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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당문의 검신급 소가주가 되었다-2화 (2/134)

2화<최소한의 강함(1)>

가문을 말아먹은 년!

한때 사천에서 독봉이라 불렸던 여인을 칭하는 말이다.

세가라 불리던 가문이 몰락했다.

엄밀히 말하면 여인의 잘못은 아니었다. 독봉 당지혜가 연중혁의 눈에 든 것은 말하자면... 그래, 일종의 천재지변과도 같은 일이었다. 천하에서 가장 강력하다는 다섯 무가 중 일익으로서의 자존심이 아니더라도, 당지혜에게는 혼약자가 있었다. 독봉을 연중혁에게 시집보낸다는 선택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마광천과 대적하는 것은 분명 가문 내부의 중론이 모아져서 내려진 결정이었다.

그러나 인간의 습성이 원래 그런 것일까. 시간이 흐르자, 가솔들은 가문이 몰락한 원인을 자신들의 약함이 아닌 다른 무언가에서 찾고자 했다.

분위기가 요상하게 흘러가는 것은 금방이었다. 마광천에 대한 적대감을 뒷전으로 미뤄두고, 마치 당지혜가 스스로를 희생했으면 가문의 위세를 지킬 수 있었던 것처럼 말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마광천에 대한 적대감이 독봉에 대한 원망과 비난으로 변질되어갔다.

당지혜.

독봉이라고까지 칭해지며 촉망받던 당가의 후기지수는 금세 빛을 잃었다. 원하는 혼인을 하고서도 행복해질 수 없었다. 마광천과의 일전으로 인해 죽거나 다친 가솔들이 셀 수 없이 많았던 까닭이다. 원래도 마광천과의 마찰을 자책하던 그녀는, 가솔들의 원망과 비난에 대해서도 구태여 부인하지 않고 그냥 받아들였다.

‘혜매의 잘못이 아닌데.’

‘괜찮아요. 낭군. 이렇게라도 가솔들의 마음이 편해지면 그걸로 됐어요.’

‘하지만....’

수많은 이들 중에 당지혜의 편을 들어주는 것은 오로지 한 사람. 그녀와 백년가약을 맺은 당위룡뿐이었다. 그는 원래 하위룡이라는 자로, 무림과는 연이 없던 학사 출신이었다. 작은 인연으로 두 사람은 연심을 키워 나가 결국 혼약을 맺게 되었고, 혼인 후에는 데릴사위의 전통에 따라 하위룡은 성을 당씨로 고치고 당가 내에서 지내게 되었다.

비록 무공 하나 모르는 백면서생이었지만, 당위룡은 처를 두둔하는 데 몸을 사리지 않았다. 가문을 말아먹은 년이라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상대가 누구건 간에 달려가 실랑이를 했다.

‘그녀가 대체 무슨 잘못을 했단 말이오! 가문의 위세가 약해진 것을 한낱 아녀자의 탓으로 돌리다니, 너무 치졸한 것 아니오?’

‘흠. 마냥 틀린 말도 아니지 않소? 그녀가 만약 그대와 혼인하지 않고 조금만 희생을 했더라면....’

‘이자가 정녕...! 부끄러운 줄 아시오! 그대와 같은 생각을 하는 이들이 수두룩하니 가문이 계속 쇠락하는 것 아니오?’

당위룡의 말은 여러 사람의 심기를 상하게 했다. 몰락했다고는 하나 당가는 독과 암기의 조종이라고까지 추앙받던 가문이다. 사람 하나 은밀하게 죽일 수단은 차고 넘쳤다. 가솔들을 성토하는 당위룡을 스산한 눈빛으로 지켜보는 이들이 많았다.

그 후 몇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알 수 없는 이유로 당위룡은 요절하고 만다.

‘어떻게, 어떻게 이럴 수가....’

소식을 들은 당지혜는 혼절해버린다. 하루가 지나 그녀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장례를 비롯한 모든 과정이 신속하게 끝난 상황이었다. 기이하리만치 빠른 일처리.

독살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당지혜의 뇌리를 스쳤지만, 심증뿐이었다. 이미 사인(死因)을 살피기에는 너무 늦어버렸고.

안 그래도 가문 내에서 눈총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남편의 죽음에 가솔 중 누군가가 연루되어 있는 것 같다는 얘기를 꺼내면 가문 내 분위기는 훨씬 더 흉흉해질 것이 뻔했다. 가족이나 다름없는 이들을 의심하는 것도 할 짓이 못 되었고.

그렇게 당지혜는 점차 야위어갔다. 의원이 몇 번이나 살펴봤지만 신체에는 이상이 없었다. 그저 마음의 병을 얻은 것이었다. 여전한 자책과 가솔들의 비난, 당위룡의 죽음. 당지혜는 그냥 죽어버릴까도 몇 번이고 고민을 했더랬다.

다만, 그렇게 당지혜의 몸을 살핀 의원이 그녀에게 한 가지 사실을 귀띔해주었다.

‘부인께 태기(胎氣)가 있습니다.’

‘제가...회임을 했다는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그러니 어서 안정을 찾으시고 기운을 차리시기 바랍니다.’

‘그이의 아이가....’

당지혜의 눈빛이 바뀐 것은 그때부터였다. 어떻게든 살아갈 이유가 생긴 것이다. 그녀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정양에 힘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달의 시간이 지나 마침내 남아를 하나 출산하기에 이르렀다.

응애-

작고, 가녀린 아이였다. 체내에서 충분히 자라지 못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울음소리조차 미약했는데, 그게 몸을 돌보지 않았던 자신의 탓인 것 같아 당지혜는 또 한 번 가슴이 미어졌다.

그러나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이제 그녀는 여인이 아니라 한 아이의 어미였으므로.

****

어느 날 부턴가 소년, 당연명의 언행은 조금 달라졌다. 약간 껄렁해졌다고 해야 할까. 그러나 말과 몸짓에 여유가 있었다. 본래 유약하고 소심하기만 했던 그의 이전 모습에 비하면 확연한 변화.

물론 아직까지 이러한 변화를 눈치 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연명(延命)이라.’

소년은 괜히 자신의 이름을 속으로 되뇌어 봤다. 어떻게든 목숨을 이어 끈질기게 살아가라는 뜻으로 모친이 지어준 이름이었다. 아직까지는 별 감흥이 없었다.

소년, 아니 검귀이자 검신에 이르렀던 존재는 지금 새로운 기억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며칠 전까지 그는 분명 당연명이라는 소년이었다. 하지만 검에 미친 귀신으로 살았던 전생을 각성하게 되면서, 완전히 다른 자아가 생겨난 것이다.

당연명과 검귀.

둘은 하나인 듯 하나가 아니었다. 혼백은 하나이되 기억을 바탕으로 한 자아가 완전히 달랐다.

검귀의 자아에 비하면 소년 당연명의 자아는 몹시도 유약했다. 서로 겪은 세월에도 엄청난 간극이 있었으니....

검귀의 자아는 자연스레 소년의 자아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십 년이 조금 넘는 세월의 기억과, 가문에 대한 원망, 본 적 없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어머니에 대한 사랑, 애달픔 그리고 무력함 같은 것들이 함께 검귀에게로 흘러들어왔다.

순간적으로, 검귀는 소년의 기억만을 도려내서 흡수하고 나머지 자질구레한 감정의 잔여물 같은 것들은 버릴 수도 있음을 알았다.

하지만 검귀는 그러지 않았다.

여과 없이 소년의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온전한 당연명으로 행세하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판단했다.

‘...기왕 평범하게 살기로 했으니.’

검귀는 전생의 후회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짐 역시.

그렇게 검귀는 소년 당연명이 되었다.

그리고 상황이 파악되자마자 절로 나온 말.

“개판이구만.”

부은 눈언저리를 계란으로 쓱쓱 문지르며 당연명이 중얼거렸다.

사천당문 혹은 사천당가.

한때 독과 암기로 위세를 떨쳤던 사천의 명문 무가.

당연명이 나고 자랐으며 속한 곳.

‘뭐 이딴 집구석이 다 있지?’

정황상 부친인 당위룡이 독살당한 것은 거의 확실했다. 아무리 외인 출신의 데릴사위라 한들, 이제 가족이 된 사람에게 손을 쓰다니.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들었다.

모친 당지혜에게 가문을 말아먹었다며 가해지는 비난도 분통이 터졌다. 기억을 온전히 수습한 뒤로, 당연명은 그녀를 친모로 느끼게 됐다. 아니, 정말로 친모가 맞긴 했지만... 일찍이 고아로 자랐던 전생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어쨌거나 당연명이 생각하기에, 어머니인 당지혜의 잘못은 없었다. 잘못이라면 마광천보다 당가의 무력이 약한 것에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또한 천하의 난봉꾼 짓을 일삼고 있는 마광천주 연중혁의 탓이겠지.

‘...어느 정도의 강자일까.’

당연명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호승심이 인 것은 아니었다. 그는 이미 전생에서 검의 끝을 보았노라 자부했다. 단지 궁금했을 뿐이다. 마광천주 정도 되는 이라면 자신의 검을 받아낼 수 있을지 말이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부질없는 짓이다. 평범하게 살자. 평범하게.’

당연명의 결심은 확고했다. 다시 주어진 생은 소중했다. 가급적 눈에 띄지 않고 조용히 살아갈 생각이었다. 다만 최소한의 무력은 확보해둘 참이었다.

아예 평범한 집안에 태어났다면 모르겠지만, 사천의 옛 명문 무가인 당가 태생이 되었지 않나. 당연명의 새로운 기억에 따르면 사천은 그야말로 복마전이다. 청성파를 멸문시키고 그 자리를 꿰찬 흑사련을 위시해서 그 산하의 사파들이 수두룩했다.

흑사련주 유길준은 대종사의 자질을 지니고 있는 이라고 했다. 그는 숨 쉬듯 아주 쉽게 새로운 무공을 창안할 수 있었는데, 그렇게 창안한 무공을 휘하 문파들에 내려줌으로써 그들의 충성을 확보했다고.

원래도 사천의 사파들은 머릿수 하나만큼은 대단했다. 다만 구파 중 셋과 오대세가의 일익인 사천당가가 자리하고 있었기에 기를 펴지 못했을 뿐. 그런데 청성과 아미가 멸문하고 당가 역시 몰락하고 말았으니 사파 세력들이 상대적으로 강성해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유길준이 하사한 무공까지 익혀 몇몇 사파의 우두머리는 곤륜파 장로와도 일전을 불사할 정도로 강해졌다고 했다.

사천은 그야말로 사도천하라고 할 수 있었다...!

이러한 판국에 당가가 그나마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은 애매한 위치 때문이었다. 사천에서 마광천과 당가의 일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마광천에서 딱히 손을 쓰지 않는데 굳이 나서서 당가를 공격할 간 큰 세력이 없었던 것이다. 자칫 마광천의 먹잇감을 건드리는 꼴로 비춰질 수 있었으니까.

더군다나 흑사련에서도 당가를 그냥 내버려두고 있었는데, 그건 바로 당가의 의술이 꽤나 유용했던 때문이었다.

사파 무림인의 재물이란 결국 민초들을 쥐어짜서 얻어내는 것이다. 결국 근거지의 양민들이 크게 상하는 일이 계속되면 필연적으로 인근 문파들도 쇠락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파라 할지언정 정도 이상으로 민초들을 착취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물론 생계나 자존심이 걸린 상황에서는 그렇게 사정을 봐주지도 않았지만.

독과 약은 한 끗 차이다. 독을 연구하는 당가의 고수들은 자연히 약학과 의술에도 조예가 있었는데, 그들이 계속해서 다친 민초들을 치료해주고 약을 처방해주는 것이 사천 최대 방파인 흑사련 입장에서는 기꺼운 일이었던 것이다.

당가가 세력 확장 따위에는 관심도 없이 조용히 지내는 이유도 있었고.

그러나 당연명은 이러한 평화는 언제든지 깨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지킬 힘을 가져야 했다.

진정으로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강함이 요구됐다.

지금도 그랬다.

가문의 또래 아이들에게 매질을 당하는 일상이 정상일 리는 없었다. 보통 이상의 무력만 지니고 있었어도 그리 속절없이 당하지는 않았을 터였다. 전생을 각성한 것도 아마 당시에 큰 충격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되었던 성싶었다.

역시 평범하게 살기 위해서는 강해져야 했다.

‘가문은 나중에 생각하자. 일단은 빌어먹을 꼬맹이들의 버릇부터 고친다.’

탁.

문지르던 계란을 앞니로 살짝 깨뜨려 그 내용물을 쭈웁 빨아먹으며 당연명이 눈을 빛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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