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소가주 경합(5)>
고독(蠱毒)이라는 게 있다.
한때 사천당가를 비롯한 여러 독문에서 비전으로 취급되었던 것인데, 간단히 말하자면 독물 중 가장 강력한 놈을 추려낸 것이라 할 수 있다.
먼저 작은 항아리 안에 독지네, 독개구리, 독거미와 같은 다양한 독물을 수십 마리 가두어 놓고 작은 숨구멍만을 열어둔다. 안 그래도 좁은 공간에, 손쉬운 먹이마저 없으니 굶주린 독물들은 난폭해지고 결국 평소라면 건들지 않을 서로를 공격하게 된다.
이때 살아남는 것은 당연하게도 더 강한 독을 지닌 놈이다. 약한 놈들은 잡아먹히고, 그놈들을 잡아먹고 살아남은 독물들은 더욱 강한 독성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가장 지독한 독을 지닌 놈만이 살아남게 되는데, 그 최후의 한 마리를 바로 고독이라 칭했다.
사천당가의 경우에는 이러한 고독만을 모아서 또 한 번 같은 절차를 진행하는데, 이때에도 살아남은 한 마리를 진고독(眞蠱毒)이라 했다. 진고독이 뿜어내는 독은 그야말로 다시없을 극독이었는데, 실제로 당가십독 중 하나가 바로 이 진고독이 머금고 있는 독을 뜻했다.
어쨌거나.
당가의 소가주 경합은 바로 이 고독을 만드는 과정을 닮아 있었다.
먼저 삼 년간의 수련을 통해 참가자 개개인이 독기를 품은 독물이 되어가는 것이고, 다음 일 년간의 생존경쟁에서는 서로 축적한 독기를 겨루어 가며 최종적으로 하나만이 고독, 즉 소가주가 되는 것이라 볼 수 있었다.
“...고로, 너희는 부지런히 실력을 쌓아야 할 것이다.”
잡아먹히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그렇게 격려인지 경고인지 모를 대장로의 일장연설이 끝났다.
장로원주이자 대장로 당석중은 단상에서 내려가기 전, 참가자들의 면면을 훑었다. 이중에 차기 당가를 이끌어갈 인물이 나올 것이다. 익히 아는 얼굴도 있고 처음 보는 얼굴도 있었다. 하나하나 찬찬히 훑어보는 와중에 한 얼굴에서 당석중의 시선이 멎었다.
‘호오. 듣던 것보다 제법 영준하지 않나.’
바짝 기합이 들어가 있는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홀로 여유로운 얼굴을 하고 있는 소년이 보였다. 당석중은 한눈에 꿰뚫어봤다. 비록 소년의 체격은 또래들보다 왜소했지만, 미세하게 풍겨 나오는 기운은 더없이 순정했다. 심법 성취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고명하다는 방증이다.
‘독봉이 잠룡을 기르고 있었던가.’
그렇게 생각하며 대장로는 당연명을 일별했다. 의외의 변수가 발생하긴 했지만, 그리 걱정되지는 않았다. 한쪽에 있는 그의 제자를 믿고 있는 까닭이다. 제자를 보는 당석중의 입매에 흐뭇함이 맺힌다. 그의 제자는 심법뿐만 아니라, 암기술과 용독술 모두 상당한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쉽게 보기 힘든 무재를 타고난 데다 노력까지 겸비한 인재였다.
진짜 잠룡은 이쪽이렷다⎯ 라고 내심 중얼거리며 대장로는 단상을 내려갔다.
한편. 그의 뒤통수를 응시하는 한 쌍의 눈동자가 있었다.
‘쇠락했다더니 그 말이 맞는 모양이군.’
당연명은 대장로 당석중의 성취를 대충 가늠했다. 어떤 무공을 품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전생이었다면 그리 어렵지 않은 상대로 여겨졌다. 아직 안법을 연마하지 않은 그의 눈에도 여기저기 빈틈이 보였다. 빈틈에 이르는 검로를 머릿속으로 슬쩍 그려본다. 당장 떠오르는 것만 십여 개였다.
‘삼 초면 되겠어.’
누가 알았다면 기겁할 생각이었다. 삼장로만큼은 아니라 하나 대장로 역시 가문에서 손꼽히는 실력자였다. 그런 이를 고작 삼초지적으로 평한다? 어불성설이란 말이 절로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나, 당연명은 전생에 이미 검의 극을 마주했더랬다. 대장로건 뭐건 눈 아래로 보일 수밖에 없다. 대장로조차 가벼운 도약이면 뛰어넘을 수 있는 얕은 성취를 지닌 이로 다가왔다. 육신의 성능만 받쳐주면 당장이라도 상대할 수 있지 않을까.
‘당분간은 이 정도만 내보이자.’
흥미가 식은 소년은 시선을 거두며 생각했다. 당연명은 사실 본신의 진기를 극도로 통제한 채 의도한 만큼만 흘려대고 있었다. 이전에 당정일의 수준을 파악해두었던 터라, 그보다 조금 뛰어난 정도로 보일 정도로만.
대장로 당석중이 소년의 성취를 제대로 눈치 채지 못한 것은 그래서였다. 아예 진기를 느끼지 못했다면 오히려 의심했겠지만, 당연명이 적당히 뛰어나다 싶을 정도로만 진기를 내보였기에 의심할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이다.
설마하니 이제 열두 살 남짓의 소년이 반박귀진에 이르러 성취를 은폐할 수 있을 줄 상상이나 했겠는가.
아무튼 소가주 경합 개최 행사는 가문 내 주요 인사들의 덕담과 격려로 조용히 마무리됐다.
독왕대주 당지혁이 우렁차게 외쳤다.
“그럼, 전원 이동한다!”
“넵!”
경합에 참가한 소년소녀들 역시 우렁차게 대답하고는 하나 둘 준비된 마차에 올라탔다.
경합은 가문을 완전히 벗어나서 치러지는 까닭이다.
당연명 역시 낯익은 암왕대원 하나의 인솔에 따라 한 마차에 올랐다. 이미 타고 있는 아이들이 셋 있었다. 소년 하나, 소녀 둘.
당연명이 마차 안에 들어서자 예의 암왕대원이 말했다.
“기억해 둬라. 너희들이 칠(七) 조다. 가는 동안 통성명 정도는 해놓는 것이 좋을 거다. 앞으로 삼 년간 너희는 함께 움직일 테니까.”
말이 끝나자마자 문이 탁 닫히고.
곧 다그닥 거리는 소리와 함께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
서로가 초면인 걸까. 한동안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당연명은 눈을 감고 조용히 사색에 잠겼다. 삼 년, 강해질 시간은 충분했다. 안전만 담보된다면 말이다. 먼저 정해야 할 것은 무엇을 먼저 익힐 지에 대한 것이었다.
암왕대주 당적휘에게 듣기로, 첫 일 년간은 그저 자유롭게 수련할 수 있다고 했다. 수련을 딱히 강제하지도, 성취를 확인하지도 않는다고. 무슨 무공을 익히건 자유였고, 모든 가전 무공이 공개된다고 했다. 참가자 하나하나를 모두 소가주에 준하는 신분으로 생각하는 때문이었다.
‘안법과 신법이 먼저겠지. 무슨 일이 생긴다면 몸을 빼낼 수는 있어야 하니까. 감각도(感覺道)도 수련해야 할 테고. 가전 무공 중에 쓸 만한 것이 있으면 좋겠는데.’
당연명은 굳이 전생의 무공에 집착하지는 않기로 했다. 전생의 무공들은 대부분 패력진기를 바탕으로 펼치는 강맹한 것들이 주였다. 기왕 당가의 사람으로서 평범한 삶을 살고자 마음먹었으니, 가급적 당가의 무공을 익힐 생각이었다. 독요청광심법을 대성한 까닭도 있었고.
본디 무공에는 상성이 맞는 심법이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상승의 무공일수록 그러한 경향이 더더욱 짙었다. 진기가 가진 특질이 무공의 위력을 증폭시키는 것이다.
물론 당가의 가전 무공이 기준 이하라면 미련 없이 전생의 무공들을 익힐 생각이었다. 독요청광기에 맞게 무공들을 조금씩 개변해야하는 번거로움이 따르겠지만 스스로가 생각하는 최소한의 힘을 갖추자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럴 리는 없겠지.’
비록 핵심요결이 실전되었을지언정 한때 사천제일이라 불리던 세가의 무공이다. 근본은 독요청광심법처럼 상승의 이치를 품고 있을 공산이 컸다.
그때 계속되는 침묵을 이겨낼 수 없었던 것인지 당연명의 옆에 앉은 소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어디로 가는 걸까?”
“공동산일 거야. 들은 적 있어. 우리 아버지가 총관부에서 일하시거든. 몇 년 전부터 그쪽에 무언가 비밀스럽게 예산이 집행된다고 하셨었어.”
대답해준 것은 머리를 양 갈래로 땋은 소녀였다. 소녀가 말을 이었다.
“아마 그쪽에 소가주 경합을 위한 시설들을 지어 놓았겠지. 제갈세가에도 일정 자금이 흘러간 정황이 있다고 하셨으니 진법이 설치되어 있을 지도 몰라.”
“...꽤 자세히 아네.”
“결국 모든 일은 돈이 있어야 진행이 되니까. 자금이 흐르는 방향을 살피면 웬만한 일들은 전후사정을 짐작하기가 어렵지 않아.”
소녀는 대수롭지 않은 투로 말했다. 당연명은 소녀에게 조금 흥미가 이는 것을 느꼈다. 자금의 흐름에서 정보를 찾아내는 방식이 참신하게 다가왔다.
평범한 삶을 위해 소가주 경합에 참가했고, 또 소가주가 된다면 장래에는 가문을 이끌어야 했다. 이러한 지혜는 도움이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전생에서는 오로지 검 말고는 관심이 없었지만, 이제는 검 외의 다른 것들에 좀 더 관심을 두고자 했다.
소년과 소녀가 얘기를 나누기 시작하자, 지켜보던 창백한 피부의 소녀도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흥미로운 추론이야. 그럼 경합은 어떻게 진행될까? 누구나 다 아는 얘기 말고. 조를 짠다는 건 금시초문이었는데.”
“조별 경쟁을 시키려는 것 아닐까? 처음 일 년은 수련을 강요하진 않겠다고 했지만, 이번 경합은 우리 당가의 명운이 걸린 일이야. 팔자 좋게 가만히 내버려 둘 리가 없지.”
“네 말은, 어떻게든 조원들이 합심해서 뒤처지는 녀석이 없게 만들 거라는 거지?”
“그래. 포기하거나 좌절하는 놈들이 나와도 타이르건 두들겨 패건 함께 수준을 끌어올리라는 의도인 것 같아.”
“소가주로서의 자질을 보는 걸지도 몰라.”
“어쨌거나 한 조가 된 이상, 우리도 서로에게 짐이 되진 말도록 하자. 성실히 수련에 임하자는 거야.”
“그래. 좋아.”
“나도.”
셋은 저희끼리 의기투합하더니 이내 통성명까지 마쳤다.
처음 말을 꺼낸 소년의 이름은 당이전,
양갈래 머리 소녀의 이름은 당유리,
창백한 소녀의 이름은 당미려였다.
그들의 관심은 자연스레 지금껏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있던 소년에게로 향했다. 사실 더 이상의 통성명은 필요 없었다. 침묵을 지키는 소년의 정체를 다들 익히 알고 있었던 까닭이다.
당유리가 쾌활한 어조로 말을 건넸다.
“얘. 네가 당연명이지? 소문은 들었어. 당영령을 그 꼴로 만든 것이 너라면서.”
“그래.”
“정말 배짱 좋더라. 걔 외조부가 삼장로인 건 아는 거지? 앞으로 경합이 치러지는 사 년 동안은 무사하겠지만....”
당유리가 말끝을 흐리자 당이전과 당미려 역시 표정을 살짝 굳혔다. 어떻게 보면 그들 옆에 있는 당연명은 시한부 인생이나 마찬가지였다. 지금이야 예비 소가주의 신분이니 장로원에서도 그를 건들지 못하고 있지만 경합이 모두 끝나고 단 한 명의 소가주가 탄생하게 되면 더 이상 당연명을 보호해줄 장치는 전무했다.
모르긴 몰라도 장로원에서 곧장 끔찍한 형벌이 내려질 가능성이 컸다. 가문의 실세인 삼장로 당석형의 하나뿐인 외손녀를 건드렸으니,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당연명을 징벌하려 들지 않을까.
결국 당연명이 살아남을 길은 이번 경합을 통해 진정한 소가주가 되는 것뿐이었다.
“...일단 열심히 해 보자. 연명이 너도 너무 걱정하진 말아. 아직은 시간이 있으니까.”
“네가 잘못한 건 없다고 생각해. 우리야 자세한 정황은 모르지만, 난 걔들이 떠드는 것을 몇 번 들은 적이 있어. 부모 욕은 참기 어렵지. 참아서도 안 되고. 오히려 때려눕힐 힘을 가지고서도 지금껏 인내한 게 대단하다고 생각해.”
당이전과 당미려가 위로하듯 한 마디씩 건넨다.
당연명은 묘한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그는 전혀 걱정하지 않는데, 생판 남인 이들이 마음을 써준다. 전생에선 겪지 못한 낯선 기분이었는데 썩 나쁘지 않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들과 친구가 될 수도 있을까하는.
검귀였던 시절에는 평생 친우라 부를만한 이가 없었다. 언제나 함께였던 애검만이 그의 유일한 가족이자 벗이었다.
이젠 평범한 삶을 살기로 한 만큼, 타인과의 관계에도 조금쯤 마음을 열어야 하지 않을까.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지만 소년의 표정이 조금 전보다 미미하게나마 온화해져있었다. 모친인 독봉쯤이나 되어야 감지할 만한 변화.
소년이 입술을 달싹인다.
“...그래. 잘 부탁한다.”
한동안 마차의 다그닥 거리는 소리만이 칠 조 소년소녀들의 귓가에 맴돌았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