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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당문의 검신급 소가주가 되었다-30화 (30/134)

30화<고독전(6)>

가만, 이 자가 어떻게 내 이름을 알고 있지?

분명 당정일의 기억엔 눈앞의 사내처럼 잘생긴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보다 방금, 주먹이 다 나았냐고 물었지 않나? 그걸 아는 걸 보면 봉위대 무사는 아닌 듯한데....

주먹 얘기를 들은 탓일까. 주먹 뼈가 부서졌던 당시의 일을 떠올리던 당정일은 어떤 기시감을 느꼈다. 상대의 이목구비에서 풍기는 느낌이 왠지 익숙했다. 분명 어디선가 만난 적이 있다. 그렇게 다시 한 번 기억을 더듬던 당정일은 별안간 얼떨떨한 표정으로 물었다.

"설마... 연명...?"

"기억하네."

"......."

사내가 긍정하자 당정일은 잠시 할말을 잃었다. 사람이 달라져도 정도가 있지, 어떻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무얼 먹고 지냈길래....'

잘생겨진 낯짝은 둘째치고, 팔다리의 성장이 눈부셨다. 상대보다 유리한 간합을 자연스레 가져갈 수 있겠지. 완연한 고수의 풍모로 다가왔다.

"그보다, 간자라고? 저 녀석."

"어, 어! 자기 입으로 그랬어. 태을묵검파라고."

"흠."

당연명은 한쪽에서 격통에 몸을 떠는 청년, 당극린을 바라봤다. 이번 고독전에는 뭔가 석연찮은 점이 많았다. 처음 감시의 눈길을 느꼈던 것도 그렇고, 기감으로 둘의 기척을 감지하고 오는 와중에도 진법의 구조가 묘하게 바뀌는 것을 감지하고 이상하게 생각하던 차였다.

그리고 도착해보니 당극린이 비도 두 자루를 들고 쌍검식을 펼쳐내고 있었다. 당연명은 한눈에 알아차렸다. 그게 당가의 무공이 아니라는 것을. 바탕이 되는 기운은 분명 당가의 심법으로 인한 것이었지만, 기질이 완전히 달랐다. 그래서 미심쩍음을 느끼자마자 바로 손을 썼다. 아마 당연명이 우모침을 뿌리는 게 조금만 늦었더라도 당정일은 지금쯤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었다. 물론 위기에 처한 게 당정일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굳이 구하지 않았을 지도 모르지만....

'제갈가와 태을묵검파가 함께 엮여 있는 걸까.'

그런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고독전이 펼쳐지는 진법 세계에 제갈가가 개입할 수 있고, 그러한 제갈가의 조력을 받은 당극린이 참가자들을 하나씩 제거해나갔다면...?

당연명이 없었다면 간자인 당극린이 소가주 경합에서 우승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랬다면 몸에 당가의 피가 흐르는 지도 의문인 당극린이 차기 당가주이자 소가주의 자리에 올랐겠지.

'염두에 둘 필요가 있겠어.'

당연명은 잊지 않고 있었다. 처음 공동산에 오를 때 꼬리가 붙었던 것을. 당시엔 내공의 부족과 감각도 주사망역을 익히지 않았기에 종적을 놓쳤었지만, 그들 역시 좋은 의도로 추적해온 건 아닐 듯했다. 어쩌면 제갈가나 태을묵검파와 엮여 있을 지도 몰랐고.

"당정일."

"으, 응?"

"더듬지 말고. 지금은 그다지 악감정은 없으니까. 어릴 때의 일이잖아? 설마 어릴 때 일로 아직 꿍해 있는 건 아닐 테고."

"...그, 그래."

당정일은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살짝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꿍해 있다니.... 그때 약왕당에서 조금만 치료가 늦었다면 주먹을 완전히 못쓰게 될 뻔했다는 얘기를 듣고 얼마나 모골이 송연했던가. 무인으로서는 거의 생사의 기로에 섰던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같이 당한 당문찬은 한쪽 팔이 완전히 병신이 되었고.

게다가 당정일은 한동안 악몽을 꿨었다. 당연명이 내뿜는 살기에 놀라 지리는 꿈을 며칠이나. 매번 이불에 실례를 하기도 했었고. 치욕스러운 기억이었다.

"저 녀석에 대해 더 아는 건 없어? 뒷배라던가."

"...저놈은 당극린이야."

"당극린?"

당연명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들어본 듯도 했다. 예전 소년의 기억을 뒤져볼까 하는데 당정일이 말을 이었다.

"원래 이번 경합에서 가장 유력한 우승 후보였어. 대장로님의 애제자이기도 하고."

"대장로의? 그럼 대장로도 태을묵검파와 관련이 있는 걸까."

"...그건 모르겠어. 저놈한테 물어봐야 할 것 같은데."

당정일은 턱짓으로 당극린을 가리켰다. 당극린은 눈에 핏발을 가득 세운 채 일어서려 하고 있었다. 간자긴 하지만 당가에서 수련한 덕분에 어느 정도의 독에 대한 내성은 있는 것일까.

그걸 무심하게 바라보던 당연명은 손을 품속에 집어넣었다가 꺼냈다. 검지와 중지 사이에 우모침이 하나 끼어 있었다.

그걸 보고 당정일이 물었다.

"죽이려고? 정보를 더 캐내야 하지 않아? 태을묵검파에서 무슨 목적으로 본가에 간자를 파견했는지...."

"뻔하지. 경합에 참가시켰으니까. 소가주 자리를 노린 거겠지. 아니면 참가자들을 최대한 많이 죽여서 다음 대 본가의 전력을 크게 약화시킬 셈이던가."

당연명은 그렇게 말하면서 당극린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래서 당극린의 눈빛이 크게 흔들리는 것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추측이 맞나 보군.

"대장로는 이 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거야. 모르긴 몰라도 이미 놈의 손에 죽은 참가자들이 있을 것 같은데."

"맞아. 나 말고도 몇 명을 죽인 것처럼 말했었어. 처음에 피가 묻은 비도를 들고 있기도 했고.... 근데 이놈을 살려서 가는 게 유리하지 않을까? 네 말처럼 대장로를 추궁하려면...."

대질해서 심문을 하고, 간자라는 것을 입증해야 하지 않겠냐는 말이었다. 일견 타당한 말이었다. 당극린의 눈에 일말의 희망이 어렸다. 이 자리만 벗어나면 어떻게든 방법이 있을 것 같았다. 대장로 당석중은 무조건 그를 비호해줄 테니까. 사람은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경향이 있었다.

이 창자를 끊어놓을 것만 같은 통증을 주는 독은 분명 극독이었지만, 이만한 독의 경우엔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해독약도 같이 구비하고 다니는 게 일반적이었다. 당극린이 절실한 눈빛으로 당연명을 바라봤다. 어서 날 해독해라...!

그러나 당연명은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그럴 필요 없지. 네가 있는데."

"응...?"

"증인이 있는데 뭐하러 귀찮게 이놈을 데려갈까."

'...!'

당극린은 당황했다. 골이 띵했다. 설마 여기서 죽는다고? 이 당극린, 아니 막인극이? 제대로 꽃피워 보지도 못하고? 말도 안 돼...!

그러나 당극린이 무슨 생각을 하건 죽음의 선고는 내려졌다. 당연명이 들고 있던 우모침 하나를 기어이 던져버린 것이다.

픽.

이번에도 역시 목을 노렸다. 겨우 독에 저항하고 있던 당극린은 컥 하는 소리와 함께 풀썩 쓰러졌다. 완전히 의식을 잃은 모양새였다. 아마 조금만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숨이 끊어질 것으로 보였다.

'어떻게 한 거지.'

당연명이 손을 쓰는 모습을 보고 있던 당정일은 식은땀을 흘렸다. 제대로 힘을 실은 거 같지도 않았는데 우모침은 쾌속하게, 또 꼿꼿하게 선 채로 쏘아졌다. 한수였지만 암기술의 조예가 예사롭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또 독은 어떤가. 대체 어느 정도의 극독이기에, 우모침에 발린 극소량의 독으로 당극린을 쓰러뜨릴 수 있었던 걸까. 그가 썼던 홍사분보다 위력적인 것 같았다.

사실 당연명이 우모침을 쏘아낸 수법은 여타 암기술과는 완전히 궤를 달리했다. 시류안, 흐름을 보는 안법 덕분이었다. 시류안으로 당연명은 수십 수백 가지의 흐름, 즉 투로를 볼 수 있었고 그 투로를 따라 암기를 흘려 보낸 것이다. 독요청광기를 실어서.

그리고 독요청광기는 그 자체로 독기(毒氣)다. 우모침에 발린 단장열지독은 정말 미미한 양이었지만, 독요청광기가 그 독성을 강화해준 덕분에 우모침 하나로도 충분한 살상력을 지닐 수 있게 됐다.

당정일은 짐작도 못할 고절한 수법이었지만, 그래도 그에게 경계심을 가지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진짜 괴물이 되어버린 것 같은데. 절대 대적하면 안 되겠다....'

그렇게 다짐하며 당정일은 인연이 참 묘하다는 생각을 했다. 주먹 뼈가 으스러졌을 때만 해도 당연명이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웠는데, 시간이 흐르고 이렇게 목숨을 빚지게 되니 마냥 증오할 수만은 없었다.

끄륵....

눈알을 뒤집고 꿈틀대던 당극린이 한 순간 숨 넘어가는 소리를 내더니 마침내 조용해졌다. 명줄이 끊어진 것이다.

이번 소가주 경합의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이 치고는 허망한 최후였다. 고작 우모침 두 개에 목숨을 잃었으니까.

당연명이 살짝 손을 당기듯 움직이자 놀랍게도 당극린의 목에 박혀 있던 우모침 두 개가 저절로 뽑혀 나오더니 당연명에게로 돌아왔다. 암기를 회수하는 기의 실, 연기륜이라는 기예였다. 당정일은 또 한번 크게 놀라며 다짐했다. 절대로 심기를 건들면 안되겠다고.

그리고는 어떤 결심을 내린 듯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당연명."

"음?"

"고맙다. 덕분에 목숨을 구했어. 그리고 미안했다. 어릴 적에는...."

"됐어. 신경 쓰지 마라. 고작 어릴 때 일 가지고."

당연명은 슬쩍 손을 내저었다. 빈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때는 할 만큼 경고와 응징을 했었다. 상대가 굳이 그때 일로 앙심을 품지 않는다면 이쪽도 나쁘게 생각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사내답네.'

당정일은 그런 당연명의 태도에 호감이 이는 것을 느꼈다. 좀스럽지 않고 시원시원했다. 무공도 그렇고, 성격이나 외모도 그렇고, 갑자기 당연명의 모든 게 좋게 보였다.

"아무튼 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해. 나 역시 당가의 사람이니까. 은혜는 결코 잊지 않아."

"...그럼 본가에 가서 이번 일에 대한 증인을 부탁하지."

당연명은 갑자기 호의적이 된 당정일을 묘한 눈빛으로 보며 말했다. 당정일은 걱정 말라는 듯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잘됐군.'

장로원은 모친인 독봉 당지혜에게서 소가주의 지위를 박탈한, 권력을 탐하는 늙은이들의 모임이었다. 당연히 언제고 손봐줄 생각이었는데, 이번 일로 대장로를 엮을 수 있게 됐다. 거기다 당정일까지 호의적으로 나와주니 일이 좀 더 쉽게 풀릴 듯했다.

****

"그럼, 건승을 바랄게."

"그래."

당연명은 살갑게 덕담을 건네는 당정일을 여전히 적응이 안되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당정일은 고독전을 포기하고 진법 세계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이미 한 번 죽을 뻔한 것을 당연명에게 구함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 실력을 목도하기도 했으니 우승은 엄두도 나지 않았던 까닭이다.

밖으로 나가는 길을 찾는 것은 쉬웠다. 진법 세계는 시시각각 축소되고 있었으니까.

"굳이 간자에 대한 걸 봉위대에 얘기하지는 마라."

"응. 그냥 모르는 척 할게."

당연명은 당극린에 대한 것은 일단 함구할 생각이었다. 굳이 벌써부터 이쪽의 패에 대해 떠들고 다닐 필요는 없었다. 본가에 돌아가서 추궁을 시작해도 늦지 않다는 판단이었다. 어쩌면 다른 간자나 당극린에게 협조하던 이가 있을 지도 모르고.

어쨌거나 그걸 마지막으로 당정일은 경공을 펼쳐 멀어졌다. 자진해서 탈락하기 위함이다.

한편 당연명은 당극린의 시신을 뒤져보았지만 간자임을 증명할 만한 물건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이제는 힘이 있었다.

명분 따위는 실낱 만큼만 있으면 충분했다.

다시금 주사망역을 펼쳐 기감을 확대한 당연명이 추월광행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짐작이 맞다면 참가자는 이제 한둘밖에 남지 않았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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