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천당문의 검신급 소가주가 되었다-15화 (15/134)

15화<시험>

당이전의 말에 당유리와 당미려도 뒤를 돌아보더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정말이네. 이게 제갈세가의 진법이구나.”

“과연 명불허전...!”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고작 백 보를 걸었을 뿐인데 그 커다란 장원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다니 말이다.

“이곳에는 고도의 환영진이 몇 겹으로 얽혀 있다. 무엇이 환영이고, 무엇이 실제인지 분간조차 쉽지 않겠지. 제갈세가의 진법은 무척이나 놀라워서, 진법 안에서는 수백 장에 해당하는 거리를 고작 백여 보로 압축시킬 수도 있다. 그런 걸 단순한 환영이나 감각을 교란하는 것으로 치부하기는 어려울 거다. 괜히 제갈세가의 진법이 술법의 영역에 닿았다는 평을 받았던 게 아니지.”

흑의 사내의 말에 당이전과 당유리, 당미려는 놀란 표정을 금치 못했다. 사마가 득세하는 세상이 되고나서, 다른 가문과의 교류가 거의 없던 당가였기에 그들에게는 이런 경험 자체가 몹시 생소했다. 하지만 당연명만큼은 여전히 담담한 얼굴이었다. 이미 전생에 여러 절진을 겪어본 까닭이었다. 겨우 반경 열 장 정도의 공간에 광활한 산맥 하나를 담을 수도 있는 것이 진법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제갈 무인이 아니면 겹쳐진 진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생문(生門)을 찾아 움직여야 하니까. 고로 너희 칠 조는 함부로 이곳을 벗어나지 말도록 해라.”

“당원진 무사께서 이 제갈 모의 얼굴에 금칠을 하시는군요.”

제갈창신이 섭선으로 살짝 얼굴을 가리며 흑의 사내의 이름을 언급했다.

봉위대 무사 당원진. 그는 이번 소가주 경합에서 칠 조를 담당한 봉위대 무사들 중 가장 강자였다. 한때 봉위대 부대주로서 독봉을 가까이에서 수행했을 정도다. 굳이 비교하자면 암왕대주 당적휘와 비슷한 무위.

그런 당원진은 전날부터 한 소년이 묘하게 신경 쓰이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저 녀석.’

28호⎯그렇게 명명된 소년은 마치 부동심(不動心)의 소유자인 것처럼 조금의 감정 기복도 보이지 않았다. 느껴지는 기세로 보아서는 또래에 비해 제법 준수한 성취를 쌓은 듯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변 환경이 휙휙 변하는 진법 속에서도 시종일관 저토록 담담한 안색을 유지한다...?

‘...예전에 겪어보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지.’

순간 말도 안 되는 가정을 하고선 당원진은 실소를 흘렸다. 이제 열 살을 좀 넘은 소년이 그런 경험이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다만 암기술에는 확실히 두각을 드러낼 것으로 짐작됐다. 살짝만 호흡이 흐트러져도 궤도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 암기다. 작고 가벼운 암기일수록 그런 경향이 두드러졌는데, 그런 암기들을 다루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재능이 바로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부동심을 지녔다면 그야말로 최고의 재목이랄 수 있었다.

“저... 당원진 무사님?”

당유리가 조심스레 손을 들며 말했다. 그녀는 문득 전날에 당원진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분명 어제 푹 쉬어두는 게 좋을 거라 했었어. 오늘부터는 다른 곳에 묵을 거라고.’

그 말인즉슨⎯

“...설마 여기서 지내야 하는 건 아니겠죠? 그러니까, 수련뿐만 아니라 잠도...?”

“25호. 네 짐작이 옳다. 앞으로 칠 조 전원은 이곳을 거처로 삼는다. 끼니와 잠, 수련을 비롯한 모든 생활을 이곳에서 해결하게 될 거다.”

당원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당미려가 곧바로 반발했다.

“말도 안 돼! 멀쩡한 장원을 놔두고 왜죠?”

“마냥 배부르고 등 따스하게 수련해서는 감각을 날카롭게 벼릴 수 없다. 오히려 둔해짐을 경계해야겠지. 척박한 곳에서, 불편 또는 위협과 공존하는 생활은 너희들의 수준을 빠르게 향상시켜 줄 거다.”

“그래도 이건....”

“곱게 자란 모양이군. 26호.”

“.......”

“어리긴 하나 여인의 몸이니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만, 예외는 없다. 일정 수준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저 위의 동혈에서 지내도록.”

당원진은 단정적인 어조로 말했다. 그의 말에 일리가 있었기에, 당미려는 더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고 체념했다. 어차피 다른 조들에도 같은 여건이 적용될 테니 조금만 참자고 당유리가 속삭이기도 했고.

당이전은 그래도 사내라고 순순히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 다만 동혈이 위치한 높이가 상당해서 올라갈 방도를 고민하는 중이었다.

당연명 역시 딱히 불만을 표출하지는 않았다. 당원진의 마지막 말에 눈을 빛냈을 뿐. 분명 ‘일정 수준에 도달하기 전’까지만 동혈에서 지내라고 했었다. 그리고 당연명은 딱히 생활의 불편을 감수할 생각이 없었다.

무엇보다 성장기인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제대로 된 음식의 섭취와 질 좋은 수면이다. 장원에서라면 그 둘을 모두 취할 수 있지 않나.

당연명이 물었다.

“일정 수준이라 함은? 어느 정도를 말씀하시는 것인지? 그리고 만약 이미 그 수준을 뛰어넘었다면 그냥 장원에서 생활해도 되겠습니까.”

“...오만하구나. 28호.”

당원진은 주시하고 있던 소년의 입에서 나온 말뜻을 헤아리고는 조금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이런 흙바닥에서는 하룻밤도 지내고 싶지 않다는 것 아닌가. 이것 역시 수련의 일종임을 알려줬는데도 이런 반응이라니.

“네 성취가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더 뛰어나다는 것은 알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원하는 수준에 이르렀을 거라 여기는 것은 실로 방자한 생각이군.”

“그저 궁금할 따름입니다.”

“뭐, 좋다. 이참에 네 실력을 확인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당원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차라리 잘됐다고. 될성부른 떡잎에게 벽을 느끼게 해주어 향상심을 자극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모두에게 해당되는 일이니 잘 들어라. 인간은 누구나 기감(氣感)을 지니고 있다. 무공을 익히지 않은 범부라 해도 때때로 어떤 예감이나 직감을 하고, 그게 맞아떨어지는 경험을 하는데 그런 것이 바로 기감이 예민해졌을 때 겪는 일이다. 이러한 기감은 불의의 공격을 감지하거나 상대의 수준을 알아차릴 수 있게 한다. 일반적으로 고수일수록 예리한 기감을 지니고 있기 마련이다. 절세 고수들의 기감은 거의 예지의 영역에 다다라 있다고 보면 된다. 그들에게 암살 따위의 어설픈 수작이 통하지 않는 이유기도 하지.”

본래 기감은 개인이 익힌 무공의 특징이나 내공 성취에 따라 자연스레 예민해지기 마련이었다. 예민한 기감은 성취가 깊어져 고수가 되면 절로 따라오는 부산물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살수들이나, 당가와 같이 암기 무학을 익히는 무가는 훈련을 통해 기감을 먼저 발달시키기도 했다. 살수들의 경우에는 단 한 번의 실패가 곧장 죽음으로 이어지는 까닭에 그런 것이었고, 당가와 같은 무가의 경우에는 암기 무학으로 상승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어차피 예민한 기감이 필수불가결한 때문이었다.

“...너희들은 사천당가의 예비 소가주 신분으로서, 마땅히 암기 무학을 전수받게 된다. 암기 무학은 단순 투척술과는 다르다. 수십 수백 개의 암기를 자신의 수족처럼 파악하고 있어야 하며 최종적으로는 그것들을 의도대로 다룰 수 있어야 한다. 그걸 위해 기감을 수련케 하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입문조차 힘든 것이 본가의 암기 무학인즉.”

당원진은 눈앞에 있는 소년소녀들의 눈빛을 살폈다. 이렇게나 설명해주었으면 보통은 납득의 빛을 띠기 마련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28호 소년을 제외한 모두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듯했다.

당원진은 품속에서 검은 천을 하나 꺼내며 말했다.

“확인은 간단하다. 시각에 의존치 않고 사방에서 쏟아지는 암기 세례를 피하거나 막으면 된다. 단, 제자리에 서서.”

피하거나 막으면 된다는 부분에서 나름대로 할 만하다는 표정이던 소년소녀들은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는 조건에 낙담한 기색이 되었다. 제자리에 가만히 서있어야 한다는 것은 보법을 제한하겠다는 말이었다. 그건 곧 회피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의미였으니, 모든 공격을 인지하고 막아낼 수 있어야 했다. 어렵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시험이다.

“어떠냐. 28호. 당장이라도 도전해볼 테냐? 만약 통과한다면 오늘부터 밤이슬을 맞을 필요도 없다. 굶주린 산짐승 따위를 경계하며 잠을 설치지 않아도 될 테고.”

“하겠습니다.”

28호, 당연명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당원진의 제안을 승낙했다.

당원진은 묘한 눈길로 소년을 바라보며 안대 역할을 할 검은 천을 건네주었다. 불현듯 그는 모종의 예감을 느꼈다. 어쩌면 소년이 이 시험을 통과할 지도 모르겠다고. 그러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의 기감에 느껴지는 소년의 성취로는 절대 시험을 통과할 수 없었다. 설마하니 기감을 속일 정도로 실력을 감추는 데 능할 리는 없었으니까.

‘그게 가능하다면 반박귀진에 이른 것이나 다름없지.’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눈앞의 상대는 이제 겨우 열 살을 조금 넘은 소년이었다.

“28호는 이쪽에 서서 눈을 가려라.”

“예.”

“나머지는 저쪽으로 물러나도록.”

당원진의 말에 따라 당연명이 한 곳에 서서 천을 이용해 눈을 가린다. 당이전, 당유리, 당미려는 약간 거리를 두고 물러났다.

“봉위대 칠 조는 28호의 사방을 점하도록.”

“.......”

흑의 사내 넷이 말없이 이동했다. 그들의 표정 또한 딱히 달갑지 않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경합 참가자가 첫날부터 험한 수련을 하기 싫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그들 넷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28호, 이 천둥벌거숭이 같은 녀석에게 본때를 보여주자고.

“암기는 시간차를 두고 쏟아질 거다. 정해진 개수가 있는데, 그중 세 개가 적중하면 시험은 중지된다.”

시험에 쓰이는 암기는 나무로 만들어지거나 날 부분이 무딘 것들이었다. 그렇지만 당원진은 구태여 그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경각심을 가지고 시험에 임하길 바란 까닭이다.

“마음의 준비가 되면 말해라.”

“안대를 했을 때부터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알겠다.”

당원진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수신호를 보냈다. 28호 이 녀석은 도무지 긴장감이란 것을 찾아볼 수가 없는 놈이었다.

“.......”

잠시 침묵과 함께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당연명의 사방에서 공격을 준비하는 봉위대 무사들이 자아내는 적막이었다. 일촉즉발이란 말이 절로 떠오른다.

한동안 공격은 시작되지 않았다.

‘제대로 혼내주려는 모양이군.’

당원진은 네 명의 무사들을 보며 생각했다. 모르긴 몰라도 28호 소년은 시험 통과를 위해 고도의 집중력을 유지하고 있을 터였다. 그런 극도의 긴장 상태는 호흡 한 번 한 번이 엄청난 심력 소모를 불러오기 마련이었다. 아마 소년의 집중력이 깎여나가고, 알량한 기감이 무뎌졌을 때 한 번에 몰아칠 심산이리라.

그렇게 반 각 정도(7분)가 흘렀다.

한계에 달한 것인지 소년의 자세가 약간 흐트러지는 기색이 보이자마자 네 명의 무사들이 동시에 번개처럼 손을 흩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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