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천당문의 검신급 소가주가 되었다-8화 (8/134)

8화<소가주 경합(2)>

“뭐?”

당연명에게 말을 건넨 사내, 암왕대주 당적휘는 요 근래 들은 것 중에 가장 황당한 말이 아닌가 생각하며 반문했다. 눈앞의 소년이 스스로가 하는 말을 정말 제대로 알고 뱉은 걸까.

살짝 헛웃음이 나올 정도였지만, 다름 아닌 가문의 후계에 관한 일이다. 이내 표정을 관리한 당적휘가 입을 열었다.

“분명 네가 소가주 경합을 입에 담았느냐.”

“예. 그렇습니다만.”

“...그게 무슨 뜻인지 정녕 알고 말한 것이냐? 어쩌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알고 있습니다.”

당연명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소가주 경합⎯

간단히 말하자면 당가 내에서 열 살에서 열다섯 살까지의 소년들을 모아 경쟁시키는 것을 뜻했다. 경합은 총 사 년간 진행되는데, 처음 삼 년 동안은 엄격히 수련시키며 각자 무위를 쌓을 시간을 주고, 남은 일 년 동안은 치열한 생존경쟁을 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당적휘의 경고는 거짓이 아니었다.

오랜 세월 가주의 자리가 공석이었기에, 장로원에서 앞장서서 추진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이 경합에는 아는 사람만 아는 당가의 추한 일면이 숨겨져 있었다.

당연명 역시 소년의 기억에서 소가주 경합에 대한 것을 떠올렸을 때 바로 간파한 부분이었다.

‘제 놈들의 욕심이겠지. 굳이 소가주를 정하려는 것은.’

그랬다.

정말로 가주의 위가 공석임을 염려했다면, 소가주가 아닌 가주를 정하고자 했을 터였다. 그게 이치에 맞는다. 하지만 장로원에서는 경합을 통해 ‘소가주’를 정하고자 했다. 가주가 아니라.

소가주로 뽑히는 게 누가 될지는 모르지만, 아직 어린 나이인 만큼 장성해서 가주가 되기까지 적잖은 세월이 소요될 터였다. 그동안 가문을 좌지우지할 권력을 쥐는 것은 여태 그래왔듯 장로원이 될 것이고.

더군다나, 연령의 제한⎯ 열 살부터 열다섯 살까지의 소년소녀로 참가 자격을 한정지은 것은, 장로들의 혈육이나 제자들이 그 나이대인 까닭이었다.

즉, 자신들이 집권하는 시기를 십여 년 더 지속하고자 하는 욕망과, 차기 가주의 자리를 놓고 장로들끼리 다투는 경쟁심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행사였다. 소가주 경합은.

암왕대주 당적휘 역시 그러한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방법이 없었다. 가세가 많이 기운 상황에서, 장로원에 반기를 드는 것은 제살 깎아먹기나 다름없었으니. 그저 소가주 경합을 주관하는 입장으로서, 최대한 공정하게 진행하고자 할 뿐이었다. 그리고 소가주로 뽑히는 아이가 정말로 당가를 부흥시킬 수 있는 인물이기를 바랄 뿐.

소가주 경합이 공표되고 나서 얼마간은 이렇게 찾아오는 아이들이 있긴 했다. 가문이 돌아가는 실정을 모르니 어린 치기로 참가 신청을 하는 것이다. 그런 녀석들 대부분은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경고하면 지레 겁을 먹고 물러나는 경우가 십 중 구였다.

하지만 오늘 온 녀석은 무언가 달랐다. 괜히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과연 그 독봉의 아들인 걸까.

‘무공을 익힐 수 없는 몸이라 들었는데.’

당적휘는 소년을 자세히 살폈다. 한두 해 전, 먼발치서 보았을 때는 그저 작고 왜소해보였는데, 물론 왜소한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였지만 소년에게서는 어떠한 여유 같은 것이 흘렀다. 왠지 모르게 익숙했다. 당적휘는 그것이 절세고수들에게서나 느껴지는 기질과 흡사하다고 생각했다가 이내 부인했다.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상대, 눈앞의 소년은 이제 겨우 열 살이 조금 넘은 듯했으니.

불현듯 느낀 감각을 착각으로 치부하고서, 당적휘가 입을 열었다.

“독봉 누님... 아니, 모친께서는 알고 계시느냐? 네가 경합에 참가한다는 것을 말이다.”

“돌아가서 말씀드릴 참입니다.”

“이런 중대사를 부모와 의논도 하지 않고 스스로 결정한단 말이냐?”

“제 결심이 이미 확고하니, 그저 순서의 문제일 따름입니다.”

“.......”

이쯤 되니 주변의 다른 이들, 암왕대와 독왕대의 무인들은 흥미로운 눈빛으로 소년 당연명을 쳐다봤다. 당가의 정예인 그들은 가문의 누구보다도 소가주 경합에 진심이었다. 단순히 경합의 운영과 지원을 맡은 것뿐만 아니라, 이 경합이 언젠가 그들의 주인이 될 자를 선정하는 행사인 까닭이었다.

새로이 경합에 참가하고자 하는 소년이 제법 굳은 심지를 보이고 있으니, 관심이 생기는 것이 당연했다. 게다가 암왕대주 당적휘의 말을 듣고 보니, 신분 또한 평범하지는 않은 소년 아닌가. 근래 경원시당하고 있긴 하지만, 독봉 당지혜의 젊을 적 자질과 실력은 진짜였다. 암영대와 독왕대는 가주전인 암독전 소속이니만큼 가문의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괜히 차기 가주로 지목되었던 여인이 아닌 것이다. 그 당지혜의 피를 반절이라도 제대로 이어받았다면....

물론 이러한 가정을 하는 것은 당연명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이나 가지는 생각이었다. 조금이라도 가문의 잡다한 소문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라면, 독봉의 아들이 무공을 익히기 힘든 체질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때.

“호오. 웬 소란인가 싶어 와봤더니. 이게 누구냐? 독봉의 아들 아닌가.”

갑자기 등장한 중년의 사내가 있었다. 날카로운 눈매가 인상적인 자였는데, 당연명은 그자의 눈매가 몹시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안면이 있는 걸까.

‘독왕대주 당지혁.’

곧 당연명은 소년의 기억 속에서 상대의 정체를 찾아냈다. 눈매가 익숙한 이유도 알았다. 그가 바로 당문찬의 아비였던 것이다. 아직은 아들의 일을 모르는 눈치였다. 그럴 수밖에 없다. 당연명은 세 마리의 소악귀들을 응징하고 바로 이곳에 온 참이니.

“사사로이 얘기를 나누는 것은 처음이구나. 문찬이를 알겠지? 내가 그 아이의 애비다.”

“독왕대주를 뵙습니다. 연명입니다.”

당연명은 담담하게 예를 표했다. 그런 그를 묘한 눈길로 바라보던 당지혁이 가까이 다가오며 말했다.

“문찬이 녀석에게 듣던 것과는 좀 다른 것 같구나. 눈빛에 기개가 있어. 녀석이 사람 보는 눈이 없었군. 그래서, 이곳에 온 연유가 무엇이냐? 설마하니 소가주 경합에라도 참가하려는 게냐?”

“그렇습니다만.”

“...그래?”

당적휘와는 다르게 당지혁은 그다지 놀라지도 않고 가볍게 반문했다. 그는 머리 회전이 제법 빠른 편이었는데, 당연명의 말을 듣자마자 그의 입장에서는 그리 나쁘지 않다는 판단이 섰던 것이다.

암왕대주와 다르게, 독왕대주 당지혁은 철저히 장로원의 편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의 숙부가 이장로의 자리에 있었던 까닭이다. 애초에 그가 독왕대주를 맡을 수 있었던 것도 숙부인 이장로 당명신의 입김 덕분이 컸다.

‘독봉을 무너뜨릴 기회일 지도.’

당지혁은 생각했다. 소가주 경합을 내세운 장로원의 입장에서 한 가지 눈엣가시인 것이 있었다. 바로 독봉 당지혜의 존재. 그녀는 전대 가주의 딸이자, 전 소가주였다. 장로원에서 일방적으로 책임을 물어 끌어내리긴 했으나 정통성은 여전히 그녀에게 있었다. 장로원에서도 쉽게 추방령을 내리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 있었다. 만약 당지혜가 명분을 들고 나온다면 소가주 경합은 대번에 논란거리로 전락할 공산이 컸던 것이다. 섣불리 그녀를 자극하지 말자는 것이 장로원의 합치된 의견이었다. 당지혜 역시 거처에서 두문불출하고 있으니 그냥 조용히 지내자고.

‘하지만 이 녀석이 참가한다면....’

정통성을 가진 독봉 당지혜의 하나뿐인 아들이 소가주 경합에 참가한다면, 그 자체로 경합은 정통성과 권위를 가지게 되는 모양새가 될 터였다.

거기서 독봉의 아들이 떨어진다면?

그저 실력이 부족한 것이다.

소가주가 되어 가문을 이어받을 재목이 아닌 거다.

‘그야말로 일거양득인 셈이다.’

게다가 당지혁은 알고 있었다. 담담한 표정을 하고 있는 소년이 실은 무공을 익히지 못하는 폐인에 가까운 몸이라는 것을. 또한 아들 당문찬이 주기적으로 괴롭히고 있었으니 어쩌면 골병이 들었을 지도 모르겠다싶었다. 아이의 주먹이라 한들 내공이 실렸으니 범인이 감당하기에는 벅찰 터.

소년이 소가주 경합에 출전한다한들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기란 절대 불가능해보였다.

‘아마 살아남는 것부터 걱정해야겠지.’

삼 년간의 혹독한 수련 과정이야 어찌어찌 버틴다 해도 경합의 마지막 일 년⎯ 생존을 걸고 서로의 목숨을 노리게 될 그 시기를 당연명이 멀쩡히 버텨내리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생각은 길었지만 순식간에 판단을 내린 당지혁이 말했다.

“암왕대주.”

“말씀하시죠.”

암왕대주 당적휘가 그의 부름에 건성으로 답했다. 둘의 사이는 묘하게 좋지 않은 듯했다. 하기야 장로원에 은근한 반감을 가지고 있는 당적휘가 대놓고 장로원의 편인 당지혁과 스스럼없는 것이 더 이상할 터였다.

이랬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닌지 당지혁 역시 크게 괘념치 않는 눈치였다.

“당연명을 소가주 경합에 참가토록 하지.”

“그게 무슨 소립니까? 애 잡을 일 있습니까? 아직 어린 소년의 치기입니다. 잘 타일러서 돌려보내면 될 것을....”

“소년이라 하나 사내일세. 치기가 아니라 웅심을 품은 걸지도 모르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이 녀석은...!”

무공을 익히지 못하는 몸이라고 얘기하려던 당적휘는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처음 암왕전의 문이 열렸을 때, 그를 포함한 대다수의 무인들은 예리한 기세를 쏘아냈었다. 보통의 소년이라면, 아니 무공을 익힌 소년이라 해도 그만한 기세를 자연스레 받아낼 수는 없을진대...?

한편 당적휘가 멈칫하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당지혁이 달변을 늘어놓았다.

“아직 피지 못한 봉오리일세. 그 안의 꽃이 만개할 지는 시간이 지나 봄이 와 봐야 아는 법이지. 자네가 무언데 이 소년의 각오를 한낱 치기로 뭉그러뜨리는가. 우리 당가를 이끌 재목을 선별하는 경합일세. 어떤 종류의 비범함이건 자질이 있고, 또 본인의 의지가 있다면 경합에 참가하는 것을 장려하면 했지, 말려서는 아니 될 일인 게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무인들이 많았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당지혁 쪽으로 넘어간 것이다. 일신의 무공 수위는 당적휘에게 조금 밀린다는 평을 받는 당지혁이었지만, 이렇듯 그에게는 뛰어난 언변이 있었다. 이장로 당명신이 단순히 조카라 해서 그를 중히 쓰는 것이 아니었다. 당지혁에게는 명분과 실리를 유리하게 챙기는 재능이 있었다.

한편.

당연명은 당지혁이 말하는 것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듣고 있었다. 애초에 그가 당지혁에 대한 선입견 없이 그의 말을 들었더라면 아주 공명정대한 자로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연명은 소년의 기억과, 오랜 세월에서 비롯된 통찰력과, 또 당문찬이라는 녀석의 심성을 알고 있었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다.

‘경합을 빌려 날 제거하기라도 할 셈이겠지. 호의는 아닐 거야.’

의도야 어쨌건 상관없는 일이었다. 상대는 스스로 제 발등을 찍는 격임을 모르고 있었다.

당연명이 소가주 경합에 나가려는 이유는 하나가 더 있었다. 사실 당장은 그게 주된 목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물으마.”

당지혁이 엄중한 표정으로 말을 건넨다. 암왕전에 홀로 찾아온 소년에게.

“독봉의 아들, 연명. 너는 진정으로 소가주 경합에 참가하길 원하느냐.”

신중하게 답해라, 돌이킬 수 없으니. 라고 얘기하는 암왕대주 당적휘의 말이 끝나자마자 소년이 입을 열었다.

“예. 진정으로 바랍니다.”

햇살을 받은 당연명의 눈동자는 확신에 차 있었다. 나이에 비해 당찬 모습. 장내의 무인들은 그런 소년을 보며 제각각의 시선을 보냈다. 멸시, 동정, 우려, 기대....

하지만 개중에 어느 누구도, 당연명의 진면목을 꿰뚫어 보는 이는 없었다.

어쨌건.

그렇게 당연명은 사천당가의 소가주 경합에 정식으로 참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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