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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당문의 검신급 소가주가 되었다-10화 (10/134)

10화<소가주 경합(4)>

가문에서 많은 이들이 소식을 접하고 크게 놀랐다지만, 지금 소년의 눈앞에 있는 미부인만큼은 아닐 터였다.

미부인, 독봉 당지혜가 침착하려 애쓰며 아들에게 물었다.

“어쩌자고 이런 일을 벌였니...?”

그녀라고 소가주 경합에 대해 모르지 않았다. 지금은 쫓겨났다고 하나 한때 소가주 자리에 있었던 까닭이다. 알게 모르게 그녀의 눈과 귀가 되어주는 오래된 노복들이 몇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어떤 입장 표명도 하지 않았다. 괜히 장로원과 대립각을 세워봐야 좋을 것이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무엇보다 그녀에게는 지켜야 할 어린 아들이 있지 않은가.

그런데 그 어린 아들이 사고를 쳤다. 그것도 아주 크게.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어머니.”

단호한 어조. 실수나 단순히 울분을 터뜨린 게 아니란 얘기다.

소년의 말에 당지혜의 눈빛이 깊어졌다.

연명(延命)⎯ 어떻게든 오래 살아남으라는 뜻으로 지어준 이름이 무색했다. 어리디 어린 줄로만 알았던 아들이 어느새 사내대장부처럼 느껴진다. 이전에 느낀 적 없던 강건한 기세가 아들의 몸에서 배어나왔다.

“...심법을 어떻게 익혔는지는 묻지 않으마. 어려서부터 무공을 익혀온 그 아이들을 어떻게 하나도 아니고 셋이나 압도할 수 있었는지도. 그저 하나만 답해주렴.”

“하문하시지요.”

“소가주 경합. 자신 있는 거니?”

당지혜는 속이 깊은 여인이었다. 소년이 하루아침에 다른 사람처럼 변했지만 구태여 그 속사정을 캐묻지 않았다.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고 있는 까닭이다. 중요한 것은 소년이 그녀의 아들이고, 이번 일은 그 스스로 내린 결정이라는 것이다. 이미 벌어진 일. 어미로서 책망보다는 신뢰를 보여주고자 했다. 물음은 마지막 확인일 뿐.

당연명이 순식간에 기세를 갈무리하고선, 씩 웃으며 말했다.

“소자가 누굽니까. 바로 독봉의 아들입니다.”

“녀석.”

잘 자라줬구나. 대견하다. 그리 되뇌며 당지혜는 그녀의 아들을 살포시 안아주었다.

검신은, 모친의 품에서 생전 처음 느끼는 포근함을 느끼며 생각했다.

역시.

평범한 삶이 좋구나.

이러한 삶을 방해하는 것들은.

모조리, 모조리 없애버려야겠다.

****

조용한 나날이 흘렀다.

당연명의 요청대로, 암왕대는 지근거리에서 당연명을 호위하고 있었다. 특히 암왕대주 당적휘는 당연명의 거처에 거의 상주하다시피 했는데, 이는 당연명이 저질러 놓은 짓이 워낙 대단한 지라 대원 몇으로는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고 판단한 까닭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큰일은 없었다. 그저 아들 녀석의 주먹을 못 쓰게 만든 놈의 상판을 봐야겠다며 부총관 당부윤이 한 차례 찾아온 적이 있을 뿐이다.

‘난놈은 난놈이야.’

당적휘는 당시를 회상했다.

당부윤이 찾아온 이유야 뻔했다. 귀한 아들의 양 주먹이 완전히 망가졌다. 어찌 치료는 할 수 있는 모양이었는데, 경합을 코앞에 두고 수련은커녕 요양만 하게 생겼으니 위협적인 말이라도 몇 마디 뱉어 울분을 풀고자 했겠지.

하지만 그는 본전도 건지지 못했다.

‘정일이가, 저에 대해 말하던가요?’

‘소가주 경합은 일단 참가하기로 하면 절대 무를 수 없다죠.’

‘경합 때 만나겠네요. 정일이. 주먹은 다 나았나요?’

단 세 마디로, 당연명은 당부윤을 쫓아버렸다.

당연명의 말은 어딘가 섬뜩한 구석이 있었다. 궁금해서 묻는 게 아니라 상대가 처한 현실을 스스로 깨닫게 하는 화법. 직접적인 위협보다 더욱 효과적이었다.

어른들은 개입할 수 없는 소가주 경합. 이미 당연명은 참가자 셋을 단신으로 쓰러뜨림으로써 실력을 증명한 바 있었다. 괜히 지금 자극해봐야 아들에게 좋을 게 없다는 것을 깨달은 당부윤은, 결국 안색만 파리해진 채 자리를 떴다.

당적휘는 궁금했다. 소년이 어떻게 그러한 실력을 쌓을 수 있었는지. 독봉 당지혜가 따로 수련을 시키고 있는 것인가 싶었지만, 그런 낌새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호위하는 한 달간, 당연명이 별다른 수련을 하는 모습도 본 적이 없었다.

그가 본 거라곤, 당연명이 그저 잘 먹고 잘 자는 것뿐이었다.

당적휘가 알기로, 다른 참가자들은 경합을 대비해 각자 혹독한 수련을 감내하고 있었다. 경합이 시작되고 난 후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일 뿐만 아니라, 결국 소가주 경합의 승자는 단 한 명일 수밖에 없는 까닭이었다.

단순히 성취를 보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경합의 모든 참가자를 누르고 홀로 우뚝 설 수 있어야 했다. 그러니 경합을 앞두고 각자 기량을 최대한 끌어올리고자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당적휘가 조금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누님. 이대로 놔둬도 될까요? 소가주 경합은 애들 장난이 아닙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한 시가 아까운 순간인데.”

독봉을 누님으로 칭한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당적휘가 아직 대주의 자리에 오르지 못했을 때. 당지혜는 당가 최고의 후기지수이자 사천제일의 미녀로 이름이 높았다. 당시 젊은 무인들에게 그녀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특히나 당적휘는 암왕대의 차기 대주로 거론될 만큼 뛰어난 무재를 보이고 있었으니. 소가주였던 당지혜와 친분이 있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다만 오랫동안 왕래가 없었을 뿐. 둘은 한 살 터울이었다.

“놔두렴. 생각이 있겠지. 너도 보았듯이 대책 없이 일을 저지르는 아이는 아니잖니?”

“.......”

당지혜의 말에 당적휘는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보기에도 당연명은 보통의 아이들과 달랐다. 심계나 배포, 여유가 도저히 그 나이의 소년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소가주 경합에 참가한 것도 단순히 벌인 일에 대한 면책을 위해 임기응변으로 이용한 것만은 아닌 듯했다.

‘원래도 소가주가 될 셈이었던 거겠지. 그저 면책 특권을 적시에 이용했을 뿐.’

하지만 그런 짐작과는 별개로 당연명이 지금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우려하기에 충분했다. 독봉이 해주는 정갈한 밥을 먹고 무엇을 하는지 그저 방에 틀어박혀 있기만 했으니까. 사실 당적휘가 걱정할 일은 아니었지만 독봉과의 친분이 그가 자꾸 마음을 쓰게 했다.

한편.

오늘도 방에서 두문불출하고 있는 당연명은 생각보다 알찬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후우⎯

침상 위에서 가부좌를 튼 채 당연명이 긴 날숨을 뱉는다. 막 대주천을 마친 듯했다.

‘조금만 더 하면 되겠군.’

뒤틀린 세맥을 바로잡다 발견하게 된 세맥 자극의 효용이 있었다. 단순한 심법 운용으로는 제거하기 힘든 주요 경맥과 세맥의 찌꺼기들을 없애는 것.

당연명은 대주천을 할 때마다 일부러 시간을 들여 경맥과 세맥을 지속적으로 충분히 자극했다. 덕분에 겨우 대주천 한 번에 엄청나게 오랜 시간이 걸렸었지만, 시간을 들일 가치가 있었다. 세 소악귀들을 응징할 때 경험하지 않았던가. 진기의 효율이 엄청나게 상승한 것을.

당연명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은 기반을 닦아야 할 때라는 것을.

단순히 실력을 증진시키고, 무공을 익혀 힘을 얻는 것은 그에게는 너무나도 간단한 일이었다. 검신의 영역에 닿은 전생을 각성한 까닭이다. 언제든 시도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무력을 담을 그릇인 육신을 다지는 것은 지금이 적기였다.

전신 경맥과 세맥을 갓 태어난 것처럼 깨끗하게 만들고, 영양을 충분히 섭취하고 숙면을 통해 팔다리의 성장을 도모할 셈이었다. 그 두 가지만으로도 하루 열두 시진이 부족할 지경이었다. 다른 것은 어떻게 하더라도 최소 다섯 시진의 수면 시간만큼은 양보할 수 없었다. 자연히 방에 틀어박혀 있는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태생적으로 유약한 신체.

그러나 당연명은 다행으로 여겼다.

아직 열둘에 불과한 나이. 전신 경맥과 세맥에 쌓인 불순물이 그리 많지 않았다. 게다가 전생을 각성하기 전 당연명은 입이 짧아 식사량이 많지 않았기에 어찌 보면 화식을 멀리 하는 도인들과 비슷한 몸 상태라고 할 수 있었다. 경맥과 세맥 자극으로 십여 년간 쌓인 불순물을 단기간에 모조리 뽑아내는 것이 가능할 정도로.

또한 아직 성장기였기에, 팔다리가 더 길어질 여지는 충분했다. 무공을 펼치는 데 있어 단순히 체격이 왜소한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느 정도 경지까지는 근육이나 완력이 큰 영향을 미치지만, 당연명은 그러한 경지를 단숨에 뛰어넘을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팔다리의 성장으로 가져올 수 있는 이점, 즉 간합(間合)이었다.

간합이란, 쉽게 말해 상대와의 간극을 의미하는 것인데 팔다리가 길수록, 또 병장기의 길이가 길수록 간합을 유리하게 가져올 수 있었다. 이것은 비단 검뿐만 아니라 암기에도 통용되는 이야기였다. 투척술의 위력 역시 팔이 길수록 강해지는 경향이 있었으니까.

경지가 높아지다 보면 자연히 환골탈태도 겪게 되겠지만, 그때에도 역시 기반이 되는 육신이 중요했다. 육척밖에 되지 않는 신장이 환골탈태를 겪었다고 팔척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니까, 지금은 이게 옳아.’

스스로의 수혈을 적당한 세기로 짚어 숙면을 유도하며 당연명이 생각했다.

곧 규칙적인 숨소리가 그의 방에서 새어 나왔다.

하늘에 떠 있는 달 역시 상현의 모양으로 살을 찌워가는 때였다.

****

대망의 날이 밝았다.

드디어 소가주 경합이 시작되는 것이다. 소년은 모친에게 작별을 고했다. 앞으로 사 년간은 볼 수 없는 까닭이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어머니.”

“그래. 몸조심하고.”

“염려 마세요. 누구 아들인데요.”

소년의 말에 독봉은 웃었다. 불과 얼마 안 되는 기간이었는데, 그녀의 아들은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키가 손가락 마디 하나만큼은 컸고, 체형 역시 호리호리해졌다. 여전히 왜소한 느낌이 없잖아 있었지만, 마냥 유약하다기보다는 어떤 단단함이 있었다.

‘용랑. 우리 아들이 이렇게 잘 컸답니다. 당신도 보았다면 기꺼워했을 텐데.’

당지혜가 귀천한 낭군을 떠올리며 이렇듯 소회를 느낄 때였다.

곁에서 모자의 석별을 지켜보던 당적휘가 말했다.

“그만 가자. 시간이 되어간다.”

“예. 대주님. 정말 가볼게요. 어머니.”

“누님도 강녕하십시오.”

“그래. 적휘야. 반가웠단다.”

당지혜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흔들었다. 당적휘는 자신도 반가웠노라 말하려다 그냥 돌아섰다. 이어서 그가 수신호를 하자 어디선가 허깨비처럼 여러 인영들이 나타났다. 고절한 수법으로 은신한 채 당연명을 호위하던 암왕대원들이었다.

지금부터는 굳이 숨어서 호위할 필요가 없기에 불러낸 것이었다.

“그간 고생했다. 이만 돌아간다.”

당적휘와 당연명, 그리고 암왕대 무사 열 명은 그렇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소가주 경합 참가자들의 집결지는 다름 아닌 암왕전이었다. 암왕대주 당적휘가 돌아간다고 얘기한 이유다.

발소리는 금세 멀어졌다.

소년의 보폭이 조금 넓어졌음을 새삼 의식하면서⎯

한때 독봉이라 불렸던 미부인은 아들의 뒷모습이 완전히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만 흔들었다.

하염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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