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천당문의 검신급 소가주가 되었다-23화 (23/134)

23화<환골탈태 전>

일행이 장원에 들어서자 맞이하는 소년이 있었다.

“오랜만이네. 다들.”

그 목소리에 앞으로 나섰던 당미려가 뭐라 쏘아붙이려다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했다. 생전 처음 보는 미소년이 눈앞에 있었다. 무언가 그녀가 알던 당연명과 비슷한 느낌이 있었지만 완전히 다른 누군가인 것만 같은.

“뭐야...? 너 정말 연명이 맞아?”

“26호. 28호를 성명으로 부르지 말도록. 이곳에 있는 동안 너희는 서로를 부여받은 호칭으로만 칭해야 한다.”

“...네.”

곁에 있던 봉위대 무사가 지적하자, 당미려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라면 바락바락 대들었을 그녀였지만, 왠지 수줍어하는 기색으로 물러날 뿐이었다.

그 꼴을 보며 당원진이 생각했다.

‘매일 보니 몰랐는데, 정말 많이 달라지긴 했군.’

28호 소년, 당연명은 반년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진 외양을 하고 있었다. 호리호리한 체형이었지만 깡마른 느낌이었던 소년은 그간 잘 먹고 잘 잔 덕분인지 보기 좋게 살이 붙어 있었다. 팔다리도 조금 더 길어졌고.

얼굴에도 살이 오르면서 본래 타고난 얼굴이 제대로 드러났는데, 엄청난 미형이었다. 예사롭지 않은 혈통을 타고났다고 짐작이 될 만큼.

“신수가 훤해졌네. 보기 좋아.”

25호 당유리는 담담하게 말을 건넸다. 하지만 그녀 역시 눈빛에서 호감을 숨기지 못했다. 낯빛도 조금 붉어졌고.

‘엄청 잘생겨졌잖아...! 그러고 보니 그 독봉의 아들이었지.’

아직 어린데도 당연명은 보검 같이 예리한 콧날과 짙고 시원하게 뻗은 검미를 지니고 있었다. 이대로만 자라면 절세의 미남자가 될 게 분명해보였다. 한때 사천제일미라 불렸던 독봉 당지혜의 핏줄이란 것이 이제야 실감이 났다.

한편 당이전은 다소곳해진 당미려를 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얼굴만 봐도 화가 풀리는 모양인데.’

절벽 동혈에서 지내는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한 모습이었다. 늘 저 혼자서만 안락하게 지내러 갔다면서 당연명을 만날 때를 벼르고 벼르던 게 당미려 아니었던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당이전이 당연명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야.... 28호. 잘 지낸 것 같아 다행이다.”

“그래. 너도 무탈해 보이네.”

“성취는 좀 있었어? 아, 이건 견제하려는 게 아니라....”

“그럭저럭. 너희도 꽤 실력이 상승한 것 같은데. 근육의 짜임이 좋아졌어.”

“동혈을 들락날락할 때마다 절벽을 타야 하니까.... 아니, 그것보다 그게 보여? 무슨 안법을 익혔길래....”

당이전이 당연명과 얘기를 나누고 있자 슬그머니 당미려와 당유리도 곁으로 다가왔다.

“아니, 그러고 보니 28호 너한테서 왜 별다른 기척이 안 느껴지지? 분명 우리 기감은 시험을 통과할 정도로 연마됐는데.”

“...우리 성취보다 연명...아니, 28호의 성취가 더 깊은 거겠지.”

“그게 말이 돼? 우리가 얼마나 혹독하게 지냈는데. 장원에서 뜨신 밥 먹고 편안히 수련한 쟤가 더 뛰어나단 말야?”

당미려가 금세 괄괄한 본모습을 드러냈다. 문득 당연명은 그녀가 이렇게 열을 내는데도 여전히 창백한 안색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기이하다 느껴졌다. 어딘가 몸에 문제가 있는 걸까. 하지만 딱히 기감으로 느껴지는 것은 없었다. 약간의 냉기라 해야 할지, 어떤 음(陰)한 기운이 강하다 싶긴 했지만 문제될 정도는 아니었던 까닭이다.

“회포를 푸는 것은 그 정도로 하고.”

넷의 대화를 끊은 봉위대 무사 당원진이 입을 열었다. 이제 7조 전원이 최소한의 수준에 이르렀으니 다음 수순을 밟을 때였다.

“지금으로부터 반 년 뒤, 그러니까 경합 시작 일 년 째 되는 때에━”

스윽 소년소녀들을 훑어본 당원진이 마저 말했다.

“임시 조장을 선출한다.”

****

반년이 흘렀다.

반년동안 7조는 각자 스스로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이런저런 무공을 익히며 시간을 보냈다. 당연명의 성취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린 7조의 나머지 셋은 밤잠까지 아껴가며 수련에 매진했지만, 그럴수록 차이는 더 벌어질 뿐이었다.

기감, 안법, 투척술을 포함한 암기술, 신법 거의 모든 분야에서 당연명의 성취는 다른 셋을 압도했다. 그나마 당이전이 용독술과 독의 제조에 있어 당연명보다 우위를 보였지만, 큰 차이는 없었다.

한 가지 이상했던 점은, 당이전이 제조한 독에 당연명이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는 것이다.

더욱 이상했던 점은, 당연명이 관심을 보이는 부분이었다. 당연명은 독의 제조법 같은 것은 조금도 알려 하지 않았다. 그저 독의 효과와, 당이전이 더욱 강력한 독을 만들 수 있는지를 궁금해 할 뿐이었다.

당이전은 이만하면 살상력은 충분하다고 했지만, 당연명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말만 그리 한 것이 아니라, 이내 당이전이 만든 독을 먹거나 피부에 바른 후 멀쩡하다는 것을 증명함으로써 당이전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게 만들었다.

‘말도 안 돼! 어떻게 단장열지독(斷腸裂紙毒)을 먹고 멀쩡할 수가 있지? 세 방울만으로도 보통 사람은 창자가 끊어지고 찢기는 고통을 느끼며 절명한다고!’

‘내가 평범하지 않은가 보지. 이걸 극독이라 칭하기엔 좀 모자라 보이는데.’

‘이익! 기다려. 내가 만든 독을 먹고 죽어도 절대 날 원망하지 마.’

‘그 말을 들은 게 벌써 열 번이 넘어가는 듯한데.’

‘입 다물어!’

당연명에게 자극 받은 당이전은 잠시 무공도 뒷전으로 미뤄두고 모든 노력을 기울여서 새로운 극독을 연신 개발해냈는데, 개중에는 당원진이 감탄을 금치 못한 것들도 있었다.

문제는, 그 모든 독들이 여전히 당연명에게 무용지물이었다는 것이다. 딱히 해독약을 복용한 것도 아니었다. 순전히 육신 자체가 지닌 독에 대한 내성이 일반의 범주를 완전히 벗어났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어떻게 그러한 일이 가능할까.

물론 여기엔 당연명만의 비밀이 있었다.

독요청광심법━ 당가의 기본적인 가전 심법이었지만, 대성을 이룬 당연명의 독요청광심법으로 인해 쌓이는 독요청광기는 알려진 것과 완전히 다른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독을 먹잇감마냥 먹어치우는 성질!

제아무리 강력한 독이라 해도 체내에 들어오는 즉시 독요청광기의 먹잇감이 될 뿐이었다. 원래 당연명은 당이전이 장원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나름대로 독을 이용해 내공의 증진을 꾀했다.

독요청광기의 공능은 단순히 만독이 불침하게 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독요청광기는 독을 먹어치울수록 점차 강대해졌는데, 그것은 곧 내공량의 증진을 의미했다.

보통의 심법, 호흡법들은 천지간에 존재하는 기운을 모종의 성질로 치환하여 체내에 쌓는 것을 핵심요결로 삼는다. 그 말인즉슨, 아무리 뛰어난 심법이라 해도 호흡을 통해 기운을 쌓는 절대적인 세월이 필요하다는 의미였다.

다른 방식으로 오랜 세월 천지간의 기운을 머금은 영초나 영물의 내단, 혹은 그것들로 만든 영약을 복용하는 것이 아니고서는 단기간에 내공량을 증진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독요청광기는 가능했다. 독요청광심법을 대성한 자에게 있어 독은 그 자체로 영약이나 다름없었다. 특히나 극독일수록 효율이 좋았다. 품은 독기가 진할수록 좋은 먹잇감인 셈이다.

그렇게 한동안 독을 이용해서 독요청광기를 키우는 데 집중하던 당연명은 곧 한계에 봉착했다. 더 이상 독요청광기를 크게 불릴 수 없었던 것이다. 독요청광기가 짙어질수록, 어지간한 독이 품은 기운으로는 기별도 가지 않는 듯했다.

즉, 독요청광기를 더 키우고 내공량을 원하는 수준까지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아주 강력한 극독이 필요하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장원에서 봉위대 무사들을 통해 구할 수 있는 독에는 한계가 있었다. 스스로 독을 제조하려는 시도도 해봤지만, 독학(毒學)은 무학과는 완전히 궤를 달리했다. 무작정 강력한 독끼리 배합한다고 해서 더 강력한 독이 탄생하는 것도 아니었고, 거의 무해한 수준의 독 여러 개가 혼합되어 극독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렇게 독요청광기가 정체되어 있던 상황에서 당이전이 장원으로 돌아왔고, 당연명은 곧 그의 재능을 알아봤다.

그렇게 당이전을 적당히 자극하면서 당연명은 그가 만들어내는 극독들을 모조리 먹어치웠고, 마침내 당이전이 만들어내는 극독도 별 감흥이 오지 않게 되었을 때 원하는 내공 수준에 도달했다.

바로 화경의 직전!

당연명은 이미 검신의 영역에 이르렀던 경험이 있었기에, 스스로에게 깨달음이 부족한 건 아니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다. 부족한 것은 그저 그릇, 껍데기, 내공량 같은 것들이었다. 그래서 화경을 목전에 두고 독요청광기의 성장을 일부러 멈췄다.

‘화경에 이르면 환골탈태하게 되니까.’

환골탈태(換骨脫態)─ 지고한 경지에 이른 무인의 육신이 재구성됨을 이르는 것이었다. 당연명으로서는 이미 전생에 한 번 겪은 바가 있었다.

환골탈태를 하게 되면 육신은 무(武)를 구현해내기 가장 완벽한 형태와 재질로 변한다.

문제는 지금 당연명의 나이에 있었다.

아직 덜 자란 소년의 육신이 환골탈태를 겪는다?

‘둘 중 하나지. 지금에서 크게 변화 없거나 완전히 자라버리거나.’

당연명은 이미 지금의 몸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건 곧 지금의 팔다리 간합을 유지한 채로 환골탈태가 마무리될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환골탈태를 겪고 난 육신은 그 자체로 완벽하기에, 더 이상 성장하거나 노화하지 않는다. 진원지기가 손상되지 않는 이상 죽을 때까지 전성기의 육신을 갖게 되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당연명으로서는 소년의 몸인 채로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끔찍한 얘기가 아닐 수 없었다.

혹은 완전히 성장한 육신으로 몸이 재구성될 수도 있었는데, 그건 그것대로 문제였다. 어머니인 독봉 당지혜뿐만 아니라 가문 전체가 믿지 못할 테니까. 겨우 열셋이나 먹은 소년이 환골탈태라니!

모르긴 몰라도 소년이 그리는 평범한 삶은 완전히 물 건너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둘 중 어느 경우가 되더라도 당연명이 바라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래서 화경을 목전에 두고 당연명은 독요청광기의 성장을 멈췄다. 육신의 성장이 완전히 끝난 후에야 환골탈태를 시도할 셈이었으므로.

한편.

그렇게 어느 정도의 무위를 이룬 당연명은 여유를 가지고 당유리, 당미려, 당이전의 무공을 직접 봐주기 시작했다. 특히나 당이전에게는 빚진 부분이 있었기에 세심하게 지도해주었는데, 곧 그들 셋은 당연명과의 아득한 실력 차이를 지독하게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나름대로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대체 뭐야. 저 암기술은....’

‘요즘 난 그런 생각이 들어. 저 얼굴에 저 재능. 하늘이 실수한 게 아닐까.’

‘만독불침지체라는 게 정말 가능한 거였어...?’

시기나 질투도 어느 정도의 차이여야 생겨나는 법이었다. 처음엔 재능과 실력의 차이를 한탄하던 셋은 결국 당연명에게 탄복하고 말았다. 당연명이야말로 소가주의 자리에 어울린다고.

그렇게 당원진이 말했던 임시 조장의 선출 날짜가 다가오고.

“그럼, 만장일치로 7조의 임시 조장은 28호가 맡도록 한다.”

“예.”

별다른 소란 없이 당연명이 7조의 임시 조장이 되었다.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