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천당문의 검신급 소가주가 되었다-4화 (4/134)

4화<작은 응징(1)>

“이 자식. 오늘 안 나오는 거 아닐까?”

표독스러운 눈매를 지닌 소년 하나가 중얼거렸다.

그러자 옆에 있던 덩치 큰 소년이 하품을 하며 말했다.

“글쎄. 그때 좀 심하게 두들기긴 했지만.... 지 엄마를 구하고 싶다면 나오지 않을까? 그래도 배짱은 있는 놈이잖아?”

“배짱은 무슨.”

표독스러운 눈매를 지닌 소년, 당문찬이 픽 웃는다. 비웃긴 했지만 그들이 기다리는 소년, 당연명은 확실히 덩치의 말대로 배짱이 있었다. 무공 하나 익히지 못한 약골인데, 내공을 실은 그들의 주먹질을 제법 잘 견뎌 왔다.

일방적인 폭력이었지만 도망치거나 어른들에게 고자질하지도 않았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처럼 묵묵히 감내할 뿐.

당연명의 그런 태도에 당문찬은 오기가 생겼더랬다. 어떻게든 당연명이 무릎을 꿇고 애걸복걸하는 모습을 보고자 했다. 언젠가부터 주먹질에 내공도 싣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사람을 패는 손맛을 알게 됐다. 허공에 손을 휘두르기만 하는 무공 수련과는 다른 재미가 있었다. 수련으로 쌓인 답답함이 풀어지는 듯도 했고.

지금 와서는 아무래도 좋았다. 당연명이 나오면 나오는 대로 흠씬 두들겨줄 생각이고, 나오지 않으면 나오지 않는 대로 친구들과 한껏 비웃어줄 생각이었다. 결국 이것밖에 안 되는 놈이었다면서.

물론 그럴 경우 당연명에게 경고했던 대로 녀석의 어미인 독봉 당지혜의 추방 건 역시 부친께 말씀드릴 예정이었다. 부친은 당가 내에서 무력대 하나를 맡고 있는 대주였으니 제법 발언권이 셌다. 덩치 소년, 당정일의 부친 역시 가문의 부총관을 맡고 있었다.

“저기 오네.”

“정말!”

당정일의 말에 나무에서 뛰어내리는 소녀가 있었다. 당영령, 언뜻 보기에는 깜찍한 소녀였지만....

“얘. 연명아! 여기야, 여기! 얼른 와!”

당영령이 멀리서 걸어오는 당연명에게 반갑게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모르는 이가 보았다면 두 소년 소녀가 무척이나 절친하다고 생각했을 광경.

그런 당영령을 보며 당문찬은 생각했다.

‘미친년.’

당문찬은 그녀가 왜 당연명을 반기는지 알고 있었다. 필시 이번에 새로 개발한 독을 시험해 보려는 것이리라.

당영령은 당문찬과 당정일처럼 대놓고 폭력을 휘두르지는 않았다. 용독술의 고수를 할아비로 둔 그녀의 관심은 오로지 독에 있었다. 어느 날 당문찬과 당정일이 당연명을 구타하는 것을 목격하고는 자기도 끼워 달라고 했다. 그러고는 가문의 독을 하나씩 당연명의 몸에 시험해 보기 시작했다.

이미 효과가 잘 알려진 독도 직접 눈으로 진행 과정을 확인해야겠다며 당연명을 중독시키고는 했다. 물론 위험해지기 전에 해독을 시켜주긴 했지만, 소년 당연명으로서는 당문찬과 당정일보다 당영령이 더욱 두려웠을 것이다. 자칫 해독이 늦거나 하면 그대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으니.

그럼에도 그녀에게 대항할 수가 없었다. 당영령의 용독술은 또래답지 않게 워낙 귀신같았던 데다가, 그녀의 외조부가 바로 장로원의 실세인 삼장로였던 까닭이다.

현재 당가는 가주의 자리가 공석이었다.

십 년 전, 마광천과의 격전 때 가주가 비명횡사해버린 데다가 차기 가주로 내정되어 있던 자가 바로 그 독봉 당지혜였기에, 장로원이 나서서 실권을 장악했다.

당지혜는 자연스럽게 소가주의 지위를 박탈당했고, 당가는 장로원에 의해 좌지우지되기 시작했다. 장로원은 다섯 명의 장로가 주축이었는데, 그중에서도 무위가 가장 뛰어난 삼장로 당석형이 실세였다.

사실상 당석형의 뜻대로 당가가 굴러가고 있다는 의미다. 그러니 당연명은 물론이고, 또래 아이들 중 누구도 당영령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못했다. 당문찬과 당정일은 꺼림칙해하면서도 그녀와 같이 다닐 수밖에 없었다.

“어째 신수가 훤해 보인다?”

당문찬이 다가오는 당연명에게 말을 건넸다. 빈말이 아니라, 당연명은 정말로 혈색이 좋아 보였다. 며칠 전에 흠씬 두들겨줬던 것이 추궁과혈이라도 됐던 걸까. 그렇게 실없는 생각을 하는 당문찬에게 당연명이 씩 웃어보였다.

“반갑다. 네가 문찬이군.”

“...?”

당문찬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반갑다? 이 자식이 뭘 잘못 먹었나?

자신의 이름을 정겹게 부르는 것은 둘째 치고, 처음 보는 당연명의 자신만만한 표정이 낯설었다. 당문찬은 순간적으로 위화감을 느꼈지만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기분이 좋아 보이네? 나는 꿀꿀한데. 가볍게 찜질부터 시작할까? 정일아.”

두둑.

당문찬의 말에 당정일이 고개를 양옆으로 꺾으며 위협적인 자세로 다가왔다. 또래 중에서도 압도적인 발육 상태를 자랑하는 당정일은 타고난 힘이 대단했다. 굳이 내공을 쓰지 않아도 당연명의 가녀린 팔다리는 손쉽게 부러뜨릴 수 있을 것이다.

당정일 또한 근래 혹독한 수련으로 쌓인 게 많았다. 곧 소가주 경합이 있는 까닭이었다. 가주의 자리가 공석인 만큼, 소가주가 된다는 것은 사실상 확정적으로 차기 가주가 되는 것을 의미했다. 부친의 기대가 엄청났다.

“넌 모를 거야.”

당정일이 왜소한 소년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소가주 경합에 나가야 하는 우리의 중압감을 말야. 무공도 익힐 수 없는 몸이니 뭘 알겠냐마는. 그나저나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더니, 그래도 맷집은 제법 좋은가봐? 솔직히 며칠 전엔 좀 심했나 싶었는데.”

“네가 정일이고.”

당연명은 여전히 빙글거리며 당정일의 말을 싹 무시하고 이름만을 확인했다. 마치 초면인 상대를 확인하는 것처럼.

“연명이가 좀 이상해진 것 같네? 머리에 영향을 미치는 독은 쓴 적이 없는데....”

“너는 영령이겠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깜찍하게 중얼거리는 소녀의 말에 당연명은 그녀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그래, 맞아⎯ 하고서 당영령이 긍정했다.

당문찬, 당정일, 당영령.

전생을 각성하기 전 소년 당연명을 지독히도 괴롭혀댄 소악귀들이었다. 소년의 기억을 고스란히 받아들인 당연명은 이전에 그가 얼마나 고통 받았는지 누구보다 잘 ‘기억하고’ 있었다.

가만히 내버려두면 앞으로도 그의 평범한 삶을 방해할 놈들이었다. 어머니에게 위해를 끼칠 잠재적 가능성도 있었고.

기억 속에 놈들의 얼굴도 있었지만, 굳이 이름을 확인한 것은 그래서였다. 괜히 다른 이와 헷갈려서는 안 됐다.

오늘.

놈들에게 뼛속 깊이 공포와 절망을 심어줄 생각이었으므로.

모든 것은 평범한 삶을 위해서였다.

당연명이 당정일을 향해 말했다.

“뭐해? 덤벼.”

“...정신이 나갔구나.”

덤빈다는 것은 어느 정도 대등한 상대에게나 가능한 일이었다. 당정일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당연명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일단 빙글거리는 얼굴부터 고쳐 놓을 생각이었다.

부웅⎯

바람 스치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강권이었다. 당정일이 꽤나 열 받았음을 알 수 있는 대목.

그러나 당정일의 주먹은 그대로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당연명이 살짝 고개만 옆으로 젖혀 주먹을 피한 까닭이다. 당정일의 눈이 크게 떠졌다.

“피해? 이걸?”

“일부러 맞아주기도 힘들 정도로 느려 터진 주먹이네.”

당연명은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직 안법을 익히지 못해 당정일의 주먹을 제대로 보지는 못했지만 피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그가 아무리 빠르게 주먹을 내지른다 해도 결국은 일직선 투로다. 처음 주먹이 향하는 곳만 특정하면 지금처럼 쉽게 피할 수 있었다.

“와, 뭐야? 연명이, 너.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아. 꼭 무림의 고수 같은 걸.”

“...당정일. 뭐 하는 거냐? 쪽팔리게.”

당영령과 당문찬이 한 박자 늦게 말했다. 그들 또한 당정일의 주먹이 빗나갈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순순히 놀람을 표하는 당영령과 다르게, 당문찬은 당정일에게 핀잔을 주었다.

“우연이야!”

그렇게 외치는 당정일의 얼굴이 금세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자존심이 크게 상한 것이다. 일단 모양새부터가 빠졌다. 허공에 헛손질을 한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우연?”

당연명이 실소했다. 심성은 악독하나 역시 아직 어린 아이들이었다. 무공을 익힌 자들 간의 공방에 있어 우연은 존재하지 않는다. 분명한 실력의 격차만이 존재할 뿐.

“다시 제대로 해봐. 선공을 양보할게.”

“...미쳤구나? 어쩌다 요행으로 한 번 피한 걸로 거들먹거리다니.”

넌 오늘 죽었어. 그렇게 중얼거리며 당정일이 독요청광심법의 기운을 양 주먹에 실었다. 그러자 당정일의 기세가 한 순간에 달라졌다. 원래도 커다란 덩치의 당정일이어서일까. 위압감이 전신에 흐르기 시작했다.

물론 그렇게 느끼는 것은 당문찬과 당영령뿐이었다.

‘이 정도가 평범한 수준인가.’

당연명은 조금도 주눅 들지 않고 냉철한 눈빛으로 당정일의 성취를 파악하고 있었다. 굳이 당정일을 자극해서 실력을 내보이게 만든 것은 또래 녀석들의 수준을 알기 위해서였다.

이번 생에서 당연명의 목표는 그저 평범하게 사는 것이다.

힘이야 충분히 쌓겠지만, 그렇다고 어른들 앞에서 지나치게 두각을 드러내지는 않을 작정이었다. 납득할 만한 수준의 무위만 보일 참이었다.

팟!

어느 순간 당정일이 땅을 박차더니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내공, 독요청광기를 이용해 순간적으로 신체 능력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킨 덕분이었다. 호흡법을 익히지 못한, 보통의 또래 아이들이라면 반응조차 제대로 못하고 당할 빠르기였다.

‘양 팔을 부러뜨려 주마!’

당정일의 눈에 순간적으로 악독한 빛이 감돌았다. 가속과 회전력이 더해진 양 주먹으로 당연명의 양 어깨를 노렸다. 적중하기만 하면 뼈가 완전히 으스러질 터였다. 어쩌면 평생 불구가 될 지도 몰랐다. 그러나 상관없는 일이었다. 놈, 당연명은 가문을 말아먹은 년의 자식이었으니까. 부총관의 아들인 자신을 탓할 이는 없으리라. 소가주 경합의 참가자이기도 했고.

‘그러게 처음부터 개기지 않았으면 좋았잖아.’

그렇게 생각하며 당정일이 주먹을 내리찍었다. 곧 터져 나올 당연명의 비명을 기대하면서.

그러나 다음 순간.

당정일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직면했다. 그의 양 주먹이 버러지로 취급하던 당연명의 손에 막힌 것이다.

“너...?”

당정일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고 의문만 나타낼 뿐이었다. 주먹에 실린 독요청광기는 범인이 맨몸으로 막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주먹을 잡으면 잡는 대로 당연명의 손아귀와 손목이 으스러져야 정상이었다.

즉, 그의 주먹을 막아냈다는 것은 당연명 역시 그에 준하는 기운을 다룰 수 있음을 의미했다. 아니나 다를까 곧 친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독요청광기⎯ 당연명 역시 독요청광심법을 익혔다는 것을 눈치 챈 당정일은 일단 잡힌 주먹을 빼려 했다.

‘...빠지지 않아?’

당정일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상당한, 아니 최대한의 힘을 주었는데도 주먹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제야 당정일은 그를 바라보는 당연명의 눈동자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무슨 놈의 눈빛이....’

하찮은 무언가를 내려다보는 눈빛.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신장은 이쪽이 더 컸는데, 당정일은 자신이 한없이 작아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마치 포식자 앞에 선 먹잇감이 된 듯.

이윽고 당연명이 입술을 달싹였다.

“양보한 선수(先手)가 끝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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