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천당문의 검신급 소가주가 되었다-17화 (17/134)

17화<외전-남겨진 이들의 이야기>

“끔찍하다. 정말. 몇 달 전만 해도 내가 이런 짓을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나도 그래. 하지만 어쩌겠어? 먹고 살려면 뭔 짓인들 해야 하잖아.”

두 소녀가 개처럼 생긴 짐승의 가죽을 벗기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개라기에는 몸집이 상당히 크고 주둥이에 박힌 이빨들이 날카로웠다. 맹수의 그것마냥.

둘은 당미려와 당유리였다.

손질하고 있는 짐승은 늑대였다. 벗겨낸 가죽은 한쪽에 모으고, 살코기는 대충 비수로 도려내서 다른 쪽에 쌓아둔다. 쓸모가 많은 가죽은 몰라도 고기를 굳이 알뜰하게 챙길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주변에 널린 게 맹수였다.

“참, 유리야. 그때 생각나...?”

****

그들⎯ 당연명을 제외한 칠 조 소년소녀들이 던져진 환경은 열악했다. 우선 거처로 주어진 동굴. 깊이는 적당히 깊어서 이것저것 보관할 수도 있었고, 발을 뻗고 잘 수도 있었지만 그것뿐이었다. 아무 것도 없었다. 봉위대 무사들이 헤어질 때 건네준 비수 몇 자루가 그들이 받은 전부였다.

무엇보다 짜증나는 점은 동굴이 위치한 높이였는데, 절벽 바닥으로부터 삼 장(거의 10m)이나 떨어져 있었다. 그들은 나름대로 가문 내에서 촉망받는 인재였지만 아직 열둘, 열셋 정도의 나이에 불과했다. 한 번의 도약으로 거처에 도달할 만큼의 신법 성취를 이루지 못했다. 내공도 부족했고.

결국 벽호공(壁虎功)마냥 절벽에 손 대신 비수를 박아 넣어 그걸 밟거나 절벽의 튀어나온 돌조각을 붙잡고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동굴이 높게 위치한 것을 불평하던 소년소녀들은 밤이 깊어지고 달이 뜨자 오히려 그걸 고맙게 여기게 됐다.

긴 울음소리와 함께 짐승들이 나타났던 것이다. 대부분의 녀석들은 근처를 어슬렁거리다 물러났지만, 늑대 무리는 달랐다. 새벽 내내 몇 번이고 절벽을 타고 오르려는 시도를 해댔다. 침을 질질 흘려대면서.

소년소녀 셋은 밤잠을 설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고작해야 일 장 남짓에서 미끄러지던 녀석들이 몇 시진이 지나자 요령이 생겼는지 거의 이 장 가량을 타고 올라왔던 것이다.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가슴이 철렁할 수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수라도 적으면 내려가서 잡으려는 시도라도 해보겠는데, 늑대들은 거의 삼십여 마리에 달할 정도였다. 상대할 엄두가 나지 않는 숫자였다.

해가 뜨고 나서야 놈들은 물러났다. 밤새도록 절벽을 긁어댔으니 지칠 만도 했다. 물러나면서 그르릉대는 울음이 마치 두고 보자는 것처럼 느껴져 섬뜩했다.

결국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당이전, 당유리, 당미려는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강구했다.

사실 결론은 이미 나와 있었다. 어떻게든 놈들을 처리해야 한다고.

단순히 숙면을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분명 공동산은 험했고, 온갖 맹수들이 득실거렸다.

하지만 이곳은 진법 안이었다. 진법은 사람들의 출입만 막는 게 아니다. 이런 맹수들이 들어왔다는 것은 필시 제갈창신이나 봉위대 무사들의 수작임이 틀림없다. 그게 셋의 결론이었다.

그리고 들어온 맹수들이 사냥할 만한 다른 먹잇감이 딱히 없다면...?

아마 틈나는 대로 절벽을 찾아올 게 뻔했다. 야들야들해 보이는 어린 인간들이 있음을 확인했으니.

일 년간은 수련에 간섭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어느 정도 선까지는 강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주려는 것이 아닐까. 겸사겸사 식량도 알아서 자급자족하고⎯

합리적인 의심 속에서 셋은 다가오는 밤을 준비했다. 당가의 자제답게 각자 소량의 독을 구비하고 있었는데, 말 그대로 소량이었다. 그것도 극독이라 불릴 만한 것을 지니고 있는 것은 당이전 뿐.

게다가 극독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문제가 있었다. 놈들을 중독시키는 것. 짐승들은 사람보다 훨씬 예민한 감각을 지니고 있는 까닭이다. 어지간한 솜씨의 하독은 통하지 않을 것이 뻔했다.

그런 상황에서 타개책을 제시한 것은 당이전이었다. 절벽 인근에는 여러 가지 풀과 이끼가 자라 있었는데, 그중의 몇 가지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독을 조합하면 마비를 일으키는 새로운 독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고 한 것이다.

알고 보니 당이전은 독을 제조하는 데 재능이 있었다. 웬만한 독초들은 전부 꿰고 있었으며 직접 독을 만들어 본 경험도 적지 않았다.

다른 방법이 없음을 인정한 당유리와 당미려는 자신들이 가진 독을 모두 내놓고 독초로 보이는 인근의 풀을 모조리 뜯어왔다. 그들 역시 당가의 인물. 독초인지 아닌지는 대강이나마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대량의 마비독이 만들어졌고, 밤이 깊었다.

우우우 하는 소리와 함께 늑대들이 다시금 절벽으로 몰려 왔고, 당이전은 비수로 손바닥을 그어 피를 뚝뚝 떨어뜨렸다.

늑대들 중 몇 놈이 핏방울을 핥더니 흥분해서 컹컹거리며 날뛰기 시작했다. 그걸 확인한 당이전은 미리 만들어 둔 마비독과 혈액의 혼합물을 넓게 흩뿌렸다.

갑자기 위쪽에서 무언가 떨어지자, 대부분의 늑대들은 경계하며 물러섰지만 이미 피 맛을 본 놈들은 혈향을 맡자마자 잔뜩 흥분해서 달려들었다. 그러고는 독이 섞인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핥아댔다.

그리고 잠시 뒤 모로 쓰러져 눈을 까뒤집고는 혀를 빼물었다. 마비독이 제대로 작용한 것이다.

움직이지 못하는 놈들에게 극독을 하독해 완전히 숨통을 끊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게 일곱 마리의 늑대를 죽일 수 있었다.

늑대들은 죽은 녀석들을 향해 몇 번 짖어대더니 조심스레 냄새를 맡아보고는 구슬프게 울었다. 당이전은 혹시나 싶어 독이 섞인 혈액을 몇 차례 더 뿌려봤지만, 늑대들은 더 이상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아예 앞발을 써서 혈액을 흙으로 파묻어 버리는 놈도 있었다. 상당히 영리한 녀석들이었다.

놈들은 어김없이 해가 뜰 때까지 절벽을 타고 오르려는 시도를 했다. 이제는 대부분의 녀석들이 요령이 생긴 것인지 이 장을 훌쩍 넘는 높이까지 올라왔다. 셋은 이날도 밤잠을 설칠 수밖에 없었다.

해가 뜨고, 다시 녀석들이 물러갔다.

나름의 의리인 것인지, 무언가를 먹고 죽은 것이 께름칙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녀석들은 죽은 놈들의 시신을 그냥 두고 갔다. 당이전은 어쩌면 놈들이 제 동료들을 뜯어먹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완전히 기우였다.

셋은 졸음이 몰려왔지만 잠들 수 없었다. 늑대들이 절벽을 오르는 높이가 매일 높아진다. 어쩌면 당장 다음 밤에 그들이 머무는 동굴로 뛰어오를 지도 몰랐다. 대책을 강구하는 게 먼저였다.

하지만 대책보다 먼저인 게 있었다.

식사. 벌써 하루가 넘게 끼니를 때우지 못한 것이다.

셋은 우선 죽은 늑대들의 가죽을 벗겨내고 살코기를 발라냈다. 독을 먹고 죽은 놈들이었지만, 고기를 먹는 것에 큰 문제는 없었다. 독은 내부 장기를 위주로 번지는 데다 당이전, 당유리, 당미려는 당가의 사람이니만큼 어느 정도 독에 내성이 있는 까닭이었다. 오히려 불을 피우는 것이 더욱 문제였다.

어렵사리 불을 피우고, 고기를 구워 배를 채운 그들은 졸음을 참고 다시 독초를 모아왔다. 전날에 만들어 둔 독액을 이미 거의 다 소모해버린 까닭이었다.

당이전은 다시 독초를 이용해 마비독을 만들었고, 이번엔 남은 늑대의 살코기 몇 덩이에 마비독을 듬뿍 발랐다. 마비독을 바른 뒤엔 다시 늑대의 피를 뿌려 냄새를 지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물론 이걸 늑대 놈들을 낚는 미끼로 쓸 생각은 아니었다. 왠지 놈들은 동료의 고기를 알아보고 입에도 대지 않을 것 같았다.

당이전은 독에 버무린 살코기를 짐승들이 다니는 길목에 놔뒀다. 절벽에서 조금 벗어나니 맹수의 발자국들이 보였기에 길목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 후에야 조금 눈을 붙인 그들은 해질녘이 되어서 살코기를 놔두었던 곳으로 가봤다. 추측대로라면 진법에 갇혀 있는 것은 맹수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냥감이 극도로 적어졌으니 포악해질 대로 포악해진 놈들은 서로 잡아먹고 다니지 않을까. 싸우다 다친 놈도 있을 법했다. 그러다 길에 놓인 먹음직스런 고기를 발견한다면? 앞뒤 안 가리고 달려들 터였다.

아니나 다를까.

고기는 모조리 사라져 있었다.

안전한 곳으로 가져가서 먹은 놈도 있을 테고, 덩치가 커서 독효가 도는데 시간이 꽤 걸리는 놈도 있을 거라는 당이전의 의견에 따라, 셋은 주변을 조심스레 탐색했고 곧 당유리가 거의 집채만 한 곰이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마비독이 든 늑대고기를 먹은 게 분명했다. 그것도 혼자서. 여전히 숨은 붙어 있었기에, 당이전은 사람으로 치면 경동맥에 해당하는 부위를 비수로 여러 차례 쑤셨다. 울컥울컥 피를 토해낸 녀석은 금세 숨이 끊어졌다.

셋은 놈의 시신을 그들의 거처인 절벽 인근까지 끌고 갔다. 제법, 아니 아주 무거웠지만 그들은 모두 독요청광심법에서 비롯한 내공을 익히고 있었기에 어떻게든 옮길 수 있었다.

당이전은 곰의 뱃가죽을 가르고, 좌우 중 웅담, 즉 쓸개가 없는 쪽에 마비독을 치덕치덕 발라댔다. 양쪽 다 바르는 것보다 한쪽에만 독을 쓰는 것이 영악한 늑대 놈들을 속이기 쉬울 것이라 판단한 까닭에서였다.

그렇게 세 번째 밤이 찾아왔다.

당이전, 당유리, 당미려는 이번에는 아예 하나의 동굴에 모였다. 당이전의 동굴로.

혹시나 늑대들이 올라온다 해도 셋이 함께라면 조금 더 생존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하는 판단에서였다. 아무도 없는 동굴로 올라서는 늑대들은 허탕을 치게 될 거고.

아우우우⎯

이제는 익숙해진 울음소리와 함께 다시 찾아온 늑대들.

셋은 숨을 죽이고 놈들이 하는 양을 지켜봤다.

절벽 근처까지 다가온 놈들은 거대한 곰의 시신을 보고선 조심스럽게 킁킁대며 다가갔다. 그러더니 개중에 한 놈이 나서서 곰의 갈라진 복부에 고개를 처박고 무언가를 게걸스레 씹어댔다.

여기가 중요했다. 만약 여기서 곰의 내장을 파먹은 녀석이 쓰러진다면?

아마 늑대 놈들은 또 어린 인간들이 무언가 수작을 부렸음을 알아챌 터였다.

우적우적, 꿀꺽.

운이 좋은 걸까, 나쁜 걸까. 몇 호흡이 지나갈 동안 내장을 파먹은 놈은 멀쩡했다. 그제야 늑대 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나 같이 꽤나 굶주린 듯 곰의 사체에 고개를 박고 정신없이 먹어댄다.

그렇게 늑대들 대부분의 주둥이가 시뻘겋게 물들어갈 무렵, 몇 녀석이 풀썩풀썩 쓰러지기 시작했다. 마비독이 돌기 시작한 것이다. 그제야 당했음을 깨달은 늑대들은 컥컥거리며 먹은 것을 토해내려 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당이전과 당유리, 당미려는 눈을 빛냈다. 남은 녀석들은 채 열 마리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마저도 대여섯 마리는 정상적인 상태가 아닌 듯 보였다. 소량이나마 마비독에 당한 게 분명했다.

셋은 눈빛을 교환하고는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이 정도면 해볼 만하다는 판단이 선 것이다. 그들에게는 극독과 비도를 비롯한 암기가 있었다. 동혈에서 뛰어내리기 전에 이미 극독을 발라두었던 암기를 쾌속하게 던져냈다.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운 몇 놈은 암기를 피해내지 못하고 금세 당했다. 순차적으로 하나씩 쓰러지고 남은 것은 고작 세 마리.

그 정도는 그냥 근접전으로 처리할 수도 있었지만, 당이전과 당유리, 당미려는 굳이 하독을 시도했다. 감각이 예민한 짐승은 하독술을 연습하기에 더없이 좋은 상대라는 것을 깨달은 까닭이었다.

셋은 여러 번의 시도 끝에 남은 세 마리의 늑대들 역시 각자 중독시키는 데 성공하고, 마비독에 당해 꿈틀거리는 녀석들 역시 모조리 숨통을 끊었다.

그렇게 삼 일에 걸친 늑대와의 전쟁이 아직 어린 소년소녀들의 승리로 끝났다.

****

“나 왔어. 둘이 무슨 얘기를 그렇게 하고 있어?”

“그냥. 처음에 우리가 늑대 몇 마리에 개고생을 했던 게 떠올라서.”

“아, 그때? 벌써 네 달쯤 됐나. 몇 마리는 아니지.... 얼추 삼십 마리는 족히 넘었었잖아?”

“응. 이전이 네 마비독이 아니었으면 위험할 수도 있었을 거야.”

“영악한 놈들이긴 했지. 지금이야 비수 한 자루만 있으면 되지만 말야.”

“그보다 오늘은 멧돼진가 보네. 어디서 잡았대?”

“십지초(十指草)가 보여서 가봤더니 글쎄 이놈 발자국이 보이더라구.”

“깔끔하게 잡았네? 너 비도술이 점점 느는 거 같다?”

“아직 멀었지. 미려 너한테 비하면.”

“뭐래. 별반 차이도 없는 것 같은데. 그나저나 얘는 잘 살고 있는지 모르겠네. 어째 얼굴 한 번 안 비추는 걸까.”

“잘 살다니? 누굴 말하는 거야?”

“누구긴 누구야. 당연명 그놈이지. 걔는 우리가 이렇게 고생하고 있는 것도 모를 거 아냐. 첫날부터 바로 장원으로 되돌아가서는.... 안 그래, 유리야?”

“두 달 뒤에는 우리도 시험을 보자. 세 번까지는 적중당해도 봐준다고 했잖아? 슬슬 장원에 돌아가야지.”

“...근데 좀 두렵긴 해.”

“뭐가?”

“우리가 이렇게 강해졌는데도 시험을 통과할 엄두가 안 나는데, 당연명 그 녀석은 여기 온 첫날에 보란 듯이 시험에 통과했었잖아. 그럼 그때는 얼마나 강했던 거야? 그리고 지금은 또 얼마나 강해져 있을까..?”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