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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당문의 검신급 소가주가 되었다-32화 (32/134)

32화<고독전(8)>

몇 시진 전.

소년을 죽인 후 축소되는 진법 세계 때문에 조금씩 중앙으로 이동해가던 당영령은 우연찮게 멀리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봤다.

‘참가자다.’

그녀는 보자마자 알아차렸다. 경합 참가자 중 하나가 짐승을 사냥하고 그 고기를 굽는 것이라는 걸. 다른 건 다 숨길 수 있어도 불을 피우는 것만큼은 어찌할 수 없었다. 날고기를 먹을 수는 없을 테니.

‘조금 이상하네.’

언젠가 마주칠 것이라 생각하긴 했지만 예상보다 일렀다.

당영령과 손을 잡은 제갈가에서는 고독전이 그녀에게 유리하게 흘러가도록 진법 세계에 개입하기로 했었다. 화룡호독을 써서 죽인 소년 하나와 그녀 자신을 제하면 나머지 참가자들은 가깝게 배치되어 지금쯤 서로 죽고 죽이느라 정신이 없어야 할 텐데...?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당영령은 생각했다. 제갈가가 말과는 다르게 일을 똑바로 처리하지 못했거나, 상대가 이미 다른 참가자들을 다 처치하고 오는 것일 수 있겠다고.

‘후자겠지.’

스스로 의식하진 못했지만, 당영령은 어릴 적에 호되게 당한 이후로 제법 신중한 성격이 되어 있었다. 쉽게 방심하지 않았다.

그녀는 밤이 깊어지길 기다렸다. 상대의 경계심이 옅어지도록. 잠이라도 들면 더 좋고.

그렇게 사방이 고요해지고 나서야, 그녀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주 천천히.

당영령은 비도에 화룡호독을 바르고, 달빛이 반사되지 않도록 등허리에 숨긴 채 은잠술을 펼쳤다.

그녀가 펼친 은잠술은 망재공(忘在功)이라 불리는 것으로, 외조부인 삼장로 당석형에게 배운 것이었다. 가전 무공 중 신법 암영이 제법 은밀하다지만 이건 그보다 한층 더 은신에 적합했다. 기척은 물론이고 호흡마저 극도로 감춰주기에 웬만한 고수가 아니면 알아차리기 힘들었다. 다만 움직임이 무척 더디다는 단점이 있을 뿐.

“.......”

내려앉은 침묵 속에서 당영령은 신중하게 걸음을 옮겼다. 망재공을 믿고 있긴 했지만, 상대의 기감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었기에 최대한 조심하는 게 상책이라는 판단에서였다.

다행히도 적당한 습기를 머금은 덕분에 발걸음이 닿는 흙바닥마저 아주 조용히 뭉개졌다. 상대가 눈치 챌 가능성은 극히 적었다.

그렇게 꽤 시간이 흐른 끝에, 당영령은 마침내 상대의 얼굴을 식별할 수 있는 거리까지 접근하는 데 성공했다. 아니나 다를까, 상대는 전혀 눈치 채지 못한 기색으로 눈을 감고 누워있었다. 깊은 잠에 빠진 듯하다.

‘...누구지? 이런 용모를 지닌 이가 경합에 있었나?’

당영령은 조금 동요되는 것을 느끼며 생각했다. 사실 이곳까지 오면서 상대의 정체를 추측해보고자 했었다.

짐작되는 것은 둘이었다.

대장로 당석중의 제자이자, 원래 그녀의 가장 강력한 경쟁 상대였던 당극린.

그리고 어느 날 감춰왔던 실력을 드러내며 그녀의 얼굴을 처참하게 뭉개 놓은 철천지원수 당연명.

그런데 눈앞에 잠들어 있는 미형의 사내는 전혀 모르는 이였다.

당영령은 잠시 그 얼굴을 감상하듯 바라봤다. 보면 볼수록 잘생긴 사내였다. 깎아지른 듯한 이마부터 해서 보검처럼 날카로운 콧날. 장인이 빚은 도자기마냥 잡티 하나 없는 피부까지.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대로 죽이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불현듯 뇌리를 스쳤다.

그러나 곧 그런 생각을 떨쳐냈다.

‘어차피 겉가죽에 불과한 것을.’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녀는 어릴 적의 일로 외모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내려놓은 부분이 있었기에, 사내의 미모에 현혹되지 않았다. 게다가 제갈가의 제안을 받아들인 마당이었다. 혼처도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

아무리 가슴 떨리게 잘생긴 사내라 해도 고독전의 경쟁자일 뿐이다. 그저 빛 좋은 개살구. 확실히 죽이고 경합에서 승리해 소가주가 되는 것이 옳아⎯

그렇게 생각하며 당영령이 등 뒤로 숨겼던 비도를 앞으로 꺼내들었다. 비도는 화룡호독이 발려져 있어 새빨갰다.

죽이기로 마음먹은 이상 망설일 필요 없었다. 당영령은 겨냥조차 하지 않고 바로 비도를 던졌다. 어차피 이 거리에서는 눈을 감고도 목표물을 맞힐 수 있는 까닭이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당영령은 혹시라도 상대가 자는 척을 하고 있을 것을 상정하고, 넓은 범위에 치명적인 가루독들을 연달아 뿌렸다. 극독이라 불릴 만큼 지독한 독성을 띠고 있거나 산공의 효과를 가진 분독(粉毒)들이었다. 연녹색과 짙은 자색의 가루들이 순식간에 안개처럼 퍼졌다. 상당한 수준에 이른 용독술이었다.

이 모든 게 충분히 접근한 뒤 은잠술⎯ 망재공을 펼친 와중에 한 순간에 쏟아낸 공격이었다. 분명 그녀는 주도면밀했고, 결코 방심하지 않았다. 이 기습에 빈틈은 거의 없었다.

그랬다. 누구라도 곯아떨어져 있는 걸로 보이던 사내가 이 모든 공격을 피해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터였다.

“...!”

당영령은 눈으로 보면서도 믿지 못했다. 비도가 닿기 직전에 누워 있던 사내가 허깨비처럼 사라진 것이다. 기습을 눈치 채고 미리 대비하고 있었다 해도 말이 안 되는 반응속도와 신법 성취였다.

‘...어디지.’

당영령은 급히 기감을 끌어올렸지만 사내의 종적을 찾을 수 없었다. 분명 근처에 있을 텐데 조금의 기척도 느낄 수 없었다.

당영령은 다급히 독과 암기를 뿌리며 물러나려고 했다. 기습이 실패한데다가 종적까지 놓친 이상 완전히 열세에 몰린 것이나 다름없는 까닭이다.

그때였다.

커억!

당영령은 난데없이 누군가에게 목을 잡혔다. 잡히고 나서야 깨달았다. 사내가 독의 안개를 헤치고 튀어나왔음을. 어떻게 멀쩡한 거지? 화룡호독만큼은 아니라도 극독과 산공독으로 이루어진 독무를 지나왔다. 아무리 호흡을 멈췄다 하더라도 피부에 닿은 이상 어떠한 이상이 보여야 하는데...?

의문은 더 이어지지 않았다.

사내가 당영령의 목을 잡은 손을 그대로 들어 올린 때문이다. 당영령은 숨이 컥 막히는 것을 느끼며 상대를 노려봤다. 타고난 완력인지 내공을 실은 것인지 악력이 장난이 아니었다. 약간만 더 힘을 주면 목뼈가 부러질 것만 같았다. 당영령은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며 잡히는 대로 아무 독이나 뿌리려 했다. 그런데 목을 쥐고 있는 손아귀에서 살짝 힘이 빠지더니 사내가 입을 열었다.

“당영령...?”

“누, 누구....”

여전히 공중에 들린 채였지만, 그럭저럭 숨은 쉬어졌기에 당영령이 대화를 시도했다. 상대가 자신을 알아보는 것을 보니 잘하면 승세를 뒤집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녀에게는 아직 당가십독⎯ 화룡호독이 남아있었다. 냉철하게 행동한다면....

그러나 다음 순간 당영령은 이성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못 알아보는 건가. 하긴 피차 많이 변했으니 그럴 만하지. 나 연명이다. 당연명.”

“...뭐라...고...?”

반문하는 당영령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어찌 그러지 않을까. 몇 년간 벼르고 별렀던 불구대천의 원수가 바로 코앞에 있었다. 게다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흉측해진 몰골의 자신과는 다르게 놈은 송옥과 반안의 고사가 생각날 정도로 헌앙한 미남이 되어 있었다.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한편.

그런 그녀를 보며 당연명은 생각했다. 꽤나 질긴 악연이라고.

설마하니 고독전에서 당영령과 마주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어쩌면 그녀가 제갈가와 연관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굳이 묻지는 않았다. 눈빛만 봐도 원한이 가득해 보였기에 대답을 해 줄 리가 없어 보였다. 안 그래도 흉측한 얼굴이 일그러지니 더욱 보기 끔찍했다.

‘인과응보지.’

당연명은 동정심을 가지지 않았다. 만약 전생을 각성하지 못했다면 오히려 괴롭힘을 당하던 자신이 비참한 생을 살지 않았을까. 당영령이 자신에게 원한을 품은 것은 이해되지만, 그렇다고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것이 당연명의 생각이었다.

어쨌거나.

사실 당연명은 당영령이 조심스레 접근해오는 것을 진즉부터 눈치 채고 있었다. 원래 경지에 이른 고수들은 상시로 기감을 활성화시키고 있기에 암살 따위에 당하는 일은 좀처럼 없었다. 하물며 이미 화경에 이른 당연명은 어떨까. 당연히 자는 순간에도 감각도 주사망역을 거미줄처럼 펼쳐놓고 있었고, 거기에 당영령이 걸려드는 순간 이미 잠에서 깬 뒤였다.

역으로 기습할 수도 있었지만, 당연명은 그냥 자는 척하며 상대를 기다렸다.

상대가 당극린처럼 참가자를 살해할 목적인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경합에서 승리하기 위함인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공격은 간단했다. 독을 바른 비도. 그리고 용독술을 이용한 가루독 살포.

보통이라면 꼼짝없이 당했을 공격이었겠지만, 당연명은 어렵지 않게 피해냈다. 신법 암영의 성취가 극에 달해있는데다가, 화경에 이르러 임독양맥을 타통한 뒤 진기의 수발이 더없이 자유로워진 덕분이었다. 진기 운용이 생각의 속도만큼 빨라진 것이다.

가루독을 조금 들이켜긴 했지만, 별반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독요청광기가 독기를 잡아먹고 내공량이 미미하게 늘어났을 뿐.

어지간한 독으로는 이제 독요청광기가 더 커지지 않았기에, 내공량이 늘어났다는 것은 당영령이 사용한 독이 제법 지독한 독이라는 방증이기도 했다.

‘극독을 뿌린 것을 보니 죽일 심산이었겠지.’

당연명은 냉정한 눈빛으로 당영령을 바라봤다. 기존의 악연은 둘째 치고, 상대가 살수를 썼는데도 그냥 넘어가줄 정도로 당연명은 물렁하지 않았다. 또한 은혜는 두 배로, 원한은 열 배로 갚는 것이 당가의 가규다. 목숨을 노렸다면 마땅히 목숨을 거둔다.

“...!”

당연명에게서 살의를 느낀 것일까. 당영령의 표정이 다급해졌다. 이대로 당연명이 손에 살짝만 힘을 줘도 목이 꺾여 죽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원수에게 목숨을 구걸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제 당영령이 믿을 것은 화룡호독뿐이었다. 당가십독⎯ 화경의 고수마저 죽일 수 있다는 극독 중의 극독...!

당영령은 고통에 몸부림치는 척하면서 은밀하게 화룡호독이 담긴 병을 꺼냈다. 그러고는 손가락을 기민하게 움직여 한쪽 손만으로 뚜껑을 뽑고 그대로 당연명에게 뿌렸다. 어차피 놈은 자신의 목을 놓아줄 것 같지 않았다. 피하지만 않는다면 화룡호독으로 놈을 능히 죽일 수 있으리란 계산이었다.

그러나.

턱.

“무슨 수작이지?”

그녀의 시도는 마지막에 막혔다. 화룡호독이 뿌려지려는 찰나에, 번개처럼 움직인 당연명의 손이 그녀의 손목을 잡아챈 것이다.

당영령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독이군.”

당연명은 점혈로 잠시 당영령의 팔을 못 움직이게 만들어놓고 독병을 빼앗았다.

“무슨 독이지?”

“.......”

“말하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지.”

당연명은 손을 살짝 꺾어 당영령의 얼굴이 하늘을 보게 만들었다. 입과 식도가 자연스레 열리도록.

그러자 당연명이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인지 깨달은 당영령이 황급히 외쳤다.

“당가십독! 당가십독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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