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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당문의 검신급 소가주가 되었다-31화 (31/134)

31화<고독전(7)>

끄으윽....

침음을 흘리며 땅바닥을 뒹굴고 있는 소년이 있었다. 부릅뜬 눈과 어금니를 악문 모습에서 그가 얼마나 커다란 고통을 겪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한 소녀가 냉랭한 표정으로 소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소녀의 얼굴은 차마 눈뜨고 바라보기 힘들 정도로 흉측했는데, 피부가 우둘투둘할 뿐만 아니라 군데군데 진물이 흐르고 있어 더욱 끔찍했다.

‘효과는 확실하네.’

당영령은 소년의 숨결이 시시각각 미약해지는 것을 느끼며 생각했다. 과연 당가십독이라고.

당가십독은 독문(毒門)인 당가에서도 가장 지독한 열 개의 독을 이르는 것이었는데, 이것에 당하면 설사 화경에 이른 고수라 해도 죽음을 피하기 힘들다고 전해졌다. 그야말로 극독 중의 극독!

당가십독은 원래 열 가지의 독이었지만, 여러 차례 난리를 거치면서 지금의 당가에는 겨우 네 가지 독만이 전해졌다. 하지만 당가의 인물들이 이러한 사실을 굳이 외부로 떠벌리고 다니지는 않았기에, 세인들은 여전히 당가십독이라 부르고 있었다. 실제 가짓수와는 상관없이 그냥 그대로 당가의 절세지독을 칭하는 용어로 굳어진 것이다.

어쨌거나 이러한 당가십독은 구하거나 제조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뿐더러, 엄청난 살상력을 지니고 있었기에 당가 내에서도 아주 귀하게 취급됐다. 가보(家寶)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그런 당가십독을 당영령이 지니고 있다...?

가능성이 아예 없는 일은 아니었다. 그녀의 외조부가 바로 장로원에서도 실세랄 수 있는 삼장로 당석형이었으므로. 게다가 당석형은 가문 내에서 용독술의 일인자라 일컬어지는 인물이었다. 당가십독에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의미다. 적당량을 은닉하는 것쯤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겠지.

그러나 이건 당석형으로서도 꽤나 위험을 감수한 시도였다. 만약 소가주 경합에 참가하는 외손녀에게 당가십독을 쥐여 준 일이 들통 난다면, 경합에 혈육이나 제자를 참가시킨 다른 장로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장로원에서의 실각까지 각오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 독을 쓴다면 반드시 상대를 죽여야 한다.’

당석형은 신신당부를 했다. 목격자를 남기지 말라고.

분명 위험은 존재하지만, 당가십독을 지닌 이상 경합의 마지막 관문인 고독전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당영령이 경합에서 승리하여 소가주가 된다면, 당석형의 권세는 앞으로도 쭉 이어질 터였다. 차기 가주의 자리 역시 당영령이 차지할 것이고.

조손은 위험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게다가 제갈가와 손을 잡은 덕택에, 당영령은 고독전에서도 다른 이들과 마주치는 일이 없었다. 전력을 아낄 수 있도록 제갈창신이 배려해준 것이다. 제갈창신은 진법 세계의 구조를 미세하게 조정하고, 그 안에 있는 자들의 방향감각을 교란해 서로 맞부딪치도록 설계했다. 놀라운 기감을 지닌 28호, 당연명은 제외하고서.

지금 당영령의 눈앞에 있는 소년은 스스로의 의지로 움직였다 여기겠지만, 실상은 제갈창신이 당영령의 요구에 따라 두 사람이 서로 마주치도록 유도한 결과일 따름이었다.

당영령으로서는 독의 위력을 확인해볼 상대가 필요했다.

그녀가 외조부로부터 받은 당가십독은 화룡호독(火龍呼毒)이라는 것이었다.

‘독 중에는 한독(寒毒)과 열독(熱毒)이라는 게 있다. 각기 한기와 열기를 품은 독이라는 의미인데, 그것들은 평상시에는 지닌 성질을 드러내지 않다가, 사람의 몸에 들어가 중독시키게 되면 중독된 이로 하여금 끔찍한 한기나 열기를 느끼게 한다. 그중 열독.... 그리고 그 열독 중에서도 가장 지독한 것이 바로 이 화룡호독인즉⎯’

진실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석형은 화룡호독을 ‘화룡의 숨결을 독에 녹여낸 것’이라 말했다. 제조법 따위는 없는, 그저 먼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기만 한 독이라면서.

화룡호독은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피처럼 붉은 액체에 불과했다.

위력의 확인을 위해서, 당영령은 작은 표창에 화룡호독을 두 방울 떨어뜨렸더랬다. 그리고 은잠술로 소년의 기감을 속이고 숨어 있다가 기습을 통해 표창을 적중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눈앞에 굴러다니고 있었다.

“뜨... 뜨거워!”

소년은 견디기 힘든 열기를 느끼는 듯 보였다. 중독으로 인한 환각 같은 것일까⎯ 그렇게 당영령이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화르륵!

갑자기 소년의 몸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

당영령은 놀란 눈으로 소년을 바라봤다. 어마어마한 열기와 함께 소년의 몸이 타올랐다. 살은 흐물흐물 녹아버리고 뼈가 드러났다. 뼈도 이내 불길에 살라 먹혔고, 약간의 시간이 흐르자 소년은 약간의 재만 남기고 세상에서 사라져 버렸다. 마치 강력한 열양지공에 당하기라도 한 것처럼.

‘고작 두 방울로 이런 위력이라니....’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당영령은 살인을 저질렀다는 죄책감보다 기묘한 희열이 전신을 타고 흐르는 것을 느꼈다. 일그러진 표정으로 소녀는 살짝 몸을 떨었다. 이거면 누구든 죽일 수 있다. 설령 화경에 이른 고수라 할지라도 죽일 수 있다는 게 거짓이 아니었어...!

잠시 후.

소녀가 있던 자리엔 하얗고 검은 가루만이 소복하게 쌓여 있을 뿐이었다.

****

“막내야. 이게 무슨 일이더냐...!”

흑색 검을 두 자루 교차해 등에 메고 있는 중년의 사내가 통탄스러운 어조로 중얼거렸다.

그는 바로 태을묵검파의 장문인 막인후였다.

막인후의 손에는 기묘하게 생긴 벌레가 놓여 있었는데 벌레는 몹시도 구슬프게 끼이이 끼이이 거리며 울어대고 있었다. 누군가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처럼.

이 기묘한 벌레는 명고(命蠱)라 불리는 것이었는데, 명고는 원래 두 마리가 한 쌍이었다.

명고 두 마리를 서로 붙여두고 10일이 흐르면, 두 명고는 서로 심령이 연결되는데 이들은 아무리 먼 거리를 떨어져 있어도 상대방의 생사를 알 수 있었다. 그래서 한쪽이 죽으면 지금처럼 구슬픈 울음소리를 내며 슬퍼하는 것이다.

명고는 기본적으로 기생충의 한 종류였기 때문에, 사람을 비롯한 여러 동물을 숙주로 삼을 수 있었다. 그리고 숙주가 죽으면, 명고도 죽고 만다. 그러한 습성을 지니고 있기에 누군가의 생사를 짐작할 때에는 이 명고만한 것이 없었다.

당극린.

아니, 막인극.

막인후는 마냥 아무런 조치 없이 막내아들을 당가의 간자로 보낸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몇 년은 볼 수 없을 텐데, 생사는 파악하고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일이 돌아가는 정황도 짐작을 할 수 있어야 할 테고.

그래서 막인극의 몸에 명고를 심어두었더랬다. 만약 이쪽의 명고가 조용하다면 막인극이 별고 없이 간자의 임무를 잘 수행하고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안심할 수 있었다. 막인후는 크면 클수록 점점 방탕해져만 가는 큰아들에게 실망하고 있었기에, 막내인 막인극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당가의 몰락에 적당한 공을 세우고 돌아오면 무리를 해서라도 후계를 막내로 교체할 생각도 하고 있을 정도로.

그런데....

이제 소가주 경합이 일 년도 남지 않은 이 때.

갑자기 수년간 조용하던 명고가 울어대기 시작한 것이다.

막인후는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지만 아끼던 막내아들이 비명횡사했음을 직감했다.

‘...아비로서 별달리 해준 것도 없거늘.’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뻐한다고 했던가. 사파의 주인으로서 그간 수많은 이들의 눈에서 피눈물을 뽑아낸 막인후는 비통한 심경을 느꼈다. 막내아들이 타고난 자질이 제법 비범했던 것이 떠오르며, 가슴속에서 원통함이 북받쳤다.

꽈득!

끽!

막인후는 세게 주먹을 쥐어 명고를 잡아 터뜨렸다. 기묘한 벌레는 그대로 단말마의 비명 같은 것을 남기고는 한 줌 핏물로 변해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쾅!

그대로 문을 나서며 막인후가 외쳤다.

“제자들은 모두 출전을 준비하라! 지금 당장!”

“...장문. 무슨 일이십니까.”

태을묵검파에서 책사이자 총관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서생이 황급히 다가왔다. 갑자기 출전이라니? 안 그래도 묘한 소리가 나서 신경 쓰이던 차였는데....

하지만 그는 그저 침을 꿀꺽 삼킬 뿐 더 물어보진 못했다. 항시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던 막인후가 눈에 핏발을 가득 세우고 있었던 까닭이다. 분노도 어지간한 분노가 아님을 헤아린 서생은 그저 고개를 수그렸다. 이럴 때 심기를 거스르면 바로 목이 달아날 수도 있음을 잘 알았다.

막인후의 외침에 태을묵검파는 금세 어수선해졌다. 그러나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다들 병장기를 갖추고 막인후의 앞에 속속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막인후가 그제야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자넨 다른 방파들에게 바로 연통을 돌리게.”

“예. 한데 연통이라시면?”

“당가. 소가주 경합. 공동산. 그리고 수확을 할 때가 왔다고 덧붙이면 알아들을 걸세.”

“알겠습니다.”

뒷걸음질로 물러나는 서생을 일별하고는 막인후는 하늘을 바라봤다. 아비의 말을 따르겠다고 말하던 막내아들의 얼굴이 눈에 선했다.

‘인극아. 네 원한은 이 아비가 갚아주마. 당씨 성을 가진 놈들 중에 공동산에서 살아 돌아가는 놈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속으로 중얼거리는 태을묵검파 장문 막인후의 눈동자에는 불길이 넘실대는 것만 같았다.

****

당연명은 며칠 동안 경공 추월광행으로 산을 넘나들며 이동했다.

고독전을 위해 펼쳐진 진법 세계가 어찌나 넓은지, 달려도 달려도 감각도 주사망역에 잡히는 존재가 없었다. 그저 동물들만 걸려들 뿐.

날은 금세 어두워졌다.

‘이쯤 되면 거의 확실하군.’

적당한 크기의 노루를 잡아 대충 식사를 마친 당연명이 생각했다. 심증으로 남겨뒀던 제갈가의 개입이 분명히 있었다고.

이렇게 넓은 진법 세계에서, 당극린과 당정일, 그리고 이름과 정체를 알 수 없는 다른 참가자들과 당연명만이 유독 가까이 배치되어 있었다.

‘서로 싸우게 만들 셈이었던 거야. 진법까지 조작해가면서.’

어차피 고독전의 승자는 하나뿐이다.

가만히 내버려둬도 싸울 수밖에 없는 환경인데, 굳이 특정 인원들을 가까이 배치해서 이르게 싸우도록 유도한다...?

마지막 고독전은 몇 달에 걸친 싸움을 상정하고 만들어진 전장이었다. 그런데 고작 몇 시진 거리에 참가자들 여럿을 배치했다는 것은 필시 음모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득을 보는 놈이 있겠군. 그놈이 제갈가와 한 패일 거고.’

당연명은 서서히 진실에 근접하게 추리를 해 가고 있었다.

제갈가와 태을묵검파.

그리고 처음 공동산에 올 때 붙었던 꼬리, 추적들.

그런 것들을 생각하며 당연명은 잠자리를 준비했다. 낙엽들을 충분히 모으면 제법 포근하게 누울 수 있다. 다른 조원들처럼 절벽에서 생활하진 않았지만, 전생에서도 산속에서 꽤 오래 지낸 기억이 있기에 준비가 어렵지 않았다.

‘흡(吸).’

가볍게 손을 젓자, 순식간에 사방에 흩어져 있던 낙엽들이 한데로 모아졌다. 적당히 몸을 뉘일 정도가 되자 당연명이 손짓을 멈췄다.

곧 당연명은 낙엽 더미에 등을 대고 누웠고, 어둠 속에서 조용히 잠을 청했다.

그렇게 가느다란 숨소리만이 흐르며 두어 시진이 지났을 때였다.

당연명을 향해 은잠술을 펼친 채 조용히 다가서는 인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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