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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당문의 검신급 소가주가 되었다-36화 (36/134)

36화<몰살(2)>

“사형. 어쩐지 장문인께서 심란해 보이시지 않았습니까?”

“사제도 느꼈나? 평소엔 얼음처럼 냉철하던 분이신데, 무슨 까닭인지 대놓고 살기를 드러내시더군. 당가에 원한이라도 있으신 걸까.”

“그나저나 아까 그 육편조각 보셨습니까? 본파의 검식으로 남긴 흔적이라 해도 믿겠던데요.”

“천진방주께서도 그러시더군. 본파 태을쌍검식과 몹시 흡사하다고.”

“정말로 태을쌍검식일 리는 없겠지요. 그건 흑사련주께 하사받은 장문의 성명절기이자 본문 최고의 검식 아닙니까. 게다가 이곳은 당가의 어린놈들이 서로 겨루는 곳이니..."

한 무리의 태을묵검파 인물들이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수풀을 헤치고 있었다. 그들에게서는 일말의 긴장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에 모인 인원만 무려 삼백에 달한다.

삼백─ 머릿수만 채운 게 아니라 일정 수준 이상의 실력을 지닌 이들로만 그 정도였다. 웬만한 중소 문파 따위는 하루아침에 멸문시킬 수 있는 전력인 것이다. 심지어 태을묵검파 장문 막인후와 천진방 방주 정연송까지 있다. 이 정도면 공동파와도 일전을 겨룰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게 자연스럽다.

“참, 아까 그 시신 말입니다. 사형.”

“시신? 독살당한 것으로 추정되던?”

“예. 전신을 살펴봤지만 외상이라곤 목 부분에 침 자국 두 개뿐이었지 않습니까.”

“그랬지.”

“그 정도면 우모침 같은 걸로 찌른 것일 텐데, 체내에 들어간 독은 기껏해야 한 두 방울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절명하다니....”

“어린놈들이라 해도 당가라는 거지. 터무니없는 극독을 지니고 있을 공산이 커. 마주치면 암기와 독을 모두 주의해. 극독이 발린 암기는 살짝만 스쳐도 위험할 수 있으니까.”

“명심하겠습니다. 사형.”

그런데 무슨 독이었을까요 그건─ 이라는 사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픽.

“사제..?”

털썩.

거짓말처럼 사내가 눈을 까뒤집고는 힘없이 쓰러졌다. 그의 이마에는 세침류 암기인 우모침 하나가 깊게 박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안색은 순식간에 시커멓게 변했는데, 피부 위로 핏줄이 빠르게 돋아나더니 전신으로 퍼지는 광경이 몹시 섬뜩했다. 지독한 독으로 말미암은 현상이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습격이다!”

“독을 주의해! 우모침을 쓰는 놈이다...!”

“사형. 사제가 숨을 쉬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비겁하게 숨어 있지 말고 모습을 드러내라!”

무리는 혼란 속에서 우왕좌왕했다. 추가적인 기습을 노린다면 지금이 적기였다. 그러나 공격은 한동안 이어지지 않았다.

'오합지졸이군.'

그들을 지켜보며 생각에 잠긴 이가 있었다. 바로 신법 암영으로 기척을 죽인 당연명이었다. 암기 무학을 시험할 좋은 상대라고 여겼는데, 놈들은 너무 방만했다. 그래서 경각심을 심어주고자 우모침을 던져 한명을 막 처리한 참이었다.

안법 시류안을 통해 보이는 투로로 우모침을 던져 넣었는데, 개중 아무도 당연명의 기습을 눈치 채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의 얕은 기감으로는 검신의 투로를 예측조차 할 수 없었을 테니.

우모침에는 당이전이 만들어 준 단장열지독이 발려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웬일인지 당극린에게 썼던 때보다 한층 더 강력해진 독효를 보이는 게 아닌가? 적중당한 사내가 예상보다 빠르게 절명했고, 피부 위로 나타나는 특징도 달랐다. 당연명이 화룡호독을 먹어치워 독요청광기가 조금 더 성장한 덕분이었다.

당연명은 놈들이 방어태세를 갖출 때까지 충분히 기다렸다.

‘이런 환경이 갖추어지기는 쉽지 않아.’

삼백에 달하는 인원.

대강 대화를 들은 당연명은 그들이 태을묵검파를 비롯한 사천의 사도 문파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죽은 당극린이 태을묵검파 출신의 간자였으니 이번 침입이 당극린의 일과 모종의 관계가 있음을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사천의 사파 세력은 ‘명백한’ 적이었다. 현 시점에서 당가는 사천에서 거의 유일하다시피 한 정파였고 정사 중간을 표방하는 문파들 또한 흑사련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당연명은 사천에서 평화롭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당가 또한 사도로 전향해 흑사련 휘하로 들어가거나, 정도 세력이 자리 잡을 기반을 다져 어느 정도 세력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당연명은 당가가 사도에 속해도 상관없었지만, 오랫동안 쌓아온 정도 무가로서의 평판이 있었고 또한 흑사련에 굳이 고개 숙이고 싶지 않았기에 후자를 택하기로 했다.

명백한 적─ 그건 곧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아도 됨을 의미했다. 암기무학과 독을 거리낌 없이 시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곳은 진법세계로 세간의 이목에서 완전히 자유롭기까지 했으니, 당연명은 이 기회를 십분 활용해 스스로의 무위를 점검할 생각이었다. 암기와 독이 어디까지 통하는지를 알고자 했다.

귀한 연습 상대인 그들이 기습 따위로 허망하게 목숨을 잃는 걸 바라지 않았다.

‘이 정도면 적당하겠군.’

당연명은 경계심을 한껏 끌어올리고 있는 이들을 바라보며 품속에 손을 넣었다. 이제는 익숙하게 우모침 한 다발이 만져진다. 단장열지독이 든 독병에 우모침 끝 부분을 살짝 담갔다 뺀다. 이 정도로도 충분했다. 여기에 독요청광기가 더해지면 사람의 목숨을 우습게 빼앗을 정도의 극독이 된다는 것을 이제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후욱─

당연명은 그대로 우모침 다발을 허공에 높이 던졌다. 던져진 우모침들은 자연스레 비산하며 흩어졌는데, 아무리 눈이 좋은 자라도 단순히 시각에 의존해서는 그것들을 분별하기 어려울 터였다.

그러나 당연명은 촘촘한 그물마냥 주변에 뻗쳐 있는 감각도 주사망역으로 허공에 흩어진 수백 개의 우모침들을 하나하나 모두 인식하고 있었다. 실로 압도적인 기감!

‘낙(落).’

그렇게 당연명이 내심 중얼거리며 오른손을 감아쥐었을 때였다.

스스스─

“?”

그제야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태을묵검파 제자들이 하늘을 바라봤지만─

이미 수백 개의 우모침들은 마른 하늘의 소나기가 되어 후두둑 내리꽂히고 있었다.

“맙소사.”

누군가 망연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것과 함께 우모침의 비가 지상으로 쏟아졌다.

피비비비비비비빅─!

불과 한 호흡이나 지났을까.

태을묵검파의 제자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지면에 쓰러졌다. 몸 여기저기에 네댓 개씩 우모침이 꽂힌 채였다.

끄르륵 하는 숨넘어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동시다발적으로 들린다. 태어난 날은 모두 다르지만 한날한시에 귀천하는 사형제들.

그들은 나름대로 태을묵검파의 정예였는데, 검 한 번 제대로 휘둘러보지 못하고 당연명의 한수─ 암기무학 우모침우에 절명하고 말았다.

“.......”

한 순간에 침묵이 자리 잡는다.

누구라도 쉽게 믿지 못할 일이었다. 고작 한수로 스물이 넘는 인원을 죽였다. 그것도 이제 고작 열여섯이 된 소년이 말이다.

핏줄이 불룩하게 솟아오른 시신들을 바라보면서, 당연명이 손을 까닥였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시신들에서 우모침들이 피빗 빠져나오더니 당연명의 손으로 돌아오는 게 아닌가? 암기 회수 무학인 연기륜을 활용한 기예였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암기의 발출과 회수가 자유로웠다. 암기 무학에 대해 조금이라도 조예가 있는 자가 보았다면 차기 암왕(暗王)이 여기 있노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이렇듯 충격적인 광경의 연속이었지만, 막상 그 광경을 재현해낸 당연명은 담담한 표정이었다. 우모침에 조금 묻은 핏방울을 무심하게 털어낼 뿐.

'독만 충분하다면 대량 학살도 문제없겠어. 내공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니고.'

실전에서 사용해보는 것은 처음이었지만 우모침우의 살상력은 만족스러웠다. 무엇보다 효율적이었다. 부피를 많이 차지하는 것도, 독액을 많이 소모하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하나라도 공격을 허용하면 치명상으로 이어지기에, 신법 성취나 기감이 극히 뛰어난 자가 아니면 우모침우를 완전히 피해 없이 막거나 회피하기란 요원한 일일 터였다.

‘다음은 동쪽.’

우모침을 다시 품에 챙긴 당연명의 신형이 스르르 흩어진다. 대성에 이른 신법 암영이 펼쳐진 것이었다.

잠시 후.

당연명이 떠난 자리에는 몸 여기저기에 작은 침 자국만이 남아 있는 시신 이십여 구가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을 뿐이었다.

갑자기 자리 잡은 침묵 때문인지 때마침 불어온 바람이 을씨년스럽다.

아니면 이제 막 본격적으로 사냥이 시작된 것을 알리는 것일까.

단신으로 삼백을 노리는─

암기무학을 익힌 검신의 사냥이.

****

“막 장문. 무언가 이상하지 않소?”

천진방주 정연송이 그 말처럼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것은 막인후가 수하들에게 수색을 명하고서 조금 시간이 흐른 뒤였다.

조용해도 너무 조용했다.

차라리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면 발견하지 못한 대로 되돌아와 중간 중간 보고를 했을 텐데, 상당수의 인원들이 보고를 하지 않고 있었다. 마치 길을 잃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막인후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본인 역시 이상함을 느끼던 차였소.”

“일단 수하들을 모두 불러들이는 게 어떻소? 왠지 감이 좋지 않소이다.”

정연송의 말에 막인후가 근처의 수하들 몇을 불러 수색에 나선 이들을 모두 불러오라 명했다. 별일없을 거라 생각되긴 했지만 찜찜한 부분은 짚고 넘어가는 것이 옳다 여겼다.

그렇게 막인후의 명을 받고 달려간 수하들은 생각보다 금방 돌아왔다. 사색이 된 채로.

“큰일 났습니다. 장문...!”

그들은 자신들이 본 것을 얘기했다. 적게는 십여 명에서 많게는 삼십이 넘게 무리를 지어 수색하던 이들이 모조리 죽어나자빠져 있다고.

“그게 무슨 말이냐. 전원 독살이라니...?”

“처음에 보았던 시신과 동일한 방법으로 당한 것 같습니다. 제자가 살펴보니 침에 찔린 자국이 전부로 다들 극독에 당한 모양새였습니다.”

처음에 보았던 시신이라면 당극린, 막인극을 말하는 것이었다. 막인후의 눈에서 대번에 불똥이 튀었다. 본능적으로 막내아들을 죽인 흉수의 짓이라는 직감이 든 것이다.

곧 막인후의 부름을 받은 무인들이 전부 모여들었다. 그들의 표정 또한 심각했다. 돌아오는 길 곳곳에서 동료들의 시신을 목도한 까닭이다.

“...이게 다인가?”

막인후가 도열한 인원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망연자실한 표정. 그도 그럴 게 삼백에 달하던 인원이 어느새 백이십 남짓으로 크게 줄어 있었던 것이다. 덜 모인 것은 아니었다. 급히 주변을 탐색해 발견한 수하들의 시신이 백오십이 훌쩍 넘었으니 더하면 대강 수가 맞는다.

“어이가 없구려.”

천진방주 정연송이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수색을 명한 지 겨우 한 시진(2시간)을 조금 넘었을 뿐이오. 그런데 쥐도 새도 모르게 백팔십 가까운 수가 당했다? 심지어 살해 수법이 하나 같이 동일하오. 막 장문. 어쩌면 흉수는....”

잠시 말을 흐린 정연송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단 한 명일지도 모르오. 믿기지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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