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천당문의 검신급 소가주가 되었다-3화 (3/134)

3화<최소한의 강함(2)>

모두가 잠든 밤.

‘총체적 난국이군.’

방으로 돌아온 당연명은 소년의 몸 내부를 자세히 관조해보고는 생각했다. 한숨이 절로 나오는 몸 상태라고.

전생의 그는 용력지체(龍力之體)를 타고 났었다. 용력지체를 타고난 이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뚜렷한 특징이 없었기에 세간에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했다. 그들은 엄청난 신력을 타고난 것도 아니고, 천무지체처럼 무공에 특출한 재능을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한 가지, 용력지체를 타고난 이들은 노화가 무척이나 더디고 장수하는 경향이 있었다. 별다른 영약을 섭취하지 않아도 그랬다.

'태생적으로 혈맥이 튼튼한 까닭이다. 쉬이 영락하지 않지. 혈맥은 곧 기맥과 일맥상통하니. 너만이 내 호흡법을 제대로 익힐 수 있는 이유인즉.'

전생에서 사부였던 이의 말이었다. 그가 익힌 호흡법은 패력심법(敗力心法)이라는 것이었는데, 패력진기라는 엄청난 힘을 가진 내공을 단시간에 쌓을 수 있었지만 거기엔 대가가 있었다.

혈맥 손상과 수명 단축.

패력진기는 거친 기운이었다. 전신 경맥을 내달릴 때마다 혈맥에 크고 작은 손상을 입힌다. 즉, 시시각각으로 내상이 누적되는 꼴이다. 패력심법을 익힌 자의 전성기가 짧을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다만 용력지체를 타고난 이들은 태생적인 혈맥의 강건함으로 패력심법을 무리 없이 익혀낼 수 있었다. 공능만 온전히 취하고 부작용은 거의 없는 셈이다.

전생의 당연명이 그랬고, 그의 사부가 그랬다. 아주 빠르게 내가기공을 완성하고, 긴 수명을 토대로 검술 완성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소년 당연명의 신체는 극히 평범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평범 ‘이하’였다.

날 때부터 그런 것인지, 뼈대가 여아마냥 여리여리했고 근력도 보잘 것 없었다. 게다가 또래 아이들에게 자주 맞아서 그런지 전신 경맥도 미묘하게 뒤틀려 있었다. 조금이라도 난폭한 성질을 지닌 심법을 익히면 단번에 주화입마로 들어서지 않을까 싶을 정도.

‘지금 패력심법을 익히면, 분명 요절한다.’

최강이라 자부할 만한 심법을 알고 있지만, 익힐 수가 없었다. 근골과 체질이 받쳐주질 않는 까닭이다. 패력진기에 대해서는 다른 누구보다 당연명이 잘 알고 있었다. 지금 몸 상태로는 조금만 성취가 깊어져도 대번에 전신 혈맥이 갈가리 찢겨 죽으리라.

‘어쩔 수 없군.’

당연명은 대안을 택하기로 했다.

독요청광심법(毒要靑洸心法)

사천당가의 가전심법이다. 핵심요결은 빠져 있었지만, 기본 구결이나 진기도인 경로는 소년의 머릿속에 들어 있었다. 익히지 않은 것은 어머니인 당지혜의 당부 때문이었다.

당지혜 역시 한때는 사천에서 손꼽히던 후기지수였던 만큼 아들인 당연명의 몸 상태를 짐작하고 있었다. 괜히 무공을 익혔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될 지도 모른다는 것도. 그래서 신신당부를 했던 것이다. 무공을 익히지 말라고.

그러나 ‘지금의’ 당연명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었다.

스읍─

당연명은 깊게 들숨을 시작했다. 천지간에 존재하는 어떤 기운을 빨아들여 몸 안에 가두고자 하는 의념을 실어서.

들숨은 깊고, 날숨은 얕게.

인위적인 호흡에 따라 미약한 기운이 체내에 머무르기 시작했다. 크지는 않았지만 충분했다. 당연명은 곧 진기 덩어리를 구결에 따라 인도하기 시작했다.

패력심법을 대신해서 독요청광심법을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당연명이 알고 있는 어떤 심법보다 세심한 진기도인을 필요로 했던 까닭이다. 세심한 진기도인이 가능하려면 당연히 근간이 되는 심법의 기운도 차분하고 정심해야 했다. 그러한 종류의 기운은 위력은 떨어지지만 안정성이 뛰어나고 다루기 쉬웠다.

물론 그렇다 해도 지금 당연명의 몸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심법이었다.

하지만 검신의 영역에 닿은 전생을 각성한 당연명이다. 그 말인즉, 내가공부 역시 극에 이르렀었다는 뜻이었으니.

당연명은 주의를 기울이며 진기를 이끌었다. 반복된 구타로 뒤틀린 기혈이 있었다. 그런 곳을 지날 때마다 상당한 통증이 일었다.

‘무공도 익히지 않은 아이를 이 정도로 두들겼단 말이지....’

당연명은 문득 떠오르는 상념을 뇌리 한편으로 밀어놓고 집중을 유지했다. 더디게나마 한 차례 기가 온몸을 순환하고 나자 마침내 기운이 어떠한 속성을 띠기 시작했다. 바로 독요청광심법의 기운이었다.

독요청광기는 자연스레 당연명의 배꼽 어림에 자리 잡더니 그대로 단전을 형성했다. 이제야 내가기공의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대강 첫 고비가 무사히 끝났지만 당연명은 이대로 멈출 생각이 없었다.

‘우선은 뒤틀린 경맥부터 해결하자.’

방금 생겨난 콩알보다 작은 단전으로도 웬만한 위기는 헤쳐 나갈 수 있겠지만, 앞으로 대주천과 소주천을 할 때마다 이렇게 통증을 느껴서는 곤란했다.

눈을 감고, 당연명은 독요청광기를 움직여보았다. 주인의 뜻대로 고분고분 움직이는 순한 성질의 진기였다. 전생에 익혔던 패력진기와는 그 기질이 천양지차였다.

‘가능하겠어.’

바로 뒤틀린 경맥으로 독요청광기를 보낸다. 의도적으로 경맥 한쪽을 자극해서 제자리를 찾아가도록 할 셈이었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경맥을 콕콕 자극할 때마다 찌릿한 통증이 반복됐다. 아주 미약한 기운이었는데도 그랬다. 얼마나 시간이 소요될지 알 수 없었다. 인내와 끈기가 필요한 작업이었다.

두 시진? 세 시진?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휴우─

기다란 날숨과 함께 당연명이 눈을 떴다. 그의 전신은 흠뻑 젖어 있었는데, 젖은 의복에서는 짐승의 배설물을 방불케 하는 끔찍한 악취가 났다. 당장이라도 내다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당연명의 표정은 더없이 밝았다.

‘이런 수확이 있을 줄이야.’

경맥을 오랜 시간 자극하는 과정에서, 온갖 세맥에 쌓인 노폐물이 빠져나왔다. 원래 인간은 태어난 그 순간부터 십이경맥을 비롯한 세맥에 탁기가 쌓이기 시작한다. 일종의 찌꺼기인 셈인데, 어려서부터 심법을 익힌 이와 그렇지 못한 이의 차이가 여기서 발생한다. 기혈이 맑은 상태일수록 같은 진기로 낼 수 있는 힘이 더 컸다. 효율이 좋다는 의미다.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였다.

아무튼 그러한 탁기는 제거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특히나 세맥은 더더욱 그랬다. 한데, 오랜 시간 공들여 혈맥을 자극했더니 이렇듯 놀라운 결과가 있었던 것이다. 작은 기연이라 부를 만했다.

‘종종 이렇게 자극을 해줘야겠군.’

그렇게 생각하며 당연명은 일어섰다. 오늘은 여기까지 할 생각이었다. 심력 소모도 꽤 컸지만, 무엇보다 그는 아직 성장기였다. 충분한 수면을 취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이대로 침상에 드러누울 수는 없었다. 몸 전체가 찐득한 노폐물 때문에 찝찝했다. 게다가 시간을 더 지체하면 악취가 몸에 배일 수도 있었다.

‘얼른 씻자.’

드르륵.

조용히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 곧장 맑은 공기가 콧속으로 들어온다. 가슴 안쪽이 깨끗하게 씻겨 나가는 느낌도 들었다. 구름 한 점 없는 밤하늘에 홀로 떠 있는 달은 휘영청 몹시 선명했다.

다시 태어난 기분─ 아니, 실제로 다시 태어난 셈이긴 했지만... 어쨌건 당연명은 이제야 감회가 새롭다는 생각을 하며 걸음을 옮겼다.

비로소 당연명의 ‘평범한’ 삶을 위한 첫 걸음이 떼진 날이었다.

****

작은 공간.

삼십 대로 보이는 한 미부인과 왜소한 소년이 마주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소년은 체격에 어울리지 않게 이 음식 저 음식을 엄청난 속도로 먹어대고 있었고, 그런 소년을 미부인은 따사로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들. 맛은 어떠니?”

“...좋습니다. 어머니도 얼른 드시지요.”

“다행이야. 매번 입맛이 없다며 아침마다 끼니를 거르던 네가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이 어미는 요즘처럼만 네가 잘 먹고 잘 자라준다면 더 바랄 게 없단다.”

“.......”

한창 수저를 놀리던 소년, 당연명은 잠시 묘한 표정을 지었다가 다시 입으로 음식들을 가져갔다.

눈앞의 여인은 한때 독봉으로 불렸던 당지혜, 즉 그의 모친이었다. 상에 놓인 음식들은 그리 화려하진 않았지만 아주 정갈했고, 간이 잘 맞았다.

음식은 모두 당지혜의 솜씨였다. 한때는 당가의 금지옥엽이었지만, 가문을 말아먹은 년이라는 소릴 듣는 지금도 하인이 딸려 있을 리가 없었다. 끼니 같은 것은 스스로 챙겨야 했다.

하나 당연명은 이렇게 모친이 직접 요리를 하는 데에는 그런 표면적인 이유보다 그녀가 이미 남편을 잃은 까닭이 더 클 것이라 짐작했다. 추정이긴 하나 남편 당위룡의 독살이 거의 확실시되는 정황이었다. 아들마저 잃을까 매번 손수 요리를 하는 것이리라.

당연명이 조금 달라졌다는 것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 것은 바로 당지혜였다.

먹성이 좋아진 것은 둘째 치고, 늘 ‘엄마’라고 부르던 아이가 갑자기 ‘어머니’로 호칭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당연명이 원래 소년이 제 어미를 그리 부른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다....

다만, 전생─ 일백 년이 넘는 세월을 어렴풋이나마 기억하고 있는데 당지혜를 어머니가 아닌 다른 호칭으로 부르는 것은 도저히 그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또한 매끼 식사마다 그를 자애롭게 쳐다보는 눈길도 영 적응되지 않았다. 단지 자신이 낳았다는 것만으로 저리 조건 없는 사랑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낯설었다. 모성애라는 것일까. 때론 곤혹스럽기도 했다. 먹다 체할 뻔했던 적도 여러 번이었다.

그러나 싫지 않았다.

전생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모정이다. 고맙고, 따뜻한 무언가.

당연명은 문득 생각했다. 어머니를 지키고 싶다고.

“아들.”

미부인, 당지혜가 입을 열었다.

“예. 어머니.”

“요즘도 친구들이 괴롭히니? 얼마 전에도 멍이 들어 왔던데. 그러다 잘생긴 얼굴에 흉이라도 지면 어쩌려고.”

“아녜요. 그냥 같이 놀다가 제가 빗맞은 거예요. 아무래도 걔네들은 무공을 익혔으니 힘 조절이 쉽지 않았겠죠. 다음부터는 조심한다고 했으니 심하게 다치는 일은 없을 거예요.”

당연명은 담담하게 말했다.

소년의 기억을 받아들인 당연명은 알고 있었다. 유난히 악질인 꼬마 놈들이 있었다. 소년은 놈들과 마주하지 않으려 했지만, 놈들은 영악하게도 소년의 어머니를 걸고 넘어졌다. 소년이 나오지 않으면 소년의 모친을 당가 밖으로 추방해버리겠다고 협박한 것이다. 놈들의 부친이나 조부가 당가에서 유력한 인물이었기에 실제로 가능한 일로 다가왔다.

또래보다 일찍 철이 들어버린 소년은 제 어미의 사정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모진 핍박을 받으면서도 당가의 울타리 안에 있어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당가 밖으로 나가게 되면 당장 마광천을 염려해야 하는 까닭이다.

당지혜는 마광천주 연중혁이 뜻대로 취하지 못한 두 여인 중 하나였다. 그녀의 존재 자체가 연중혁의 권위를 해친다고 생각하는 마인들이 상당수 있었다. 만약 당지혜가 당가 밖으로 추방되면 어떻게 될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죽거나 연중혁에게 바쳐지겠지.

그래서 소년은 얻어맞을 것을 알면서도 놈들을 만나러 갔다.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모친을 지켜온 것이다. 그 연약한 몸을 가지고.

“...그래. 만약 괴롭히는 녀석들이 있다면 지체 없이 말하렴. 이 어미가 이래봬도 소싯적에는....”

“독봉이라 불리셨죠.”

탁.

어느새 식사를 마친 당연명은 수저를 내려놓고 말했다.

“독봉의 아들이 맞고 다닐 리는 없잖아요? 그렇죠?”

“...그럼.”

독봉, 당지혜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근래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자주 보여주는 아들이 영 적응이 되지 않았다. 보기는 좋았지만.

“걱정 마세요. 어머니. 우려하시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요.”

그녀의 아들, 당연명이 씩 웃으며 일어섰다.

오늘은 친구들을 만나기로 한 날이다.

친구란 이름 뒤에 숨어 소년을 괴롭혀 온 소악귀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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