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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당문의 검신급 소가주가 되었다-16화 (16/134)

16화<거래>

대략 반 각 전.

‘뻔한 수작이군.’

당연명은 준비가 됐다고 말했음에도 공격이 날아오지 않자, 의문을 느끼기보다는 상대의 의중을 짐작했다. 공격의 시기를 정하는 것은 저쪽이다. 기감을 돋우고 있는 것이 시시각각 심력을 소모한다면 저쪽에 압도적으로 유리한 것이 맞다.

그저 공격의 시기를 늦추는 것만으로 심력을 갉아먹을 수 있으니까.

당연명의 짐작은 옳았다. 봉위대 무사 넷은 오랫동안 합을 맞춰 온 사이였다. 눈짓으로 대화를 할 수 있는 수준이란 의미다. 그들은 괘씸한 소년의 기를 완전히 꺾어놓을 심산이었다.

전략은 간단했다. 심력이 소모되어 소년이 빈틈을 드러냈을 때, 사방에서 동시에 암기를 한 번에 털어내는 것. 원래는 시간차를 두고 사방에서 암기를 순차적으로 날리는 것이 시험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예외였다. 어차피 세 개가 적중하면 시험은 중지된다. 제대로 소년을 혼내주기 위해 약간의 시간차만 두고 거의 동시에 모든 암기를 쏘아내고자 했다.

하지만 그들이 예상치 못한 것이 있었으니⎯ 소년의 정신은 이미 검신의 영역에 닿아 있다는 사실이다.

심력 소모?

검신에게 기감을 돋우는 것 따위는 호흡을 하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것이었다. 이미 상시로 발동 중이라는 의미다. 몇날 며칠을 기다려도 기감이 무뎌지는 일 따위는 있을 수 없었다.

‘번거롭군.’

결국 소년은 일부러 빈틈을 내보였다. 이대로라면 대치가 끝도 없이 이어질 것 같았던 까닭이다.

그리고 그렇게 당연명이 빈틈을 보이자마자 동시에 움직인 봉위대 무사 넷. 그들은 당연명의 집중력이 바닥을 드러낸 것으로 판단했다. 극한의 대치 상황이 무려 반 각 동안이나 이어졌으므로. 물론 '극한'이라는 것은 그들의 생각에 불과했지만....

아무튼 봉위대 무사들의 양손이 번개처럼 움직였고, 수십 개의 표창과 비수, 침처럼 생긴 암기들이 당연명을 향해 우수수 쏟아졌다. 암기들은 나무로 만들어졌거나 날이 무디게 처리가 되어 있었지만, 쾌속하기도 했을 뿐더러 봉위대 무사들의 경력이 어느 정도 실려 있었기에 적중당한다면 자칫 크게 다칠 수도 있었다.

여전히 천으로 눈을 가리고 있는 소년은 자신에게 닥친 위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틈을 드러낸 자세 그대로 서있을 뿐이었다.

‘음?’

소년을 지켜보던 당원진은 순간 의아함을 느꼈다. 저놈, 지금 웃고 있는 건가...?

그랬다.

소년은 엉성한 자세였지만 분명 입매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마치 일부러 이런 상황을 유도하기라도 한 듯이.

‘67개로군.’

당연명은 시각을 제한하고 있었지만, 압도적인 기감으로 암기 하나하나를 모조리 인식하고 있었다. 아직 내공량이 적어서 기감의 범위는 그리 넓다고 할 수 없었지만, 일단 감지할 수 있는 영역 안에 들어온 것들은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이제 날아오는 암기들을 모두 피하거나 막아내면 된다.

‘간단한 일이지.’

당연명은 품속에서 수리검 하나를 빠르게 꺼냈다. 일전에 당문찬에게서 노획한 것이다. 그 사이에 암기들은 거의 지척까지 다다라 있었다.

사방을 모두 압박하고 있으니 제 삼자가 보기에는 소년이 암기를 막아내는 것은 요원한 일로만 보일 터였다.

그러나 당연명은 침착하게 수리검을 휘둘렀다. 한 번 검신의 영역에 닿았던 소년의 눈에는 암기들을 막아낼 수 있는 검로가 수십 개는 보였다. 아직 일천한 내공 때문에 선택할 수 있는 가짓수는 그리 많지 않았지만.

‘착(着).’

묘리 하나를 수리검에 싣는다. 휘둘러지는 수리검은 궤도에 있는 모든 암기들을 자연스럽게 빨아들였다. 위아래로 구불구불 이어지는 선이 소년을 중심으로 한 바퀴 그려졌다.

직후에 멈춰진 수리검 아래로, 수십 개의 암기가 후두둑 떨어졌다.

“.......”

좌중에는 물을 끼얹은 듯 싸늘한 침묵만이 감돌았다. 순간적으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숨을 멈춘 이도 있었다.

“방금, 뭐였어...?”

“저걸 어떻게 피하지도 않고 한 수만에? 눈까지 가렸잖아?”

“그보다 저게 시험이야? 우리 이제 장원에 못 돌아가는 거 아냐? 계속 동굴에서만 살아야 할 것 같은데.”

떨어져서 시험에 임하는 소년을 주시하던 당이전, 당유리, 당미려가 겨우 침묵을 깨고 자기들끼리 속닥였다.

봉위대 무사들은 그 후에도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뭐냐, 저 녀석은. 대체...?’

당원진은 천천히 눈가리개를 벗는 소년, 28호를 보며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기감은 뛰어날 수 있었다. 선천적으로 예민한 기감을 지녔을 수도 있고, 모종의 훈련으로 발달시키는 것이 가능했으니까. 하지만 사방을 점하고 소나기처럼 쏟아진 암기 세례를 단 일수에 휘어잡는다?

주변 공간을 인식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완전히 장악하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당원진은 다른 봉위대 무사들이 침묵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들 자신이라면 과연 28호 소년과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할 수 있었을까를 떠올려보고 있는 것이리라.

하지만 당장 당원진부터도 소년보다 나은 대처를 보여줄 자신이 없었다.

‘...이거 아무래도 괴물이 나타난 것 같군.’

당원진은 경합에 참가한 다른 소년소녀들이 조금 안쓰러워졌다. 이미 미래의 소가주가 누구인지를 알아버린 기분. 수리검으로 보여준 단 한 수였지만, 그게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마치 절세의 경지에 이른 검술 고수를 보는 듯했다.

“합격인가요?”

어느새 다가온 소년이 검은 천을 당원진에게 건네며 묻는다. 당원진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반론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통과한 까닭이다.

“...그래.”

“그럼, 오늘부터 장원에서 생활해도 되는지...?”

“좋다. 28호 너는 이미 우리가 원하는 수준 이상의 감각을 소유하고 있음이 증명되었으니....”

당원진은 말끝을 흐렸다. 내심 소년에게 묻고 싶은 바가 있었다. 수리검으로 암기들을 빨아들였던 기예, 그게 궁금했다.

빨아들였다⎯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적어도 당원진이나 다른 봉위대 무사들이 보기에는 소년의 수리검이 마치 자석이라도 되는 것마냥 암기들이 저절로 이끌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암기를 다루는 입장에서, 완전히 상극처럼 보이는 기예였다. 익히지 않더라도 대처법을 알기 위해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당원진을 비롯한 봉위대 무사들은 이번 경합 참가자들에게 가르침을 내리러 온 입장이었다. 교관의 신분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도리어 가르침을 청하자니 영 모양새가 서지 않았다.

잠시 고민하던 당원진은 이내 결심을 내린 듯 표정을 굳혔다.

‘자존심 따윈 그때 다 버렸다.’

모시던 주인을 지키지 못했던 그때가 떠올랐던 것이다. 만약 그에게, 봉위대에게 충분한 힘이 있었다면 당가가 이리 쇠락하지도, 독봉이 소가주 자리를 내려놓지도 않았을 터였다.

“28호.”

“예.”

“네가 보여준 한 수는 잘 봤다. 아주 인상적이더구나.”

“감사합니다.”

“어떻게 한 것인지 알려줄 수 있느냐? 경력이 크게 실린 암기들도 그렇게 받아내는 것이 가능한지도 궁금하구나. 암기 무학을 익힌 자들에게는 천적이나 다름없는 기예로 보였다.”

“...!”

당원진의 말에 당연명을 제외한 모두가 놀랐다. 경합 칠 조의 훈련을 전담하는 당원진이 일개 소년에게 가르침을 청한 것이다. 극찬이나 다름없는 말과 함께.

제갈창신 역시 눈에 이채를 띠며 관심을 보인다.

칠 조의 남은 세 명은 경악 속에 쑥덕거렸다. 이미 소가주가 쟤로 정해진 것 아니냐면서.

한편.

‘묘리를 묻는 건가? 검로가 아니라.’

당연명은 의아함을 느꼈다. 그의 입장에서 묘리는 그저 간단한 무학의 이치에 불과했다. 대저 검법, 검술에는 여러 이치가 담긴다.

간단하게는 중(重: 무거움), 쾌(快: 빠름), 환(幻: 변화)의 이치가, 조금 더 상승의 검법에는 파(破: 깨뜨림), 산(散: 흩음), 착(着: 붙음), 단(斷: 끊음), 예(銳: 날카로움) 따위의 것들이 담겨 있곤 했다.

여러 이치를 섞거나 하나의 이치를 극한으로 구현한 극상승의 검초들도 존재하고.

당연명은 이미 각 검법과 검술에서 그러한 이치만을 추려내서 묘리로써 적용할 수 있는 영역에 다다라 있었다.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오히려 당연명에게는 수백, 수천만 번을 휘둘러 깨달은 검로가 더욱 값진 것이었다. 조금 전의 일만 해도 그렇다. 착의 묘리를 실었다 하더라도 결국 본질은 단번에 모든 암기들을 꿸 수 있는 검로를 구현할 수 있느냐가 핵심이었다.

하지만 당연명은 굳이 그런 것을 알려줄 생각은 없었다.

아직은.

“착(着)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어렵지 않다고...?”

“네. 약간의 깨달음만 있으면 되니까요.”

“약간의 깨달음이라면?”

“착의 근원을 통찰하는 겁니다. 그 성질을 궁구하는 거죠. 그 부분은 제가 도움을 드릴 수 있습니다.”

“정말이냐!”

당원진은 반색했다. 그를 비롯한 봉위대는 뼛속까지 무인이었다. 어떻게든 더 강한 힘을, 어떻게든 다음 경지로 발돋움하고자 하는 자들.

사실 무학에 대한 부분은 가르침을 청한다고 무조건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승관계가 아닌 이상 상대가 거절해도 할 말이 없는 것이다. 깨달음이라는 것은 그만큼 귀중한 것이었으니까. 작은 깨달음 하나가 다음 경지로 인도해줄 이정표가 될 수도 있었다.

심지어 그들은 모르고 있었지만, 소년의 정신⎯ 감각이나 안목, 통찰력 같은 것들은 검신의 그것에 필적했다. 터무니없는 기연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소년이 씩 웃으며 말했다.

“대신 작은 바람이 있습니다.”

“...좋다. 어떤 조건이냐?”

“조건이랄 것도 없습니다. 정말로 소소한 바람이기에.”

“들어보고 판단하마.”

“그저 삼시세끼를 풍족히 준비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고기를 곁들여서요.”

“...그게 끝이냐?”

당원진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이곳은 산속이었다. 조금 번거롭긴 하겠지만 봉위대 무사들에게 산짐승을 사냥하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 소년의 말대로라면 정말로 소소한 조건이었다.

“아, 제가 뭘 하건 간섭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일 년이 아니라 삼 년간 말이죠.”

“...그건 좀 고려를 해 보마. 일단 일 년 동안은 원래 수련에 간섭하지 않도록 되어 있다.”

“또 제가 가전 무공들을 배우길 원하면 지체 없이 알려주시고요.”

“그것도 원래 우리가 할 일이다만.”

“배우고 싶은 것만 배울 예정이거든요.”

“...편식이라. 알겠다.”

당원진은 소년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28호, 당연명은 지금 순서를 건너뛰고 상승의 가전 무공을 배울 수 있게 해달라는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마음에 드는 것만 골라서 익히겠다고.

원래라면 제대로 된 수련을 위해서라도 거절해야 했다. 다짜고짜 순서를 무시하고 상승의 무공을 익히면 오히려 성취가 더딜 수도 있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무공에도 적용되는 경우다.

하지만 당원진은 소년이 예사롭지 않은 인재라는 것을 이미 목도했다. 그가 하고자 하는 대로 내버려 두어도 괜찮겠다는 직감이 들었다. 어쩌면 스스로 재능을 꽃피우는 천재일 지도 모르지 않나. 그런 기대감이 생긴 것이다.

“그럼, 승낙하신 걸로 알겠습니다.”

그렇게 양쪽이 만족하는 거래가 성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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