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작은 응징(3)>
당연명이 몰아(沒我)에서 빠져나왔을 때는, 당문찬이 거의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당문찬은 손에 끝이 예리한 수리검을 하나 쥐고 있었는데, 당연명의 왼팔 상완을 노리는 듯했다. 아무리 산공독에 당한 뒤라고 해도 확실하게 팔부터 무력화시키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열 살을 조금 넘은 아이 답지 않은 독기와 치밀함이었다.
‘목숨을 노리진 않는군.’
당연명은 무심한 눈빛으로 찔러 들어오는 수리검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만약 치명적인 급소나 요혈을 노렸다면 어린아이고 뒷일이고 뭐고 할 것 없이 당문찬을 죽여 버렸을 터였다. 조금 곤란해진다 해도 애매하게 후환을 남겨두는 것보다야 나았으니까.
어쨌거나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을 듯했다. 당연명은 안도와 아쉬움 사이의 어떤 감정을 느끼면서 판단을 내렸다. 죽이진 말고 ‘적당히’ 응징하자.
당문찬에게는 무척이나 다행한 일이었다. 본인은 자각하지 못하겠지만.
스윽.
수리검이 거의 피부에 닿을 지경이 되어서야, 당연명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길이가 짧을 뿐, 결국 수리검 또한 검이다. 당문찬이 휘두르는 수리검의 검로따위는 보자마자 간파한 뒤였다. 전생을 각성한 그에게 있어 이미 검로를 파악한 검을 피하는 것은 손바닥 뒤집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당연명은 그저 피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팔꿈치로 당문찬의 손목 안쪽을 팍 쳐서 수리검을 놓게 만들었다. 당문찬이 제법 강하게 꼬나 쥐고 있었지만 독요청광기가 실린 당연명의 팔꿈치에 가격당하고도 버틸 수는 없었다.
그렇게 당문찬이 놓친 수리검을 허공에서 잡아챈 당연명.
일련의 모든 움직임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한순간에 벌어진 일처럼 느껴질 정도. 수리검을 빼앗기고 나서야 당문찬의 눈에 경악이 깃들었다.
“너...!”
칠보산에 당하고도 어떻게 멀쩡할 수 있는 것일까. 분명 산공의 조짐이 보였었는데, 그것마저 기만이었던 것일까. 그런 생각을 말로 뱉어내지는 못하고 그저 뻐끔거리는 당문찬.
당연명은 붕어 같은 낯짝을 하고 있는 당문찬에게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수리검을 든 채 크게 휘돌았다. 자연스레 가미되는 원심력. 그리고 그대로 투척!
쐐액⎯
꺄악!
아주 빠르게 바람을 가르고 날아간 수리검은 소녀의 오른 허벅지에 푹 박혀들었다. 제대로 깊게 적중한 것인지 수리검은 손잡이만 겨우 드러내고 있었다. 당영령은 생소한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 꼴을 보며 당연명이 말했다.
“그런 수작에 또 당할 줄 알았어?”
당영령은 당문찬이 공격당하는 것을 보자마자 재빠르게 판단하고서는 다른 독을 꺼내들었었다. 하지만 하독을 시도하려는 찰나 수리검이 허벅지에 꽂혔다. 그녀의 하독을 눈치 챈 당연명이 당문찬을 무시하고 그녀부터 제압한 것이다.
‘독에 당했어도 상관은 없었겠지만.’
당연명은 속으로 생각했다. 어차피 독요청광심법의 대성을 이룬 시점에서, 독은 더 이상 그에게 위협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먹잇감일 뿐. 엄청난 극독이라면 모를까.
어쨌건 굳이 수리검을 던져 당영령부터 제압한 것은 도주를 차단하고 이쪽의 확실한 우위를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효과가 있었던 것일까.
당문찬은 숫제 괴물을 보는 눈빛으로 당연명을 바라보고 있었다. 산공독도 통하지 않고, 근접박투는 물론이고 투척술에도 조예가 있어 보였다. 대체 언제 이런 실력을 쌓았단 말인가?
당문찬이 알기로, 가문 내 또래 중에 이 정도 실력을 가진 녀석은 없었다. ‘한 녀석’ 말고는.
여전히 무심한 눈길로, 당연명이 말했다.
“아까. 뭐라고 했지?”
“어, 어? 음....”
“분명, 이제 뒈졌다고 했었지?”
“아니, 그건.... 그래, 내가 잠시 정신이....”
당문찬은 말을 더듬으며 횡설수설했다. 손목 안쪽에 아릿하게 남아 있는 통증이 말하고 있었다. 당연명에게 이길 수 없다고. 그리고 조금 전 느꼈던 섬뜩한 기세도 다시금 뇌리를 잠식했다. 그 역시 양손이 부러진 채 꿇어 앉아 있는 당정일처럼 되지 말란 법이 없었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위기감에 거짓말처럼 이마에 식은땀이 맺힌다.
“죽인다. 죽일 거라는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야. 언제 자신에게 돌아올지 모르거든.”
그렇게 말하며 당연명은 살기를 일으켰다. 극도로 정제된 살기가 당문찬에게 쏟아진다. 그러자 갑자기 당문찬이 몸을 덜덜 떨기 시작했다. 오한이라도 느끼는 것 마냥.
추워서 떠는 것은 아니었다. 가까이에서 당연명의 살기에 직면한 당문찬은 이대로 정말 죽을 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느꼈다. 직전에 당연명이 한 말도 있었고.
“사, 살려줘. 내가, 자, 잘못....”
당문찬은 겨우 목소리를 쥐어짜 목숨을 구걸했다. 본능적인 애원. 이제 겨우 열 살이 조금 넘은 소년이 감당하기엔 벅찬 충격이리라.
그때 당문찬의 아래에서 작게 쪼르르 하는 소리가 나며 바짓단이 젖어들기 시작했다. 극도의 공포감에 방광의 조절 능력을 잃어버린 모양이었다. 그래, 당문찬은 당연명의 살기에 지려버리고 만 것이었다.
‘이쯤하면 됐나.’
당연명은 천천히 살기를 거뒀다. 심혼에 타격을 입혀 놓았으니 앞으로 당문찬이 그에게 대항할 생각을 품는 일은 거의 없을 터였다.
하지만 이대로 끝은 아니었다. 공포를 새기는 것과 응징은 별개다.
“내 팔을 노렸으니.”
손날을 세우며 당연명이 입을 열었다.
“너도 팔 하나를 잃을 각오는 해야 했어.”
앞으로도 명심해. 그렇게 말한 당연명은 수도로 당문찬의 왼팔 상완을 가볍게 쳤다. 당문찬이 수리검으로 노렸던 부위다.
그저 갖다 대는 것에 가까웠지만, 그 여파는 가볍지 않았다.
드두득!
당문찬의 팔에서 무언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단순히 뼈가 부러지는 것만이 아니었다. 닿는 순간, 당연명은 독요청광기를 당문찬의 몸에 흘려 넣었다. 파(破: 깨뜨리다)의 묘리를 실어서.
독요청광심법을 대성했기에, 무학의 이치인 묘리를 실을 수 있을 정도로 독요청광기가 강대해진 덕분이었다.
파(破)의 묘리가 실린 독요청광기는 당문찬의 팔을 착실하게 헤집어 놓았다. 뼈를 부러뜨리는 것은 물론이고 혈맥과 세맥까지 완전히 망가뜨렸다. 단순히 왼팔을 못 쓰게 되는 문제가 아니라, 운기 경로에까지 영향을 받는다. 내공을 쌓는 속도도 더뎌지고, 진기의 위력도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제 당문찬은 무인으로서 크나큰 제약을 가지게 된 셈이었다.
‘이 몸의 경맥이 어긋나 있던 게, 놈의 구타 때문이었지.’
물론 당연명의 신체가 병약하다는 표현에 어울릴 정도이긴 했지만, 직접적인 원인은 당문찬과 당정일의 지속적인 구타였다. 소년의 기억에 의하면 당정일은 그나마 힘이라도 조절했는데 당문찬은 아주 골병이 들 정도로 손찌검을 했더랬다. 어린놈의 심성이 악독하기가 그지없었다.
‘절대로 상승의 경지에는 오르지 못할 거다.’
당연명은 냉랭한 눈빛으로 당문찬의 왼팔을 힐끗 보며 생각했다. 뼈는 몰라도 독요청광기에 의해 망가진 세맥을 복구하는 것은 불가능할 터였다. 환골탈태라도 가능하면 모르겠지만, 그런 기연이 당문찬에게 찾아올 가능성은 개미 눈곱만큼도 없었다.
“...!”
그제야 비명을 지르려는 당문찬.
당연명은 그의 뒷목을 역시 수도로 퍽 쳐서 기절시킨 뒤, 대충 당정일이 있는 곳으로 잡아 던졌다. 거리가 조금 있었지만, 독요청광기가 완력을 보조해주고 있었기에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툭 하고 힘없이 나동그라지는 당문찬.
그를 일별한 당연명은 다음 대상을 향해 몸을 돌렸다.
저벅저벅.
“오, 오지마!”
허벅지에 수리검이 박힌 소녀, 당영령이 주저앉은 채 뒤로 물러나며 소리쳤다. 고통과 경악으로 일그러진 표정이었는데, 어느새 다가선 당연명을 불가해한 무언가를 보듯 바라봤다.
“너... 네가 연명이일 리가 없어! 솔직히 말해. 너 정체가 뭐야. 사람이 이렇게 달라진다는 게 말이 되냐고!”
“내가 네가 알던 당연명이건 아니건 그게 중요한가?”
갑자기 소년의 말투가 바뀐다. 소름끼치도록 스산한 목소리. 게다가 아직 앳된 음성이라 더욱 섬뜩하게 느껴졌다.
“너는 내게 두 번이나 독을 쓰려 했지. 당가의 가규는 너도 알 거다.”
“.......”
당연명이 무엇을 말하는지 당영령이 모를 리가 없다.
당가의 가규⎯ 은혜는 두 배로 갚고, 원한은 열 배로 갚는다!
흠칫 몸을 떠는 당영령에게 당연명은 단정적으로 말했다.
“여자라고 봐줄 생각은 없어.”
“잠깐! 우리 외할아버지가 누군지....”
짝!
찰진 소리와 함께 소녀의 머리통이 한쪽으로 돌아간다. 당영령은 별안간 눈앞에 번갯불이 튄 게 아닌가 생각했다. 당연명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쾌속하게 손을 휘둘러 그녀의 뺨을 후려친 까닭이었다.
“죽고 싶....”
다시 고개를 홱 돌리며 당영령이 표독스럽게 위협을 뱉으려 했지만, 당연명은 그녀의 말을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네, 할아비가, 누군들, 그딴 건, 하나도, 무섭지, 않아.”
말을 한 마디씩 끊어 뱉으며 연신 좌우로 손을 뻗는다. 짜악, 짜악 소리가 날 때마다 당영령의 눈동자는 서서히 빛을 잃어 갔다. 볼이 부어오르고, 입으로는 침과 피가 섞여 나온다. 깜찍하던 얼굴은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엉망이 되었다.
가문의 실세인 장로를 외조부로 둔 그녀가 언제 이런 취급을 당해보았겠는가.
일방적인 폭력 앞에 당영령의 정신은 금세 무너지고 말았다.
그녀의 눈빛에서 독기가 사라지고 나서야 당연명의 손찌검이 멈췄다. 흐윽 하며 눈물을 쏟아내는 당영령. 이제 끝났다는 안도에서 비롯된 눈물이었지만, 당연명은 이대로 끝낼 생각이 없었다.
전생을 각성한 당연명은 이 빌어먹을 가문에서 딱 두 가지만은 마음에 들었는데, 하나는 어머니인 당지혜의 존재였고 다른 하나는 바로 은원을 확실히 하라는 당가의 가규였다.
‘원한은 열 배로.’
겨우 손찌검 몇 번 한 걸로 원한을 갚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당연명은 멍하니 있는 당영령의 앞섶을 헤치고 여기저기를 더듬었다.
이내 화들짝 놀란 당영령이 얼굴을 붉히며 외쳤다.
“뭐, 뭐하는 거야, 지금!”
“착각 마. 네 설익은 몸에는 관심이 없으니.”
당연명은 여전히 냉랭한 눈빛으로 차갑게 내뱉었다. 당영령은 곧 자신이 얼토당토않은 착각을 했음을 깨달았다. 당연명은 그녀가 몸 여기저기에 지니고 있던 독과 해약을 하나씩 찾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새 그의 손에는 자그마한 병 여러 개와 제각각 종이로 잘 싸여진 가루들이 들려 있었다.
“이게 다인 것 같네.”
“그, 그걸로 뭘 할 셈이야...?”
“뭐가 독이고, 뭐가 해독약인지는 모르겠다만. 상관없는 일이지.”
당연명은 당영령의 물음에는 대답할 생각조차 않고 중얼거리며 작은 병 하나의 마개를 퐁 하고 뽑았다. 안에는 진녹색의 정체 모를 액체가 들어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해독약은 아닌 것 같았다. 당영령의 창백해진 표정만 봐도 그랬다.
“네가 나한테 무슨 독을 쓰려 했는진 모르겠다. 순순히 말해줄 것 같지도 않고. 하지만 칠보산보다는 치명적인 거겠지.”
“.......”
“부디 목숨을 빼앗을 정도의 극독은 아니길 바란다.”
먹이는 것이 제일 확실하겠지만 그랬다간 정말 죽을 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말하며 당연명은 약병을 거꾸로 들고 그대로 당영령의 머리 위에 확 끼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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