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천당문의 검신급 소가주가 되었다-25화 (25/134)

25화<고독전(1)>

세월은 유수같이 흘렀다.

“진짜 말도 안 되는 괴물이다. 쟤는.”

“그러니까. 어떻게 우리 모두를 상대하면서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을 수가 있지?”

“용독술, 암기술, 기감, 신법, 안법... 그 모든 게 터무니없는 수준이야. 심지어 천심환을 복용한 것도 아닌데 저 내공량은 뭐냐구.”

열대여섯 정도의 나이로 보이는 소년 하나와 소녀 둘이 완전히 질렸다는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앞에 오연하게 서 있는 한 소년⎯

아니, 이제 소년이라 칭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적당히 벌어진 어깨와 넓어진 가슴은 사내다웠고, 옷소매 밖으로 언뜻 삐져나올 정도로 긴 팔다리는 훤칠하니 보기 좋았다. 무엇보다 육척(대략 180cm)에 가깝게 자란 신장은 이제 웬만한 어른들도 눈 아래 둘 정도였으니 소년보다는 청년이라 칭하는 것이 어울리지 않을까.

또한 시선을 끄는 것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얼굴이었다. 미형, 아름답다거나 준수하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잘생긴 얼굴. 송옥이나 반안의 고사가 절로 생각날 정도로 감탄이 나오는 미모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인같은 느낌은 조금도 없었다. 귓불 어림까지 내려온 귀밑머리는 몹시 짙어 얼굴의 윤곽을 뚜렷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사내다운 느낌이 들게 했다. 보검을 방불케 할 기세로 치솟은 눈썹은 강직한 인상을 주었고, 무엇보다 눈동자에 가끔씩 어리는 녹광(綠光)이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바로 올해로 열여섯이 된 당연명이었다.

청년과 소년의 경계에 있는 그가 문득 실소를 흘리며 말을 건넸다.

“너희, 설마 조장 자리를 탐냈던 거야? 어림도 없지. 누누이 말했잖아. 소가주 자리는 내 거라고.”

눈빛에 장난기가 감돈다. 당연명은 2년의 세월동안 당유리, 당미려, 당이전과 꽤나 친해진 뒤였다. 어느덧 스스럼없이 농담을 던질 정도의 사이가 된 것이다.

당연명도 알고 있었다. 이번 시험은 그저 그동안 실력을 쌓아온 셋이 스스로를 검증하는 기회로 삼았을 뿐이라는 것을.

당연명의 말에 당이전이 픽 웃으며 말했다.

“그래. 너 잘났다. 너 아니면 누가 당가의 소가주가 되겠냐.”

“늘 느끼는 거지만 28호 쟤는 말을 하나 안하나 재수 없어. 근데 잘 생겼어.”

“그래서 더 짜증나지. 하늘은 불공평해.”

당유리와 당미려는 말을 보태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시험의 제약 때문에 극독은 쓰지 못했지만, 어쨌거나 산공독을 비롯해 나름대로 감각을 어지럽히거나 전투에 지장을 줄 만한 독들을 뿌리고, 온갖 암기를 쏟아내고, 심지어 근접해서 각법까지 시도했지만 모조리 무용지물이었다. 혼자도 아니고 셋이서 거의 탈진할 정도로 합공했는데도 숨소리 하나 거칠어지지 않는 괴물. 그게 당연명이었다.

“세상이 놀라긴 하겠다. 저 실력, 저 얼굴로 소가주 자리에 오르면.”

“요즘도 용봉지회 같은 게 있을까? 그런 곳에 쟤가 나서면 본가의 명성이 단번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를 것 같은데.”

“사천지회가 있긴 하잖아?”

“...거긴 사파 놈들이 득시글거리니 제하자. 괜히 표적이 될 수도 있어.”

사천지회의 얘기가 나오자 당유리가 질색했다. 사천지회는 사천에 근거지를 둔 방파들의 친목회였다. 한때는 청성과 아미 등을 필두로 한 여러 문파들의 후기지수가 서로 비무대회 등을 통해 향상심을 키우거나 친목을 도모하는 자리였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사실상 사파천하가 된 사천에서, 사천지회는 흑사련 산하 문파들과 어떻게든 그 문파들에 줄을 대 보려는 자들의 잔치로 전락한 지 오래였다.

“대충 승부가 난 것 같군.”

당원진이 다가오며 말했다.

“7조의 정식 조장은, 임시 조장이었던 28호가 그대로 맡는다.”

“예.”

땀방울 하나 흘리지 않는 모습으로 당연명이 대답한다.

당원진과 봉위대 무사들은 그런 당연명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7조의 다른 셋이 약한 게 아니었다. 그간 혹독한 수련을 직접 지도했기에 봉위대 무사들은 25, 26, 27호의 실력을 잘 알고 있었다. 셋 중 둘이 합공한다면 봉위대 무사들로서도 완전한 우위를 장담하긴 힘들었다.

‘저 셋을 동시에 상대하는 건 나도 버겁다.’

7조를 담당하는 봉위대에서 가장 뛰어난 무위를 지닌 당원진조차 그렇게 생각할 정도였다. 7조는 아직 소년과 소녀에 불과했지만 당가의 무학을 익혔다. 상대하는 것이 마냥 녹록하지는 않을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당가의 암기술과 용독술은 경우에 따라 훨씬 상승의 경지에 있는 고수를 살상할 수도 있었으니까. 한때 독문으로 통용되는 방파들이 경원시당한 것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당연명은 셋을 상대로도 시종일관 여유를 보였다. 일부러 선공을 양보하기도 하면서 익힌 모든 기예를 뽐낼 틈을 줬다. 그럼에도 그 모든 공격을 완벽히 막거나 피해냈고.

‘어쩌면 이 자리에서 가장 강한 것은 28호 이 녀석일 지도....’

문득 그런 생각을 하며 당원진이 말했다.

“곧 마지막 시험이 있을 거다.”

“고독전입니까?”

“그래. 길게 얘기할 필요는 없겠지. 몇 번 언급한 적이 있으니 말이다.”

“예.”

대답하는 당연명의 눈이 빛났다.

고독전(蠱毒戰)은 소가주 경합의 마지막 관문이라고 할 수 있었다. 고독전에는 경합에 참가한 7개 조에서 차출된 각 조장들이 참여하게 되는데, 이때 최종적으로 승리한 이가 바로 당가의 소가주가 되는 것이다.

절차는 간단했다.

제갈창신을 비롯한 제갈가의 인물들이 펼쳐 놓은 칠쇄환궁진.

그 위에 완전히 새로운 진법 세계를 만들어 그 안에 각 조의 조장 일곱 명을 던져 넣는다. 진법 세계는 꽤나 넓은데다가, 각자 진입하는 곳이 다르기에 처음에는 마주치지 않는다. 하지만 애초에 칠쇄환궁진을 펼칠 때 기한을 정해두었기에, 진법세계는 차츰 외곽부터 무너지게 되어 있었다. 그렇게 활동 가능한 영역이 점차 좁아지고, 자의든 타의든 진법 밖으로 나오게 되는 자는 탈락으로 간주한다. 진법의 축소는 최후의 한 명이 남을 때까지 계속되며, 진법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불문에 부친다.

‘즉, 살인이 허용된다는 거지.’

당연명은 시험의 의도를 듣자마자 간파해냈다. 하긴 이름부터가 고독전이었다. 가장 독한 한 명을 남기기 위한 시험일 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남으라는 얘기를 은연중에 던지고 있었다.

“고독전이 시작되는 것은 한 달 뒤다. 28호는 그때까지 만반의 준비를 마치도록.”

“알겠습니다.”

대답하며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인 당연명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엔 극독을 사용해도 됩니까?”

“...무슨 짓을 하건 불문에 부친다고 말하지 않았더냐. 알아서 해라.”

****

“고맙다. 27호. 아니, 당이전.”

당연명은 독병 몇 개를 받아들며 말했다. 3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하며 이제 번호로 부르는 게 익숙해진 상태였지만, 봉위대 무사들이 없을 때는 서로 이름으로 부르곤 하는 7조였다.

독병에 든 것은 당이전이 만든 극독이었다. 당이전은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풀이나 벌레 따위를 으깨거나 삶아서 간단한 독들을 만들고, 그 독들과 봉위대 무사들이 지니고 있던 독이나 약재를 섞어 새로운 극독을 만들어 내곤 했다.

이러한 독의 제조는 단순히 비방을 안다고 해서 따라할 수 없었다. 그때그때 배합 정도가 달라지기도 할뿐더러, 독이나 약재의 상태에 따라 결과물이 완전히 천양지차였던 것이다. 무학과는 완전히 별개로 어떠한 감각이 필요한 듯싶었다.

“명심해. 단장열지독(斷腸裂紙毒)은 너니까 멀쩡하지. 보통 사람 같으면 그냥 한 방울만 삼켜도 정신을 잃고 결국엔 죽음에 이를 거야. 안와독(眼訛毒)은 눈에 뿌리는 게 아니면 효과가 없고, 구열산(仇裂酸)은....”

당이전은 독병을 짚으며 하나하나 설명을 해주었다. 자잘한 독부터 극독에 이르는 것까지 종류가 꽤나 다양했는데 당연명으로서는 이미 몸으로 모두 겪어본 것들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설명하고 난 뒤. 당이전이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너니까 별 걱정은 안하겠지만. 아무튼 건승해라.”

“그래.”

당연명은 독병들을 품속에 챙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품속에는 독병들이 들어갈 만한 작은 주머니 외에도 크고 작은 띠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띠에는 온갖 암기들이 나무에 달린 과일마냥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손가락 마디 굵기보다 조금 더 큰 크기의 표창들부터 세침류 암기인 우모침 몇 다발과, 당문찬으로부터 빼앗은 수리검과 거의 흡사하게 생긴 수리검 몇 개까지.

이건 전부 당연명의 전용 암기였다. 천심환 대신 받겠다고 말한.

그래서인지 봉위대 무사들의 것을 빌려 쓰던 것보다 훨씬 품질이 좋아보였다. 빛깔부터 다르달까. 진법 안에는 봉위대 무사들 말고도 이번 경합을 위해 가문에서 파견되어 몇 년간 지내는 것을 명받은 가솔들이 있었는데, 그들 중 암기를 만드는 장인도 포함되어 있었기에 당연명의 전용 암기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당시에 다들 내공량을 증진시킬 수 있는 천심환을 포기한 당연명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당연명으로서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어차피 내공량은 독만 있으면 독요청광기를 키우는 것으로 늘릴 수 있었고, 기왕 암기 무학을 제대로 익혀놨으니 전용 암기를 구비하고 싶었을 뿐이다. 만반의 태세를 갖추어 두고자 하는 것도 있었고.

물론 마음만 먹으면 수리검 하나로도 웬만한 적은 상대할 수 있겠지만....

‘혹시 모르지. 웬 미친놈들이 이곳을 노리고 있을 지.’

문득 그런 생각을 한 당연명은 살짝 놀랐다. 아닌 게 아니라 가만히 생각해보니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로 다가왔다. 이곳엔 당가의 미래라 할 만한 인재들이 모조리 모여 있었다. 지금은 비록 칠쇄환궁진으로 가려져 있다 하지만 다시 가문으로 돌아갈 때는? 그때도 과연 안전을 장담할 수 있을까.

사천은 사파세력들의 천하가 된 지 오래라 했다. 과연 당가의 위세가 다시 드높아지는 것을 좌시하고만 있을까.

‘아무래도 이번 기회에 화경에 올라서야겠다.’

당연명은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 아직 열여섯의 나이였지만 그간 잘 먹고 잘 잔 덕분인지 육신은 충분히 성장한 상태였다. 팔다리의 간합도 길게 가져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환골탈태를 하고 이대로 성장이 멈춰도 미련은 없겠다 싶었다. 또 괜히 가문에 가서 갑자기 달라진 모습으로 시선을 끄는 것보다야 혼자 있을 때 해치워두는 게 낫겠지하는 생각도 들었고.

마지막으로 독병 중에 단장열지독이 든 것을 만지작거리던 당연명은 그걸 우모침이 있는 곳 바로 아래 주머니에 넣어뒀다. 언제든지 우모침을 꺼내며 독을 바를 수 있도록.

‘쓸 일이 있을 진 모르겠지만.’

당연명은 무미건조한 낯빛으로 옷매무새를 여몄다. 굳이 다른 참가자들을 죽일 생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죽이겠다고 달려드는 놈들을 곱게 보내줄 생각은 없었다.

바야흐로, 고독전의 시작이었다.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