마도(魔道)에서는 마광천주(魔廣天主) 연중혁!
무학의 천재가 한 시대에 둘이나 나왔다.
그것도 사도와 마도에 각각 하나씩.
정도무림으로서는 재앙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사천 태생 흑사련주 유길준은 흑사파라는 뒷골목 왈패 출신이었다. 당시 흑사파 두목은 어린 유길준의 재능을 알아보고 약간의 조잡한 무공을 가르치고 싸구려 영약을 먹였다. 보통 사람에게라면 그것은 그저 있으나마나한 작은 인연일 터였다.
그러나 대종사의 자질을 타고난 유길준에게는 그것이 엄청난 기연으로 작용했다. 그는 흑사파 두목이 가르치는 조잡한 무공의 허점을 순식간에 간파해 더 나은 무공으로 개변해냈고, 그걸 토대로 새로운 무공을 창안해냈다. 당시에 창안한 무공들이 지금 흑사련에 투신한 이들이 배우고자 하는 절기들이었다.
싸구려 영약은 또 어떠했나. 원래라면 한 줌의 진기가 축적되고 마는 것이 정상이었다. 하지만 유길준은 그 한 줌의 진기로 대주천을 성공해버리고 만다. 진기를 느끼자마자 어떠한 방향으로 도인해야 하는지 본능적으로 깨달은 것이다.
호흡이 거듭될수록 강해진다. 빈말이 아니었다. 유길준은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강해졌다.
그러다 사건이 터졌다.
길을 지나던 청성파 도사 하나가 흑사파 두목과 시비가 붙어 그를 죽여 버린 것이다. 산속에서 수련만 해 자신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제대로 알지 못한 젊은 도사가 과하게 손을 쓴 것이다. 곁에는 아미파와 점창파의 인물이 있었다. 그들은 인과응보라며 청성파 도사를 위로하고 그대로 길을 떠났다.
고아였던 유길준은 흑사파가 가족이었다. 두목은 그에게 무학의 세계를 깨닫게 해준 은인이었다. 아무리 지닌 재능과 경지가 일천할 지라도.
⎯은혜는 두 배로, 원한은 열 배로.
당시 사천제일가로 이름을 날리던 당가의 가규(家規)였다. 유길준은 사람이라면 마땅히 그리해야 한다고 여겼다. 그날로 청성을 원수로 삼았다. 유길준은 그때부터 재미가 아니라 원한을 갚기 위해 강해지기로 작정했다.
그로부터 딱 오 년 뒤.
유길준에 의해 청성이 멸문했다. 그의 뒤를 따르는 이들은 하나같이 고강한 무위를 지니고 있었는데, 놀라운 것은 그들이 바로 흑사파의 인물들이라는 것이었다. 뒷골목 왈패에 불과했던 이들이 청성파 장로들과 견주어도 밀리지 않을 실력을 지니게 됐다.
청성파를 멸하고 그 자리를 꿰찬 유길준은 흑사련을 개파하고 스스로 련주의 자리에 올랐다. 무슨 수를 쓴 것인지 흑사파 인물들 역시 모두 고강한 무위를 지니게 되어 흑사련의 요직에 앉았다.
청성과 교분이 두터웠던 아미와 점창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척사(斥邪)의 기치를 내걸고 연합하여 흑사련을 치기로 한 두 문파였지만, 역으로 유길준에게 당하고 만다. 두 문파의 장문인이 합공하고도 유길준에게 속절없이 밀린 이야기는 민간에서도 아주 유명해진 일이다.
그때의 일전에서, 아미와 점창은 장문인을 포함한 주력 제자들을 상실하고 만다. 그리고 공격당한 유길준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바로 흑사련을 이끌고 아미와 점창을 차례로 멸문시켰다. 전해지기로는 기둥뿌리 하나 온전하게 남은 것이 없다고.
사천무림은 완전히 난리가 났다.
어찌 그러지 않을까. 수백 년을 이어온 구파 중 셋의 명맥이 완전히 끊어졌다. 그것도 한낱 신진 문파에 의해서. 경천동지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 후로도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지만, 큰 사건은 대충 그 정도였다. 현재로서는 사천의 지존(至尊)이라 하면 누구나 흑사련주 유길준을 지목하는 형편이다.
다음으로는 마광천주 연중혁의 얘기를 해 보자.
유길준과는 다르게 연중혁은 마도의 적장자였다. 천마신교의 소교주로 태어난 그는 어릴 적부터 무공에 두각을 보였다.
천무지체(天武之體)
수백 년에 한 번 등장할까 말까한 엄청난 무의 자질을 타고난 까닭이다. 하늘이 내린 무(武)의 몸이라는 말답게, 그의 몸은 무학의 이치를 당연하다는 듯이 체화했다.
익히는 족족 대성(大成)!
이해 따위는 필요 없었다. 몸이 저절로 묘리에 따라 움직였으니까. 천무지체라는 것이 원래 그랬다. 불가해의 존재였다. 심후한 내공을 쌓을 세월과 강대한 무공만 있다면 천하제일인의 자리까지 넘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연중혁은 천마신교의 소교주였다.
온갖 마공을 섭렵할 수 있는 위치.
강해지는 속도가 무지막지했다. 천마재림이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려올 정도였다. 약관에 이르렀을 무렵에는 아비인 교주마저 그를 두려워해 멀리했다. 내칠 수도 없었다. 이미 천마신교에서는 교주인 그보다 소교주인 연중혁을 따르는 이가 많았으니.
연중혁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교주가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나 연중혁은 효성스러운 인물이었다. 제 아비 하나만은 끔찍이 생각했다. 설령 아비가 자신을 두려워할 지라도. 결국 연중혁은 고민 끝에 따르는 자들을 이끌고 천마신교를 나오게 된다. 너무 강해져버린 탓에, 자신의 존재 자체가 교에서 분란의 씨앗이 됨을 깨닫고 내린 결정이었다.
그렇게 떨어져 나와 새로이 개파한 마도문파가 바로 마광천(魔廣天)이다.
당시 그의 나이 스물셋이었다. 일문의 종주를 자처하기엔 턱도 없이 어린 나이. 하지만 문도를 자처하는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누구도 무시하기 힘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때 천마신교에서도 내로라 할 정도로 호전적이고 실력 있는 무인들이었던 것이다. 연중혁이야말로 진정한 천마가 될 것이라며 따라 나온 이들.
당연히 처음엔 누구도 마광천과 갈등을 빚으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연중혁에게는 한 가지 괴벽이 있었다.
바로 명문가의 규수들을 탐한다는 것.
단순히 얼굴이 아름답다거나 하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그가 원하는 여인상은 어떤 고결한 기품과 쉽사리 볼 수 없는 재주를 지녔으면서도 순종적이지 않은, 그런 것이었다. 천무지체를 타고나 높은 무위를 쉽게 이룬 탓일까. 연중혁은 쉽게 꺾이지 않는 꽃을 원했다. 자기 맘대로 되지 않는 것에서 오히려 희열을 느끼는 듯했다.
그리고 연중혁이 원하는 특징에 부합하는 여인들은 대부분 무림세가의 금지옥엽들이었다.
연중혁은 인근 문파들에 차례차례 매파를 보냈다. 귀하의 딸을 반려로 맞고 싶다면서.
세가 약한 문파의 문주들은 마광천에 쉽게 굴종했다. 하나뿐인 딸을 연중혁에게 상납한 것이다. 멸문을 피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연중혁이 나서지 않더라도, 그의 말을 하늘 같이 여기는 수하들이 구름같이 있었으니.
연중혁은 한 번 꺾은 꽃에는 쉽게 흥미를 잃었다. 혼사를 치르고, 하룻밤을 보내고 나서는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연중혁과 혼례를 치른 여인들은 물론이고 그녀들의 가문은 지독한 모멸감에 몸을 떨 수밖에 없었다.
한편.
한동안 기행을 이어가던 연중혁은 결국 오대세가에까지 손을 뻗치게 되는데, 처음으로 접촉한 곳이 바로 호북의 제갈세가였다. 호북제일미로 이름 높던 제갈수란을 반려로 맞고 싶다면서 매파를 보낸 것이다.
제갈세가에서 그동안 연중혁의 기행을 모를 리 없었다. 제갈세가주는 대노하며 그 자리에서 연중혁의 서신을 갈기갈기 찢어버렸고, 직접 매파의 목을 쳐버렸다. 분노한 것도 있었지만 정도무림의 영역 한가운데 자리한 자신들을 어쩌지는 못할 거라는 계산이 깔린 행위였다. 올 테면 와 보라는.
그리고 이 사실을 전해들은 마광천 문도들은 격분했다. 감히 제갈가 따위가 마(魔)로 하늘을 덮을 분의 권위를 손상케 했다면서. 그렇게 제갈세가와 마광천이 부딪쳤다. 바로 전면전이었다.
결과는 참혹했다.
제갈세가주는 연중혁의 소수마공(素手魔功)을 당해내지 못하고 머리통이 뽑혀 죽었고, 온갖 진법으로 점철되어 있던 제갈세가는 수백 마인들에 의해 반파되고 말았다. 가솔들도 상당수가 목숨을 잃었는데, 그나마 제갈수란이 자진해서 연중혁을 상공으로 받들겠노라 말함으로써 나머지 목숨이라도 살릴 수 있었다.
그 뒤로 연중혁은 제갈수란과 성대한 혼례식을 올리고, 여직 그랬듯 이내 제갈수란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 원통함과 억울함에 제갈수란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때도 별다른 감흥을 보이지 않았다.
제갈세가는 그렇게 몰락했다.
한편 이때를 기점으로 연중혁의 무위가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제갈세가주가 죽는 모습을 목도한 이들이 워낙에 많았던 까닭이었다. 아무리 제갈세가가 다른 오대세가들에 비해 무력이 떨어진다 한들, 제갈세가 무학의 정점에 이르러 있다는 평을 받던 이를 한 손으로 끝장내는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연중혁은 멈추지 않았다.
한 번은 혼자서 요녕에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 마침 나들이를 나왔던 모용세가의 여식을 보고 또 괴벽이 동한 것이다. 매파를 보내는 게 귀찮았던 연중혁은 그냥 그날로 모용세가를 직접 방문했고, 이는 모용세가가 멸문에 가까운 피해를 입는 결과로 이어졌다.
안휘에 있는 남궁세가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지만, 천하제일검으로 알려진 검왕 남궁장천이 나서서 겨우 막을 수 있었다고 했다.
기질 자체가 괄괄하고 여인들도 기골이 장대한 하북팽가에는 연중혁의 마음에 차는 여인이 없었고.
사천당가는 독과 암기를 내세워 마광천과 치열한 격전을 벌인 끝에 독봉(毒鳳) 당지혜를 내주지 않을 수 있었다. 아니, 사실은 흑사련 때문에 전면전으로까지는 번지지 않은 덕이 컸다. 사천은 흑사련의 영역이었으니까. 연중혁이 직접 나서지 않은 이유도 있었다.
아무리 연중혁이 제멋대로라 해도, 이미 구파 중 셋을 무너뜨린 유길준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은 꺼림칙했는지도 몰랐다.
그렇다 해도 당가의 전력 손실은 상당했다. 독에 중독된 마광천의 고수들은 죽음을 도외시하고 달려들었다. 동귀어진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최고수였던 당가주를 포함해 핵심인물들이 대부분 죽어버린 것이다. 구전으로 전해지는 핵심요결을 따로 남길 여지조차 없이 발생한 일이었다.
당가 또한 서서히 몰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어쨌건.
전생을 각성한 소년, 당연명이 살아가야 할 무림은 대강 이런 상황에서 십여 년쯤 더 흐른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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